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이 웹사이트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대통령기록관에서 보존·서비스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입니다.
This Website is the Presidential Records maintained and serviced by the Presidential Archives of Korea to ensure the people's right to know.

원격 교육 시대, 교육 불평등 현상과 대안

코로나19 사태에 휘몰리는 학교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견된 뒤 빠르게 전 지구로 전파되기 시작하여, 8개월 전인 지난 1월 20일에는 한국에도 첫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교육부는 즉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예방 대책반’을 운영하였고, 국내에 확진자가 증가하자 부총리 지휘하의 ‘코로나19 교육부 대책 본부’로 격상하였다.

세계적 대유행의 위험이 뚜렷해지고 국내 전파도 확대되자 교육부는 모든 학교의 개학일을 몇 차례 연기한 끝에 예년보다 한 달 이상 늦은 4월 9일부터 20일까지 학년별로 순차적으로 개학하도록 했다. 그러나 대면 집단 활동을 피해야 한다는 방역 지침에 따라 대면 수업을 위한 등교 개학이 아니라 비대면 수업을 하는 원격 교육으로 개학한 것이다. 상급 학교 입시 준비를 하고 있는 고3 학생들을 위해서는 먼저 5월 20일부터 등교 수업을 시작하고 그다음 주에는 중3 학생들의 등교 수업을, 그리고 이후 6월 중순까지 순차적으로 학년별 등교 수업을 확대했다. 그러나 등교 수업을 실시하자 학생 중에 확진자가 발생하고 지역사회 확진자도 증가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바꿔가며 실시하는 혼합 수업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결국 학교는 코로나19의 압박으로 혼합 수업이라는 새로운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 상황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렇게 급박하게 진행된 상황에서 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뒤돌아보면 교육부도 경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현장과 더 넓게 소통하고 좀 더 세심하게 정책을 추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질병대책본부와 긴밀하게 조율하여 청소년 감염자의 발생을 효율적으로 억제하면서 학사 일정을 이만큼이라도 진행시킨 것은 인정할 만하다.

처음에는 학교에서도 많은 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위한 갑작스러운 영상 제작, 영상 기기 확보와 운영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각종 연수 과정 참여와 온라인 수업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의 유튜브와 블로그의 도움으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교사들의 높은 기본 역량과 학습에 대한 열의가 크게 작용했다. 반면에 교육부와 교육청의 온라인 수업 인프라 구축과 지원 행정 체계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은 높았다. 그동안은 보안이나 행정상의 이유로 학교 내에서 네이버나 구글의 사용을 막았고, 심지어 교실에는 와이파이도 없었다. 그래서 온라인 수업이지만 일방적인 교사 설명의 전송, 학습 콘텐츠와 EBS 등의 수업 영상 전송 등이 대부분을 이루었으며 줌(Zoom) 등을 이용한 쌍방향 수업은 드물었다(강대중 외, 《코로나19, 한국 교육의 잠을 깨우다》, 지식공작소, 2020, 1-37쪽 참조). 가정에서도 컴퓨터나 인터넷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는 물론이고, 지도와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저학년 학생 가정에서 부모가 여러 이유로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대책 등은 경황 중에 매우 부족했다.

학생들의 학습 목표는 얼마나 달성되고 있는가? 집단별 격차는?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을 얼마나 배우고 있을까?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한 것들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학교의 교육목표 달성 실태는 어떠한가? 조사·연구를 실시하여 교육에서 코로나19로 잃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학생들의 학습 결손을 가능한 한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을 서둘러 세워야 할 것이다. 곧 또는 아마도 이미 국내의 교육 연구기관이나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가 조사·연구에 착수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학교 내 각급 학생들의 2020년 학력 수준은 이전에 비하여 뚜렷이 낮게 나올 것이다. 전반적인 학력 수준만이 아니라 교과 지식, 학습 능력, 사회성, 감성, 체능 등 영역별로 어떤 학습이 특히 부족했고 학습 결손이 컸는지, 그래서 어떤 영역에 대한 보완 내지 치료를 위한 교육이 필요한지에 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학생들의 학습을 지키기 위하여 시행해야 할 대책의 내용과 우선순위도 마련해두어야 할 것이다.

출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홈페이지

코로나19가 학교의 학습 목표 달성에 미친 영향에 관한 총체적, 영역별 실태 확인이 시급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집단별로 미친 영향의 차이이다. 말하자면 학습 목표의 전체적 달성도나 영역별 실태 확인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사회·경제적 배경의 차이에 따른 학습 목표 달성도의 학생 간 차이의 실태와 그 원인에 대한 확인 역시 중요하다. 개인의 지적 능력과 노력 이외에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환경요인이 학습 수준 결정에 크게 작용한다면 교육의 평등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비교육적 요인이 작용하는 성적으로 상급 학교 진학이 유리해질 수 있다면, 교육의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바로 그 문제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학생들의 학습 목표 달성은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어떠했는가? 우선 학생 간 학습 목표 달성도의 분포에 관한 현장 교사들의 소규모 조사나 체험을 통한 보고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학습 수준의 격차가 커졌다”고 한다. 성적 상위 학생들의 상대적 위치는 더 높아졌고 하위권 학생의 수는 늘어났으며 성적 최하위 학생들의 상대적 위치는 더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위권 학생의 수는 줄어들었다. 결국 학생들의 학습 수준 분포가 코로나19 이전보다 낮고 넓게 퍼지면서 학생 간 격차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학교의 출석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가 제공하는 온라인 수업을 통하여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방식이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낯설었을 것이다. 또한 가정의 경제적·문화적 환경과 부모의 교육 수준과 지도 방식에 따라 학습 결과의 격차가 크게 발생했다. 정상적인 출석 수업 상황에서도 가정환경이 학습 수준 격차에 영향을 미쳐왔지만, 학교의 교육 기능이 축소되고 가정의 학습 지원 기능이 확대됨에 따라 가정환경의 학습 수준 격차에 대한 영향력이 증폭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학습 성적에 대한 학교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가정의 영향력은 커짐으로써 학습의 격차를 확대시켰다. 그에 따라 학습 결손이 평소보다 더 심하게 확대된 집단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하위 계층에 속하는 학생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지도와 조력이 필요한 저학년 학생들이다. 반면에 사회·경제적으로 상위층에 속하는 학생들은 상대적 성적이 더 높아졌다.

이러한 학습 격차의 확대는 그 자체로도 교육적으로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확대된 격차에 의한 학생 개인별 성적을 그대로 상급 학교 입학 선발의 당락 기준으로 사용한다면, 공정성과 교육 평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학력 사회 및 학벌 사회의 속성이 강해 교육 경쟁이 매우 치열하여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입시 교육’으로 전락한 한국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학습 격차 확대를 지적하면서 교육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 보도, 칼럼, 학술 대회를 통한 토론들이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학습 격차 현상이 코로나19 사태에 의한 온라인 교육으로 더 도드라지게 나타나기는 했지만, 모든 원인이 온라인 교육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정상적인 출석 수업으로 돌아간다고 학습 격차 문제가 해소되지도 않을 것이다. 즉 학습 격차의 확대와 그로 인한 교육 불평등은 코로나19가 끝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이고 복잡한 원인이 있다.

학교 제도의 전제: 능력 사회와 평등 교육

오늘날의 보편적 학교 제도는 19세기 이후 유럽의 현대 국가들이 모습을 갖추면서 수립되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이렇게 빠르게 확산된 데에는 봉건국가에서 국민국가로 전환하는 데 필수적인 통일적 국민의 형성, 그리고 같은 시기에 진행된 산업화에 필요한 산업 인력 양성을 위한 의무적 학교교육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시대 변화의 방향에서는 아마도 더 중요한 것으로, 그때까지 사회 유지의 근간이었던 신분제도를 인권과 평등사상을 지렛대 삼아 무너뜨리면서 신분에 의한 계급제도를 대치할 새로운 사회 유지의 정신으로 능력주의를 받아들인 영향이 크다. 바로 이 능력주의를 실현할 제도적 장치로 학교 제도를 모든 국민에게 보편화한 것이다.

1829년 설립된 영국의 공립 대학교 킹스칼리지(King's College London)의 전경

각자의 능력과 재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길은 어려서부터 일정 기간 같은 내용을 가르친 뒤에 나타나는 능력의 수준을 비교해보면 되는 것 이었다. 즉 연령별로 묶어서 단계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가르친 뒤 각자의 학습 성취 수준을 평가하고, 그 수준에 따라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결정하는 학교교육제도가 능력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으로 확립된다. 이렇게 해서 신분제도는 빠르게 학교 제도로 대치되었다.

계급적 신분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고 지위를 부여하던 시대로부터 개인의 능력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지위를 부여하는 시대로의 전환은 인류가 평등 사회를 지향한다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의미했다. 개인이 속한 가족과 혈통에 따라 평가받고 지위가 부여되던 시대를 뒤로하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평가 받고 지위를 부여받는 시대에 진입한 것은 확실히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가 된 것이었다. 계급적 신분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사회 말이다. 그에 따라 과거보다 분명히 한층 평등한 사회가 되었고, 학교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다.

학교의 한계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평등 사회 건설을 위한 학교의 역할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모든 계층의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취학하는 학교 교육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평등화가 계속 향상되지 않고 어느 수준에서 머무르는 현상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능력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학습 성취 수준의 차이와 대학 진학률의 차이가 계속 나타났다. 처음에는 학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조사에서도 잘 가르치는 학교와 못 가르치는 학교, 시설이 좋은 학교와 부실한 학교, 재정이 풍부한 학교와 부족한 학교 등 학교의 요인에 따라 학습 성취 수준이 다르게 나타났다. 게다가 시설과 재정 등이 부실한 학교는 흑인을 비롯한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저소득 지역 사회에 주로 속해 있었다.

모든 계층의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취학하는 학교교육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평등화가 계속 향상되지 않고 어느 수준에서 머무르는 현상이 지속되었다.

드디어 1960년대 초에 미국에서 <콜맨 보고서(The Coleman Report)>로 널리 알려진 대규모 연구가 정부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당연히 학교의 재정, 시설, 교사 등 교육 여건의 차이가 교육 결과인 학습 성취 수준의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연구가 확인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리고 그런 연구 결과를 근거로 소수민족 및 빈곤 지역의 학교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 정책 시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정부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의 교육을 지원하는 수 많은 시민단체도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모든 기대를 저버렸고, 다수의 학자와 시민운동가들에게 배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콜맨은 연구의 결과로 “학습 성취 수준의 차이에 학교 요인이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여러 학자가 콜맨의 연구 설계와 자료 수집, 자료 분석 기법 등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바둑 복기하듯이 자세하게 다시 분석하였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크리스토퍼 젠크스(Christopher Jencks)가 재분석한 보고서 <불평등(Inequality)>이다. 그러나 젠크스도 콜맨의 결론을 뒤집지 못하고 “불평등에 학교는 상관이 없다”고 선언했다.

학교와 가정의 경쟁

이후에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학교교육과 학습 성취 수준 격차 및 교육 불평등에 관한 수많은 연구는 결과에 더러 차이가 나타 나기는 하지만 대체로 공통된 결론이 나왔다. 학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학교 요인의 차이가 원인인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분석해보니 격차를 만드는 원인은 가정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문화, 부모의 교육 수준, 사교육을 포함한 학교 외 학습 등이었다. 학교는 그저 가정 배경의 영향력을 매개하거나 강화 하는 것 이외에 자체적으로 학습 차이를 줄이거나 늘리는 데에 미치는 영향력이 기대보다 훨씬 낮았다. 결국 가정의 사회·경제·문화적 수준과 부모의 교육 수준 등과 같은 영향력이 학교의 영향력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 배경에 따라 커지는 교육 격차, 즉 상류층 가정의 자녀는 성적이 높고 명문 대학 입학에 성공하는 반면에 하류층 가정의 자녀는 성적이 낮고 대학 진학이 어렵게 되자 교육 불평등 문제가 제기된다. 현대 국가 초기에 능력에 따라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보편적 학교 제도를 수립하면서 가정의 신분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교육을 통한 개인의 능력 수준에 따라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부여한다는 정신으로 출발했다. 즉 개인을 가정이 속한 계급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계급과 상관없이 순수한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하여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모두가 평등하게 출발한다는 정신이었다. 그런데 정작 교육을 통하여 나타난 능력, 즉 학습 성취 수준이 가정 배경의 요인에 의하여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라면 능력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말하기 어려우며, 그런 사회를 평등하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능력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평등 사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에 변화가 필요했다. 1960년대 이후 학교에는 여러 가지 새로운 교육 방식과 소외 집단 또는 빈곤 가정 학생들을 위한 지원 정책이 도입되었다. 개인 지도 강화, 능력별 반 편성, 학습 방법 지도, 학습 자료와 도구 지원, 빈곤 지역 학교에 대한 특별 지원, 대학 선발 제도 보완 정책 등 수많은 방법과 정책이 채택되거나 시도되었다.

출처 국가교육회의 홈페이지

그러나 국내외의 수많은 연구가 드러내는 그러한 여러 대책의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러한 대책들이 준비와 재정이 부족했거나 학교 교사들에게 가외의 역할을 요구함으로써 현장의 호응을 얻기가 어려웠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권 교체에 따라 중단 또는 폐기되는 일이 잦았기 때문 이다. 여기에 기존의 교육 방식과 정책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거나 자신들의 경쟁력이 더 강하다고 믿는 부모들과 신자유주의적 경쟁교육론자들은 그러한 보완적 학교 정책에 반대하며, 흔히 ‘좌파 정책’이라고 딱지를 붙여 반대 여론을 조성하였다. 1990년대 이후로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교육을 옹호하는 세력이 강해지고, 사교육이 확대되었으며 입시 준비를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업체까지 등장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드라마 <SKY 캐슬>과 미국 영화 <헬리콥터 맘>이 보여주듯 중상류층 가정이 자녀의 교육 경쟁에 쏟아붓는 막대한 자금과 열정의 힘은 학습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학교의 노력이 만들어 내는 성과를 압도해버렸다.

여기에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과정에서 철학을 상실한 입시 관리 정책이 학교의 정상적 교육을 지켜주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교육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했다. 우리는 학교교육의 특징을 흔히 ‘입시 교육’이라 부른다. 그만큼 상급 학교 입학시험 준비에 몰두한다는 뜻이겠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특히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한 교육이 철저하고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나라만의 특징도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대학 입학생 선발 시 대체로 고등학교에서의 활동과 평가를 높은 비중으로 고려하고, 성적과 함께 다른 특성과 다양한 재능을 중시하며,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펼치는 능력을 강조하고, 미래에 대한 소망과 가능성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그와 대조적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대학이 중시하는 교과의 시험이 중심을 이룬다.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학생부 전형, 논술 등이 활용되지만 중심은 여전히 대학수학능력시험(과거에는 학력고사, 대학별 본고사 등)이다.

이 시험들의 특징은 응시자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전개하여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가 정한 답을 맞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이런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주장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학습이 아니라 누군가가 제시한 문제에 대하여 이미 정해져 있는 ‘정답’을 사고하거나 유추하여 맞히는 훈련을 한다. 말하자면 ‘정답주의 교육’이다. 실제로는 되도록 다양한 출제 문제를 예측하여 문제와 그 정답을 암기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한다. ‘창의적 학습’, ‘적성 학습’, ‘자기 주도 학습’ 등은 말뿐이며, 비창의적 타자 주도 학습의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많은 실제 출제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한 교과에서 주로 출제되는 내용이나 사항의 경향이 보이고, 정답은 감추면서 오답은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출제 기법도 드러나기 때문에 이른바 입시 지도 전문가가 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답 맞히기 교과 시험 중심의 입시 방식이 주류를 이루면, 학원은 물론이고 학교도 학생들의 상급 학교 진학을 돕기 위해 ‘정답주의 교육’을 피할 수 없다. 더러 예외적인 교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교사와 학부모는 자녀가 입시 경쟁에서 이기게 하기 위하여 이 경쟁적인 정답주의 교육에 참여한다. 정답주의 교육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정답 찾기 요령을 많이 훈련받고, 입시 전문가가 지도하는 효율적 연습을 많이 한 학생이 유리 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나는 학습 격차의 확대는 이처럼 국내외에서 전개되고 있는 공교육 제도하의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교육이 벌이고 있는 경쟁에서, 학교가 더욱 불리한 상황으로 밀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말하자면 그렇지 않아도 경쟁력이 낮은 학교가 손발이 묶인 채로 경쟁력이 높은 가정들, 이들을 지원하는 학원들과 경쟁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없는가?

IMAGE

학교교육의 기본 목적과 대책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빅토어 프랑클(Viktor Frankl)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에 직면해서도 삶의 의미를 끝까지 놓지 않고 추구하는 사람은 마지막 까지 살아남고, 삶을 이어가는 의미를 상실한 사람은 쉽게 죽는 많은 사례를 직접 체험하였다. 그는 인간은 극단적인 위기에 처할수록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확인하며, 살아야 하는 목적과 의미를 확인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삶을 이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삶을 포기한다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실제로 사람들은 위기에 처하면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짚어보고 따지게 된다. 내가 과연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내가 추구하고 있는 목표가 올바른 것인가? 한마디로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큰 위기를 거치고 나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집단이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큰 위기나 재해, 패전 등을 겪고 나면 국가 역시 달라진다.

차원은 다르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사태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정리될지, 아니면 오히려 더 확대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교육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위축되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 상황이다. 위기에 처해서 교육에 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이 대목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학교교육이 현실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교육목표와 그것을 위한 수업 활동이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육이 갈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가?’이다.

단도직입으로 몇 가지만 지적하자. 교과 지식을 중심으로 미리 정해놓은 정답을 찾는 훈련에 집중하는 정답주의 교육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가? 또는 성적을 높이는 방편으로 경쟁을 조장하여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서열화하는 것이 계속 가야 할 길인가? 교육의 공공성은 말뿐이고, 사학 위주의 고등교육과 사부담 위주의 교육재정도 계속 가야 할 길인가? 오늘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교육의 근본을 살리고자 한다면 이런 문제부터 어떻게 혁파할 것인지 결단해야 할 것이다. 결단한다고 해서 당장 뒤집자는 것은 아니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대규모 재확산으로 수도권과 여러 지역에서 출석 수업을 중단해야 하는 위급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니 당장 시행해야 할 대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급하게 보완해야 할 것은 온라인 교육에 필요한 인프라와 장비, 그리고 소프트웨어다.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에게 태블릿PC는 마련 해주었지만 학교에는 아직도 와이파이가 작동되지 않는 교실이 태반이다.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월 25일 “1학기에 10% 내외였던 쌍방향 실시간 수업을 2학기에는 20~3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한 것을 보면, 온라인 수업의 대부분이 효과가 낮은 일방적 수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임을 알 수 있다. 온라인 쌍방향 실시간 수업이 모든 학교에서 가능하도록 교육부를 넘어 정부 전체가 전력을 쏟아야 할 때이다. 뒤돌아보면 온라인 교육과 관련해서는 이미 20년 전에 ‘미래 교육’이라는 정책이 등장했고, 2000년대 중반에는 태블릿PC를 활용한 디지털 교과서와 유비쿼터스 환경을 추진했다. 그리고 2011년에 발표한 ‘스마트 교육 추진 전략’에는 2015년까지 교실에 무선 인터넷 환경을 조성한다면서 와이파이, 클라우드 환경, 교육 자료 플랫폼의 구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었다. 교육부가 아무리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주장해도 예산 부처의 재정 지원이 막히면 추진이 중단된다. 그런데 2020년 현재 10% 밖에는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 안 된다니! 이는 교육부 혼자 책임질 일이 아니다. 전체 정부가 나서서 속히 해결해야 한다.

당장 시급한 사항은 전투하는 자세로 해결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장기적인 기본 방향은 무엇인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현하는 교육이다. 학교는 각 개인의 다양한 특성, 재능, 인생 목표 등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며, 학생들이 상호 경쟁 상대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다양성으로 서로 보완하고 수용하여 더 큰 자아로 발전하는 포용력을 키우는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포용성의 확대를 통하여 지역 사회와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학습도 돕는다. 이러한 학습 과정에서 지식, 기술, 가치관뿐만 아니라 학습 방법도 배움으로써 학습 능력을 갖춘 평생학습자로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돕는다. 이러한 교육의 운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교 시설, 교사진, 지원 행정에 대대적인 변화가 요청된다. 즉 전반적인 학교 혁신이 불가피하다.

학생 각자의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평생학습 능력을 학습하는 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돕는 교육의 운영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오늘날과 같은 학교가 이를 단독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실상이 드러날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과거에는 지역사회에 학교가 활용할 수 있는 교육 관련 시설이나 조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광역지자체마다 ‘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되고, 기초지자체마다 1개 이상의 ‘평생학습관’ 또는 유사한 명칭의 주민학습관들이 열려 있으며, 전국 기초지자체의 75%에 ‘학습도시’가 지정되어 모든 주민을 위한 다양한 학습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학교의 프로그램이 다양화할수록 지자체와 협력하거나 공동으로 운영할 교육이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이 기본 방향을 찾아 혁신하기 위해서는 교육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거시적으로 관리할 거버넌스의 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필자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해방 후 몇 차례에 걸친 교육 개혁, 획기적 교육 정책 등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데에는 다른 원인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추진을 위한 국가 차원의 힘 있는 장기적, 거시적 거버넌스 기구를 설치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의 하나이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이 부분을 해결해 교육 혁신을 이루기를 바란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