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은 자연을 이해하는 영역을 넘어서서 인간의 일상생활에 크고 깊은 영향을 준다. 역사적으로 영역을 달리하며 독자적으로 발전해오던 기술과 과학이 근대 이후로는 상보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발전을 가속하였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과학과 기술은 그 경계를 구분해서 정의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중첩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 때문에 흔히 ‘과학기술’로 통합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라고 하는 것은 거의가 과학기술의 결과물이거나 그 응용물이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축적이라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산업 기술을 혁신시켜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회·문화적 변동을 일으켜왔다. 역으로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이라는 결과가 원래 과학기술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키거나 새로운 영역의 과학기술을 탄생시키는 토대로서 역할하기도 한다. 이러한 선순환은 과학기술이 실제로 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만들어냈던 몇 차례의 산업혁명과 그 이후의 결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과정에서 차이가 있긴 했지만 이 선순환을 잘 활용하는 국가는 예외 없이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는 데 성공했으며 국제적으로 지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를 차지해왔다.
국가의 힘과 위상은 보유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종류와 수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지금도 경쟁 관계인 많은 국가가 새로운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지며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대규모 경제성장을 이끈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경제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장 동력은 기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과학 이용법’을 배워서 활용했다는 사실이다.1
대한민국은 1차, 2차 산업혁명의 출발은 뒤졌으나, 이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추격해가며 선진 산업 기술을 습득하여 기대를 초월한 경제성장과 인적자원 확보라는 성과를 모두 얻었다. 이 과정을 통해 과학기술의 기반을 마련하고 새로운 분야의 과학기술에 도전하는 위상을 확보한 결과, 각 산업 영역에서 정보 기술이 신성장 동력으로 도입되는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적으로 이끌었으며 디지털 시대의 값진 결실을 얻어내고 있다.
우리가 가진 디지털 과학기술의 경쟁 우위는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의 결실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도 매우 소중한 토대다. 이는 이 분야에 대한 선행 연구 개발(R&D)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며 결코 우연히 이룬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경험의 각인은 미래의 먹거리를 찾기에 앞서 그에 합당한 R&D 투자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합의의 교훈이 되었다고 본다. 그 덕분에 여건이 어려운 지금도 성장 동력을 구하는 데 필요한 R&D 투자에 있어서만큼은 지원의 폭을 늘리며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그 효율성이 낮다며 R&D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이는 지식 가치 사슬의 복잡한 특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R&D 영역 간의 차이와 수준의 다양성을 단순화시켜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목표로 하는 R&D인지, 그리고 그 투자가 이루어지는 영역과 특성은 어떠한지 등을 고려하면서 효율성을 따져본다면 결과는 달라질 게 분명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사실에 대한 지식을 목표로 하는 기초연구 분야 R&D의 경제적 효율성은 단시간에 측정되거나 계산되는 것이 아니다. 공학 분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응용연구 R&D조차도 주제와 목표로 하는 제품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그 성과가 나오는 데 걸리는 기간이 크게 다를 수 있다. 또 연구 분야에 따라 기초연구와 응용연구가 병행되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제품이나 서비스가 실생활로 제공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질병 연구의 일부 분야가 그렇다. 특정 미생물에 대한 기초연구는 그 유기체가 질병의 원인인 경우 곧바로 질병 치료를 목표로 하는 응용연구와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연구 분야에서 기초와 응용이 기다렸다는 듯이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이해한다면 R&D 투자의 효율성을 획일적으로 평가하거나 R&D 투자에 인색하지 않을 것이며, 단기적으로 성과를 재촉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현재의 R&D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방안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말이지 R&D 투자 대비 혁신 경쟁력을 높일 방안은 없는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R&D 투자 비중은 R&D 단계별로 보면 기초연구비의 비중이 낮고(14.5%), 경제사회 목적별로는 산업 생산과 기술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60.3%). 수행 주체별로는 대기업 중심의 기업 부분이 대부분의 연구비를 사용하고 있으며(79.4%), 대학과 출연연을 포함한 공공 부문 연구비는 낮다(20.6%). 기초연구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앞선 선진국의 경우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많은 연구가 공공 부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초연구인 점을 생각하면 현재 우리의 R&D 구조 자체가 연구 개발 투자 대비 산출 부족이라는 ‘코리아 패러독스’ 논란을 야기하는 하나의 원인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해진다. 따라서 과학기술 R&D 자체 품질의 고도화는 물론 혁신 성장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신성장 동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R&D 시스템의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체계적인 탐구에 기반하고 있는 과학 지식이 전반적으로 사실에 대한 설명과 기술적 응용의 기초를 제공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 지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에는 그 시간과 장소 등에 관련된 ‘지역 지식’이 가치를 발휘하기도 하는데 이는 과학적인 연구로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유형의 지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과학 논문을 읽는 것만으로 기술 습득이 쉽게 이루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이 점을 간과했기에 임무 중심 R&D의 성공적인 진행에 반드시 필요한 지역 지식을 소홀히 했고 경험 환경, 즉 산업 현장의 가치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 명예교수 프랭크 잭슨(Frank Cameron Jackson)의 철학적 사고 실험에 의하면, 과학자가 한 주제에 대한 과학 연구(예를 들어 색깔과 색 감각)를 아무리 광범위하고 완벽하게 완료한다고 해도 특정 환경에 맞닥뜨리기 전에는 그것을 경험하는 것(색깔을 실제로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즉 자전거의 구조와 움직임에 대한 물리학을 다 꿰고 있으며 자전거에 대한 모든 책을 섭렵하고 심지어 자전거를 타는 방법과 자전거 경주에서 어떤 책략을 쓰는지까지 자료를 통해 완벽히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자전거 타기를 시도하면서 경험하는 상황과도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이 자전거 타는 방법에 대해 많이 읽은 것(사실에 대한 지식을 가진 것)과 실제로 자전거 타는 방법을 배운 것(기술 습득 능력 지식)은 다르다. 실수가 실력으로 쌓일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즉 자전거를 실제로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전거 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2 잭슨 교수의 논증이 시사하는 바는 과학만으로 알 수 없는 중요한 능력 지식(기술)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획득하고 고도화하는 방법은 달리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기술 R&D 투자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연구자의 책임 부족이나 지식 가치 사슬의 구조 부실만이 아니라 지식의 본성과도 연관이 있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과학기술혁신 생태계 조성에 필요한 조치와 함께 능력 지식을 갖는 데 필요한 환경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능력 지식은 새로운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하는 경험을 기초로 한다. 어떤 환경이 무엇을 수단으로 하여 제공되느냐에 따라 그 경험-환경 속에서 다양한 조합에 의해 개인이 얻게 되는 지식의 질과 양이 결정될 것이다.
경제성장의 저하 추세를 막고 한국의 산업 부분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도출된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질 좋은 고용을 창출하고 지식 기반 생산 지원 서비스업의 성장을 기대하려면 생산 현장이 경험 축적의 공간으로 제공되어야 하며, 여기에서 경험 축적의 긴 과정을 통해 확보되는 경험 지식이 있어야만 개념 설계 역량을 보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실용화 단계의 스케일 향상도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개념 설계 역량은 문제의 속성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법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량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개념 설계’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험 축적이 절실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며,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만이 경쟁력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되는 길이라고 한다. 동시에 개념 설계 역량은 논문이나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지식, 즉 축적된 경험 지식에 의해서 얻어진다는 주장이다.3 그동안은 선진국이 만든 개념 설계를 뒤쫓는 추격형 모방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해왔으나 이제는 창의적 개념 설계 역량을 확보해야만 한계에 도달한 추격형 성장 모델을 과감히 탈피하고 가치 사슬의 첨단을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지는 축적된 경험 지식이 창의적 개념 설계 역량을 만드는 기초라고 보는 이 견해는 앞서 과학 지식과 범주를 달리하는 중요한 능력 지식(기술)의 존재를 보여준 잭슨 교수의 논증이 시사하는 바와 그 맥락이 같다.
통상적인 절차대로 수행되는 현행의 R&D 시스템이 경험 지식의 축적 또는 능력 지식의 고도화라는 목표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혁신 성장과 미래 도전은 지금과는 다른 혁신적인 과학기술 R&D 체제의 도입을 전제해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혁신적인 R&D 시스템은 용도가 불분명한 작은 기술,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 부족, 현장과 절연된 절편화된 연구 결과 등을 지양하는 것이다. 수요자인 국민의 필요에 부합하는 문제를 도출하고 제안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의 목표라야 한다.
임무 중심 R&D는 과학 지식의 밖에 존재하는 능력 지식을 확보하도록 견인하는 관리 시스템이 핵심이다. 임무 완수를 목적으로 하는 R&D는 미소 경쟁 시대에 미국이 세계 기술을 주도하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것이 그 역사적 배경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 중장기적인 기술적 임무를 도출하고 기초연구와 상용화(실전 사용)를 강력하게 연결하는 도전적 R&D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임무 전문성을 가진 연구관리자(PM)에게 강력한 기획·평가 권한과 운용 독립성 등을 부여하고 개방 경쟁형으로 추진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의 나사(NASA)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진행하는 방식이 잘 알려져 있으며 기초연구-새로운 발견-개념 설계가 중첩적으로 진행된다. 현장에서 기능을 해야 R&D의 임무가 완료되기 때문에 논문과 보고서에 있는 지식 이외에 현장에서 축적되는 경험 지식(또는 능력 지식)과 지역 지식이 중요하게 취급될 수밖에 없다. 사람과 현장에 대한 투자가 병행되는 구조인 셈이다. 임무 중심 R&D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터넷과 GPS를 들 수 있다.4 실행 과정에서 개념 설계 역량이 발현되어야 하는 임무 중심 R&D 시스템은 미국의 성공에서 자극을 받은 유럽, 일본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추격형 R&D 시스템의 선도형 전환이 지체되고 있는데 그 원인을 살펴보면 먼저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평가가 개별 성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부처별로 그것도 세부 단위가 R&D의 기획과 운영을 주도하고 있어 처음부터 해당 R&D의 임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주어지지 못하고 있다. 개별 연구 수행자와 정부 관리가 R&D를 기획하고 과제의 성과보다는 과제 선정 경쟁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 R&D의 수요자가 국민이라는 사실을 다시 분명히 하고5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미국, 유럽, 일본 등이 도입하고 있는 임무 중심 R&D를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선은 당면 과제로 국가적 임무 개념부터 재정의하고 R&D를 주도적으로 진행시킬 전문 인력의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선도형 R&D 시스템 구축의 기반 조성을 위해 축적 성장에 필요한 연구 개발 관리 제도의 도입, 현안 해결형 융합 연구단의 시범적 운영, 여러 팀의 경쟁적인 프로젝트 수행, R&D 관리 전문 기관의 역할 재편 등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작업도 경제 역량 강화에 필요한 산업 기술형 또는 기업 현안 지원형 R&D라는 현실적 요구를 담아내면서 정밀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동일한 임무 중심 R&D에 여러 팀이 도전하며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장·단기적으로 점차 확대해가는 방안과 함께 청년 과학자와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제도 혁신을 이루어내면 과학기술혁신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국가 R&D 시스템의 효율성과 수월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혁신하는 일은 국가 지식 가치 사슬의 구성 요소를 전반적으로 재설계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부실한 구성 요소를 강화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고, 재설계 작업 전반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조정하는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 타워의 기능 강화와 조직 개선도 필요하다. 기후변화와 인구구조 변화, 자원 부족 등이 미래의 위험 요인으로 예고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재해는 이미 그 시작을 알리고 있다. 글로벌 확산이 염려되는 각종 신종 감염병의 출현은 남이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다. 미래 사회가 당면할 이런 문제의 해결에도 임무 중심 R&D가 주된 역할을 할 것이다.
현 정부는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고르게 돌아가도록 경제의 중심을 국민 개인과 가계로 하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지향한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소득 주도 성장, 공정 경제, 혁신 성장을 포괄하는 혁신적 포용 성장이 다양한 실행 과제로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취약점인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바로잡고, 심각한 부의 불평등을 개선해야만 한다. 자원의 활용을 왜곡하는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는 물론 지속 가능한 미래의 경쟁력을 보장받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기존 제조업을 업그레이드하고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이와 병행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형 신산업 육성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단과 역량이 갖추어져야 하지만, 무엇보다 기술혁신의 토대가 되는 과학기술 역량 강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성장 관련 이슈가 등장하면 다른 주제는 빛을 잃게 된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 것처럼 경제성장은 중요하다. 경쟁 관계에 있는 많은 국가가 저성장 추세를 꺾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담보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에 의한 자원 개발과 산업구조 재편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에 필요한 R&D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초기에 산업, 과학기술, 사람, 사회제도의 4대 부문에서 혁신을 꾀하고 8대 선도 사업을 강조하며 출발했다. 이후 관련 부처 간 그리고 각 분야의 상보적인 정책 소통을 거치면서 데이터, AI, 수소경제라는 새로운 전략적 투자 대상을 중요하게 부각시켜 새로운 경제 환경을 주도하기 위한 혁신적 산업 생태계 조성에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바이오 헬스, 미래 차,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3대 신산업으로 정하고 이에 맞는 정책 과제를 도출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기업 생태계를 혁신 창업과 강한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 생태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학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의 선순환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내야 한다.
내년이면 정부 예산과 민간투자를 합쳐 국가 R&D 비용 100조 시대가 된다. 이에 대비한 국가 혁신 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규모와는 달리 R&D 법제를 보면 주요 부처의 과학기술 법령이 451개에 이르는 관료 주도의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R&D 100조 시대에 맞는 과학기술 법제의 혁신 시스템화는 임무 중심형 혁신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특히 핵심 임무를 정의하기 위한 분야별 임무위원회를 구성해 광범위한 의견 수렴에 근거를 둔 연구 제도 혁신의 원칙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연구 조직의 상시적인 자체 혁신이 가동되면 연구 제도 혁신이 지속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6
4차 산업혁명의 진행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산업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탈산업사회’다. 공장과 기업이 없어져 더 이상 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가 크게 줄어드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은 강력한 인간의 시대를 예고한다. 인류는 자신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활용해 왔는데 앞으로 그 흐름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은 인간의 지능적 한계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기대 수명 증가, 노화 극복, 인간 능력 확대, 네트워크 강화, 인구구조 변화 등이 예상된다.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되는 디지털 전환의 확산으로 산업의 기존 경쟁 법칙을 바꾸는 성장은 이미 실현되고 있다. 전통적인 기업의 경계가 파괴되고 가치 사슬이 다변화되며 다양한 시장 참여자가 가치 창출과 혁신 활동에 참여해 기술혁신과 신제품 출현도 더 빨라지고 있다.7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환경 변화와 생물종의 변화도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일시에 모든 문제를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 과학기술의 발전은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전, 극한 연구의 중요성 부각, 사회문제 해결 요구 등이 반영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의 과학기술 정책과 R&D 시스템도 그에 맞추어 혁신적으로 재설계되어야 하며 사회 전반에 걸친 개념 설계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 모두 거버넌스 혁신과 교육 시스템의 총체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