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방역 체계가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선포한 세계적인 감염병의 대유행, 이른바 ‘팬데믹(pandemic)’ 선언 이후 방역 모범 국가로 불리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만나 그가 경험한 코로나19에 대해 들어보았다.
“코로나19는 상당히 영악한 바이러스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코로나19)에 대한 방역 당국의 평가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증상이 호전될 듯하다가도 급격히 병세가 진행된다.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제도 없다. 코로나19는 과거의 사스(SRAS)나 메르스(MERS)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현대 의학과 방역 체계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신종 감염증에 대응하는 최전선에서 총사령관으로서 분투 중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어렵게 만났다. 대담은 이태원 클럽발 감염이 발생하기 직전인 지난 5월 1일 김진우 국정과제지원단장이 진행했다.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적 코로나19
“전파 속도 빠르고 누구나 걸릴 수 있어…
항상 경각심 갖고 ‘새로운 일상’ 만들어야”
- 김진우
- 안녕하세요, 정말로 바쁜 시기에 어렵게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정은경
- 아닙니다.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 김진우
- 예전에 보건복지부에 계실 때 부서는 달랐지만 저도 같이 근무했었 습니다. 지나다니면서 종종 뵙기도 했습니다.
- 정은경
-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 김진우
- 요즘 어떻게 잠은 좀 주무십니까? 걱정했던 것보다 얼굴은 좋으신데요.
- 정은경
-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까 더 좋습니다.
- 김진우
-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의사 정은경에 대해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임상 의사보다는 예방의학을 택하셨는데,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 정은경
- 저는 일차 진료와 지역사회 의학에 관심이 많아 의과대학을 졸업 하고 가정의학과를 전공했습니다. 지역 보건소에서 관리 의사로 근무하면서 환자 진료와 함께 방문 보건이나 건강 증진 사업 등 보건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질병 예방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대학원에서 예방의학을 전공해 질병관리본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 김진우
- 보건복지부에서 근무하며 많은 일을 겪으신 것 같습니다. 신종 인플 루엔자, 메르스 등의 각종 감염병과 싸워온 무신(武臣)으로서 뒤돌아보면 어떤 감회가 떠오르시나요?
- 정은경
-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에서 근무하면서 감염병 유행 대응 업무를 많이 담당했습니다. 1998년에 전국적으로 세균성 이질이 유행해 전국으로 역학조사를 하러 다녔고, 2000년부터 2001년까지는 홍역 대유행, 2003년에는 사스 유행, 그리고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과 2015년 메르스 유행시기까지 감염병 대응팀에서 일했습니다. 감염병은 그 특성에 따라 대응 방법이 모두 다른데, 매번 새롭고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유행 당시에는 힘들고, 또 감염병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큰 보람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1년 홍역 유행 때는 캐치업(Catch-up) 예방접종(초·중·고교생 일제 접종), 초등학교 입학 시 예방접종 증명서 제출 제도 도입, 홍역 감시 체계 강화와 같은 홍역 퇴치 계획을 마련했는데요. 그로부터 5년 뒤에 홍역 퇴치 목표를 달성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의사로서 감염병 퇴치에 일조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입니다.
- 김진우
-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면, 저도 보건복지부에서 10년 정도 근무 하면서 본 당시의 정은경 본부장님 모습을 생각하면 ‘항상 차분하다,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브리핑에서도 세간에서 한결같다는 평이 많았는데요.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 정은경
- 말씀하신 대로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차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좋게 보면 장점이지만, 저는 사실 열정적인 사람이 부럽습니다.
- 김진우
- 이제 본격적으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요. 언제부터 ‘아, 코로나19가 밀려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셨나요?
- 정은경
- 처음으로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해외여행 이력이 없는 확진자가 나왔을 때, 그리고 신천지 교회를 통한 집단 발병이 일어났을 때가 가장 긴장했던 순간이었습니다.
- 김진우
- 그때를 돌이켜본다면 어떤 심정이셨는지, 어떻게 전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정은경
-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이것이 신종 감염병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모르는 정보가 많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큽니다. 무증상 감염자, 경증 환자도 많아 지역사회에 어느 정도까지 감염이 확산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다 전염력은 매우 높고, 대부분은 면역이 없어 누구나 다 걸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용한 전파로 폭발적인 유행이 발생할 수 있어 전망이나 예측이 쉽지 않아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 김진우
- 지금 와서는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참 잘했다’, ‘세계의 모범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는 입장에서는 여러 위기와 고비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코로나19에 대응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요? 본부장님을 잠들지 못하게 만든 사건이나 순간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 정은경
- 우리나라가 열심히 대응했지만, 코로나19가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지금은 평가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 순간이 어려웠고, 의사 결정에 부담이 컸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코로나19가 신종 바이러스다 보니 저희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역학조사 등 조사를 하고 바이러스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말 고약하고 아주 영악한 바이러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르는 적과 싸우기 위해 한 번도 안 해본 의사 결정을 매순간 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진단 검사를 민간 의료 기관에까지 확대할 때도 고비가 있었고, 대구 신천지 교회 집단 발병 때는 격리 병상이 부족해 입원 대기자가 급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어르신 사망자가 증가하던 순간이 제일 위기였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 부처, 지자체가 협력하고, 많은 의료인의 헌신과 노력으로 생활치료센터를 도입하면서 다행히 안정화가 되었습니다.
- 김진우
- 지금은 ‘K-방역’이라 부르기도 하고 우리 국민도 자신에 대한 재발견의 시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계가 한국 방역 체계에 주목하는 이유, 우리 스스로가 놀라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 정은경
- 의료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 유럽에서 코로나19 유행으로 도시 전체를 봉쇄하고, 사망자가 속출하고, 개인 보호구가 없어 의료진 감염이 증가하는 상황은 상상해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주요 국가와는 달리 강력한 사회 봉쇄를 하지 않으면서 검역, 진단 검사, 환자 격리 및 접촉자 조사,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을 통해 유행을 통제하고 있는데요. 이 점을 좋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들께서 감염병 예방 수칙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지켜주시고 차분하게 대응해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도 신천지 교회 때문에 대량의 확진자가 생기면서 굉장히 큰 위기가 있었지만 전 부처와 지자체, 국민들의 협조와 의료진 들의 많은 헌신으로 미국이나 유럽이 겪는 대규모의 유행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앞으로 계속 지속되리라고 보기는 어려워서 앞으로 장기전에 대비를 해야만 더 큰 위기를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진우
- 질병관리본부 직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부장님께서 그렇게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방향을 모색하신다고요. 코로나19 대응이 본격화되던 그때부터 “질병관리본부가 달라졌다, 질병관리본부가 정은경 본부장을 중심으로 원 팀(One Team)으로 똘똘 뭉쳐 있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위기에 대응하다 보면 불협화음도 생기고 예상치 못한 장벽도 생길 텐데 조직 경영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정은경
-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우리 직원들에게 ‘질병관리본부 식구들’ 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모두가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논의할 때는 격의 없이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다만 제 마음처럼 직원들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질병관리본부를 한마디로 ‘국민 건강 지킴이’라고 표현합니다. 국민 건강과 사회 안전을 위한 국가 공중보건 전문기관으로서 과학적 근거 기반의 질병 예방 관리를 위한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 김진우
- 전 직원이 거의 초과근무를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질병관리본부 직원들 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 정은경
- 질병관리본부 전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코로나19 대응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주말도 없이 근무를 해야 해서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밤 12시에도 현장에 나가서 역학조사를 하면서 직접 환자를 만나야 하니까 감염 위험에 노출되기도 해 마음을 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국민 건강 지킴이라는 각오로 조금만 더 참고 온 힘을 다해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좀 내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 김진우
- 본부장님께서는 늘 방역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이 언론이나 세간에서 주목받으실 때마다 많이 불편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고 사투를 벌이는 분들 때문이겠지요?
- 정은경
- 코로나19 대응의 원동력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국민의 참여와 의료진들의 헌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민간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협력, 전국 보건소와 의료 기관에서 보여주신 혼신의 대응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중앙 부처와 지자체가 매일 회의를 통해 상황과 대응 경험을 공유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코로나19 대응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진우
- 뒤늦은 질문인 것 같지만, 코로나19는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나요?
- 정은경
- 코로나19는 대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속성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무증상, 경증 환자가 많아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특징적인 임상 증상이 없어 일반 감기와 구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 증상이 나타나기 이틀 전부터 감염력이 있어 전파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신종 바이러스여서 국민 모두가 면역력이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누구나 감염될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은 비교적 중증으로 악화하는 경우가 적지만, 어르신이나 만성질환이 있으신 분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 김진우
- 앞으로 이런 감염병이 그 종류를 바꿔 새롭게 계속 나타날 수도 있습니까?
- 정은경
- 최근 들어 새롭게 발생한 에볼라,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은 대부분 동물에서 유래된 인수공통전염병이 많습니다. 도시 개발이나 환경 파괴로 동물 감염병이 사람에게 노출되고 세계화, 도시화 등을 통해서 전 세계로 급속하게 확산할 수 있습니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비와 대응을 강화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 김진우
- 이제까지의 대응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고, 만약 이러한 일을 다시 치른다면 지금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감염병의 주기적 유행을 고려한다면 근본적인 변화도 모색해야 할 텐데요.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 정은경
- 제일 중요한 것은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염병 역학, 바이러스 연구, 의료 감염 관리, 위기 소통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을 중앙과 시·도, 시·군·구, 의료 기관 등에 확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종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병상과 장비, 인력, 치료제와 백신도 체계적으로 확보해야 하고요. 또한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급성기 병원의 감염 예방·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전문 인력과 자원 투입을 늘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학교, 직장, 다중 이용 시설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감염 예방의 기본 인프라를 갖추고 예방 수칙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김진우
- 코로나19에 대한 향후 전망, 어떻게 보시는지요?
- 정은경
-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유행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브라질 등 미주 지역과 인도, 파키스탄 등 아시아 지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에서 유행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는 전 세계 대부분의 인구가 코로나19에 대한 면역이 없고, 효과적인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어서 유행이 장기간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우리나라도 크고 작은 규모의 유행이 반복되면서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을, 겨울철이 되면 기온이 낮아지면서 생활 환경에서 바이러스의 생존 기간이 길어지는 데다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유행 규모가 커질 수 있어 우려가 됩니다.
- 김진우
-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고 저희가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어야 될 부분이 많겠습니다.
- 정은경
- 네. 아직은 경계심을 풀 단계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역 당국으로서는 그동안 했던 역학조사, 검사, 검역을 평가해보고 보완할 사항에 대해 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의료계에서는 다수의 환자가 생겼을 경우 감당 가능할 것인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의료 역량 확인이 필요합니다. 국민들께서도 적절한 거리 두기와 개인 위생을 준수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생활 방역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해야 하고 이를 위한 연구 개발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 김진우
- 마지막으로 국민들이나 공공기관에 계신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 정은경
-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코로나19 유행은 장기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 합니다. 유행이 지속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고,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통제하기까지는 일상 속에서 감염병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학교, 의료 기관, 식당, 종교 시설, 체육 시설 등을 안전하게 운영하고, 공동체 모두가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 제도,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방역 당국은 철저한 검역, 검사, 환자 및 접촉자 관리 등 방역 조치를 보다 철저히 수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힘드시겠지만 국민 여러분께서도 손 씻기, 마스크 착용 등 예방 수칙 준수와 밀폐·밀집된 환경 피하기 등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일상화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방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국민들과 보건 의료인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