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전 노동의 화두는 ‘일의 미래(future of work)’였다. 이른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어 자동화, 플랫폼화가 진전되면서 일하는 방식과 형태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반의 자동화로 ‘노동의 소멸’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고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임금노동이라는 전통적 고용 형태가 크게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현재 시점에서 코로나19가 이러한 예측과 전망을 강화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코로나19는 감염병이라는 특성상 비대면 경제활동을 촉진함으로써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듯 코로나19는 생명, 생활, 생산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의 미래’를 ‘현재의 일’로 빠르게 바꾸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일의 미래를 현재화하기 이전에 ‘과거의 일’이 내재 하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를 매우 위급한 현재의 문제로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는 노동의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 근로계약 형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독립 자영업자가 여기에 해당된다.
사이먼 몽 게이 등1과 그레그 캐플런 등2은 일자리를 산업과 직업 특성으로 구분해 어느 계층이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충격을 받는지 분석하였다. 산업을 사회적 대면 요소의 정도에 따라 사회적 산업과 일반적 산업으로 구분하고, 직업을 작업 장소 선택의 유연성과 원격 작업, 즉 재택근무 가능성에 따라 유연한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렇게 구분한 일자리 중에서 코로나19에 따른 경제활동의 변화와 경기 위축의 효과를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는 상식과 부합한다. 사회적인 산업에서 유연하지 못한 직업군에 속하는 일자리를 가진 사람이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면 접촉이 필수적인 서비스 업종에서 긱 노동(gig work)과 같은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업의 일자리를 가진 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 관련 진단, 체크, 간호, 간병과 청소, 배달은 코로나19 방역에서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핵심 업무였지만 대부분 비정형, 비정규 노동자들이 담당했다. 반면 상층 노동자들에게는 바이러스로부터의 피난처로 재택근무라는 혜택이 주어졌다.
향후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경기 침체가 초래하는 고용 위기는 배달, 청소, 간병과 같은 저임금 노동 시장에서 노동 공급을 증가시킬 것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업들의 아웃소싱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자리의 공급 역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추진하는 무인화, 자동화는 이들 일자리를 더욱 줄일 것이다. 이는 저임금노동자들의 보수와 소득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대부분 실직 시 소득 상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줄 실업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긴급하게 고용 안전 지원을 위한 예산을 편성했다. 또한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 하기 위해 논의되었던 한국형 실업 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가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며, 예술인을 고용보험제도에 포괄하는 고용보험법의 개정안 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최근에는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도입 논의도 시작되었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는 고용 지위 여부(임금노동자로서의 종속성)와 특정 사업주에 전속되었던 가입과 수급을 조건으로 하는 기존의 고용보험제도를 일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소득 보장 보험 형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사실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노동, 그리고 자영업자 전체를 전국적 표준 제도인 고용보험으로 포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가능하려면 적절한 시점에 소득을 파악하는 징수와 전달 체계의 문제, 자영업에까지 의무 가입을 강제하는 문제, 세부적으로 기여와 급여를 설계하는 문제, 소득의 완전한 상실이 아닌 부분적 소득 감소를 보전하는 부분 실업-부분 급여를 도입할 것인지의 문제, 여타 보험 체계나 소득 지원 제도와의 관계 설정 문제 등 쉽지 않은 사안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촉발된 이번 위기는 취약 계층까지를 포괄하는 더 보편적인 고용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가 당장에 정규직의 고용 위기로까지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일단 정부의 고용 유지지원금을 활용하여 해고를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 두기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있는 항공이나 여행, 관광 업종 등은 커다란 고용조정의 압박을 받고 있다. 두산그룹이나 쌍용자동차 등 그동안 경영 사정이 좋지 않았던 기업들도 코로나19 이후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고용조정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수출 감소에 따라 자동차, 석유화학 등 기간산업 기업들도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규직 일자리에 대해서도 해고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유통업의 경우에도 당장은 배송 관련 일자리와 인력 수요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비대면 경제활동이 확산되고 유통 서비스의 자동화, 무인화가 가속화하면 해고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다가오는 고용 위기에 대해 현재 국무총리실 주재로 원 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노동계는 해고 금지 의무화를 요구하고 있고 사용계는 임금·근로시간 조정 등 고용 유지를 위한 비용 부담에 노동계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위기에는 미국을 제외한 많은 국가가 대량 실업보다는 고용 유지를 선택하고 있다.3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근로시간 단축이나 유·무급 휴직과 같은 고용 유지 전략이 대량 실업 후 재고용 전략 (recall unemployment strategy)보다 효과적이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일시해고 후 재고용 전략’이 결국 해고는 하면서도 재고용하지 않는 기업들의 행위로 귀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존의 많은 연구가 고용 유지 전략이 해고 후 재고용 전략보다 생산과 고용 측면에서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유동성 위기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도 정부 지원을 받고 고용 유지 전략을 택한 경우에는 위기가 종결된 이후에도 회복이 빨랐으며,4 저생산성 기업들에 대해 고용 유지 지원을 집중했음에도 노동이동의 제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구조 조정 지연 효과(reallocation effects)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5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외생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으로 창조적 파괴를 일으킬 것이라는 시장 주도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고용 유지에 따른 구조 조정 지연 효과는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라는 판단이다.6
이번 코로나19에 기인한 고용 위기는 원칙적으로 기업이나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완화되거나 백신이 개발되면 고용 위기는 진정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 기업은 해고를 자제하고 고용 유지 비용은 정부가 크게 부담하는 방식으로 노사정이 합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계도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임금과 근로시간 조정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할 것이다. 고용 유지가 해고 후 재고용 전략보다 더 유연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의 세심한 지원 제도 설계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위기는 중고령층에게 더 큰 위험이지만, 경제 위기는 젊은 층에게 더 심각한 위험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초래하는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은 채용 중단을 일차적 대응 수단으로 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의 85%가 채용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젊은 층에게는 불운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제시 로스스타인7에 따르면, 이러한 충격의 고용 효과는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해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른 충격의 고용 효과를 단기 효과, 중기의 상처 효과(scar effects), 장기 코호트 효과(cohort effects) 등으로 분해해 분석한 결과 장기 코호트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 실증되었다. 중기 효과는 상처가 아무는 10년 정도의 기간 효과이며, 장기 효과는 이들이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 한 계속되는 효과이다. 경제 위기 시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에 대한 장기적이고 누적적인 효과가 중기 상처 효과의 두 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시장 진입 시의 충격이 장기적으로도 매우 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경제 위기라는 불운의 효과(상처 효과)가 10년 이후에는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고용뿐만 아니라 임금 측면에서도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계층의 임금 손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레졸루션 파운데이션(The Resolution Foundation)’은 <2020년의 계급: 현재 위기하에서의 졸업생들(Class of 2020: Education Leavers of Current Crisis>이라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위기로 대졸자의 임금이 향후 2년간 7%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였다.8
경제 위기로 인해 당장은 고용 유지에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코로나 2020세대가 고용과 보상에서 상처받은 세대로 남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고용 유지와 채용 유지가 상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는 코로나19 이후 노동 세계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은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일상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아마존, 구글, 네이버, 카카오 등 디지털 기업들의 주가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디지털 기술의 확산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예측한다. 《글로보틱스 격변(The Globotics Upheaval)》의 저자 리처드 볼드윈(Richard Baldwin)은 막대한 일자리 손실, 막대한 부채 부담, 대규모 디지털 전환, 언택트 등 코로나 팬데믹 4대 충격이 ‘일의 미래’ 를 바꿀 것으로 전망하였다.9 원격 지능(RI, remote intelligence)과 화이트칼라 로봇(사무실의 자동화)이 확산되는 반면, 대면 접촉이 요구되는 일자리, AI가 다루지 못하는 일자리 등은 유지될 것으로 전망 했다. 《테크놀로지의 덫》의 저자 칼 베네딕트 프레이도 역사적으로 불황은 자동화를 촉진했고 전쟁은 불황을 둔화시키는데, 코로나 팬데믹은 전쟁 같은 상황이지만 불황으로 귀결되면서 자동화가 촉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들은 대면 접촉보다는 자동화된 무인 서비스를 더 선호할 것이고 기업들도 팬데믹에 안전한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재편할 것이다. 로봇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알고리즘의 패턴 인식 능력이 향상될 것이다. 일자리 유지 보조금이 종료될 경우, 자동화는 심화될 것이다.”10
고용 유지와 채용 유지가 상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는 코로나19 이후 노동 세계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디지털 공간이 오프라인 공간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면서, 근무 방식에서도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work at home, telecommuting)가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코로나 이전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노동자의 16~17% 정도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등 많은 국가의 경우,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 과정에서 40%가 넘는 노동자들이 재택근무를 경험했다. 기업들도 재택근무를 임시적 조치가 아닌 항상적 대안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은 향후 5~10년간 전체 직원의 50%를 재택근무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재택근무가 생산성 향상과 일-생활 균형에 기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니컬러스 블룸 등11은 중국 콜센터에서 실시한 재택근무가 13%의 생산성 증가를 가져왔다고 실증 분석했고, 마르타 안젤리치와 파올라 프로페타12도 재택근무가 기업의 생산성과 종업원의 만족뿐 아니라 일-생활의 균형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재택근무는 근로시간을 늘이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적지 않으며, 일과 생활을 동시에 할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이 산만해지고, 중단되거나 지연되기도 한다. 이는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는 불필요한 회의나 대면 접촉을 줄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대면 접촉에서 오는 혁신과 협력이 줄어들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협력이 가능하고 혁신도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작업실에서 이루어진다. 앞에서 언급한 니컬러스 블룸 등의 연구에서도 자발적 재택근무자의 50%가 결국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고 한다. 구글의 인적자원관리 담당자 였던 라즐로 복(Laszlo Bock)은 1주일에 1.5일 정도는 집에서 깊이 있고 집중적인 업무를 하고 나머지는 사무실에서의 협력 작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13 코로나19 이후의 노동 세계에서는 작업장 근무와 재택근무의 혼합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언컨택트》의 저자 김용섭은 2020년은 우리 사회가 과잉 콘택트를 지나 적정 콘택트로 가는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주장한다. ‘빨리빨리’와 ‘끈끈함’이 이종교배된 한국 사회가 생산성 신화와 일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며, 상사와 부하 또는 선배와 후배 사이에 작동하던 작업장 내 권력관계도 변할 수 있다고 본다.14
그러나 대면 접촉이 줄더라도 상사나 관리자들은 직원들과 수시로 접속하고 싶어 한다.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무언가 항상 켜져 있는 생활 (always-on-life)’이 24시간 지속될 수 있다. 더욱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온라인 감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된다. 회사는 개인에 대한 더 많은 개인 데이터를 확보하려고 할 것이고 인공지능과 결합된 디지털 감시-통제 시스템이 강화될 수도 있다. 일하는 장소가 어디든, 통신과 소통 방법이 접촉이든 접속이든 노사 간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여전히 기업 생산성과 개인의 만족을 동시에 높이는 핵심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