3월 1일을 기준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벌써 임기의 절반하고도 넉 달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적지 않은 개혁 과제를 수행해왔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 공공 부문에서의 선도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비례성을 강화한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한 탄력근로제 합의 등과 같은 진전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과제는 산적해 있다. 회생 기미를 보이던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치명상을 입었고, 민심은 ‘조국 사태’ 이후 촛불 세력과 태극기 부대로 양분되었으며, 북미 관계나 한일 관계는 여전히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참여연대와 <서울신문>이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2019년 4월 29일)을 맞아 시행한 전문가 조사를 보면,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100대 국정과제의 이행은 절반을 약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되었다(<그림 1> 참조).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가 ‘365일 국민과 소통하는 광화문 대통령’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전 계획을 수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면밀한 검토 끝에 2019년 1월 4일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일단 보류하고 광장 재구조화 후 검토”할 것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무리한 공약 남발 끝에 내린 졸속 결정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않고 적시에 내린 솔직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이러저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과제는 새로운 국가 의제와 대형 이슈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100대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성과를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소통에서 협치로의 인식 확대다. 왜냐하면 무산된 개헌이나 선거법 협상, 그리고 검찰 개혁 과정을 돌이켜봤을 때 임기 후반 국면에서 야당의 협력과 합의를 얻지 못하면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길은 험난할 것이고, 정치·사회적 양극화는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과의 소통을 지속하되, 시민사회와의 민관 협치(국정과제 6: 시민사회 성장 기반 마련)를 강화하고, 여러 정당과의 연합 정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협치는 세 가지 지적 연원을 갖고 있다. 하나는 사회과학, 특히 행정학 영역에서 유래한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서구에서는 더 이상 전통적인 관료적 통치나 행정만으로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정부 이외 기관과 행위자의 광범위한 포함, (2) 불분명해지는 정부와 민간 사이의 경계와 책임 소재, (3) 집합적 행동 문제와 관련된 상호의존관계, (4) 자율적인 자치 네트워크, (5) 정부의 공권력이나 명령에 의존하지 않는 문제 해결 능력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 구조가 필요해졌고, 등장하기 시작했다. 거버넌스의 해석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의 본질은 “주어진 영역 내에서 공동체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에 기초한 문제 해결 기제”로 이해된다.1 이러한 인식에서는 전통적 관을 넘어선 민, 특히 시민사회와의 협력과 소통이 협치의 핵심 요소로 강조된다.
또 다른 협치의 뿌리는 연합 정치의 맥락이다. 연합 정치는 제도적 맥락에서는 연립 정치(coalition politics)로 불리기도 하지만 단순한 선거 연합을 뛰어넘어 선거와 집권을 통해 연립정부 구성을 전후한 모든 정치적 연대와 공동 행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후보 단일화를 비롯한 각종 선거 연합에서 연립정부의 내각 배분에 이르기까지 규약과 협조에 의한 집단 간 공동의 정치 행위를 의미한다. 한국 정치사를 살펴보면 중대 선거 국면에서 선거 연합을 필두로 한 여러 연합 정치 현상이 나타났다. 1956년 선거에서 진보당과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 논의, 1971년 보수 양당과 재야의 연대, 1987년 ‘양 김’ 단일화 시도, 1997년 ‘DJP’ 연합, 2002년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 단일화, 2010년 5대 지방선거와 이후 선거에서 야당들 사이의 선거 연합 등이 있었다. 이 연합의 층위와 성격은 다양했고 일부는 성공적이었으며 일부는 실패했다.
세 번째는 초당파적 정당 협치, 즉 선거에서의 승리나 정부 구성과 무관하게 경제 위기 해결이나 중요 입법 통과를 둘러싸고 정부와 정당, 의회와 정당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밀한 협력을 뜻한다. 특히 의회 중심의 정당 협치는 분점 정부나 소수파 내각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분점 정부의 대통령이나 단체장이 정치적 난관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내부 역량을 강화하여 다수당의 정책에 대응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이에 대한 당내 지지를 끌어내 협상력을 키우는 것이다. 다음은 초기부터 양당 지도자들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초당파적 협력체를 구성하여 양쪽으로부터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일례로 2009년 당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첫 번째 행정부를 구성하면서 세 명의 공화당 소속 인물을 포함시켰다. 오바마는 이러한 행정부 구성이 초당파성의 정신(bipartisan spirit)을 반영한다고 언급하며 과거와 구별되는 새로운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당파성의 정치’에 지친 미국인들에게 초당파적 정치는 현재 미국 정치가 시급하게 회복하여야 할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협치는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시민사회-정치사회의 협력적 문제 해결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국정 운영에서 협치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협치와 관련하여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꽤 넓게 퍼져 있는 편견을 바로잡는 것이다. 하나는 권한이 집중되어 있고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제 하에서 협치는 가능성이 없고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대통령제에서도 연립정부, 즉 연합 정치 양상은 드문 것이 아니다. 한 연구는 1946년부터 1999년까지 54년 동안 218개의 대통령제 정부를 관측했는데 이 가운데 97개 사례에서 분점정부가 나타났다. 즉 대통령의 소속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중 52개인 약 53.6%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1978년부터 2002년 사이 라틴아메리카 내 18개 대통령제 국가의 80개 정부 중 51개가 소수파 대통령이었는데 그중 27개(52.9%)에서 연립정부가 형성되었다. 학계는 63개 대통령제 국가를 대상으로 1996년에서 2009년까지 좀 더 최근의 연도별 사례 687개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442개년의 소수파 대통령 기간 중 250개년(56.6%)에 연립정부가 형성되었으며, 심지어 245개년의 다수파 대통령 기간 중에서도 60개년(24.5%)에 연립정부가 나타났다. 요약하자면 상식과는 달리 대통령제에서 연립정부의 구성, 즉 연합 정치의 출현은 희소한 사례가 결코 아니었다.2
흥미로운 점은 연립정부가 단독 정권보다 입법 성공률이 높았으며 행정부와 의회 사이의 갈등, 대통령의 조기 사임 비율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 생존성과 행정부의 안정성에도 효과적이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유럽에서 경제 위기 이후 입법, 그중에서도 재정 및 사회 정책을 둘러싸고 정당과 의회의 공조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2008년 말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책과 해법을 제시하는 정당이나 정책을 통해 공조하는 연정 형태로 집권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후 시기의 총선과 정치권력의 교체에서는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 여부나 국가 부도 위기를 벗어날 수 있으면서 개인의 이해관계에 최선이 되는 정당을 선택하는 일이 잦아졌다. 또한 국가적 위기에서 의회를 무대로 많은 정당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통치의 정치’라는 연합 정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따라서 최근의 정치적 변화는 정당 중심에서 의회 중심이라는 용어를 적용해도 될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의회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었다.3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발의 주체별)은 29.5%(2만 3,127건 중 6,823건 처리)다. 이는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42.82%)을 기록했던 19대 국회 때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이데일리>, 2019. 11. 19.). 이러한 상황은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서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극한 대립을 불러온 ‘여소 야대’의 국회 상황에서 정책 추진력이 떨어지는 데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협치 및 설득 능력의 한계로 문재인 정부의 법안 통과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요약하자면 첫째, 대통령제는 연합 정치가 필요한 여러 제도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둘째, 기존의 이해와는 달리 대통령제에서 선거 연합을 통한 연립정부의 구성은 드물지 않으며 오히려 상당한 사례가 있다. 셋째, 대통령제와 연합 정치는 그 정치적 성과물에서도 우월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연합 정치가 대통령제 때문에 어렵다기보다는 오히려 연합 정치와 대통령제는 어울리는 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연합 정치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제와 연합 정치, 연립정부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한층 더 구체적인 조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실 협치를 위한 최선의 지름길은 권력 구조를 개편함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제로 요약되는 작금의 ‘1987년 승자 독식 민주주의 체제’를 권력 분점 민주주의, 협의 민주주의, 혹은 합의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협상과 설득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정당의 ‘구조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한 협치 발전의 전제는 그 주체가 되는 정당이 각기 분명한 대표성을 가져야 하며, 따라서 자신들이 대표하는 그 이익의 관철에 필요한 정책 목표 역시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정당의 구조화’가 협치의 기본 조건이라는 얘기다. 정당의 구조화란 유럽에 집중되어 있는 정치 선진국의 정당 체계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다양한 사회·경제 세력을 제각기 대표하는 여러 유력 정당이 분명한 정체성과 상당한 영속성을 유지하면서 이념이나 가치 혹은 정책 기조를 중심으로 일정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4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개헌이나 정치 선진화와 같은 장기 비전이기 때문에 아래에서 설명할 구체적인 대안의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 총선 이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이후로 개점휴업 상태인 ‘여야정국정상설협의체’를 정례적으로 개최하여 협치를 담보할 제도적 틀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또한 형태도 과거처럼 여야 5당 대표로 국한하지 말고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와의 단독 회담, 중요 입법 사안을 관철하기 위한 원내 대표 초청 회담, 외교와 경제 이슈 등 초당파적 의제 중심의 확대 회담 등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당-정-청 차원의 거시적이고 다각적인 협치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경제 대(大)연정, 평화 중(重)연대, 분권 소(小)연합을 뜻한다. 먼저, 경제 안정과 성장을 위한 초당적인 경제 대(大)연정 전략이다. 오는 4·15 총선 이후 여야 모두는 지도부 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전망이다. 지금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로 휘청거리는 한국 경제를 어떻게 회생시킬 것인가’다. 대구와 청도를 비롯한 특별재난지역 선포, 추가경정예산 편성, 관광·항공·운수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에 대한 지원, 영세 상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은 야당의 협조 없이는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이 어렵다. 새롭게 등장한 여야 지도부 모두를 대상으로 경제 살리기를 놓고 대통령의 초정파적 설득 정치가 긴요한 시점이다.
다음으로는 평화 중(重)연대 전략이다. 두 차례에 걸친 북미 정상회담과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총선 이후 정부는 북한 개별 관광과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의 재개를 통해 과감하게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할 여야 지도부 모두를 대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평화협정 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상임위원회) 위원 일부에 정부의 남북 화해 협력 정책과 평화협정 체제의 추진에 우호적인 합리적 보수 인사를 임명함으로써 초당적 지원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는 분권 소(小)연합이다.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어섰다는 충격적인 보도(<한겨레>, 2020. 1. 7.)가 나오면서 균형 발전을 기대했던 사람들과 시민단체에서는 실망감과 더불어 균형 발전 2.0이나 2기 혁신 도시를 외치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임기 후반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지방분권의 속도를 위해 새롭게 대형 국책 사업이나 웅장한 비전을 발표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고 진정성도 의심받기 십상이다. 가장 절실하고 효과가 큰 것은 75번 국정과제인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 분권’을 차질 없이 실현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7 대 3을 거쳐 장기적으로 6 대 4 수준까지 개선할 것임을 약속했다. 실제로 제1단계 재정 분권을 통해 2019년 말 현재 75 대 25 수준까지 도달했다. 문제는 ‘12조 원+α’의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하여 7 대 3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2차 재정분권 계획’이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자치분권위원회 등 부처 간의 이해 다툼과 컨트롤 타워의 부재 속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점이다. 여야를 떠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청와대가 직접 ‘2차 재정분권 계획’의 수립과 실현에 책임을 다함으로써 균형 발전 의지를 과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방분권과 돌봄 서비스를 매개로 야당 소속 광역 단체장들에게 국무회의 배석 권한을 허용함으로써 협치의 여건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겠다.
셋째, 야당의 인식 전환이다. 협치와 관련하여 JTBC의 교양 프로그램인 <썰전(舌戰)>은 몇 가지 함의를 주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독한 혀들의 전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썰전>이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을 넘은 최고 시청률(9.3%)에 힘입어 ‘국민 논객’으로 등극했다(<한국스포츠경제>, 2016. 11. 4.). 주지하다시피 <썰전>은 보수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와 진보적 성향의 유시민 작가가 벌이는 솔직하고 화끈한 공방과 논리 덕분에 재미를 넘어 대표적인 차세대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부상했다. 흥미로운 것은 좌우 진영을 대변하는 두 논객이 때때로 사건 해석을 둘러싸고 감정적 대립으로 충돌하지만, 그 누구도 상대방을 ‘수구꼴통’이나 ‘종북좌빨’로 비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판을 넘어선 지나친 모독과 폄하, 독설을 넘은 인신공격, 근거 없는 이념 공세가 무성한 정글에서는 협치의 토양이 자랄 수 없다. 책임 있는 공직자(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가 현직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지칭하거나 대선 출마까지 했던 야당 정치인이 자신의 재판이 유죄가 되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망언을 하는 등 막말이 넘쳐나는 정치 문화에서는 협치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의회 중심의 정당 협치는 막말과 욕설, 이념 칠하기의 투쟁적 의정 문화를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모호하고 막연한 국회법의 징계 심사 관련 법규를 보다 구체적인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5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의 품위 유지 조항(제2조. 국회의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아울러 여야를 막론하고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는 국회윤리특별위원회의 구성에 적어도 3분의 1 이상은 외부 인사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넷째, 협치가 우리 정치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민주시민교육의 활성화가 요구된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협치의 모범으로 독일을 꼽는다. 1949년 ‘서독 기본법’ 제정을 시작으로 정착한 민주적인 정치제도, 민주화를 위한 정치 엘리트들의 의지와 노력, 매스컴의 확산 등 경제 발전의 성과는 독일 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민주시민교육 강화와 활발한 시민운동은 비판적이고 참여적인 정치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결과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활발한 정치 참여, 타인에 대한 신뢰와 소수 의견에 대한 관용 등 자유로운 자기 결정을 중시하는 정치의식이 싹텄고, 이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절충에 도달하는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논의되어왔던 민주시민교육의 설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실험을 해왔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거연수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국회(국회연수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에서 민주시민교육 담당 기구가 되고자 적극적으로 이론을 개발하고 입법 로비를 펼쳤지만 다 무산되었다. 보수 야당의 완강한 반대 탓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원인은 민주시민교육의 핵심 내용과 교육 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민주시민교육 지원센터를 평생교육진흥원 산하에 설치하고 있다. 충북, 부산 등의 지자체가 평생교육원 안에 민주시민교육센터를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유기적이거나 체계적인 활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초등생부터 성인까지의 민주시민 정치교육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실용, 인문, 교양 등의 성인 학습 또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두 제도의 지향점과 원리는 분명히 상이하지만, 조직과 예산의 제약 때문에 뭉뚱그려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협치 문화를 위해서는 독일과 스웨덴처럼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시민의 양성에 목표를 두고, 정당 주도의 민주시민교육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
끝으로 정부와 국회는 지방 차원의 협치 실험을 독려하고 그 경험을 연구해야 한다. 지방 차원에서의 협치는 제주도의 민관 협치와 경기도의 정당 협치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치와 분권이 한국 정치의 핵심적 과제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정부-여당과 당적이 다른 경기 연정과 제주 협치의 실험을 귀중한 사례로 인정하고 평가·연구한다면, 그 자체로 협치 문화를 진작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