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요동치기 시작한 거대한 전환의 물결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조적 한계까지 수면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코로나19와 같은 미증유의 신종 감염병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으며, 기존의 거버넌스 시스템은 사실상 작동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글로벌 거버넌스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초국가적 성격의 새로운 지구적 문제를 전통적 국가 중심의 국제 체제가 아닌 국제기구와 새로운 비국가 행위자들 중심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지구 정치(global politics)의 권위와 능력이 네트워크 중심으로 분산되어 작동되는 느슨한 형태의 국제 제도이다. 기후변화, 재난·재해, 난민, 국제 이주 문제 등 일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초국가적 이슈를 대처하는 데 있어 힘에 기반한 국제정치보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집합 행위(collective action)를 통한 협력적 관계가 더 유용한 방식으로 활용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팬데믹(pandemic)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민낯이 드러났다. 구조적으로 배태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거버넌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응 플랫폼으로 재인식되기는 요원하다.
글로벌 거버넌스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초국가적 성격의 새로운 지구적 문제를 전통적 국가 중심의 국제 체제가 아닌 국제기구와 새로운 비국가 행위자들 중심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기구와 새로운 비국가 행위자들 중심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지구 정치(global politics)의 권위와 능력이 네트워크 중심으로 분산되어 작동되는 느슨한 형태의 국제 제도이다. 기후변화, 재난·재해, 난민, 국제 이주 문제 등 일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초국가적 이슈를 대처하는 데 있어 힘에 기반한 국제정치보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집합 행위(collective action)를 통한 협력적 관계가 더 유용한 방식으로 활용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팬데믹(pandemic)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민낯이 드러났다. 구조적으로 배태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거버넌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응 플랫폼으로 재인식되기는 요원하다.
과연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지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글로벌 거버넌스는 태생적으로 느슨한 형태의 네트워크 방식을 취하고 있어 파워 중심의 현실주의적 시각보다 유연하게 글로벌 이슈에 대응할 수 있지만, 중앙집권적인 글로벌 정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결정적인 순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으며 오히려 이를 회피하려고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미증유의 팬데믹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WHO는 회원국에게 보건 정책을 권고할 수는 있으나 구속력이 있는 집행 의무와 제재를 가할 수가 없다. 즉 WHO의 구조적인 ‘책무성 결핍(accountability deficits)’에서 기인한 문제이다.
둘째,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요 행위 주체가 재정의 종속성이란 덫에 빠져 있다. 특히 유엔(UN) 기구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핵심적인 행위자임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는 전통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주권국가의 분담금과 지정기여금에 의존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Tedros Adhanom Ghebreyesus) WHO 사무총장의 고백에 따르면 WHO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예산 규모가 전체 예산의 80% 이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UN 기구는 회원국이 지정한 꼬리표가 달린 신탁 기금(trust fund) 또는 다자성 양자(multi-bi)가 전체 예산의 평균 9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구의 목적에 맞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담금보다 지정기여금에 의해 UN 기구의 활동 범위와 대상이 정해진다. 최근 WHO가 중국 편향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도 이러한 재정 종속성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UN 기구가 주요 회원국의 지정기여금에 의존 하는 재정의 종속성을 극복하고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않으면 글로벌 거버넌스에서의 다자 협력 노력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WHO가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팬데믹에 주체적으로 대응한다는 시나리오는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이른바 ‘클럽 거버넌스(club governance)’라는 자기 제한적 보수성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조적 한계에 배태되어 있다. G7, G8, G20, G77 등의 다층적인 클럽 거버넌스 모델은 각각의 클럽 중심적 사고와 결합성을 가지고 글로벌 거버넌스에 접근한다. 지금까지 클럽 거버넌스가 글로벌 문제를 관리하는 데 기여한 부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클럽 간의 자기 제한적 구조는 숲이 아닌 나무에, 즉 글로벌 거버넌스 전체를 고민하기보다 각각의 상황에 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올 경우 어느 클럽도 선제적으로 팬데믹에 대한 대응 방안을 총체적으로 제시할 역량이 없다. 한정된 나무만으로는 인류 보편적인 숲을 관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분절적 구조에 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로 대표되는 글로벌 남반구 (Global South)의 세력화까지 가세하여 각 클럽의 보수적인 거버넌스가 가속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더 이상 공존의 G2가 아닌 미중 간의 본격적인 무한 경쟁 체제로 진입한 G0의 시대가 마치 신냉전을 방불케 한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이 모든 글로벌 거버넌스 위기가 이번 코로나19로 초래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팬데믹 이전부터 계속 존재해온 구조적인 위기라는 사실이다. 코로나19는 단지 촉매제 역할로 글로벌 거버넌스 위기의 확산과 그 진행 속도를 높였을 뿐이다. 실제로 언젠가는 위기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성이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 내에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의 해결을 위하여 글로벌 거버넌스를 포기하고 다시 자국 중심의 성곽 시대로 돌아가자는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부응하는 해법도 위기의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클럽 거버넌스를 재구성하고 이를 토대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조적 개혁을 새로운 국제 협력과 연대의 재승인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역사적으로 국제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국제 사회는 ‘문명의 표준(standard of civilization)’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하여 대안적인 담론 경쟁을 허용하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왔다. 17세기 봉건제의 몰락과 주권국가의 성립, 18세기부터 전 유럽을 집어삼킨 산업혁명과 중상주의적 식민 경영의 경쟁 시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UN 체제의 거버넌스 구축, 냉전 붕괴 이후 미국의 단극 체제 도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몰락의 시작 등 위기와 대안의 역사적 기록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모색하기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대안적인 담론 경쟁을 예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을 세계화에 대한 경종으로 해석하며 상대적으로 세계화가 축소되거나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를 막으려면 역설적으로 국수주의적 시각을 넘어 대안적 세계화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 대안적 세계화의 숙제는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를 복제하자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잘못된 세계화’를 넘어 ‘올바른 세계화’가 문명의 표준으로 승인될 수 있도록 하는 글로벌 리더십이 정치적으로 힘을 얻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혁하고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올바른 세계화와 다자 협력으로 이끌 수 있는가? 흔히 G7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북반구의 선진국들은 자국의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글로벌 거버넌스의 다음 단계를 고민할 여력이 없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자국 중심의 외교 정책을 전 세계는 물론 심지어 동맹국에까지 강요해왔다. 최근 코로나19 정국에서는 WHO에 책임을 추궁하는 등 사실상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거버넌스 개혁에 가장 위험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글로벌 남반구의 저개발 국가들에게 대규모 원조를 약속하고 WHO에 재정적 지원을 증액하겠다고 공언했다. 즉 중국은 새로운 중국식 문명의 표준을 만들기 위해 공격적으로 글로벌 남반구의 헤게모니 장악과 UN의 글로벌 거버넌스 역할에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글로벌 남반구를 대표하는 중국과 반세계화로 글로벌 북반구의 분열을 조장하는 미국 간의 국제 질서 장악을 위한 대결 구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결국 현재로서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다자 협력을 구상할 수 있는 뚜렷한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를 막으려면 역설적으로 국수주의적 시각을 넘어 대안적 세계화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
이에 한국과 같이 코로나19에 성공적인 방역 체계를 갖춘 중견 국가가 나서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다. 좁게는 신종 감염병 이슈에 관한 리더십에서 출발할 수 있겠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방역뿐만 아니라 경제와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글로벌 리더로서 한국의 역할을 확장하여야 한다. 글로벌 헤게모니의 다극화라는 작금의 상황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표준이 상실된 패러다임의 무정부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은 K-방역이라는 일개 국가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글로벌 팬데믹에 대응할 새로운 방식의 글로벌 클럽을 보건 안보(health security)라는 이슈 영역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보건 안보에서 시작한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보건과 관련된 세계 환경, 세계 평화, 세계 경제 등 보다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이슈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때로는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고, 필요하다면 기존 G7, G20와 같은 클럽 거버넌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대안적인 이슈와 대응 체계를 선도해야 한다. 또 국제 NGO 및 글로벌 펀드(global fund)와 같은 비정부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도하여야 한다.
K-방역이라는 표현으로 한국의 특수한 경험과 성공 사례를 모델화하여 어렵게 찾아온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의 기회를 코로나19 이전의 분절적 클럽 거버넌스로 되돌리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다시 말해 K-방역을 한국만의 예외적인 성공 모델로 제한하지 말고, K-방역이 국제적인 기준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담론과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성곽 시대라고 표현되는 세계적인 국경 봉쇄 상황에서 한국의 K-방역은 투명성, 민주성, 개방성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유지하며 방역에 성공한 사례이다. 그런 만큼 K-방역이 한국의 국경 안에만 적용되는 경험이 아닌 글로벌 차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미 한국 정부는 K-방역 성공을 기회로 UN, WHO, 유네스코 회원국을 중심으로 30여 개국이 동참하는 ‘코로나19 우호 그룹’이라는 새로운 클럽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 러시아가 불참하는 등 아직까지 성공적인 클럽으로 성장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지속 가능하도록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이를 기존 클럽들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비정부 기구들과의 연대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거시적인 기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K-방역이라는 표현에 불편해하는 시각도 상당수 존재한다. 아직 한국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대응했다고 한국의 사례를 최후의 승자로 속단해서는 안 되는 만큼 K-방역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하는 데 조심스러운 것이다. 또한 K-방역의 담론적 의미는 한국의 특수한 사례이기 때문에 한국적 맥락에만 적용되고 글로벌 수준에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전제를 무의식중에 내포하게 된다. 이를 희석시키고 한국의 경험을 세계화하여 보건 안보 영역에서부터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기획이 필요하다.
한국의 성공 경험을 특수한 사례로 제한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혼돈에 빠진 국제사회에 새로운 공공재를 제공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과정에 하나의 중요한 리더로서 한국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한국이 이른바 ‘대구 프레임워크(Daegu Framework)’ 또는 ‘오송 프레임워크(Osong Framework)’라는 신종 감염병 영역에서의 글로벌 프레임워크를 선제적으로 국제사회에 제안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연 재난 및 재해에 관한 글로벌 리더십은 일본이 장악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의 성공적인 경험을 토대로 1994년 요코하마 전략(Yokohama Strategy), 2005년 효고 프레임워크(Hyogo Framework), 2015년 센다이 프레임워크(Sendai Framework)로 이어지는 재난·재해 관련 글로벌 대처 방안을 선보이며 이 이슈 영역에서 글로벌 거버넌스 리더로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센다이 프레임워크는 신종 감염병은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스(SARS)부터 반복되어온 감염병에 대한 대응 처방은 WHO의 국제보건규칙(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s)에 의존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코로나19의 경우, 일본과 WHO 모두 대응 전략의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 K-방역과 같이 성공적인 모델을 보여준 한국이 새로운 글로벌 프레임워크를 선도할 수 있는 기회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대구에서의 신천지 교회를 통한 집단 감염 위기와 이를 효과적으로 대응한 경험, 또는 오송의 질병관리본부가 보여준 우수한 감염병 대응 체계 등을 활용하여 한국의 성공적인 경험과 글로벌 문제를 결합하는 신종 감염병 영역에서의 글로벌 프레임워크를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개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K-방역이라고 선전하는 한국적 특수성을 탈피하고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앓고 있는 코로나19 등의 신종 감염병을 글로벌 차원에서 일반화하여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구축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계를 개선하는 동시에 문명의 표준을 새로이 정하는 중요한 시기에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어떻게 구축하는가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 질서에 한국의 위치가 정해질 것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팬데믹은 세계적인 위기 상황을 만들었지만, 한국에는 글로벌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의 성공 경험을 특수한 사례로 제한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혼돈에 빠진 국제사회에 새로운 공공재를 제공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과정에 하나의 중요한 리더로서 한국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새로운 국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