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아픔이다. 혹자는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일종의 핸디캡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한다. 고용이 신분이 된 세대,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세대, 평생 월세로 살 가능성이 높은 세대에 대한 관심과 정책도 쏟아진다.
지난해 12월 9일에는 청년의 고용·창업·주거·복지·문화 활동 등을 정부가 지원하도록 한 ‘청년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에서 청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존재로 규정되어 있다. 청년이 겪는 사회문제를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 정책에 관한 한 서울시를 포함한 지방정부의 움직임은 훨씬 신속하다. 이미 2015년 1월 서울시에서 시작한 ‘청년기본조례’는 2018년 17개 광역 지방정부 모든 곳에서 제정되었다. 일자리와 고용 정책 중심의 청년 정책은 주거, 기본 소득 보장 등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다.
쏟아지는 청년 정책과 별개로 청년 문제는 여러 형태로 변이해왔다. 오늘날 청년 문제는 계급 문제이자 젠더 문제와 분리하기 어렵다. 불평등이 세습되면서 청년 세대는 살 만한 청년들과 그렇지 않은 청년들로 양극화되고 있다.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지칭하는 ‘이대남 현상’에서 드러나듯이 남성과 여성 간 젠더 갈등도 극심하다. 게다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부르짖고 있다.
청년 정책은 넘쳐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높다. 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정책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청년은 어떤 집단이며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 욕구는 무엇인가. 확실한 점은 청년들은 분열되어 있어 단일한 집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른바 ‘N개의 정체성’이야말로 이 시대 청년 집단의 특징이다. 이 글에서는 청년 세대 분절화의 양상 및 원인, 그리고 정책에 미치는 함의를 계급, 세습, 젠더, 공정성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고 이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청년 정책은 진보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도 ‘청년’을 명분으로 여러 정책을 내놓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노동 개혁’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고임금 정규직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여기에는 ‘먹고살 만한’ 기성세대와 힘겨운 청년 세대 간 대립이, 그리고 청년 세대를 착취하는 기성세대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청년을 명분으로 86세대를 ‘욕받이’로 내세워 세대 갈등을 조장했다. 《세대 게임》의 저자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이를 ‘비난의 세대 게임’로 설명한 바 있다. 이 게임에 빠져들수록 정작 책임져야 할 자들의 잘못은 은폐되고, 시급한 구조 개혁은 무산된다. 이 게임의 설계자는 ‘세대 착취론’을 내세워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자신들은 교묘히 빠져나간다.
세대 착취론은 세대 간 격차에서 출발하는데 근래 여러 데이터와 연구는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 격차가 훨씬 심각하다고 말한다. 부유한 청년과 가난한 청년 간 격차로 인해 과연 청년 세대가 동일한 집단으로 묶일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2015년 8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기획 조사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첫 조사다. ‘이 땅에 청년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만 19~34세 청년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 일자리와 출산, 미래 자신감과 꿈을 실현하는 기회, 불안과 희망 같은 감정 등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좌우되는 불평등한 청년 세대의 현실이 드러났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는 청년 세대의 삶의 기회를 결정하기에 새롭게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 청년 세대에게 공정한 출발, 기회의 평등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함축한 조사였다.1 심지어 한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 여부와 같은 패자 부활의 기회, 자신의 노력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는 물론 결혼, 출산 등 생애 주기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해야 하는 기본적 기회조차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제한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세대 간 격차는 그 사이에 좀 나아졌을까? 오히려 수많은 데이터는 이 같은 추세가 더 공고화되면서 201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구조화된 계급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청년들은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세계에서 살 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를 지향하기도 한다. 2019년 11월 서울시 청년청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19~39세 청년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조사는, 기회라는 측면에서도 계층 간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유한 청년은 가난한 청년보다 초·중·고 시기에 어학연수나 유학 경험(상층 26%, 15.2%, 하층 10.6%, 4.1%)은 물론, 기업·공공기관 등에서의 인턴 경험(상층 36.4%, 하층 24.9%), 공무원 시험 준비 경험(상층 22.7%, 하층 15.9%) 등이 더 많았다. 이러한 경험의 차이는 인적 자본의 차이로 이어지면서 취업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부유한 청년은 부모의 경제적 지위를 상, 중상, 중하, 하 이렇게 4개 구간으로 나누었을 때 중상층 이상이라고 응답한 이들을 의미하고, 가난한 20대는 하층이라고 응답한 이들을 의미한다. 이 조사에서 중상층 이상은 1만 명 중 2,101명으로 상위 20%를 조금 넘는다. 반면 하층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2,573명이다.
또한 이 조사에서는 삶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 이슈와 정치에 대한 태도, 사회에 대한 인식, 그리고 지향하는 가치 등 여러 측면에서 청년 내부의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질문했을 때 중상층 부모를 둔 부유한 청년과 가난한 청년이 원하는 사회상은 확연히 달랐다. 조사 결과를 보면 부유한 청년은 분배보다 성장, 개인 간의 능력 차이를 보완한 평등 사회보다 개인 간의 능력 차이를 인정하고 경쟁력을 중시하는 사회,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위험에 대해 사회보장 등 국가의 책임이 높은 사회보다 세금을 적게 내는 대신 위험에 대해 개인의 책임이 높은 사회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연대와 협력보다 경쟁과 자율, 삶의 질보다 사회·경제적 성취가 더 중시되는 사회를 선호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가 지적한 대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성장, 소득, 경쟁 등과 같은 세속적 성취보다는 인권, 참여, 복지, 삶의 질 등과 같은 탈물질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진다. 하지만 한국의 부유한 20대는 어떤 집단보다 ‘먹고사니즘’에 기반한 물질주의적 가치가 강력하다.
반면 가난한 청년들은 정반대 편에 서 있다. 분배를 지지하고 위험에 대해 국가의 책임이 높은 사회, 연대와 협력 등을 선호했다.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부유한 청년들과 달리 가난한 청년들의 탈물질주의적 선택은 경쟁해봐야 밀려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의 떠밀린 선택처럼 보인다. 이러한 경제적 지위, 즉 계급에 따른 차이는 이전보다 더 공고화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청년 정책의 목표가 청년 일반이 아니라 가난한 청년을 목표로 좀 더 정교해져야 함을 시사하는 결과다.
불평등 현상은 소득, 자산 등 경제적 영역에 그치지 않고 교육, 건강 등 삶의 전 영역을 강타하면서 계급사회를 공고화한다. 그중에서도 자산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 확대의 핵심 열쇠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새로 벌어들인 몫(소득)보다 이미 축적된 몫(자산)의 비중이 커지는 이른바 ‘피케티 비율’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자산 불평등은 부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면서 핏줄과 태생이 운명을 결정하는 ‘세습 사회’를 불러온다. 상층 자산계급이 자산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상속·증여를 통해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흐름은 이미 우리 사회에도 확연하다. 2010년대 들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어 우리나라의 국민소득 대비 상속·증여 비중이 4~5% 수준으로 과거보다 높아졌다. 연령별 사망률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국민소득 대비 상속·증여 규모가 이미 8~9%대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김낙년 동국대 교수). 《불평등의 세대》의 저자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자산 형성의 기회를 집중적으로 누린 세대는 1930~40년 출생 세대인데, 이들이 자산을 자녀 세대인 1970~80년대생에게 상속하면서 이 세대 내부에서 자산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주목할 것은 세습은 부의 대물림에 그치지 않고 학력, 능력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자녀의 학력이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을 따라간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다. 주병기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아버지의 학력에 따른 기회 불평등이 소득에 따른 기회 불평등보다 크다는 연구를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다.3 더 나아가 자녀의 노력 수준도 아버지의 학력과 밀접하게 연관되는데, 지능지수 같은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성실성, 성취 동기 등 비인지적 능력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학업 성취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자산 등 물적 자본은 물론 학력, 능력 등 인적 자본도 세습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학력에 따라 교육투자가 달라지고 자녀의 대학, 일자리도 영향을 받는다.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고 경제는 구조적 저성장에 처한 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용과 소득이 안정된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좋은 일자리 중 상당수를 차지하던 중숙련 일자리, 대졸자들이 가던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자동화로 인해 감소하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전문직, 연구직 등 고숙련 일자리는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있으며 좋은 일자리와 거리가 먼 음식 서비스와 고령자 대상 보건 의료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수록 여기서 차지하는 명문대 출신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출발해 대기업, 정규직으로 상향 이동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자리가 평생을 좌우하는 사회, 이른바 고용 신분 사회에서 학력 자본은 절대적이다.4
이렇게 교육은 계층 이동의 통로가 아니라 계급 고착화의 기제가 되고 있다. 《20 vs 80의 사회》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Richard Reeves)는 “시장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육성되고 있으며, 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상위 20%가 ‘기회를 사재기’한다”고 말한다. 자산은 물론 능력도 세습되는 사회에서 노력을 통한 계층 상승 가능성은 극히 낮아진다. 사회이동성이 낮은 사회에서는 청년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져 사회적 활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는 불안감은 창의성을 거세한다.
이러한 위험 징후는 앞서 언급한 2019년 서울시 만 19~39세 청년 1만 명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나는 열심히 일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1점), ‘나는 열심히 일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계층으로 올라가기 어렵다’(7점)를 놓고 질문한 결과 청년 세대는 4.35점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질문을 만 40~64세의 기성세대(1,500명, 온라인)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기성세대가 청년이었을 때를 회고하여 응답하도록 함) 조사했는데, 기성세대는 3.44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년 세대와 비교해 자신이 청년이었을 때는 그래도 노력을 통한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패자 부활 기회도 살펴보았는데, ‘나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1점), ‘나는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7점)를 놓고 질문했을 때 청년 세대(4.36점)가 기성세대(3.42점)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면서 가난한 청년들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닫힌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20대 남성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는 등 보수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대남 현상’은 지난해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이슈였다. 이들은 여성 정책에 대한 태도는 물론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 약자에 대한 태도에서도 동년배 여성에 견줘 배려심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8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글로벌리서치가 19~5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1월 23~27일, 온라인)는 20대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본격적으로 주목한 첫 조사라 할 수 있다. 이 조사에서는 여성 정책에 대한 태도를 여러 각도에서 질문했다. 먼저, ‘정부는 여성 친화적인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20대 남성은 37%만이 동의해 20대 여성 76.9%와 차이가 컸다. 여성 친화적인 문재인 정부의 여성 정책에 대해서도 20대 남성은 38.6%만이 지지해 전체 지지도 평균인 52.4%와 차이가 컸다. 약자에 대한 태도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나타났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있거나 크다’에 대해 20대 남성은 81.3%만이 동의해, 연령을 통틀어 모든 집단 중 가장 동의 정도가 낮은 반면 20대 여성은 92.3%에 이르렀다. 탈북자에 대해서도 20대 남성은 66.6%만이 ‘차별이 있거나 크다’고 응답해 모든 집단 중 가장 낮았다. 결혼 이주 여성, 장애인에 대한 응답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20대 남성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약한 집단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대통령 지지도나 지지 정당 등 정치적 선택에서도 20대 남성은 여성에 비해 보수적·무당파적 태도가 확연하다.5
정책기획위원회가 지난해 4월에 발표한 보고서(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 <새로운 세대의 의식과 태도: 2030세대 젠더 및 사회의식 조사 결과>)는 20대 남성의 이 같은 태도가 왜 생겨났는지를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서 조사에 응답한 여성의 90%는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40% 정도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 20%가량은 ‘이미 양성평등하다’고 답했다. 20대 남성 다수가 보기에 한국은 이미 양성평등하거나 오히려 남성이 더 차별받는데, 사회적 쟁점은 ‘여성 차별’이고 정부 정책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듯해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조사에서 청년 남성들이 남성 차별 사례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여성할당제, 지하철·주차장 등의 여성 전용 공간 같은 정책적·문화적 역차별(20%)이었고, 남성상 강요(18.1%)와 군 복무 문제(15%)가 그 뒤를 이었다. 즉 ‘군대에 다녀와 시간과 기회에서 손해를 봤고 희생했지만 보상도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여성은 할당제 등으로 내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박탈감’과 ‘억울함’이 20대 남성의 정서라 할 수 있다. 20대 남성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여성 우대 정책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남성 청년들은 취업, 직장 생활, 결혼 등 삶 전체가 불안하고 어려운데, 정부는 ‘여성 배려’ 정책에 집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젠더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젠더 갈등의 이면에는 일자리 문제가 있다. 2010년대 이후 청년들이 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 즉 소득과 고용이 안정된 일자리는 줄고 있는데, 그 자리에 청년 여성이 대거 진출하고 있다. 서울 4년제 대학 출신 취업자의 성별 비율을 보면 2010년 이후 9분위 이상에서는 남성이 여전히 견고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그 아래층인 8분위부터 3분위까지는 급감하고 있다. 즉 대기업 일반 사무직으로 대표되는 좋은 일자리는 감소하고 있는데 고학력으로 무장한 여성이 ‘줄어든 자리’를 차지하는 등 노동시장에서 청년 남성의 지위가 약화된 탓이 크다. 2013년 이후 청년 미취업 기간 6개월 이상인 장기 미취업자의 증가를 보면 대부분 남성 미취업자의 증가에 기인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노동시장에서 여성과의 경쟁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이 20대 중상층 남성의 문제라면, 가난한 20대 남성은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약자라는 현실로 인해 분노하고 있다. 실제 여러 연구 자료에 의하면 청년 남성의 결혼 확률이 소득, 정규직 지위, 자산 등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이처럼 젠더 갈등은 여성 우대 정책으로 인한 역차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성별·계층, 직업 유무 등에 따라 세분화된 청년들의 욕구를 담아내지 못한 측면도 적잖다. 청년 정책의 패러다임이 청년들의 처지에 맞게 다양하고 입체적이야 함을 시사한다.
공정성 중시는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청년들의 공정성 감각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태도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이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 존중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2019년 11월 서울시 청년청 1만 명 조사에서는 공정성에 대한 인식을 물었는데, 동일한 일을 할 경우 ‘시험이 아니더라도 일정한 자격 조건을 충족하기만 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이 공정하다’(31.8%)보다 ‘시험 등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43.4%)에 대한 동의가 더 높았다. 동일 노동에도 불구하고 시험이라는 경쟁 절차 통과 여부에 따라 차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시험 등 ‘일정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청년들이 중시하는 공정성은 ‘절차적 공정성’인데, 이러한 공정성 감각은 청년 중에서도 중상층 청년들의 가치 지향, 즉 ‘능력 차를 보완한 평등 사회’보다는 ‘능력 차를 인정한 경쟁력 중시 사회’를 선호하고 ‘연대와 협력’보다 ‘경쟁과 자율’을 중시하는 경향과 조응한다.
이러한 경향은 청년들이 경쟁의 격화 등 시대적 변화에 조응해 생존주의 가치를 내면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년 세대의 집합 심리를 연구해온 김홍중 서울대 교수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마음 상태, 즉 ‘생존주의’를 청년 세대의 특징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이들이 ‘규칙’과 ‘절차’ 등 절차적 공정성을 신봉하는 것은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작은 차이가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같은 공정성이라도 진보가 중시해온 결과적 공정성, 분배적 공정성은 이들의 관심사에서 비껴나 있다.
한편 부유한 청년과 가난한 청년, 남성 청년과 여성 청년 등에서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대해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공정성을 중시하고 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20대 중상층 남성은 제한된 좋은 일자리를 놓고 동년배 여성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20대 여성은 사회가 자신들의 노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또 20대 가난한 남성은 연애와 결혼에서 불리한 위치를 토로하며 공정하지 못한 이 사회를 탓한다.
공정과 평등은 진보의 핵심 가치이자 두 기둥이다. 경쟁 규칙과 절차의 공정함만을 강조하면 또 다른 진보의 가치인 평등을 침해하게 된다. 규칙과 절차가 공정하다 한들 그 이전에 사람들의 출발선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국 공정성 문제는 청년 정책을 넘어 출발선의 기회를 공평하게 하는 정책으로 귀결된다.
줄어드는 좋은 일자리를 놓고 청년 세대 내부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대 간 양보는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강력한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전문직, 대기업, 공공 부문 등 상층 노동시장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상승을 포기하고 임금의 일부분을 청년 고용을 위해 내는 방안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강력한 연공서열에 기반한 임금제도가 존속하는 한 임금 피크제는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장기근속자에게 유리한 연공제 대신 직무제로 임금제도를 바꾸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까닭이다.6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보다 강력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불완전 고용 상태의 청년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지금보다 쉽게 재진입하고 직업을 변경할 수 있도록 재훈련 시스템을 도입하고 ‘국가가 관리하는 취업 및 창업 알선 기관 확장’을 통해 인력 회사 등 민간 재훈련 기관들이 차지하는 비용을 사회화하는 정책을 고려할 수 있다. 일정 수준의 유연화가 불가피하다면 ‘안전망을 갖춘 유연화’를 통해 개인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개인의 실업과 취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줄 때 청년들은 자유롭게 취업, 창업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실험도 가능할 것이다. 즉 패자 부활이 가능할 때 창의성도 높아지고 혁신적 창업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세습이라는 보다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회의 평등을 위한 근본적 정책이 필요하다. 영·유아기부터 공공 보육 및 공교육을 강화하고 이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원 확보가 필요하고, 결국 증세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