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국가적으로 유망 기업을 발굴해 민간에서 투자할 수 있도록 K 유니콘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
“벤처 4대 강국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주 차등 의결권을 허용하겠다.”
“1조 9000억 원 규모의 모태 펀드 출자 등 제2 벤처 붐에 박차를 가하겠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말까지 발표한 벤처, 스타트업 육성 계획 중 일부다. 정부, 여당은 ‘제2 벤처 붐’ 조성 계획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한국을 벤처 4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스타트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정부는 2021년까지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을 20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지금까지 유니콘 기업으로 인정된 한국 스타트업은 쿠팡, 크래프톤, 옐로모바일, L&P코스메틱, 위메프, 비바리퍼블리카, 지피클럽, 야놀자, 무신사, 에이프로젠 등 10개인데 이를 2년 내에 2배로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벤처기업 숙원 사업이던 ‘벤처 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촉법)도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벤촉법은 조건부지분인수계약(SAFE, 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의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SAFE는 실리콘밸리에서 널리 쓰이는 투자 방법으로 이것이 구체적으로 도입된다면 초기 스타트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소식은 미국 실리콘밸리까지 전해졌다. 실리콘밸리의 한인 창업자들 사이에서 한국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소식이 회자된 것이다. 국내 유력 경제지의 실리콘밸리 특파원을 마치고 실리콘밸리에 남아 미디어 스타트업 ‘더밀크(The Miilk)’를 창업한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은 부러운 마음까지 든다. 정부와 기관이 스타트업 창업자 만들기에 올인하고 있고 정책 자금도 부족하지 않은 것 같다. 청년 창업 지원 사업도 상당히 많고 지원 공간도 넉넉해 창업을 ‘결심’만 하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타깃으로 한 ‘4대 강국’인 미국, 중국, 영국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정책 폭격’ 수준의 지원 방침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대규모 자금 지원을 중심으로 한 육성 정책이 목표대로 유니콘 기업 20개를 2년 만에 만들어낼지, 아니면 한국 스타트업의 자생력을 떨어뜨리고 해외 진출이 아닌 한국에 안주하는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정부, 여당이 스타트업 육성 정책의 목표를 ‘K 유니콘 창출’로 확정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유니콘 기업 숫자가 해당 국가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니콘 기업은 기업공개(IPO)를 하기 전 프라이빗 라운드(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에서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단계)에서 임의로 산정한 ‘기업 가치’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프라이빗 라운드에서 산정된 기업 가치는 언제든 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공개 시 급변하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우버’와 ‘위워크’다. 우버의 기업 가치는 지난 2018년 토요타가 투자를 발표하자 760억 달러로 평가되었고 은행 IPO 전문가들로부터 최대 1,200억 달러까지 산정되었다. 그러나 상장 과정에서 기업 가치가 현실화되면서 상장 첫날부터 주가가 폭락하더니 지금은 주당 약 39달러, 시가총액 68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프라이빗 라운드 최고치에 비하면 기업 가치가 절반 가까이 떨어진 셈이다. 위워크는 상장 과정에서 지나치게 높게 산정된 기업 가치와 창업자의 비행이 드러나면서 아예 상장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외에 2020년 상장한 매트리스업체 ‘캐스퍼’는 사모 시장에서는 10억 달러가 넘는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았으나 상장하면서 현실화돼 현재는 기업 가치가 4억 달러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처럼 유니콘 기업으로 알려졌다가 그 지위를 상실한 기업을 ‘언더콘(UnderCor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부가 유니콘 기업 창출을 목표로 삼게 되면 스타트업의 자산 가치 버블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기업 가치 산정의 ‘적정성’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받는 질문이다. ‘왕도’가 없으며 기업공개를 통해 시장에서 냉정하게 평가받고 성장성과 수익성을 스스로 검증받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에 정책을 발표하면서 몇몇 스타트업을 ‘예비 유니콘’으로 지정했다. 정부가 유니콘이 될 만한 기업을 ‘지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자칫 유니콘 지위를 유지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자산 가치가 높아진 스타트업이 IPO 시장에 나오지 않고 인수 합병(M&A)만 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실제 한국 스타트업 중에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던 배달의 민족(우아한 형제)은 지난해 12월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DH)에 4조 8,000억 원에 인수됐는데 만약 배달의 민족이 상장했다면 코스닥 시가총액 기준 2~3위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처럼 한국의 기업공개 시장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유니콘 기업을 키우겠다는 것은 그만큼 공모 자본 시장과의 괴리를 유발할 가능성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유니콘 기업 육성은 상대적으로 ‘쉬운 목표’라고 본다. 국내 사모 시장에서 성장성이 검증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자금 투입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니콘 기업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자금을 투입하지는 않겠지만 성과를 내기 위해 ‘숫자 만들기’에 집착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 정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커뮤니티 내에서도 “유니콘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밝히며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나 벤처캐피털이 “(당신 기업은) 유니콘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업 가치’를 목표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는 투자금을 회수할 때 완성되며, 회수된 자금이 재투자되거나 스타트업 육성으로 이어질 때 선순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20, 30대 젊은 예비 창업가에게 가장 효과적인 동기부여는 투자금 회수로 창업자가 ‘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2020년이 미래 10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유니콘 기업 만들기가 아닌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 시장(주로 미국 시장)으로 나아가는 길일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글로벌 시장 개척을 독려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20년 전 이른바 ‘제1 벤처 붐’ 당시에 나스닥 상장은 우리 기업에게 큰 목표였다. 미국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 나스닥에 상장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이자 인공지능, 5G, 헬스 케어 등 딥 테크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국에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너도나도 “나스닥으로 가자”라고 외치면서 미국 진출을 노렸다. 그 결과 실제 두루넷 등과 한인 엔지니어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실리콘 이미지’가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미국은 정보기술(IT), 제약 바이오 및 소비자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올 들어서는 S&P 500 지수, 다우 지수 등이 10~15% 오르는 등 시장 상황도 좋다. 현재 미국 증시(NYSE, NASDAQ)에는 알리바바, 바이두, JD닷컴 등 약 150개의 중국 회사가 상장했으며 지금도 계속 뉴욕 증시 상장을 목표로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도 광고 기술 회사 ‘크리테오’ 등 11개 업체가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
한국의 산업 정책은 그동안 ‘글로벌 진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왜 스타트업 육성 정책은 글로벌화에 집중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 4개 상을 석권한 것이 한국 영화에 주는 영향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지금 할리우드 제작자들 사이에는 한국 영화 재발견 붐이 일고 있으며 ‘제2의 봉준호’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나스닥 대박 상장’이 그러한 효과를 줄 수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해당 기업뿐 아니라 한국 시장,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한국 스타트업을 다시 보게 할 것이다.
정부가 정책을 발휘하는 수단이 육성 정책, 자금 투입과 법 규제 해소라고 봤을 때 이번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그러나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과 스타트업 생태계와의 소통이 부족했다. 스타트업 육성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에 대해 알리기보다 ‘K 유니콘 육성’이란 목표만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스닥 상장 목표를 제시하고 관련 지원을 했으면 어땠을까. 센드버드(대표 김동신), 몰로코(대표 안익진), 눔(대표 정세주) 등 미국에서 창업한 한인 스타트업 중에서 나스닥에 상장할 가능성이 높은 회사가 있으며 쿠팡(대표 김범석), 스마트스터디(대표 김민석) 등 한국에서 미국 기업으로 직상장할 수 있는 후보 회사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도 한국 내수를 지향하기보다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 시장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