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그 후 70년이 지났다. 매년 6월 25일이면 전쟁을 기억하는 다양한 기사가 신문 지면을 메웠다. 대부분은 전쟁을 극복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에 답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
2000년부터 질문이 바뀌기 시작했다. 왜 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일까? 전쟁을 완전히 끝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이제 6월 25일을 기억하는 방식이 전쟁에서 평화로 그 중심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되기까지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만, 전쟁에서 평화로 논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은 큰 진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70년이 지난 오늘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각해야 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그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1년이면 끝났어야 할 전쟁이 왜 3년이나 계속되었는가? 전쟁이 종전이 아닌 정전으로 끝난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오산’과 ‘오판’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한반도와 같은 작은 땅덩어리에 세계열강들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오산이 전쟁 발발 및 확전에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오판은 전선이 38선 부근에서 고착되었을 때 발생했다. 정전 협상을 하면서도 전투를 계속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오판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전쟁은 3년간 계속되었다. 마지막 오판은 종전이 아닌 정전으로 끝을 맺은 것이었다. 그 결과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전쟁 발발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는 코로나19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열강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질문은 마치 냉전 시기 우리가 한국전쟁에 대해서 던졌던 질문들의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코로나19는 어디에서 먼저 시작되었는가? 코로나19가 세계로 퍼진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모두가 답을 알고 있음에도 ‘누가 먼저 총을 쏘았 는가’라는 질문이 50년 동안 계속되었듯이 ‘코로나19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왜 세계로 확산되었는가’라는 질문은 답변이 너무나 명확한 것이면서 동시에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이다. 결국 혐오만이 늘어날 뿐이다. 전염병이 처음으로 보고된 곳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탈냉전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급속히 진행된 세계화로 인해 어느 한 지역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세계적 차원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세계적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점 역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점은 일상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코로나19를 빠르게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오산과 오판이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고, 지금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현실을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산과 오판은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이번 호 《열린정책》은 코로나19가 전체 주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정책 특집은 ‘포스트 코로나’로 앞으로 나타날 일상과 사회의 변화가 가져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해보고자 하였다. 예상되는 2차 대유행에 대한 대비책과 고용 위기에 대한 대책, 그리고 문화 산업의 위기를 짚어보았다. 아울러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언택트 산업’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았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의 인터뷰는 《열린정책》 이번 호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정은경 본부장은 방역 정책의 중심에 서 있다. 정 본부장과 방역 역군들은 K-방역의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정은경 본부장으로부터 그간의 방역 과정과 앞으로의 대책을 직접 들어봤다.
국정과제 광장은 정책기획위원회 4개 분과의 고민을 담고 있다.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 소통의 중요성,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 플랫폼의 필요성, 전염병 위기와 기후 위기를 동시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전염병과 같은 비전통 안보 위협에 맞서기 위한 국방 과제 등이 그 내용이다. 아울러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다룬 정책 칼럼과 돌봄과 교육에 대한 현장과 시선 역시 기획위원들의 고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쟁점 토론은 재정건전성이 중심 주제가 되었다.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에서 평소와는 달리 긴급하게 많은 재정지출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재정지출이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이 토론의 중심에 두어졌다. 새롭게 문을 여는 21대 국회에 대한 전문가의 제언 역시 쟁점 토론과 함께 정책 입안자들이 주목해야 할 내용일 것이다.
연속 기획은 코로나19의 세계적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서 논란이 되었던 국제기구의 문제에 주목했다. 우리가 그토록 동경하고 신뢰했던 국제기구들이 왜 이번 상황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전염병과의 싸움에서도 오산과 오판을 거듭해온 인류의 역사가 해법의 하나로 만들어낸 국제적 차원의 거버넌스는 이제 변화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혐오를 통해 위기를 미봉하기에 급급했던 인류는 급기야 코로나19라는 또 다른 전쟁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산과 오판으로 인해 70년이 지나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에서 전염병과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다. 지난 7개월 동안 우리 정부와 시민들이 해왔던 것처럼 이번만은 적절한 판단과 예측으로 현명한 해답을 찾아나갈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