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4,000년 전 인도네시아의 토바(Toba) 화산이 폭발한 이후 개체 수가 2,000으로 줄어든 종이 있다. 그런데 그 종은 그 이후 6만 2,000년 동안 전 세계로 확산되어 1만 2,000년 전쯤에는 개체 수가 400만까지 늘었고, 2,000년 전쯤에는 1억 9,000에 이르렀다. 그리고 1804년에는 10억이 되더니 1927년에는 20억으로 급증했다. 1960년에는 30억에 이르렀고 1975년에는 40억, 1987년에는 50억, 1999년에는 60억, 2011년에는 70억, 급기야 현재는 대략 77억이 되었다. 1800년부터는 거의 10년마다 10억 개체씩 늘어난 셈이다. 즉 지난 2,000년 동안 개체 수가 거의 40배 증가한 종이다. 7만 4,000년 전에는 멸절을 걱정하던 종이 지금은 말 그대로 지구를 뒤덮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종에 대한 이야기일까?
호모사피엔스, 바로 인간이다. 물론 개체 수 측면에서 77억이 최고라고는 할 수 없다. 개미나 딱정벌레의 수를 상상해보라. 하지만 인간은 무게로 치면 평균 70kg이나 나가는 종으로서 1mg인 개미의 70만 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소, 돼지, 닭, 양처럼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덩치도 좀 있으면서 엄청난 개체 수를 자랑하는 가축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들의 개체 수를 모두 더하면 대략 인구의 3배 정도(210억 마리)다. 어떤 추정치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육상 척추동물 중에서 인간과 가축이 차지하는 생물량 비율이 대략 98% 정도라고 한다. 농경이 시작되던 약 1만 2,000년 전에는 0.1% 정도 였으니 지난 1만 년 동안 생태계에서 벌어진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호모사피엔스의 폭발적 증가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소, 돼지, 닭, 양은 어쩌다 이렇게 많아졌을까? 이 역시 우리 인간에게서 비롯된 결과다. 우리가 고기로 먹기 위해 육종하고 길렀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도 우리의 ‘치맥’을 위해 희생한 ‘치느님’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마리일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인류는 적어도 지난 300만 년 동안 생명의 역사에서 진화적으로 가장 성공한 종이다. 지구를 뒤덮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뭔가 불안하지 않은가?
물론 토바 화산 폭발 이후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8~1919년에 유행한 이른바 스페인 독감(A형 독감 바이러스의 변형인 H1N1)은 대략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의 3배 이상이었으며 당시 전 세계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수였다(당시 조선에서도 이른바 ‘무오년 독감’이라고 알려진 인플루엔자에 의해 742만 명 정도, 조선 인구의 44%가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보다 6세기 전에는 바이러스가 아닌 세균이 유럽을 초토화시킨 바 있다.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로 전파되는 페스트균이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되어 유럽에서만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억 명가량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흔히 흑사병(black death)이라고 불리는 이 전염병은 스페인 독감과 함께 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을 뜻하는 ‘팬데믹(pandemic)’의 대표적 사례로 간주된다. 2012년에 발발해 528명(한국인 39명)을 죽인 메르스, 그리고 지금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든 코로나19(COVID-19)는 가장 최근의 팬데믹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팬데믹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재앙이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에 대한 인류의 대처 방식은 어땠을까? 저명한 의학 사학자인 프랭크 스노든(Frank Snowden)은 최근 저서 《전염병과 사회(Epidemics and Society)》 (2019)에서 인류가 팬데믹 발생 시에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를 추적했다. 그의 결론 중 하나는 팬데믹이 발생하면 인류는 어김없이 ‘희생양 찾기’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가령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의 유럽 도시들에는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루머가 돌았 는데, 이 가짜 뉴스 때문에 무고한 유대인들이 집단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코로나19의 경우는 어떤가? 세계 어느 나라 에서도 이 사태 때문에 예전과 같은 집단 학살을 자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명확한 점은 다른 집단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아시아 사람들이 서양에서 집단 린치를 당했고, 외국인으로 인한 바이러스 재유입을 걱정한 중국인이 되레 외국인을 차별한다는 뉴스가 동시다발적으로 보고되었다. 또 경제 대국이 마스크를 해적질하고, 한 나라의 잘 알려진 전문가들이 아프리카를 백신 실험장으로 쓰자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인을 비하하는 뜻으로 쓰이는 ‘짱깨’라는 표현이 최근 급증하게 된 것도 같은 현상이다.
팬데믹과 함께 반복되어온 이러한 혐오와 차별의 역사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 인류 진화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수렵·채집기를 상상해보자. 집단에 전염병이 돌면 개인은 물론이고 집단 전체가 몰살 위기에 빠진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위협에 대한 해결책을 진화시켰다. 그중 하나는 미지의 신에게 저주를 풀어달라고 애원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상한 음식, 썩는 냄새, 피부 발진 등에 대해 혐오(역겨움) 반응을 보이는 방식이다. 애원 행위는 우연히 통할 뿐이었지만, 혐오 반응은 꽤 효과적이었다. 혐오의 기능은 위협의 원인을 피하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의학 용어로) 병원체와 감염 숙주에 대한 회피 반응은 명확히 생존과 번식에 큰 도움이 되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병원체와 감염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우리의 본성이라 할 수 있다. 썩고 냄새 나는 뭔가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우리의 조상이 아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혐오와 회피 행동은 명백히 적응적이었고, 진화학자들은 이를 ‘행동면역계(behavioral immune system)’라고 부른다. 행동면역계는 감염 의심 상태 및 행동이 감지되면 자동적 회피 및 혐오 반응을 일으킨다. 게다가 전염병은 한 개인만 회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회피 행동에 동참해야만 피해갈 수 있는 위협이다. 따라서 주변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병원체에 대한 회피 본능과 집단의 규범을 강조하는 본능이 발동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규범을 중시하고, 규범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고 처벌하려는 경향은 사람들을 집단주의자로 만든다. 실제 역사적으로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일수록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진화심리학 연구들이 있다.
250만 년 동안의 수렵·채집기를 지나 약 1만 2,000년 전에 시작된 농경 사회에서도 전염병 자체와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혐오, 배제 심리는 적응적(adaptive)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인류는 농경시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야생동물을 가축화함으로써 바이러스에 안방을 내주었다. 야생동물을 보유 숙주로 삼던 바이러스가 농경으로 그 수가 늘어난 가축을 중간숙주로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야생에서 박쥐나 쥐에만 기생하다가 말, 소, 돼지, 낙타 처럼 다양한 가축들에게로 자신의 집을 확장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시기였겠는가. 게다가 인류가 음식과 노동을 위해 가축 수를 엄청나게 증가시켰으니 바이러스는 갑자기 늘어난 부동산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재배식물과 가축의 증가는 인구와 바이러스의 수를 동시에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따라서 농경시대에 더 빈번하게 발생한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는 병원체에 대한 혐오와 배제 심리를 한층 더 심화시켰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농경시대의 사람들은 수렵·채집기와는 달리 자신의 터를 쉽게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회피, 격리, 추방과 같은 혐오 전략은 지극히 합리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농경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전염병에 대한 오늘날의 과학적 지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지만, 이런 혐오 전략이 대략 통한다는 정도는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혜를 후손에게 가르치고 전수했다. 즉 몇 차례의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우리 조상들이 멸절하지 않았던 이유는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본능적인 혐오 반응과 문화적인 회피 전략이 함께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혐오 메커니즘이 진화했다고 해서 이것이 올바르다거나 정당화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적응(adaptation)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에 진화한 산물일 뿐이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그런 거짓말을 하는 심리가 진화했다고 해서 거짓말하는 행위를 옳다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또한 과거의 적응이 현대사회에는 심각한 부적응일 수도 있다. 가령 단것을 좋아하는 욕망은 음식이 풍족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적응적 심리였겠지만, 단것이 넘쳐나는 현대에는 버리고 싶은 욕망이다. 같은 이유로 팬데믹 상황에서의 혐오와 배제 심리는 글로벌한 현대사회에는 부적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바이러스의 부동산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산업의 발달로 본격적으로 조성된 대도시가 바이러스에게 허브 공항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이제 210억 마리의 가축과 77억의 인류까지 모두 그들이 노리고 있는 땅이다. 《내셔널 지오 그래픽》의 간판 필자인 데이비드 콰먼(David Quammen)은 저서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2017)에서 인수공통전염병 (zoonosis, 인간과 동물을 공통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전염병)의 대유행이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얼마 전 <뉴욕 타임스>칼럼에서도 “이번 코로나19의 창궐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며, 우리 인간이 선택한 삶의 양식이 빚어낸 하나의 결과”라고 말했다. 즉 바이러스의 숙주인 가축과 그 가축을 길들인 인간의 수가 이렇게 많은 한, 그리고 심지어 세계 전 지역이 지금과 같이 지구촌으로 엮여 있는 한 코로나19는 결코 마지막 불청객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 인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백신과 치료법도 신속히 개발해야 한다. 좀 더 길게 보자면, 새로운 바이러스 감염 발생 및 확산을 감지하고 예보하는 글로벌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대유행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럼에도 인수 공통 감염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숲을 없애고 야생동물을 몰아내고 공장식 축산을 대규모로 시행하고 대도시에 몰려 사는 한, 인류는 바이러스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이런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수년 내에, 아니 내년에도 비슷한 위기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비상사태를 넘어 바이러스 감염을 일상 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개인과 공동체가 그것을 책임감 있게 잘 지키는 것만이 모두가 살길이다. 외집단 사람들을 이유 없이 혐오하고 감염자를 무턱대고 비난하는 행위는 심리적 위안이 될지는 몰라도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한다. 오히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글로벌 시대에 더 큰 혐오와 분노를 불러들여 모두의 일상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