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서 국가라는 공동체가 생긴 것은 약 1만 년 전이다. 이후 국가에는 정치 형태와 무관하게 당대의 역할이 요구되어왔다. 그에 따라 국가는 안보국가로 출발해 발전국가를 거쳐 민주국가로 변화했다. 그리고 21세기에는 많은 나라가 복지국가를 지향하며 나아가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도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동한 이래 이승만 정부에서 전형적인 안보국가의 모습을, 박정희 정부에서 안보에 더한 발전국가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민주국가를 거쳐 최근에는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역할 변화에 따라 국가의 기본 기능인 안전보장(이하 안보)의 의미도 변화해왔다. 국토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거쳤던 대한민국의 안보는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 특히 북한의 침략에 대응하는 것 외에는 주의를 돌릴 틈이 없었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대규모 열전(熱戰) 가능성의 감소는 안보에 대한 시선과 이해의 변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안보 분야 종사자의 자발적인 역할 확대와 기능 변화라는 노력을 불러왔다. 이러한 역할 확대와 기능 변화를 집약한 단어가 포괄안보 개념이다. 포괄안보는 전통적인 군사적 안보와 오늘날의 테러, 재난, 전염병 등 새롭게 등장한 비군사적 안보를 통칭한다. 더 나아가 1994년 유엔(UN)이 제시한 인간 안보는 인간 개발의 중요성, 테러나 전염병 등 초국가적 위험의 확산, 인권 및 인도주의적 개입 상황과 결부되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포괄안보 개념이 안보 문헌에 본격 등장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전통적 군사 위협에 더하여 대규모 재해·재난을 안보 위기로 인식하면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주도하여 재해·재난 대응을 위기관리 매뉴얼에 포함시켰다. 아울러 실질적인 집행을 위하여 행정안전부 산하 소방방재청에 안전 관리 업무를,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 감염병을 포함한 질병 관리 업무를 전담시켰다. 그리고 국가 차원의 안전 및 질병 관리를 지원하기 위한 국방부와 군의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특히 국방개혁 2.0에서는 ‘초국가적·비군사적 위협에 대해 포괄안보 차원에서 군의 역할을 정립하고, 국내외 유관 부처 및 기관과 협조 체제 구축’을 개혁 과제로 선정하여 추진해왔다. 이러한 노력이 실질적으로 빛을 발한 것은 2019년 4월 발생한 강원도 고성·속초 대형 산불의 성공적인 진화 작업이다. 과거 크고 작은 산불 진화에 군 병력과 장비가 투입된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고성·속초 산불 진화 작업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국가 자원의 신속한 동원과 효율적 활용 때문이다. 화재 당일인 4월 4일, 전국에 산재한 소방차 872대와 소방공무원 3,251명이 소방청장의 단일 지휘하에 동원되어 일사불란하게 진화 작업에 투입되었다. 다음 날에는 일출과 동시에 군 헬기 32대, 군 보유 소방차 26대, 군 장병 1만 6,500여 명이 화재 현장으로 투입되었다. 이와 같은 신속한 대응 덕분에 고성·속초 산불은 불길이 도시까지 덮친 이례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피해 0건, 소방 인명 피해 0건, 군 장병 피해 0건, 발화 21시간 만에 진화율 100%를 달성했다. 이로써 고성·속초 산불 진화 작업은 포괄안보를 표명한 이래 청와대가 국가 재난 컨트롤 타워를 자처하면서 만든 첫 번째 성공 사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즉 코로나19 대응으로 포괄안보의 두 번째 성공 사례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기를 맞은 조직의 리더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호가 있다. “위기는 위험이자 기회”가 그것인데, 이는 사실 중국어 해석의 오류에서 비롯된 말이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면 해석의 오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1월 우리는 중국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2,000명이 넘는다는 소식을 불안하게 지켜봤고, 2월에는 대구의 일일 확진자가 800명이 넘는다는 소식에 불안을 넘어 공황에 가까운 심정이었다. 그러나 5월, 비록 더디지만 우리는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더불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K-방역이 전 세계에 모범 사례로 찬사를 받는 급반전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위기는 위험이자 기회’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국민들의 적극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참여와 의료진의 헌신 덕분이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며,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한 제반 국가기관의 역할도 그 어느 때보다 성공적이었다. 특히 국난 극복이 특기라는 이 땅에서 고비 때마다 역할을 다한 국방부와 군의 기여도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이에 ‘코로나19 대응에서 국방부와 군의 역할’을 조명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물론 코로나19가 아직 진행 중이고, 도시화·세계화 흐름과 겹쳐 빈발의 위험이 있는 만큼 개선 방안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사태 초기에 처리했으면 쉽게 해결되었을 일을 방치했다가 나중에 큰 힘을 들이게 된다는 뜻이다. 2020년 5월 14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213개 국가의 관련 데이터를 보면 ‘호미로 막은 나라’, ‘가래로 막은 나라’, ‘가래로도 못 막고 있는 나라’로 구분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아직 진행 중이지만 대한민국은 ‘호미로 막은 나라’로 평가된다. 코로나19 대응에서 국방부와 군의 역할은 바로 ‘호미’ 중의 일부분이었다. 지금까지 투입된 18만 679명의 병력과 2만 1,931대의 장비는 그 규모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에 앞서 투입된 시기와 장소, 그리고 용도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국방부와 군의 코로나19 대응을 요약하면 앞의 표와 같이 군내(軍內) 감염 차단과 범정부 대응 지원으로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군과 감염병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제1차 세계대전의 조기 종전 원인 중 하나로 스페인 독감을 들 정도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팬데믹으로 번지면서 감염으로 인한 사상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군부대가 감염병 확산의 원인이 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1918년 9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자유 국채(liberty bond) 판촉 퍼레이드에 참가한 미군 부대에 이미 많은 수의 스페인 독감 환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군의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퍼레이드에 시민 20만 명이 어울려 참관했다. 그로부터 4주 후 필라델피아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시민 사망자가 4,500명이나 발생했다.
군 조직과 같은 집단생활을 하는 곳은 감염병 확산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에 국방부와 군은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철저한 준비로 감염 차단에 주력했다. 온 국민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행하기 한 달 전부터 우리 군은 전 장병의 휴가, 외출, 외박, 면회를 금지했다. 또한 간부들도 일과 후 숙소에서 대기하는 등 한층 강화된 고강도 거리 두기를 실천해왔다. 아울러 방역 당국의 격리 기준보다 강화된 ‘예방적 격리 기준’을 전군에 적용하고 격리 해제 시에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가리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검사를 2회씩 시행하는 등 방역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이렇듯 철저한 감염병 유입 차단을 기반으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범정부적 코로나19 대응을 지원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대응에서 국방부와 군이 K-방역의 호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적을 얕보면 반드시 패한다’는 경적필패(輕敵必敗)의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정부 대응 지원에서도 그동안의 대민 지원과는 다른 차원의 지원 개념을 설정했다. 지난 2월 28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긴급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전시에 준한다 생각하고 다른 기관의 요청이 있기 전에 군이 먼저 가용한 모든 자원을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확산 대응에 투입하라”며 국방부의 대응 개념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이는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500명 이상으로 폭증한 데 따른 결정으로, ‘사전 보고 및 승인 후 실시’라는 기존의 대민 지원 원칙을 완전히 바꾼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군은 코로나19 대응에서 경적 필패의 교훈에 따라 군내 감염 차단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시에 준한 범정부 대응 지원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범정부 대응 지원은 국방부 방역대책본부를 중심으로, 의료 지원은 국군의무사령부가, 비의료 지원은 국방신속지원단이 컨트롤 타워를 맡으며 전례 없는 속도와 강도로 추진되었다.
의료적 지원은 ‘국가 감염병 전담 병원 운용’과 ‘군 의료 인력 지원’으로 구분하여 시행되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국군대구병원과 대전병원을 국가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해 운용했다. 그중에서도 국군대구병원은 대구·경북 지역의 확진자 폭증에 대응하는 시급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에 육군 제1117공병단이 긴급 투입되어 7박 8일간의 철야 작업으로 98개 병상을 303개 음압 병상으로 확대시키는 어려운 과제를 완수했다. 정상적인 공사 일정에 비해 기간을 3분의 1로 단축해야 하는 고난도 임무를 맡은 공병단장은 장병들 앞에서 “이것이 우리가 군복을 입고 있는 이유다. 위기에 빠진 국민은 곧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 같다. 이번 공병 작전이 코로나19 극복의 전기가 될 것이다”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완공된 국군대구병원 음압 병동에 전군에서 차출된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투입되었다. 특히 졸업을 앞둔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 75명은 임관식을 앞당겨 실시하고 총원 대구로 파견되었다. 이들 75명은 전원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것은 물론 1,080시간에 달하는 임상 실습을 이수한 최우수 의료 자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절대 잊지 않겠다”고 격려한 그들의 헌신은 초기 확진자 폭증으로 불안해하던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과 위로가 되었다.
코로나19 범정부 대응의 한 축인 군 의료 인력 지원은 사태 초기부터 의료 인력 공백 방지를 위한 것이었다. 1월 27일 전국의 공항 및 항만 검역소 21곳에 군의관, 간호장교 등이 검역 지원 임무에 투입되었다. 2월 5일 광주 소재 21세기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며 의료진이 격리 조치되자 군 의료지원팀이 파견되어 진료 공백을 막았다. 이후 대구 지역에 본격적인 군 의료 인력 지원이 집중되었고, 5월 12일 기준 2만 8,647명의 군 의료 인력이 범정부 대응 지원에 나섰다. 군 의료 인력은 국군대구병원뿐만 아니라 대구 지역 민간 전담 병원인 동산병원에도 파견되어 폭증하는 진료 소요에 대응했다. 동산병원 지원에 편성된 1차 군 의료지원팀은 군의관 10명, 간호장교 1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파견 기간 중 군의관 1인이 500명의 환자를 진료할 정도로 사투에 가까운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처럼 과중한 임무를 수행한 군 의료 지원 인력 중에 감염 사례가 없었던 것도 특기할 만하다. 군 의료 장비의 기여도 역시 적지 않았다. 특히 선별진료소로 운용된 육군의 이동 전개형 의무 시설은 임상병리실, 에어 텐트, 음압기, 이동형 방사선 장비, 혈액검사 장비 등이 갖춰져 있어 민간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초기 단계 대응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범정부 대응 지원에서 비의료적 지원의 중요성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비의료적 지원에서 가장 먼저 시행된 것은 해외 입국자 검역 지원이었다. 국방부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지난 1월 28일, 군 의료 인력 17명과 업무 지원 인력 89명을 전국 공항 및 항만 검역소 21곳에 투입했고, 30일에는 중국어 통역을 포함해 107명을 추가 지원했다. 공항 및 항만 검역소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마주하는 첫 관문으로 코로나19 대응의 첫걸음이자 최전선이었다. 유사 이래 최고 강도의 특별 검역을 시행한 검역소의 핵심 인력은 다름 아닌 군 지원 인력이었다. 군의관과 간호장교로 구성된 군 의료진은 선별진료소의 필수 인력으로서 기초 역학조사, 인플루엔자(독감) 배제 진단, 검체 채취 임무를 수행했다. 입국 절차 지원은 파견을 자원한 병사들이 맡아서 중국발 승객과 승무원의 분류·인솔, 건강 상태 질문지 작성, 자가 관리 진단 앱 설치, 국내 연락처 확인 업무를 진행했다. 특히 특별 검역 신고 업무에 지원한 통역 장교들도 검역소의 업무 가중을 막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21개 검역소 중 가장 많은 입국자를 처리한 인천국제공항 검역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방부와 군의 인력 지원이 없었다면 인천공항을 이렇게 촘촘히 검역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방역 물자 수송도 사태 초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확산 저지를 위한 핵심 수단은 개인용 마스크였다. 한때 ‘마스크 대란’이라고까지 불렸던 수급 불안정 문제는 사태 초기의 최우선 해결 과제였다. 지난 2월 28일 정부 관계 기관 회의를 통해 마스크 수급 안정을 위한 군 인력과 차량 지원이 결정되자 부산, 전주, 파주, 안성, 인천, 동해 등 마스크 생산업체에 군 인력과 차량이 투입돼 제품 포장과 배송 임무를 맡았다. 특히 민간 업체에서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수송을 기피하자 운전 경력이 풍부한 부사관 16명과 차량 16대로 구성된 전담 수송팀이 파견되었다. 전담 수송팀은 감염 예방을 위해 방호복을 갖춘 상태에서 대구·경북 지역의 긴급 의료 물자를 수송하는 동시에 정부 비축 물자, 대한적십자사 위문품 등의 물자 수송을 지원했다. 물자 수송 지원에서 특기할 만한 사례는 공군 수송기 C-130J 2대를 긴급 투입하여 해외 방역 물자까지 공수한 것이다. 애초 보건복지부는 미얀마에서 수술용 가운을 수입하기로 했지만, 갑자기 국적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면서 물자를 들여오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이에 국방부는 과감하게 군 수송기를 보내는 결단을 내렸고,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소속의 C-130J 수송기 2대는 무박 2일로 강행된 수송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군 수송기가 민간 해외 물자 도입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미얀마 소재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수술용 가운 8만 벌을 공수하여 대구·경북 지역 등 전국 의료 시설에 전달했다.
지역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지원은 지역 및 시설 방역 이었다. 대구·경북 지역을 비롯해 군이 방역 및 소독에 투입한 인원은 연인원 2만 9,946명에 이르며 제독차 등 장비도 총 2만 1,579대가 동원됐다. 특히 제2작전사 현장방역작전팀은 화생방부대로서 전문성을 발휘하여 대구 한마음아파트, 한사랑 요양병원 등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코호트 격리 시설과 같은 고위험 지역의 방역 작전을 도맡아 실시했다. 전국적으로 실시된 지역 방역에서 가장 널리 활용된 장비는 KM9 및 K10 화생방 제독 차량으로 도로나 광장 같은 넓은 공간에 투입되었다. 장병들이 등에 메고 사용하는 중형 제독기는 실내의 좁은 공간 방역을 맡았다. 특히 코호트 격리 시설과 같은 고위험 시설에는 화생방사령부가 보유한 과산화수소 이온발생기와 양압형 공기 호흡기 2형과 특수 장비가 투입되어 높은 살균력으로 코로나19를 박멸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한풀 꺾인 지난 3월 중순부터 우리 군의 방역 작전은 대규모 방역에서 생활 밀착형 방역으로 전환하여 방역 사각지대 해소 및 감염원 발생 차단에 중점을 두었다. 국민의 생활공간으로 직접 찾아가는 세심한 방역 작전으로 철도역 및 복합 환승 센터, 지역 주민 시설, 교통수단, 학원 등등 생활 밀착형 방역으로 사각지대를 최소화했다. 비의료적 지원 분야는 지방자치단체 행정 지원, 격리·치료 시설 운영 지원, 지역 농수산물 팔아주기 운동, 해외 교포 원격 의료 상담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그중에서도 장병들의 자발적인 헌혈 운동은 국가 의료 체계 정상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단체 헌혈이 급감하면서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혈액 보유량이 3.4일 치로 떨어지자 10만 명의 군 장병이 소매를 걷고 헌혈에 참여해 혈액 공급 안정화에 이바지했다. 특히 국방부와 군의 헌신적 대응이 실시간으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사태 초기에 지체 없이 대구 지역에 파견된 <국방일보> 기자단 덕분이다. 지원자로 편성된 <국방일보> 기자 단은 정확한 현지 상황과 장병들의 활동을 생생하게 전했고, 감염 지역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일반 언론을 위해 사진과 동영상을 제공했다. 아울러 ‘인포데믹(infordemic, 잘못된 정보가 온라인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까지 우려되었던 사태 초기에 정확한 현지 상황과 올바른 대처법을 전 장병에게 꾸준히 전달한 것은 국방 홍보 전문 매체로서 시의적절한 역할이었다.
코로나19 대응에서 국방부와 군의 헌신적 지원은 발생한 사태를 호미 수준에서 막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무엇보다도 조기에 군내 방역에 성공함으로써 군사대비태세를 견고히 유지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의료적·비의료적 지원을 포함한 가용한 모든 자원을 범정부 대응 지원에 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아직 진행 중이고 안심할 수 없는 단계이므로 차후 개선책에서 고려되어야 할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팬데믹 대응을 계획하고 준비함에 있어 국방부와 군의 지원을 상수로 고정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팬데믹 대응에서 군은 늘 준비되어 있고(always prepared), 빠르게 전개할 수 있으며(rapid deployable), 자급자족(self sustained)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군 본연의 임무는 군사적 위협 대응인 만큼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계획 수립 시 국방부와 군의 지원은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변수 차원이어야 한다.
둘째, 포괄안보 차원에서 비전통적 위협에 군 인력과 자산의 투입을 보장하는 법령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코로나19 대응에서는 ‘전시에 준한’ 상황 인식이 제반 지원의 적시성과 적합성을 보장했다. 그러나 필요한 법령과 제도의 밑받침이 없을 경우 예상치 못한 사고나 위험에 대처하기 곤란할 수 있고,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지속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를 위해 통합방위법, 예비군법,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과 같은 동원 관련 법령의 개정과 ‘유관 기관 통합 지휘 정보화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셋째, 전쟁 대응을 위한 ‘War game’과 같은 팬데믹 대응을 위한 국가 차원의 ‘Germ game’이 필요하다. ‘Germ game’은 빌 게이츠가 5년 전에 역설한 것으로 균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모의 훈련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국가의 모든 가용 자산과 자원이 참여하는 범국가 연습이 빠른 시간 내에 준비 및 시행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큰 폭으로 변화시켰으며,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스마트한 대응과 공격적 방역 등 대처에 있어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국군 장병들이 지원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장병들의 헌신과 노고에 깊은 감사를 전하며, 코로나19 위기가 오히려 국격을 상승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