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교역국이자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유럽연합과 미국에서 불고 있는 그린 뉴딜 바람은 우리 사회에도 파급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은 호주 산불과 따뜻한 겨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불이 나기 시작해 올 2월에야 완전히 꺼진 호주 산불은 30여 명의 인명과 10억 마리의 야생동물을 희생시켰고, 전 세계에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렸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2월 13일, 올해 1월이 141년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따뜻한 1월이었다고 발표했다. 기상청은 우리나라도 1월 전국 평균기온이 2.8도로, 전국 단위 기온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 가장 따뜻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는 현재진행 중으로 시민의 건강과 안전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우리는 기후 위기와 감염성 질병 확대라는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외부 변수가 국내 정치·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세계의 변화 흐름을 면밀하게 분석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2020년 국제사회에서 뜨겁게 논의될 주제는 ‘기후변화’와 ‘그린 뉴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면 여전히 북극곰과 환경문제로 여겨지지만, 국제적으로는 경제사회시스템 대전환 차원에서 다뤄진다.
유럽연합(EU)은 2050년 넷제로를 목표로 그린 딜(Green Deal)을 추진 중이고, 미국 대선에서는 버니 샌더스 의원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모두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실가스를 줄이고, 불평등을 없애는 탈탄소 경제사회로의 대전환 정책으로 정의할 수 있다. 주요 교역국이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유럽연합과 미국에서 불고 있는 그린 뉴딜 바람은 우리사회에 큰 파급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린 뉴딜 정책이 부상한 데에는 “IPCC 1.5도 특별 보고서” 영향이 컸다. 2018년 10월 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48차 총회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특별 보고서가 채택되었다. 보고서는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오르면 2도와 비교해 해수면 상승이 10cm 낮아지고 위험에 처하는 인구수를 1,000만 명이나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온이 2도 오르면 산호의 99% 이상이 소멸해 사라지지만 1.5도일 때는 그 비율이 70~90%로 낮아진다. 또한 육상 동식물이 서식지를 잃을 확률도 절반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했다.
IPCC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과 대비해 2017년 평균기온은 1도 상승했다. 이를 1.5도 선에서 안정화하려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로 줄이고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 넷제로는 대기 중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배출량을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부득이하게 배출한 양은 숲을 조성하거나 탄소 포집 저장 기술을 통해 순증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 700여 명의 과학자가 수많은 데이터와 분석을 토대로 발표한 보고서에 대해 세계는 2050년 넷제로 목표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2019년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로 대표되는 청소년들의 ‘금요 기후 시위’가 전 세계로 번져나갔고, 영국에서는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이라는 강력한 기후 위기 대응 그룹이 활동을 벌였다. 지난해 유럽과 러시아의 폭염, 아마존과 호주 산불로 인한 피해는 극심했다. 일본은 슈퍼 태풍 하기비스로 인해 150억 달러(17조 5,000억 원), 미국 중서부와 남부에서는 홍수로 인해 125억 달러(14조 6,000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1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자신의 저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참으로 불편한 진실은 지구온난화의 주역은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진실은 우리가 이 실존적 위기를 이용해 왜곡된 경제 시스템을 변혁하고 근본적으로 개혁된 시스템을 건설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하며, 탄소 기반 경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럽연합은 그린 딜을 통해 탈탄소 경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은 유럽을 세계 최초의 탄소 중립 대륙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지난해 11월 28일, 유럽의회는 ‘기후·환경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12월 11일에는 EU 그린 딜 구상을 발표했다. 그린 딜은 EU의 2030년과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조정과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tax) 도입안을 담고 있다. 탄소국경세는 국가 간 온실가스 규제 강도 차이를 좁히고 탄소 누출2을 막기 위한 제도로,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엄격한 국가로 물품을 수출할 때 규제 차이에 따른 상품의 가격 차이를 보전하기 위해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그린 딜은 친환경 에너지 공급, 청정 순환경제 산업, 고효율 건축, 스마트 교통, 친환경 농업, 생물다양성 보존, 오염배출 제로화 등 기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전 분야를 망라한 종합정책이다. 이 중 2020년 3월 발표된 ‘기후중립법’과 하반기에 발표될 지속 가능한 파이낸스 전략, 2021년 공기·수질·토양 오염배출제로행동계획은 세계 경제와 통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파리협정에 따른 각국 온실가스 감축 목표 확정과 실행이 본격화되면서, 유럽이 기후위기 대응을 경제전략으로 삼아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1월 3일 예정된 미국 대선은 세계 기후 위기 대응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캘리포니아 산불, 미국 북동부 지역의 극한 한파, 강력한 허리케인 피해로 미 국민들의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선에서 그린 뉴딜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2018년 뉴욕에서 최연소 하원의원에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AOC)와 기후 위기 대응 청년 정치단체 선라이즈무브먼트(Sunrise Movement)는 온실가스 감축, 불평등 해소, 일자리 확대라는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할 대안으로 ‘그린 뉴딜’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린 뉴딜에서 ‘그린’은 화석 문명에서 탈출하는 탈탄소 경제사회 전략을, ‘뉴딜’은 미국의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의 예산과 인력, 제도 개혁을 단기간에 동원한 방식을 의미한다. ‘그린’은 방향성을, ‘뉴딜’은 전 사회적 동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기후 위기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미국 밀레니얼 세대를 상징하는 선라이즈무브먼트의 요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고, 불평등을 없애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9년 2월 7일, AOC는 하원의원 64명, 상원의원 9명과 함께 그린 뉴딜 결의안을 공동 발의했다. 그린 뉴딜을 위해 연방정부는 (1) 정의로운 전환을 통한 넷제로 배출 달성, (2) 수백만 개의 고임금 일자리 창출 및 번영과 안정, (3) 지속 가능한 인프라와 산업 투자, (4) 깨끗한 공기와 물 등 시민 보호, (5) 차별과 불평등을 철폐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3 세부 정책으로는 인프라 재건과 리모델링, 청정에너지 100% 전력 생산, 스마트 그리드 구축, 대중교통과 고속철 확충, 친환경 차량 확대가 있다.
급진적인 성향의 버니 샌더스 의원은 2030년까지 모든 전력과 운송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며, 정의로운 전환과 그린 뉴딜을 추진하는데 약 16조 달러(2경 원)를 투입할 것을 약속했다. 대선에서 민주당이 당선되면 유럽연합의 그린 딜에 미국의 그린 뉴딜까지 가세하는 셈이다. 한국은 온실가스 감축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급변하는 유럽과 미국의 경제정책 전환으로 인해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만약에 대선에서 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 상태는 유지되겠지만 역으로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미국을 포함한 온실가스 감축에 미온적인 국가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활성화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뉴욕시, 로스앤젤레스시 등 주 정부와 시, 기업은 그린 뉴딜을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이미 실행하고 있다.
지난 106년간 우리나라 평균기온은 1.8도 상승했으며 폭염, 한파, 태풍, 가뭄 등 기상이변이 증가하고 있다. 2017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 900만 톤으로 증가 추세다. 에너지 사용 증가로 1990년 이후 연평균 3.3% 증가하고 있으며,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OECD 국가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하위 2위, 석탄발전 비중은 상위 4위다. 세계경제포럼이 에너지 시스템 개선과 에너지 전환 정도를 고려해 국가별 경쟁력을 측정하는 에너지 전환 지수는 세계 48위로, OECD 국가 중 하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파리협정 본격 실행 시기에 현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는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기에 하루빨리 온실가스 감축 이행 체제와 녹색경제 전환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전환은 빠르다. 유럽 국가들은 석탄발전소 완전 폐쇄 시점과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판매 금지 연도를 발표하고 있고, 재생에너지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서 탈탄소 산업과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세계 경제, 산업, 사회 정책 전반의 탈탄소화는 가속화할 것이다. 한국 사회도 국내외 그린 뉴딜 정책 성과 분석을 토대로 우리의 그린 뉴딜 정책을 수립하고 세부 내용과 예산을 책정해보자.
탈탄소 경제를 앞당길 수 있는 규제 정책, 요금, 세제, 시장 제도 개편을 통해 녹색 산업을 활성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기술로 산업 혁신을 앞당기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책을 동시에 수립해야한다.4 탈탄소 산업 생태계 구축에서 재정투자가 시장 창출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산업 지원에서 사람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투자해 시장과 수요를 만들고, 인재가 육성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4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정책에 대한 평가도 병행해야 한다. 기후 위기 대응 방안으로서의 그린 뉴딜은 미세먼지 저감과 에너지 전환 정책과도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면 생활 사회간접자본(SOC)을 에너지 제로로 건축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빌딩과 주택에 대한 그린 리모델링에 예산을 투입하면 기후 재난에 안전한 공공건물과 주거 공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건설 분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산업 전반에 에너지 효율 개선 자금을 집중투자하면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를 줄이면서, 효율 산업 기술 확보와 일자리 확대로 연결된다. 태양광, 해상 풍력, 바이오에너지는 지역 분산형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연결할 수 있다. 탈플라스틱 시대에 적합한 폐기물 제로 정책 수립, 농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과 농어촌 삶의 질 향상, 숲·호수·강·바다 등 자연 생태계와 관련한 생물 다양성 등의 종합 데이터 체계 구축과 보전도 그린 뉴딜 정책이 될 수 있다.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응해 공공 의료를 확충하고 지역별 거점 병원을 구축하는 것도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그린 뉴딜 정책이다. 녹색경제 구현을 위해 초·중·고등학교 환경 교육은 기본이고, 공무원과 시민을 포함한 전 국민 기후 위기 대응 교육에 예산을 투입해야한다. 일자리 위원회를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로 개편해 탈석탄과 전기차의 빠른 보급으로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한 노사정의 논의의 장을 신설하는 것도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그린 뉴딜 바람이 불고 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 녹색당, 더불어민주당은 그린 뉴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의당은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 폐쇄, 재생가능에너지 40% 달성, 2030 전기자동차 1000만 시대를 중심으로 “경제전환 10년 국민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녹색당은 2050배출제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배출량 50% 감축, 탄소예산, 탄소영향평가제도 전면 도입, 기후위기대응기본법 제정을 담은 “기후위기 막고 삶을 지키는, 그린 뉴딜”을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50 탄소제로사회 실현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그린 뉴딜 기본법’ 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재원 마련을 위해 탄소세 도입을 검토하고 녹색 일자리로의 전환을 위한 지역에너지전환센터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20년 6월, 한국에서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4G) 제2차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P4G 정상회의 개최를 언급하며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에 있어서도 당당한 중견국가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0년 우리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년 장기저탄소 발전전략을 수립해 UN에 제출해야 하는데, P4G 정상회의 개최가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수위와 질을 향상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청소년 기후소송단과 같은 기후위기 대응의 절박성을 요구하는 시민행동도 격렬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파리협정 본격 실행, EU 그린 딜 정책 발표에 따른 국내 산업 영향과 그에 따른 대응, 미국 대선 이후 기후규제 강화 대응 등 급변하는 기후정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침체 대안, 불평등 완화 대책 수립이 요구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 후반기를 이끌 경제전략으로 그린 뉴딜 정책을 적극 제안한다. 더불어 그린 뉴딜 계획수립에 노동조합, 시민, 청년, NGO, 연구자, 기업이 참여해 정부의 재정투입이 일자리 확대와 불평등 완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열린 논의를 바탕으로 2022년 대선에서는 탄소예산 도입, 기후에너지부와 같은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완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가 가져온 거대한 정책 패러다임 변화의 결과물이다. 우리도 하루빨리 한국 사회에 적합한 그린 뉴딜 정책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