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안보는 주로 대외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그만큼 대외 의존성도 크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할 때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했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지금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목표 아래 설정한 국방·통일·외교 분야 16개 과제의 진도와 성과를 보면 이러한 특성이 뚜렷이 나타난다(<표> 참조). 국방 분야 과제 중 국방 개혁 일부와 방위산업 육성, 외교 분야 과제 중 국민외교와 공공외교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제는 우리 정부만 잘한다고 성과를 보장할 수 없다.
평화번영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최우선적 국가 정책의 하나로서, 글자 그대로 한반도에 평화를 공고히 구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남북한 공히 경제적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하거나 해결의 방향에서 병행해야 할 것이 있다. 크게 보아 한반도의 비핵화, 북미 관계의 정상화,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 완화 및 교류와 협력의 증진 등이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기대와 불안, 희망과 실망이 극적으로 교차했다. 2018년 초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후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선언’을, 북미 정상은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그리고 다시 남북 정상은 ‘9월 평양공동선언’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등을 발표했다. 숨 가쁜 한 해였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회담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 문제로 결렬된 후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짧은 회동이 있었지만 비핵화와 평화의 시계는 멈추었다. 북한은 안보와 경제를 자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이른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미국은 이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비핵화와 제재에 관련해서는 원칙만 강조하면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긍정적인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숨 막히는 상황이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한국도 사활적 이해가 걸린 당사자지만 현실에서는 북한과 미국의 협상에 해결 여부가 달려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당사자의 마음가짐으로 ‘중재자’와 ‘촉진자’의 역할에 나름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지만 현 상황은 녹록지 않으며 미래 전망도 밝지 않다. 특히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와 별도로 남북 관계 개선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선순환이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평화가 핵문제에 철저히 종속되어버린 형국이 참담하기까지 하다.
남북한과 미국은 상호 관계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구조를 각자의 국가 전략과 국내 정치·경제 사정을 뛰어넘어 변경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안보의 최대 자산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미국의 의도와 의사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무시할 수 없으며, 미국의 독자적인 제재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한편 북한은 미국과의 적대 관계를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에 그 해소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 어떠한 실질적인 양보도 할 수 없다. 남한에 대해서는 상전의 눈치나 보고 아무것도 자주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면서 교류와 협력의 문을 닫았다. 입만 열면 자주와 민족을 강조하는 북한이 정작 가장 절박한 때에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남북이 하나 되어 자주적으로 민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방기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남북 관계는 미국에 대한 의존을 넘어 사실상 미국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은 세계 전략과 동북아 전략에서 추구하는 이익에 복무하는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임기 첫해인 2017년 12월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확고히 천명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보호하고 해외에 국력을 과시하면서 유리한 무역 정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국(strategic rival power)으로 표현하면서 견제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의 대량 파괴 무기(WMD) 위협과 관련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의지를 밝혔다. 미 국방부가 2019년 6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는 지역의 안보 위협국으로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지목하고 특히 북한을 ‘불량 국가(rogue state)’로 규정했다. 그리고 비핵화 이전에는 모든 가능한 대북 제재를 이행하고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협력할 것임을 강조했다.
최근 수개월 사이 미국의 군사적 행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볼 만하다. 미국은 1987년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2019년 10월 탈퇴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할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동아시아 지역 배치 가능성을 열었다. 한국이 배치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그 여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태평양사령부의 해·공군 전력 증강에 따라 주한 미군의 능력도 크게 향상되고 있다. 2021 회계연도 국방 예산에 7,000억 달러 넘게 배정하면서 한반도에 F-35 스텔스기를 60여 대 도입하고 경상북도 성주에 배치된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능력과 운영 체계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에 대하여 방위비 분담금을 터무니없이 인상하라고 요구하는 배경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과 소요 비용에 한·미·일 동맹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소극적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일관된’ 전략의 소산으로 이해된다.
북한의 전략은 미국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측면이 크다. 안보는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에 대응하는 것이고, 경제는 미국의 제재에 대응하는 것이다. 북한은 안보를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경제도 발전시킨다는 실현하기 어려운 전략을 채택해왔다. 2016년 5월 노동당 7차 대회에서 ‘국가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했으며, 2017년 11월 ICBM 발사 시험을 마치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2018년 4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경제 건설 총력 집중’으로 변경했으나 하노이 북미 협상이 결렬된 후 ‘자력갱생’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병진 노선으로 다시 돌아섰다. 김정은은 2019년 12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과를 2020년 신년사 대신 보고했으며 안보와 경제에서 ‘정면 돌파’ 전략을 천명했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까지는 미국과의 협상에 대하여 일말의 기대를 걸었으나 이후에는 사태의 ‘진상’을 완전히 파악하고 일단 기대를 접은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역할과 의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이른바 ‘새로운 길’이란 스스로 지키고 버티고 살아남겠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국과의 협력은 확대·강화해나갈 것이다. 요컨대 북한은 미국과 남한이 실질적으로 변화하여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한 비핵화든 평화든 협상도 협력도 없다는 입장이다.
목적과 수단에 관한 철학적 논쟁이 다다른 결론 중 하나는 두 가지 모두 정당해야 한다는 상식이다. 한반도 평화라는 목적(또는 목표)은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실현되어야 한다. 현실에서 이 대원칙이 흔들리는 경우는 구체적인 목적 설정과 수단 선택에서 기인할 때가 많지만 목적과 수단이 뒤바뀔 때도 있다. 도전적인 질문들에 대한 성찰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진보에 필수적이다.
비핵화가 목적인가, 평화가 목적인가? ‘전통적 지혜’에 따르면 비핵화는 평화의 선결 조건이다. 그런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특이하게도 먼저 북미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하여 언급하고, 세 번째로 비핵화에 대한 합의를 밝혔다. 물론 순서가 중요도나 선후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핵화 없이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는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합의의 이행 과정에서 미국은 대북 제재에 대한 경직된 입장을 확고히 유지했으며 평화에 관한 북한의 대미 불신을 해소하지 못했다.
평화가 목적이고 비핵화는 수단이다. 평화가 비핵화를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핵화를 포기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기와 방법에 대한 유연한 접근의 길을 더 넓게 열어 완전한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이 목적인가, 평화가 목적인가? 한국 사회에서 반미는 곧 친북이고 이는 곧 국가 안보에 대한 ‘범죄’라는 이념적 등식이 20세기 말 민주화와 탈냉전을 거쳐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지나고 있음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미 동맹은 안보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구조화되면서 이념의 문제를 넘어 습속(習俗)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군사동맹에서 ‘포괄 동맹,’ ‘전략 동맹’으로 강화되면서 그 훼손이나 약화에 대한 두려움도 그만큼 커졌다. 일각에서는 한미 동맹 그 자체가 목적이자 심지어 종교적 신념이 되다시피 하여 정책 논쟁은 없고 정치 투쟁만 고조되고 있다.
한미 동맹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안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 자명한 참명제는 비록 정치와 정책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정치의 선진화와 올바른 정책 결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미 동맹을 약화하거나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발전과 성숙을 추구하는 일이다.
김정은이 천명한 ‘새로운 길’은 나름의 냉정한 상황 인식을 통해 도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궁여지책이며 ‘옛길’에 더 가깝다. 다행히 일각의 우려와 달리 북한은 핵 시험과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같은 극단적 행동은 아직 하지 않고 있으며 비핵화 협상을 무조건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아니다. 2018년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군사분야 합의서’의 핵심 내용인 군사적 긴장 완화와 상호 적대 행위 중지 조항은 충실히 이행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새로운 전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을 계속 개발·보유·강화하여 자신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으며 이는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군사적 충돌까지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게 한다. 남한에 대하여 일체의 교류와 협력을 중단한 채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의 비난과 조롱만 해대는 것도 불안과 불편을 키우고 있다.
궁지에 처한 쪽은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도 그렇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는 민족 전체의 공존공영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의 최대 국가이익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이 시점에서 지난 2년을 철저히 반성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직접적인 대남 무력 공격은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는 대전제하에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몇 가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장기적 과제로 삼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핵보유국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에 둔다. 과거에 적대국으로서 전쟁을 치른 인접한 국가들 사이에 한쪽은 핵보유국이고 다른 한쪽은 비핵 국가인 예가 없지 않다.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에서 핵 위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한반도 상황이 유럽과 크게 다르고 북한을 영국이나 프랑스에 빗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핵을 보유한 인접국과 평화공존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시사점은 얻을 수 있다.
둘째, 한미 동맹의 강화가 남북 관계와 한중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관리한다. 주한 미군의 과도한 전력 증강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2018년부터 그 이전과 비교하여 규모와 횟수 면에서 축소되었다. 주한 미군에 전략무기를 추가로 반입하지 않았으며, 사드 배치도 더 이상 확대하지 않았다. 이러한 조치는 비핵화 협상과 평화 프로세스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현재의 고착 국면에서도 북한이 직접적인 대남 무력 도발을 하지 않는 한 이 기조를 유지하여 상황이 상승적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셋째, 대북 제재의 단계적 완화와 남북 교류 협력의 확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북한은 70년 동안 제재 속에서 생존해왔다. 단지 생존만 한 게 아니라 핵무기와 ICBM을 개발했다. 2017년 11월 북한의 이른바 ‘핵무력 완성’ 선언이 보여준 것은 그 이전의 수많은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이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또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이후의 상황은 제재 유지가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제재 만능주의나 제재에 의한 북한 붕괴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이 입증된 셈이다.
이 ‘방 안의 코끼리’를 더 이상 피해 다닐 수만은 없다. 대북 제재 완화와 제재 틀 내에서의 남북 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한국 정부의 노력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 북한을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다시 불러오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북한도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며 남한이 미국에만 매달린다는 뿌리 깊은 인식을 해소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9·19 군사분야 합의서’를 충실히 이행하되 남북의 독자적인 군 현대화에 대하여 일정 수준 상호 양해한다. 앞에서 언급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외에 남북한 간 쟁점이 되는 군사 문제는 각자의 독자적인 전력 증강이다. 남북한은 넓은 의미의 군비 통제와 군비 증강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북한은 2019년 4월부터 11월까지 12회에 걸쳐 사실상 남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둔 단거리 미사일(초대형 방사포 등 포함) 시험을 실시했으며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도 1회 시험했다. 그리고 “앞으로 전략무기 개발 사업도 더 활기차게 밀고 나가야 한다”면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한편 남한은 ‘국방개혁 2.0’에 따라 병력과 부대 수는 줄이면서도 국방비는 50조 원 이상 책정하고 2017년 이전에 이미 계획한 사업으로 F-35 등 첨단 무기를 도입하고 있다.
모든 나라는 상황과 능력에 따라 필요한 군사력을 보유한다. 다만 적대국과의 군비 경쟁과 전쟁 가능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남북한은 이 두 가지 명제와 관련하여 상호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와 같은 이미 합의된 기구에서 만나 대화하고 싸울 땐 싸우더라도 그 안에서 공동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더라도 한국 정부는 이러한 의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명하는 것이 차선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북아 차원의 다자적 비핵 평화 체제를 모색한다. 어려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자 하는 협상에는 참여자가 적을수록 좋다. 강한 의지와 능력을 갖추 두 나라가 더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양자 회담에 기대를 걸었던 이유 중 하나다. 이제 비핵화 문제는 더 어려워졌고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는 오히려 다자가 모여 격려와 견제를 통해 상황을 관리하면서 점진적, 단계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따라서 남북한과 미·중·러·일이 참여하는 6자 회담의 재추진을 고려해볼 만하다.
과거 6자 회담은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막으려는 것이 주목적 이었으나 실패했다. 6자 회담이 다시 구성된다면 미국은 “핵무력을 완성했다”는 북한뿐 아니라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도 상대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불리한 것은 아니다. 그 두 나라와 함께 북한의 비핵화를 더 효과적으로 견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용 분담과 검증에서도 유리한 점이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계적으로 ‘최종적이며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를 관리하고 비핵화를 다자가 보증하는 ‘비핵지대조약(nuclear free zone treaty)’으로 완결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6자 회담은 동북아 지역 차원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공식적인 다자적 협력 안보 체제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다시 국정과제로 돌아와보자. 국정과제는 선거공약을 구체적 정책으로 만든 것이다. 민주 정부의 국민에 대한 약속이고 책무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목표는 남북미 3자 간의 관계가 선순환해야 달성 가능하다. 남북 교류와 북미 협상은 교착되었고 한미 동맹 역시 방위비 분담과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요한 과제는 모두 통일, 국방, 외교 분야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일관성 있는 추진과 조율이 필요하다. 현재 전쟁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동북아 차원에서의 군사 동향을 보면 엄중한 전략적 위기 상황이다. 우리 자신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와 청와대 안보실은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내에 국가 전략의 통합과 조정을 이루어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별도의 장관급 회의체를 구성하여 더 자주, 더 깊이 협의하며 크게는 전략적 방향을 도출하고 작게는 부처의 발표문도 조율해야 할 것이다.
전략은 본질적으로 장기적 기획이므로 ‘새로운 길’은 차기 정부들까지 적용할 수 있는 상당 수준의 보편타당성을 가져야 한다. 한국에서 편의상 구분하는 진보와 보수는 안보, 평화, 번영 등에 대한 지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정부를 넘어서는 일관된 전략을 수립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선은 설정한 과제를 성실히 이행하면서 더 나은 전략을 수립하여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