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아 기념 연설을 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형 뉴딜’이 제시되었지만 ‘그린 뉴딜(Green New Deal)’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움이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틀 뒤인 5월 12일,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 비공개 토론에서 “요즘 그린 뉴딜이 화두”라는 언급과 함께 국제사회와 시민사회 요구에 부응하면서 일자리를 늘리고 선도형 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가 합동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5월 15일에 4개 부처가 합동 서면 보고 후 20일에 한국형 뉴딜 사업에 그린 뉴딜을 포함하도록 지시함으로 그린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함께 한국형 뉴딜에 포함되었다. 21대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공약으로 그린 뉴딜을 내걸기도 했지만 내용이 빈약해 선언 차원에 머물렀다. 그러다 이제야 우리 사회에서 그린 뉴딜에 대한 공식 논의가 본격화된 것이다. 6월 초에 구체적인 그린 뉴딜 사업 계획이 나오면 3차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이제 우리만의 K-그린 뉴딜을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추진해갈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린 뉴딜은 최근 몇 년 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제기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을 것이며 경제적 악영향을 회복하는 데 1~2년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때문에 코로나19 이전과 상황이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린 뉴딜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그 추진 의지가 강화되고 있다. 2018년 미국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를 비롯한 민주당 하원 의원들이 그린 뉴딜 결의안을 제출했지만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이 대선 공약으로 그린 뉴딜을 내건 상태다. 오카시오 코르테스는 바이든이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 측과 구성한 ‘통합 태스크포스(TF)’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었다. 유럽연합(EU)은 2019년 12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Net Zero)를 달성하기 위해 4개 분야(에너지, 산업 및 순환 경제, 건축, 수송)와 2개 주요 정책 분야(친환경 농식품, 생물다양성 보존)에 대한 ‘유럽 그린딜’에 합의하였다. 여기에는 화석연료를 녹색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산업과 지역, 노동자 들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 기금 등 10개항을 담았다. 지난 5월 중순, 15개 EU 회원국 환경부 장관들은 코로나19 극복 수단으로 ‘그린 딜’을 활용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처럼 그린 뉴딜 움직임은 후퇴나 지연 없이 추진될 전망이다.
뉴딜은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을 말하는데 그 의미와 효과, 영향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단일하지 않다. 그럼에도 뉴딜은 단순한 경기 부양책이 아니다. 뉴딜은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의 ‘새로운 자유(New Freedom)’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의 ‘공정한 협약(Square Deal)’이란 구호에서 한 단어씩 빌려온 ‘새로운 협약(New Deal)’으로 새로운 경제를 위한 사회적 합의란 의미였다. 루스벨트가 처음 뉴딜을 언급한 때는 대선 후보였던 시기로, 대공황에 직면한 미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한 회복(recovery), 구호(relief), 개혁(reform)의 실현을 위한 약속이었다. 단순히 토목공사 등의 공공 근로 사업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자로 일자리를 늘려서 경기를 부양한다는 게 아니다. 루스벨트는 경제 대공황을 노동자 계급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 구매력을 잃음으로써 발생한 문제로 보았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공정한 분배를 통해 미국 진보주의 가치를 회복하면서 경제체제의 작동 방식을 수정하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권리를 주는 방향으로 노사 관계를 개선하고 사회보험을 도입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개혁적 내용을 포함했다.
당시의 뉴딜이 사람과의 새로운 사회 협약이었다면, 그린 뉴딜은 대상을 보다 확장해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과 맺는 새로운 사회 협약이라고 하겠다. 자연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연을 생존 기반으로 하는 사람을 위해 자연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자연과 맺는 새로운 협약이라기보다 자연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새로운 경제를 위한 사회적 합의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현대 산업사회가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드러냈다. 현재 인류가 당면한 최대 환경문제이자 이제는 경제문제가 되어버린 기후 위기가 심각한 배경이란 사실을 직시한다면 이제 우리는 뉴딜을 넘어 그린 뉴딜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기후 위기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갈 방안이 바로 그린 뉴딜이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자 당위다.
많은 수의 사망자를 내고 일상을 파괴하며 경제를 마비시키고 일자리를 앗아가는 코로나19 사태는 말 그대로 재난이다. 전 세계 214개국에서 약 80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50만 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 했다. 우리나라는 검사 건수가 115만 건이 넘었고 자가 격리자가 3만 5,000명 이상 나왔으나 확진자는 1만 2,000명 남짓이었고, 그중 280명가량 사망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우는 광범위한 검사(Test)와 끈질긴 추적(Trace), 신속한 격리와 진료(Treat)의 3T에 기반한 K-방역 덕분에 다른 나라들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사정이 심각한 나라에서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했고 곳에 따라 격리와 봉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봉쇄나 폐쇄 없이 3T와 함께 정부의 리더십과 시민 실천,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감염 확산을 어느 정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도 상황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학교와 직장이 아직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대규모 집회나 종교 행사도 제한되고 있다. 이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규제로 인해 일상이 교란되고 단절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규제는 단지 불편함에 그치지 않고 경제활동의 중단과 후퇴를 불러와 누군가에겐 생존을 뒤흔드는 문제가 되었다. 문을 닫거나 문 닫기 직전 상태에 놓인 기업이나 자영업자가 느는 등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업종에 따라 더 성장한 곳도 있지만 국가 간 무역이 줄어 기업 경영이 어려워진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3,000만 명가량, 러시아에서는 160만 명가량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33만 명가량이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0%로 보는 등 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은 잇따라 하향 조정되고 있다. IMF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올해 –1.2%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나 이는 OECD 국가들 가운데서는 그나마 형편이 가장 낫고 G20 가운데서도 인도(1.9%), 중국(1.2%), 인도네시아(0.5%)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아 상대적으로 나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출 의존도는 37.5%로, G20 가운데 세 번째로 높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 수출 감소, 생산 감소, 고용 감소가 연이어 발생함으로써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자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의 감염병 발생과 확산은 기후 위기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우선, 둘 모두 숲의 파괴가 공통 원인으로 작용한다. 경작지와 방목지, 거주지, 도로의 확장 등 지속적인 개발로 야생동물 서식처인 숲을 파괴하고 소멸시킨 결과, 야생동물과 인간 사회의 거리가 점점 좁아지면서 야생동물을 숙주로 했던 바이러스가 사람을 숙주로 삼게 된 것이다. 1940년 이래 발생한 감염병 유행 가운데 60%, 신종 감염병 중에서는 75%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데 이 중 70%가 야생동물에 의한 것이다(Bartlow 등, 2019). 숲 파괴는 기후변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숲을 제거하거나 줄임으로써 이산화탄소 흡수 공간을 줄여 대기 중에 누적되는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는데 이것이 기후 위기를 가중시킨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과 확산이 기후변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기후 위기는 산불, 가뭄, 홍수 등과 같은 극단적 기상 현상으로 발현되는데 그로 인해 숲을 포함한 생태계가 파괴되면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사람의 거주지나 목축지로 이동해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그린피스, 2020).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 표면 온도가 상승하면 더운 지역에 사는 모기 서식지가 더 넓어지게 되고 그만큼 바이러스도 더 확산될 수 있다. 뎅기열, 말라리아, 콜레라 등 기후에 민감한 전염병 또한 더욱 확산된다. 수천 년 동안 얼어 있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그 내부에 얼어 있던 고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깨어나 현생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고대 질병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바이러스에 변이가 일어나거나 온도, 강수량, 습도 등이 과거와 달라지면 병원균이나 매개체의 성장 발달과 생존 기간, 분포, 개체 수, 서식지 등에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에 전염병의 전파 시기나 속도와 강도, 분포가 바뀌게 되고 예측이 한층 어려워진다(신호성·김동진, 2008).
그렇기 때문에 결국 감염병의 발병과 확산을 막으려면 기후 위기의 파국적 진행을 막거나 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기후 위기는 그 자체로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이상 기후가 보다 빈번하고 강력하게 발생한다면 그 자체가 생명과 재산의 손실을 야기한다. 그래서 이를 피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강화될 때 이에 제대로 부응하지 않으면 결국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기후 위기 유발의 핵심적인 원인이 화석연료의 연소이기에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으로 에너지 수요를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해가는 에너지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에너지 전환은 시대사적 과제가 되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여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뒤처지면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기후 위기가 감염병의 발생과 확산에 영향을 미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한 대응이 기후 위기를 촉진하는 측면도 있다.
기후 위기가 감염병의 발생과 확산에 영향을 미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한 대응이 기후 위기를 촉진하는 측면도 있다. 바로 폐기물 때문이다. 감염 예방을 위해 안전과 위생을 중시하면서 마스크는 물론이고 비닐장갑, 종이컵, 플라스틱 컵, 빨대 등의 일회용품 사용이 급증하면서 폐기물 발생량 역시 급격히 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출을 삼가면서 온라인 쇼핑과 음식 배달 주문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포장재 폐기물 발생이 증가했다. 방호복이나 기타 보호 장비처럼 검진과 치료 과정에서 감염 위험이 있어 고온 소각 처리해야 하는 의료 폐기물 발생도 현저히 늘었다. 또한 이렇게 늘어난 폐기물의 수집과 운반, 처리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투입되는데 이때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게 된다. 폐기물 감량과 함께 자원 순환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국제사회는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당사국 총회에서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더 노력해서 1.5℃ 이내로 억제하자는 목표를 담은 ‘파리협정’을 채택했고 이듬해인 2016년에 발효되었다. 내년인 2021년부터는 신기후 체제로 진입하게 된다. 이에 당사국들은 올해 말까지 2050년 저탄소 장기 발전 전략을 제출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권고에 따르자면 2050년까지 넷 제로를 달성해야 ‘1.5℃ 이내 억제’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지난 4월 육지와 바다 표면의 평균온도는 1880~1900년의 평균기온과 비교했을 때 약 1.24°C 상승한 상태다. 일부 극지방은 무려 11.5°C까지 상승했다. 육지와 바다를 합해서는 올해 4월이 2016년 4월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바다 표면 온도만으로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4월이었다고 한다. 이제 시간이 정말 얼마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단절되고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환경적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부수효과(good side-effects)’가 나타나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회·경제활동, 이동 등이 줄면서 에너지 소비도 감소한 것이다. 교통 체증이 사라지고 소음이 줄어들었으며 하늘이 맑아졌다. 봉쇄 조치를 취한 국가들에서는 미세먼지 농도가 9%가량 떨어졌다. 숲이나 바다에, 심지어 도심에까지 평소 만나기 어려웠던 야생동물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 배출이 줄었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변화다. 얼마 전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실린 영국·미국·독일·프랑스·노르웨이· 네덜란드·호주 등 7개국 연구자로 구성된 지구탄소프로젝트(Global Carbon Project) 국제공동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올 4월 20일까지 각국의 봉쇄 정책으로 세계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지난해보다 17%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감소분의 절반은 수송 부문에서 발생했다. 2020년 한 해의 CO₂ 배출량 변화는 각국의 봉쇄 정책 유지 기간에 달려 있는데 만약 6월 중순까지 유지된다면 2019년에 비해 4%, 올 연말까지 유지된다면 7%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0 글로벌 에너지 보고서>를 통해 2020년 세계 에너지 수요는 2019년 대비 6%, 전력 수요는 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70년을 통틀어 가장 크게 감소한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올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8% 줄어들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감소하는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파리협정에서 약속한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 향후 10년 동안 해마다 감축해야 하는 양과 비슷한 수준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의 <1.5℃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총 45% 줄여야 하는데, 이는 2020~2030년까지 매해 7.6%씩 줄여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UNEP, 2019).
코로나19를 통해 환경이 되살아나는 건 사실 폭력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현대의 산업 문명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안전과 생명에 보다 주목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이 지구에 해를 가하는 바이러스이고 코로나19가 지구의 백신”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럼에도 이 말은 일부는 맞지만 다르게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개별 인간의 책임이나 영향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뒤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200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였던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유진 스토머(Eugene Stoermer)와 함께 ‘인류세(The Anthropocene)’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인간이 지구 시스템에 영향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며, 이런 지질시대를 그 이전과 구분해 인류세로 이름 붙였다. 변화된 지구 시스템의 대표 사례가 바로 기후 체계로, 기후 위기는 인류의 사회·경제활동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를 보여준다. 자연의 역습이라 불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간의 활동이 강제적으로 멈춰지거나 잦아들었고, 그 결과 되살아나는 지구 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사회·경제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었다. 문제는 사회·경제활동이 본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만다는 점이다. 즉 인류가 다시 예전과 같은 방식과 규모로 경제활동을 재개한다면, 환경오염도 온실가스 배출도 예전 수준으로 회귀해버리고 말 것이다.
인류세란 개념은 인류 전체의 총체적 영향에 주목함으로써 인류 안에 존재하는 사회나 국가들 간, 또 한 사회 내에서도 집단이나 개인들 간의 차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기후 위기의 영향은 차별적이다. 이는 코로나19 위기의 차별적 영향을 통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빈부 격차가 심한 사회일수록 코로나19의 감염과 대응에서 그로 인한 영향의 차별성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의료보험제도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염증 검사와 격리, 치료 비용이 건강보험공단과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동 부담이라 개인 부담 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대체로 진단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물론 자가 격리 방식이나 형태도 달랐다. 가난한 이들은 코로나19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또한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직종과 근무 지역, 고용 형태, 자산 규모나 주택 소유 여부에 따라 코로나19의 영향이 달랐다. 즉 처한 상황에 따라 급여나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달랐고 출근 방식이나 근무 형태에 차이가 있었으며, 사업 규모와 성격, 영업 방식에 따라서도 경제적 영향에 편차가 있었다.
코로나19의 차별적 영향은 기후 위기에서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기후 위기가 신종 감염병 바이러스의 등장 및 확산과 연결되어 있기에 차별적 사회 영향이 발생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상 기후가 보다 빈번하고 강력하게 발생한다면 거주지의 입지나 가옥의 단열 상태, 노동 형태 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은 기후 위기에 보다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기후변화의 경우, 누구나 어떤 국가에나 기후 위기를 야기한 공통의 책임이 있지만 책임의 크기가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화석연료를 더 많이 소비하고 육식을 더 많이 하는 개인과 집단, 국가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후 위기는 책임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가난한 개인과 집단, 국가에 훨씬 더 가혹한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의 경우 위기 발생 책임 자체보다는 영향의 차별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데 비해 기후 위기는 책임이 덜한 이들에게 훨씬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기후 위기가 심화되면 코로나19의 차별적 영향을 현저히 넘어서는 격차로 경제·사회 위기가 증폭될 수 있다.
거기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과 경제 전환이 미치는 영향 또한 개인과 집단에 따라 다르다. 에너지 집약적이며 탄소 집약적인 이른바 회색 산업은 기후 위기 시대에 지속 가능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 위기 대응이 전환되어야 할 영역에 생계를 걸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처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파리협정과 EU와 독일의 그린 뉴딜이 화석연료 관련 산업 종사자들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염두에 두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린 뉴딜에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면서도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에 관심을 두는 정의로운 전환의 기획을 담아야 한다. 지난 5월 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와 <지구온난화의 경제학>이란 보고서(일명 <스턴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를 경제학적으로 해석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니컬러스 스턴(Nicholas Stern) 교수 등이 공동 집필한 논문에서 저자들은 재정 회복 패키지가 화석연료 집약적인 현재의 경제체계를 연장할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 교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위기가 기후변화의 진전에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저자들은 G20 국가의 중앙은행과 재무부, 경제 전문가 등 2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제를 부양하는 효과가 큰 동시에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재정정책으로 투자해야 할 5개 분야를 제안했다. 청정에너지 인프라,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건물 개·보수, 탈탄소화로 인한 구조적 실업과 코로나19로 임박한 실업에 대처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 생태계 회복 탄성과 소생을 위한 자연 자본, 청정 R&D가 그것이다. 이러한 제안이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시민 참여를 통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앞서 그린 뉴딜을 고민해온 사회들에서 코로나19 위기와 기후 위기를 동시에 극복할 방안으로 그린 뉴딜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으며, 에너지 전환이 그린 뉴딜의 핵심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 코로나19 위기는 어쩌면 화석연료로 지탱해온 성장 위주의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대 산업 문명을 되돌아보면서 지속 가능한 탈탄소 문명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앞서 그린 뉴딜을 고민해온 사회들에서 코로나19 위기와 기후 위기를 동시에 극복할 방안으로 그린 뉴딜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으며, 에너지 전환이 그린 뉴딜의 핵심이 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경제를 회복시키면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경제부 장관인 페터 알트마이어(Peter Altmaier)는 코로나19 이후 유럽 경제 회복에서 핵심 역할을 할 대상으로 해상 풍력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부문을 꼽았다.
우리나라에서야말로 에너지 전환이 그린 뉴딜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에너지 전환 지수(Energy Transition Index) 2020’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분류된 32개국 중 31위였다. 3년 연속 최하위권이다.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미래 우리의 경제 전망이 밝지 않음을 시사한다.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에너지 전환에 대대적인 재정을 투입해 시장을 바꾸고 확대함으로써 전환의 모멘텀을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2017년 6월 19일 문 대통령의 ‘탈원전 에너지 전환 선언’과 2017년 12월 ‘재생에너지 3020’ 발표 후 2년 이상, 아니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에너지 전환이 여전히 주춤거리고 있다. 이제는 그 이유를 분석하고 그린 뉴딜을 통한 대대적인 정부 재정 투입이 에너지 전환의 확실한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적극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 수행 가능한 재정 지원 사업이나 필요한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여러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축 건물 개·보수 사업으로, 많은 인력을 고용하면서 국가 전체의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학교 옥상, 공공기관 건물 옥상과 주차장 부지, 고속도로와 철도변 등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작물 농사와 전기 농사를 함께 짓는 영농형 태양광 패널을 제작한다면 태양광 발전을 확대할 수 있다. 농촌에서는 ‘녹색 새마을운동’을 추진할 수도 있다.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해 가옥 개·보수와 단독이든 협동조합 방식이든 태양광 설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또한 풍력발전 확대를 위해 국민-지자체-지역 주민 주주 만들기 방안도 추진해볼 만하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송전 인프라 확충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전선로 구축 사업과 함께 안정적이고 스마트한 송전망 운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내연기관차 퇴출은 예정된 만큼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2020년 1분기에 글로벌 1위였다. 이는 우리 전기차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중고차 교환 프로그램과 전기차 의무 판매제, 저탄소 협력금제를 시행하면서 전기 충전 인프라 구축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부품이 30%밖에 필요하지 않아 상당한 규모의 실업을 동반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동반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고용 위기 산업은 물론 해당 산업이 입지한 고용 위기 지역이 있을 수 있다. 국토의 균형 발전을 염두에 두어 고용 위기 지역별로 기존 산업과의 연관성을 고려하면서 지역별 특성에 맞춘 디지털 그린 특구 지정도 가능하다. 이는 지역 균형 발전과 포용 가치에도 부합한다.
무엇보다 이런 시도가 가능하려면 부처 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규제 갈등을 제거하기 위한 업무 조율과 조정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들의 투자 위험 부담을 덜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가능하도록 예측 가능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앙정부 주도의 계획 입지가 추진되어야 하고 에너지 전환을 관장하는 관제탑(control tower) 역할을 하는 부처나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개별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과 투자가 효과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을 겪으며 혁신의 중요성과 함께 단절과 파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대담한 사회적 실험이 가능하단 사실도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위기는 사고의 전환, 경제 운용 방식의 전환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 혁신적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팬데믹(pandemic)이라는 세계적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새로운 정상 사회(new normal society)’가 열리고 있다. 이제 인류 역사는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의 말처럼 새로운 BC(Before Corona19)와 AD(After Disease)로 나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지금 전환의 임계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