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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예술은 무엇으로 사는가?

예술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정치, 경제, 사회 전 영역에서 큰 어려움에 처했다. 국경 봉쇄, 도시 간 이동 제한, 대면 모임 통제 등의 조치로 글로벌 경제와 산업 생태계 전반이 심각한 위기에 빠진 상황이다. 특히 요식업, 관광, 항공, 공연 예술, 엔터테인먼트 산업처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분야는 산업 생태계 자체가 고사 직전에 이를 정도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공연, 전시, 출판, 영화 등 문화예술계는 생존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예술총연합회가 발표한 <코로나19 사태가 예술계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올해 1월에서 4월 사이에 총 1,614건의 문화예술 행사가 취소되었고, 예술가의 88.7%가 수입이 급격하게 감소했다.1 공연 예술 분야만 놓고 보면 같은 시기에 비해 매출액이 76.6% 감소했다. 프리랜서 예술가 비율이 70%나 되는 공연 예술 인력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극장이 폐쇄되면서 월수입이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세종문화회관 등의 국공립 극장은 예정된 공연 프로그램을 취소하거나 온라인 중계로 대체하고 있다. 대학로 소극장과 홍대 앞 인디 클럽 같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공연장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으로 사실상 휴업하거나 적자를 감수하면서 부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비단 공연예술계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문학을 포함해 출판 분야도 그렇고,2 오프라인 전시 공간이 기본 플랫폼인 미술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3

문화 콘텐츠 산업계는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다. 영화관 관람객 수는 현저하게 줄었지만, 영화 부가 판권 수익은 증가했다. 한국의 대표적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CJ ENM의 2020년 1분기 매출 실적을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CJ ENM의 2020년 1분기 매출액은 8,108억 원, 영업이익은 397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5.7%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49.7% 감소했다.4 이러한 전체적인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분야와 비대면 분야의 사업은 선전했다. 영화 부가 판권 매출은 전년 대비 111% 증가했고, 티빙 유료 가입자 수는 79%, 음반·음원 매출은 47% 증가했다. 2020년 3월 기준 영화관 관객 수(183만 명)와 매출액(152억 원)을 보면 전년 대비 각각 87.5%, 88%가 감소했다. 반면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 The Top) 업체들의 이용량이 급증했다. 넷플릭스는 2020년 1분기에만 가입자가 1,600만 명 증가해 매출 57억 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10억 달러가 증가한 것으로 주식 가치 역시 34% 증가했다.5

넷플릭스

코로나19가 문화예술계에 큰 위기를 몰고 온 것은 사실이다. 확진자가 언제,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고, 사태가 악화되면 당장 내일 예정된 공연과 전시회도 취소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예술 정책은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는 소극적인 방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비대면 일상’이 늘어나고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을 예측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즉 앞으로 이런 유사한 상황이 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계도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먼저 대안적인 시장 및 공공 지원 환경을 마련하고, 재난과 위기에 대비하며, 디지털과 온라인 환경에 적응하는 등 문화예술의 본질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시점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예술계의 주요한 쟁점이 무엇이고, 이 쟁점을 바탕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예술 정책의 가치와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하고자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몰고 온 예술계의 핵심 쟁점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예술의 창작과 수용의 온라인화이다. 이것이 앞으로 극장과 전시 공간의 역할을 어떻게 바꿀 것이며, 과연 이로 인해 새로운 예술 수용자가 창출될 것인가이다. 둘째, 예술 교육의 비대면화 가능성이다. 특히 대면을 필수로 했던 고등 예술 교육 체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어떤 교육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가이다. 셋째, 재난 상황에서 예술인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하고, 예술인의 사회보장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이다. 마지막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술의 존재와 가치는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이다.

예술의 온라인화, 선택인가 필수인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공립 예술 기관이 일제히 운영을 중단했다. 지난 2월 2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극장 등 24개소를 차례로 잠정 휴관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국공립 예술 기관들은 준비해오던 프로그램을 취소, 연기하거나 관객과 관람객 없이 공연과 전시를 온라인으로 소개하면서 정상화되기를 기다렸다. 확진자가 많이 줄어들어 지난 5월부터 몇몇 극장에서는 좌석을 한 칸씩 띄우는 방식으로 공연을 재개하고 관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국공립 예술 기관은 다중이용시설 이용 제한 조치의 일환으로 5월 29일부터 6월 14일까지 잠정적으로 휴관하는 정부의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화 기반 시설들이 언제쯤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정상화될지, 누구도 쉽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이들은 올해 안에 정상화되기 어렵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마도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한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문화 기반 시설들의 운영과 시민들의 안전을 모두 고려한 대안으로 공연과 전시의 온라인화가 제기되었다. 특히 공연의 온라인화는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극장 상연이 예정되었던 작품을 취소하는 대신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현장 관객 없이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방식은 현재 모든 국공립 공연 예술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다.

일례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는 지난 3월 27일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피아노소나타 전곡 시리즈’ 첫 공연을 취소하지 않고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한예종은 이후 ‘코로나19 극복 온라인 희망 콘서트’를 개최했고, 총 30여 팀의 연주가 영상 콘텐츠로 제작되어 온라인 관객들을 만났다. 세종문화회관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힘내라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오페라, 국악, 연극, 무용, 대중음악 등 총 16회의 공연을 진행했다. 국립국악원은 2015년부터 시작한 ‘금요공감’ 콘서트를 5월 8일부터 29일까지 모두 현장 관객 없이 온라인 생중계로 대신했다. 뮤지컬 공연과 대중가수들의 콘서트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가운데, 일부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을 지키면서 관객을 맞아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 모집과 안전 운영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처음 공연 분야의 온라인화가 시작된 것은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올해 상반기에 상연 예정이었던 공연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방식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공연의 온라인화가 확산됨에 따라 공연 예술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 제기가 일어났는데, 대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연을 온라인으로 보면 과연 극장에서 보는 것처럼 감동이 있을까? 공연을 온라인으로 상연하면 극장은 필요 없는 것인가? 공연의 온라인화는 공연의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가?

먼저 공연계에 종사하는 많은 전문가는 공연을 온라인으로 볼 경우 극장에서 느끼는 미적 감동을 충분히 느끼지 못할 것을 우려한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온라인 송출 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극장에서 직접 공연을 볼 때의 감동을 온라인에서 동일하게 느낄 수는 없다. 필자가 지난 5월에 기획과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공연들(한예종 음악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 공연 “Sturm und Drang”,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오월 평화 페스티벌 오월 음악극 “사랑이여”, 세종문화회관 그레이트 아티스트 시리즈 “김덕수전”)을 현장에서 보았을 때와 생중계된 공연 영상물을 보았을 때를 비교하면 전자가 훨씬 더 감동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영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아티스트들의 세밀한 연주 장면은 그 나름의 감동을 주기도 했다. 피아노 건반을 치고 있는 피아니스트의 섬세한 손가락과 연주에 몰입하는 얼굴 표정, 근접 촬영으로 담아낸 객석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용수들의 근육 변화와 땀방울, 한 공간 안에서 펼치는 입체적인 퍼포먼스를 다양한 카메라 각도로 볼 수 있는 다중 시각은 오프라인 공연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감각의 발견이다.

세종문화회관 그레이트 아티스트 시리즈 김덕수전

공연의 온라인화가 확산되면 극장의 존립 근거가 희박해질 것이라는 지적 역시 중요한 논의점이다. 그러나 공연의 온라인화가 극장을 죽일 것이라는 예측은 극단적인 생각이다. 공연의 온라인화는 기본적으로 극장이라는 시설을 전제로 한다. 온라인 공연도 극장의 주요 시설과 장비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만 기반 시설로서 극장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갖는 비판에서 눈여겨볼 점은 극장이 보유하는 프로그램과 인력 및 재정의 축소에 대한 우려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다지 크게 걱정할 사안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공연과 극장의 모든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비대면 생활이 지속되는 상황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거나 짐작만 하고 있던 극장의 다양한 활용 방식과 공연 시장의 확산 방법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가능해진 것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100년간 지속된다면 그때는 극장만이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극장은 여전히 필요하고, 객석에는 여전히 관객이 있을 것이며, 극장 인력과 단원, 재정도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이 불편하지 않게 영상 촬영 장비를 내장화하는 것과 공연의 온라인화를 염두에 둔 제작 시스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국립창극단은 패왕별희 전막을 온라인으로 선보였다

공연을 생중계하는 미디어 플랫폼의 다원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평소 하루 수십 개 이상 진행되는 공연을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다.

공연의 온라인화가 시장의 다양성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다각도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공연의 온라인화가 가능한 공연들이야 큰 문제가 없지만, 그럴 수 없는 공연들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다. 특히 국공립 단체들이 제작하는 공연이나 대규모 제작 자본이 투여되는 뮤지컬 공연이 아닌 대학로 소극장 연극이나, 적은 예산으로 무대에 올리는 개인 연주 단체들은 상대적으로 공연의 온라인화 환경에서 소외될 수 있다. 그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공 예술 정책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 오히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비주류 공연들이 온라인화를 통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이후 오프라인 공연에도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실제로 공연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될 경우, 극장에서 보는 관객들보다 훨씬 더 많은 관객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일례로 6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진행한 <김덕수전>은 4일 치 공연이 모두 조기 매진되었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1,200여 명의 예매 관객에 불과했던 공연이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3만여 명의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다만 공연의 온라인화를 위해 극장과 관객을 이어주는 미디어 플랫폼이 지나치게 일원화되지 않도록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거의 모든 국내 공연은 네이버TV 생중계로 관객들과 만났다. 네이버는 공연 온라인 콘텐츠 수요가 늘어나면서 하루에도 2~3개의 공연을 생중계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 수십 개의 공연이 네이버TV로 생중계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즉 공연을 생중계하는 미디어 플랫폼의 다원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평소 하루 수십 개 이상 진행되는 공연을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다. 결국 제작 조건이 좋고, 홍보 마케팅 역량이 강한 국공립 공연 예술 기관들만 독점적인 미디어 플랫폼을 독점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공연의 온라인화에 있어 다양한 공연이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대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비대면 예술 교육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이 2020년 1학기 강의를 비대면 중심으로 대면 교육과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 고등 예술 교육의 경우 그 특성상 비대면 교육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 강의를 진행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일대일 전공 실기 교육이 필수인 클래식, 무용, 전통 예술과 같은 콩세르바투아르(conservatoire) 분야를 영상을 통해 지도하다 보니 세심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인원이 참여하는 앙상블 연주나 많은 인원을 한 공간에서 교육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과정 등은 온라인을 통해 교육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몸의 움직임과 신체 접촉이 필요한 무용 교육은 1인 레슨이든 소수의 앙상블 수업이든 다수가 참여하는 레퍼토리 교육이든 사회적 거리 두기의 원칙대로라면, 모두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예종이 지난 5월 15일 학생들과 교원들을 대상으로 수업의 대면, 비대면 관련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학생들의 경우에는 비대면을 선호한 반면, 교수와 강사들은 대면 수업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수업의 안전과 활동 자제를 위해 비대면 수업을 선호했으나, 교수와 강사들의 경우에는 온라인 수업을 위해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보니 대면 교육을 더 선호했다고 볼 수 있다.6 그러나 설문 조사 결과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학생들이 전공별로 다른 의견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원, 영상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은 비대면 수업을 선호하는 비율이 평균적으로 높았고 연극원, 무용원, 협동 과정은 대면 수업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한 학과별로도 편차가 있는데 몸을 직접적으로 사용하거나 집단적인 교육이 필요한 전공은 대면 수업을 원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론과나 개별 전공이 강한 과는 비대면 수업을 원했다.

코로나19는 아직 종식되지 않았고, 언제든 2차 대유행으로 번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고등 예술 교육에서 전공 교육의 온라인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은 불가피해 보인다. 예술 전공의 온라인화를 위한 수고를 학생과 교수와 강사 개인들에 모두 전가할 수는 없다. 실기 중심의 예술 교육을 온라인화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온라인 환경이 제대로 구축되어야 하고, 학생들과 교수 및 강사들이 사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예술 교육 시스템에 맞게 독자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현재 예술대학에서 사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은 일반 화상회의에서 쓰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으로 입체적인 공간과 다각적인 시청각 자료를 사용해야 하는 온라인 예술 교육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다. 한편으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등의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예술 교육의 온라인 플랫폼 구축은 코로나19의 장기 지속이나 유사 사태의 발생에 대비할 수 있는 대안 중의 하나이다.

고등 예술 교육의 경우 대면하지 않고 비대면으로만 진행하면 실기가 중심이 되는 콩세르바투아르 분야의 경우에는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예술 전공 교수와 강사의 경우 대부분이 온라인 교육을 위한 기술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적 수요를 맞추기가 어렵다. 모든 교육과정을 온라인화한다면 지금처럼 예술대학에 레슨실, 합주실, 워크숍 룸, 스튜디오, 극장이 많이 필요 없겠지만 지금 같은 팬데믹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예술대학이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시절로 안전하게 복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 교육이 그동안 물리적인 공간과 교육만을 고집했던 근대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일부는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그에 맞는 환경을 구축하는 교육과정의 혁신은 불가피해 보인다.

재난의 시대, 예술인의 사회보장 체계

코로나19 사태로 극장, 미술관, 박물관 등 공공 문화시설이 휴관하고, 다양한 페스티벌과 전시회가 중단되면서 예술인이 설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이는 비단 생계가 곤란해진 것도 있지만,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에 대한 혼란스러운 생각 때문이다. 극장에 서지 못하는, 전시를 하지 못하는, 관객과 만나지 못하는 예술인이 과연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우려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앞서 설명했던 대로 코로나19 사태로, 특히 고정된 직장이 없는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생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초래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총 351억 5,000만 원의 긴급 지원 자금을 추가 편성했다. 먼저 피해가 막심한 공연예술계와 전시 공간 활성화를 위한 예술 창작 지원 분야에 158억 5,000만 원을 추가 편성하고, 문화누리카드에도 63억 원을 추가 편성했다. 또한 침체된 공연 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연 관람 티켓 구매 시 정액 할인해주는 130억 원 상당의 공연예술 관람료 지원 사업을 새롭게 시행했다.7 서울문화재단도 코로나19 피해 예술인 긴급 지원 사업에 당초 45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지난 4월 29일 15억 4,000만 원을 추가 투입해 총 60억 4,000만 원으로 지원 규모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원 건수는 총 500건에서 330건 늘어난 830건으로 확정됐다.8 지원 결과 총 4,999건이 접수되었는데, 이는 그만큼 많은 예술인이 긴급 지원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전 지구적 사회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술인에 대한 긴급 지원은 말 그대로 신속히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평소에 예술인의 복지와 사회보장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면 사전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2012년 11월에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은 극심한 생계 곤란에 시달린 젊은 예술인의 죽음으로 인해 생겨났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어 예술인의 창작 준비 지원과 산업재해 보험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과 규모가 한정되어 예술인의 사회보장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생존이 커다란 위기를 맞으면서 이들에 대한 광범위한 긴급 지원이 절실해졌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2020년 5월 12일에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디딤돌’을 통해 7,538명에게 모두 226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 예술인 창작준비금 지원 대상은 원래 6,000명이었지만 코로나19로 예술계, 특히 프리랜서 예술가들이 크게 피해를 입자 1,500여 명을 추가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는 전체 지원자 1만 5,000명 중 절반만 혜택을 받은 결과이다.

국립발레단은 취소된 정기공연 안나 카레니나를 온라인으로 선보였다

최근 20대 국회에서 ‘고용보험법’ 및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 안이 통과되며 예술인을 위한 고용보험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고용보험을 적용받는 대상은 ‘예술인복지법’에 따른 예술활동 증명서를 발급받거나 문화예술 용역 계약을 체결한 자유계약(프리랜서) 예술인(1개월 미만의 문화예술 용역 계약을 체결한 단기 예술인 포함)이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24개월 중 피보험 단위 기간 9개월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9

예술인 고용보험 실시에 따른 실업급여는 보험금 납입 기간이 충족 되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예술인의 사회보장 실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했기 때문에 예술인 고용보험 실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예술인의 사회보장이 온전하게 충족되기 위해서는 실업급여뿐 아니라 프리랜서 예술인들에게 4대 보험이 모두 적용되고, 창작에 필요한 활동 지원과 창작 이외의 삶에서 필요한 생활 지원 등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보편적 권리로서 예술인의 사회보장이 온전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아래 표에 제시된 지원 사업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예술인 사회보장을 위한 종합 지원 체계 예술인 사회보장을 위한 종합 지원 체계

포스트 코로나, 예술의 존재와 가치

“(중략) 코로나19 이후 이 흐름은 끊어져 이제는 각 개인을 고립된 장소나 ‘집’ 등으로 격리되도록 유도한다. 실제 대면하지 않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회, ‘비접촉 원격 사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예술에게 던져진 질문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접촉을 전제로 하고, 불특정 다수의 공간적 밀집과 상호 교감을 기본으로 행해지던 예술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온라인으로 송출하고 그것을 통해 대중과 교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근대가 만들어놓은 장르의 벽과 현장감은 그 변화를 손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특정한 교감과 소통을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 공간의 분위기와 함께 하는 데서 오는 에너지와 떨림을 떨쳐내기 어렵다. 그렇기에 비접촉 원격 사회로 진화하는 현실에서 예술은 근본적인 존재의 기반이 허물어짐을 보고 있다. 예술이 손쉽게 허용될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10

코로나19 사태가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재난 상황 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시작과 동시에 포스트 코로나의 시간으로 이행한다. 포스트 코로나는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 코로나는 코로나19 사태의 지속, 변화, 전환이라는 이행의 용어인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될 경우, 혹은 또 다른 전염병이 생겨 팬데믹 사태가 새롭게 도래할 경우에 인류 사회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용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술은 코로나19 사태의 종식을 선언하는 것이 아닌 그것의 지속과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심각한 확산 정도와 상관없이 그 사태가 장기 지속되는 시간과 함께해야 하는 예술의 존재와 가치는 앞으로 어떻게 자리매김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 예술이 재난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 하다. 그동안 재난 국면에서 예술의 역할은 주로 재난 상황을 미적으로 표현하고 재현하는 것이었다. 전쟁, 테러, 기후 위기 등 전 지구가 위협받고 있는 재난의 현실을 창조적 작업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담당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예술 자체가 재난의 주체가 되는 시대이다. 극장에 관객이 사라지고, 박물관과 미술관은 폐쇄된다. 거의 모든 공연이 취소되거나 관객 없이 온라인으로 중계된다. 코로나19 국면은 ‘재난의 예술’에서 ‘예술의 재난’으로 이행한다. 예술 자체가 재난의 주체가 되는 상황에서 예술은 생존하기 위해 새로운 자기 실험과 혁신이 필요한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실험과 혁신으로서 예술의 존재는 언택트(비대면)의 사회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창작과 제작, 수용과 배급의 환경을 어떻게 새롭게 구축할 것인지 진지하고 실질적인 정책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예술의 생존과 함께 예술의 공존 문제도 중요하다. 예술은 무엇과 함께, 누구와 함께 공존해야 하는가? 예술의 창의적 활동과 사회생활의 안전은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말한 쾌락원칙과 현실원칙과의 대립과 유사한 질문이다. 프로이트는 인류의 문명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현실원칙의 이성과 쾌락원칙의 욕망이 충돌할 때 현실원칙의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을 위해 공연 관람, 페스티벌 참가, 클럽 파티 등을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고수할 것인가 하는 것은 양자택일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의 공존이라는 관점에서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예술의 창조적 삶과 사회적 거리 두기의 삶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 극장의 실제 관객과 온라인 관객을 공존하게 하는 방식, 대면과 비대면을 공존하게 만드는 예술 교육, 언택트 환경을 좀 더 실감 나게 만들 수 있는 예술과 기술 공존 등은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셋째, 예술의 생태적 공진화를 위한 성찰은 예술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의 일상이 너무 과잉 소비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음식, 여행, 공연, 페스티벌 등등. 물론 이런 문제의식은 일상생활 안에서 외식과 여행, 문화예술의 관람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소비하는 방식이 과잉되었다는 뜻이다. 과도한 음식 섭취, 불필요한 여행 경비,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플라스틱을 과하게 사용하는 페스티벌 등 문화와 예술을 영위하는 삶이 그동안 생태적 지구, 생태적 삶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술이 생태적 사회의 위기를 경고하는 창작 표현의 주체를 넘어서 예술 자체가 생태적 창작 환경을 지키는 노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의 생태적 공진화이다. 이러한 ‘예술의 생존’, ‘예술의 공존’, ‘예술의 공진화’라는 세 가지 토픽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술의 존재와 가치를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국면은 ‘재난의 예술’에서 ‘예술의 재난’으로 이행한다.
예술 자체가 재난의 주체가 되는 상황에서 예술은 생존하기 위해 새로운 자기 실험과 혁신이 필요한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주국제영화제
  1. 위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인의 수입 감소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서울은 100%, 경남은 94.1%, 충남·전북은 93.3%가 감소했다고 응답했고,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이후에도 수입에 변화가 없거나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84.1%였다.
  2. 출판계도 ‘작가와의 대화’와 같은 오프라인 모임이 잇달아 취소되고 여행 관련 서적 판매가 57%나 감소했다. 교보문고 측은 “매장 방문객이 이전에 비해 30% 이상 줄었고, 지난 설 이후 한 달간 전년 대비 오프라인(바로드림 서비스 포함) 매출은 약 15% 감소했다”면서 “반면 전자책 등 온라인 매출은 12% 정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사정은 다른 오프라인 서점도 마찬가지다. 영풍문고 측은 “매장 방문객이 5% 이상 감소한 반면 온라인 매출은 10%가량 늘었다”고 설명했다.(김기중, “코로나19 사태 속 출판계, 그리고 이후의 출판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웹진 "출판N" Vol. 8, 2020. 03. 참고)
  3. 코로나19 확진자가 확산되면서 국공립 미술관이 모두 휴관하고,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 주요 미술 행사가 연기되었다. 지난 4월까지 코로나19 탓에 취소된 공연 및 전시, 행사가 2,500건으로 피해액은 대략 600억 원으로 추산된다.("월간미술" 2020년 4월 호 참고)
  4. “‘코로나19 악재’ CJ ENM, 1분기 매출액 8,108억, 영업이익 397억”, 파이낸셜뉴스, 2020. 05. 07., https://www.fnnews.com/news/202005072023409878 (접속일: 2020. 06. 01.).
  5. “Netflix Adds Nearly 16 Million Subscribers Amid Virus Shutdown”, The Hollywood Reporter, 2020. 04. 21., https://www.hollywoodreporter.com/news/netflix-adds-16-million-subscribers-virus-shutdown-1291168 (접속일: 2020. 06. 01.).
  6. 한예종이 실시한 대면-비대면 선호도 설문 조사에 총 3,218명의 학생과 1,104명의 교수와 강사가 참여했다. 먼저 학생들 가운데 완전한 대면을 원한 학생은 19.3%, 완전한 비대면을 원한 학생은 51.0%, 대면과 비대면을 혼용하는 것을 원한 학생은 29.7%로 나타났다. 반면 교수와 강사들에서는 대면이 38.5%, 비대면이 29.5%, 대면-비대면 혼용이 32.0%를 차지했다.
  7. “예술위, 코로나 타격 입은 문화예술인 351.5억 긴급지원”, 파이낸셜뉴스, 2020. 05. 08., https://www.fnnews.com/news/202005081215524000 (접속일: 2020. 06. 01.)
  8. “총 60억 규모…서울문화재단, 예술인 지원 늘린다”, 국민일보, 2020. 04. 29.,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529137&code=61171111&cp=nv (접속일: 2020. 06. 01.)
  9.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 전면 도입- 자유계약(프리랜서) 예술인 실업급여, 출산전후급여 등 수급 가능”, 문화체육관광부 보도 자료, 2020. 05. 20. 참고
  10. 라도삼, 「팬데믹과 예술정책의 미래」, 예술경영 제444호, 2020. 04. 2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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