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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테크 활용과 교육 시스템 재구축 방안

에듀테크란?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 현장에 일어난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온라인 수업을 활성화하였다는 사실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인터넷 강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이미 십여 년이 넘었지만, 초·중·고교와 대학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불과 몇 개월 만에 전국 모든 초·중·고교와 대학의 풍경이 달라졌다. 교육 방송 등에서 제작한 온라인 콘텐츠를 활용하여 원격 수업을 진행하거나, 줌(Zoom)이나 웹엑스(Webex) 같은 도구를 활용하여 실시간 비대면 화상 강의를 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과 기술이 긴밀하게 결합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야말로 코로나19가 학교 현장에 가져온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에듀테크(Edu-Tech)는 교육(education)과 기술(technology)이 결합한 용어이다. 즉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과 클라우드,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기술을 교육에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에듀 테크는 모든 학생이 한 공간에 모여 한 사람의 교사에게 동일한 교육을 받는 익숙한 교육 장면을 오래된 과거로 만들어버릴 것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사실 교실 수업에 매체가 투입된 역사는 짧지 않다. 실물이나 표본, 모형이나 궤도와 같은 매체를 필두로 실물 화상기와 라디오, 이후에는 텔레 비전이 교육에 활용되었다. 그러나 매체가 교실 수업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교육개혁을 시작할 당시 세계화와 함께 정보화가 교육 변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환경 요인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1990년대 말부터 모든 교실에 컴퓨터를 투입하고, 모든 학교에 전산망을 구축하고 인터넷에 연결하기 시작하였다.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등장은 컴퓨터 기반 수업(CAI, Computer-Assisted Instruction)과 웹 기반 수업(WBI, Web-Based Instruction), 그리고 모바일 학습(mobile learning)과 스마트 학습(smart learning) 등을 가능하게 하면서 교실 수업에 말 그대로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근래 종종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교육 분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에듀테크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변화 이상의 큰 변화를 교육 현장에 몰고 올 것이라는 전망이 매우 그럴 듯하게 제시되고 있다.

에듀테크의 교육적 활용

에듀테크는 이미 교육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종이로 만든 책을 대신하여 동영상과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 그리고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을 이용한 수업이 이루어진다. 교실에 앉아서 열대 밀림과 남극 빙하를 탐험 하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물체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인체 해부와 같이 실제로는 하기 어려운 경험을 생생하게 진행할 수도 있다. 이는 모두 에듀테크를 활용한 디지털 교과서가 등장하면서 가능해진 변화이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 결합한 인공지능 교사의 출현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인공지능이 조교 역할을 대신한 사례가 있다. 수강생들은 인공지능 조교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으며 여러 조교에 대한 비교 평가에서 인공지능 조교가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근래 사교육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공지능 교사는 개인의 학습 양식과 선호하는 교과, 어려워하는 교과 및 학습 내용은 물론 학생의 건강 상태와 감정까지도 파악해 최적화한 개별 학습을 지원하고 있다. 에듀테크의 도움으로 다시 ‘완전 학습’을 꿈꿀 수도 있게 되었다. 또 대학에서는 온라인 대규모 공개 강의가 이미 상당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누구나 언제 어디 서든 세계 최고 석학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이것 역시 에듀테크가 가져온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교수 학습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에듀테크는 교실 수업에만 변화를 초래할까? 아니면 교육 시스템에도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교육 시스템의 역사와 구조

교육은 본래 가정의 일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가문 또는 문중의 일이 되었다. 근대국가의 출현과 산업혁명은 개개인의 일이던 교육을 국가가 조직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대규모의 학생을 일정한 장소에 집합시켜 교육하게 되면서 교육 활동의 여러 요소를 조직화할 필요가 발생했고, 그 결과 교육 시스템 또는 교육제도가 형성되었다.

교육 시스템은 교육 활동을 위한 여러 요소들 간의 결합 관계를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교육 활동의 단위인 학교와 학교 간의 관계를 학제라고 하는데, 이는 교육제도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학제 가운데 특별히 국가가 의무교육 기간으로 설정한 단계의 교육은 구체적인 내용까지 제도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의무교육이 아닌 단계의 교육에 대해서도 국가는 국민의 교육권 보장 차원에서 교육 활동의 여러 가지 요소에 관하여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교육제도는 학제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을 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관하여 교원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학교에서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에 관하여 교육과정에 관한 제도가 존재한다. 학생이 학교에 진입하고(입학), 학교 내에서 이동하며(진급), 학교를 나가는 것(졸업) 역시 제도화되어 있다. 또 교육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행정기관을 어떻게 구성하고, 행정기관과 교육기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역시 제도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제도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사회에 따라 다양하다. 대체로 교육 제도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요구를 기반으로 정부가 현실 상황과 미래를 전망하면서 결정한 것이다. 그 때문에 환경 변화가 교육제도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번에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각광을 받고 있는 에듀테크가 교육 시스템 변화의 촉진제가 되고 있다. 에듀테크는 여러 국가의 교육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질문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교육제도의 특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출처 서울시교육청

한국 교육 시스템의 특징

전 세계적으로 공교육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국가를 찾기 어렵고, 이는 대개 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 역시 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학교 제도는 인류 보편적인 것인 셈이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 이루어진 교육을 수용하는 양상에서는 국가마다 차이가 나타난다. 한국은 교육행정기관의 인가를 받은 일부 대안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만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홈스쿨링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거나, 학교와 기업 또는 산업체가 교육을 분담하는 외국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9년 동안의 의무교육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의무교육 제도에서는 그 수료 기준에 대해 몇 가지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먼저 과정주의는 일정한 교육 과정을 습득하면 의무교육을 수료한 것으로 인정하는 태도이다. 연령주의는 일정 연령에서부터 취학을 개시하여 일정 연령에 이르면 이수를 자동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이 밖에 학령 기간을 통틀어 일정 취학 연수에 이를 때까지 취학할 것을 요구하는 연수주의가 있다. 이 중에서 한국은 의무교육 이수에 관하여 연령주의를 취하고 있다.

한국 교육제도의 또 다른 특징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교원의 법정 자격제도가 그것으로, 해당 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교단에 설 수 있도록 한다. 이 제도는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 하고, 국가 사회의 안정성을 확보하며, 교원 자신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교육과정을 국가가 규정하고 있는 것도 한국 교육제도의 중요한 특징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서구 국가에서는 과거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에는 많은 국가에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만들고 운용하고 있다. 이 제도 역시 세계적 차원에서 제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국가 교육과정의 내용이 학교 교육과정 운영과 교실 수업에 미치는 강도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국가 교육과정으로 규제하는 내용이 많고 구체적이다. 해방과 전쟁 직후와 같이 혼란을 겪던 시절에는 상세한 교육과정을 통하여 국가 전체 차원에서 균질적 교육을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출처 서울시교육청

한국은 입학 시점에서 시험을 치를 뿐 유급 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양 국가들과 차이를 보인다. 유급 제도를 운영해 학생이 일정한 성취 수준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 진급할 수 없도록 하는 국가가 여럿 존재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제도가 거의 운영되지 않는다. 또 프랑스의 바칼 로레아(baccalauréat)나 독일의 아비투어(Abitur) 같은 시험제도는 졸업 시험으로서, 이 시험에 합격하면 자동적으로 대학 입학 자격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과거부터 입학 시점에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을 치렀을 뿐, 일단 입학하고 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진급과 졸업이 거의 자동적으로 보장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교육행정 체제를 살펴보자.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교육지원청이, 고등학교는 시·도 교육청이, 그리고 대학은 국가가 지도·감독 한다. 이는 일본의 교육행정 제도와 유사하다. 일본에서는 오래전에 소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그 지역에서 생활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더 넓은 광역 단위 지역에서,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전국을 무대로 활약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이것이 현재와 같은 교육행정 체제를 구성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또 미군정이 한국과 일본에 남겨준 ‘선물’로 교육 자치제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시·도 단위로 교육감을 선출하며, 지역 주민의 교육 의사를 수렴하여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에듀테크의 가능성

에듀테크는 교육제도 운영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 것일까? 에듀테크가 확대되면서 학교라는 공간의 위상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르침과 배움은 학교에서만 존재했다. 즉 학교의 교육 독점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학원이 학교의 ‘그림자’로서 기능하였으며, 근래에는 인터넷 강의가 학교 이상으로 학생들의 학습에 영향을 끼친다. 이로써 학교의 교육 독점은 상당히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에듀테크는 학교의 위상을 한층 더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요즘의 청소년들에게는 유튜브 (Youtube)가 ‘또 하나의 학교’가 되어 있다. 근래에는 유튜브를 통해 제2의 학창 생활을 영위하는 성인과 노년층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기존에 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육제도를 파괴적으로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 강화 될 것이다.

개별화 학습을 촉진하는 일이 에듀테크를 통해서 가능해지며, 이는 교육 제도를 변화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개별화 학습은 사람과 기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며, 배움과 가르침의 관계와 양상을 변화시킨다. 우선 전통적 교육에서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구분되지만 에듀테크를 활용하면 기계가 교사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나아가 에듀테크를 활용한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이 시작되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배우면서 동시에 가르칠 수 있는, 즉 누구나 학생이면서 동시에 교사인 관계가 만들어진다.

학습의 주도권 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전통적 교육에서는 교사가 주도권을 쥐고 학생이 이에 반응하는 양상의 활동이 주로 나타났다. 그런데 에듀테크를 활용하면 학습자가 교육 내용과 배움의 속도 및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습자 주도성이 강화된다. 다만 인공지능 교사를 염두에 두면 학습자가 기계에 종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에듀테크 활용이 확대되면 ‘연결’과 ‘축적’이 학습 양태를 변화시킬 것이다. 과거에는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서 제한된 사람들과만 연결된 채로 학습이 이루어졌지만, 에듀테크를 활용하면 전국은 물론 다른 나라 학생들 과도 연결해 학습할 수 있다. 시간적인 면에서도 과거와의 접속은 물론 미래와의 연결이 가능해질 수 있다. 또 학생이 학습하는 과정에서 각종 기록과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수월해지고, 그 정보가 손실되지 않고 축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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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펜과 디지털 노트를 사용하면 학생의 사고 과정 거의 대부분을 영구적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생의 학습 과정이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또 교육기관 차원에서도 각종 정보 생산과 축적이 원활해져 교육의 데이터화와 증거 기반 교육 정책의 결정이 촉진될 수 있다.

이처럼 에듀테크는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과 결합하면서 교육제도 변화 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따라서 에듀테크와 함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듀테크를 둘러싼 교육 정책 환경, 격차 확대와 초집중화

코로나19 이후 원격 수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교사가 학생들 사이에 학력 격차가 대면 수업에 비하여 훨씬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려하고 있다. 학습에서 자기 주도성을 보이는 학생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개별화 수업을 최대한 선용하지만, 상당수의 아이가 학습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다. 성적을 기준으로 중위권 학생들이 무너지면서 하위권 학생층이 두꺼워지며,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학생 집단이 이분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불평등이 심화하고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에듀 테크는 격차 확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여 개별 맞춤형 학습으로 전환되면 누구나 자신에게 적합한 배움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오히려 격차를 더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온라인 콘텐츠가 무료로 제공되는 경우에도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은 제한된다. 요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스마트폰으로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하다.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기존의 경제 격차 외에 로봇 격차와 인공지능 격차, 스마트 격차와 디지털 격차 등 새로운 유형의 격차가 중첩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성 있게 제기된다.

학교교육은 격차 심화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미 사회·경제적 격차는 학교에 고스란히 침투해 있다. 학생들이 가정에서 획득한 사회적, 문화적 자산의 차이로 학교에서의 출발점 에도 차이가 생긴다. 에듀테크가 교육 현장에 더 활용되기 시작하면 정보 격차(digital divide)를 넘어 특정 집단의 정보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디지털 레드라이닝(digital redlining)’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 모든 정보를 독점하는 특정 기득권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이해관계가 디지털 플랫폼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유통되면서 학생들에게 내재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뿐 아니라 학교 간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에듀테크와 격차 확대 라는 문제에 주목하면서 교육 시스템을 검토하고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가 정보화와 결합하여 교육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교육은 국내적 문제였다. 각국이 자국에 적합한 교육 과정을 자국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공교육이었다. 그러나 OECD와 같은 국제기구가 교육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교육은 이제 국내 정책이 아니라 글로벌 정책이 되었다. OECD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세계 여러 국가의 교육을 비교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세계 표준을 창출해 여러 국가의 교육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초·중등교육에 영향을 국한하였지만, 근래에는 고등교육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그런데 에듀테크는 국제기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계화를 촉진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에듀테크와 ‘기업’ 또는 ‘이윤’ 등의 단어가 자주 결합하여 사용된다. 에듀테크로 인해 많은 교육 정보가 국경을 뛰어넘어 소수의 플랫폼에 집적된다. 처음에는 공익적 목적으로 운영되는 플랫폼이라도 나중에 기업이 영리를 추구하게 되면, 여러 국가의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학생의 학습활동과 교육 정보가 소수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다. 세계화를 넘어 몇몇 기업으로의 초집중화가 유발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국내에서 공공성을 배경으로 운영되는 교육제도에 큰 위협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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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시스템 재구축의 방향

교육 시스템은 많은 국가에서 항상적으로 개선의 대상이 되며,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에듀테크의 발전과 활용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것은 에듀테크의 발전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이라기보다는 많은 정책 관계자들의 노력과 국민의 호응이 필요한 일이다.

학벌 사회를 지양하고 개개인의 능력과 실력에 따라 취학이나 취업 기회를 배분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합의는 이미 넓게 형성되어 있으나 여전히 학벌주의는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학벌을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는 ‘시험’ 이다. 시험이 여전히 강력하게 영향을 발휘하는 것은 시험만큼 공정한 기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의 시험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그가 수행한 결과를 전형 자료로 삼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은 이런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이 차선의 대안으로서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에듀테크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면 개개 학생이 오랜 기간에 걸쳐 수행한 학습활동의 결과는 물론 과정까지도 체계적으로 집적되고, 그 자료를 전형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즉 에듀테크는 시험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하여 한 차례의 시험이 아니라 장기간의 학습활동 과정과 결과를 모두 판단하여 전형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학벌 사회에서 능력 중심 사회로의 변화가 수월해질 수 있는 것이다.

또 에듀테크를 활용하면 교육 운영에서 과정주의적 요소를 강화할 수 있으며, 강화해야 한다. 학교의 교육 독점은 자연스럽게 약화하고 있으며, 에듀테크는 이런 경향성을 더 심화할 것이다. 사실 학교의 교육 독점은 오랫 동안 문제 제기의 대상이었으며, 교육적으로도 우리의 의무교육이 채택하고 있는 연령주의에 비하여 과정주의가 더 의미가 있다. 이러한 과정주의를 강화하려면 이미 ‘또 하나의 학교’가 되어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학습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성인들에게 활용되고 있는 학점은행제와 같은 제도를 초·중등학교 학생들의 교육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를 벗어나 지역에서 배우고, 온라인 공간에서의 배움도 학습으로 인정해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 안과 밖, 오프라인 공간과 온라인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배우고, 이 과정을 온전히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에듀테크를 활용하면 개별화 학습과 함께 완전 학습의 가능성 역시 제고될 수 있으므로, 보충 학습 기회를 확대하고 뒤처지는 아동이 없는
교육 체제를 만드는 일에 도전할 수 있다.

학교의 교육 독점을 깨고 과정주의적 교육 운영 요소를 강화하면 교원 제도와 교육과정 제도는 자연스레 유연하게 변할 것이다. 어떤 학습 내용은 자격을 가지지 않은 교사에게 배울 수 있게 되며, 때로는 인간이 아닌 기계가 교사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학습을 개별화하고, 학교 밖에서의 배움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려면 국가 교육과정은 현재보다 훨씬 대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교원과 교육과정 제도는 이해관계자들이 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이다. 그러나 교원 제도와 교육과정 제도를 유연화할 때 오랫동안 소망하던 과정주의적 교육 운영과 삶의 모든 현장에서의 배움을 가치 있게 인정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 에듀테크는 교육제도 운영에서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다. 학생들이 에듀테크를 활용하여 학습 과정과 결과를 온전하게 평가받을 가능성이 열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 형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학습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거나 에듀테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학생들은 자연히 뒤떨어지게 되고 그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뒤떨어지는 학생을 잘 보살피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과제가 제기된다. 첫째, 영·유아기의 보육과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확대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돌봄의 사회화와 유아교육 공교육화에 정부 역량을 투입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든 어린이가 취학 전 단계에서 충분히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체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 둘째, 교육의 과정에서 개별 학생의 성취를 분명히 파악하고,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적절한 방식으로 개입하여 반드시 각 교육 단계에서 기대되는 성취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에듀테크를 활용하면 개별화 학습과 함께 완전 학습의 가능성 역시 제고될 수 있으므로, 보충 학습 기회를 확대하고 뒤처 지는 아동이 없는 교육 체제를 만드는 일에 도전할 수 있다. 이런 체제에서는 각 교육기관이 개별 학생의 교육 이수 여부를 더 충실하게 관리할 수 있고, 입학 시점이 아니라 졸업 시점에서 학생의 성장이 더 주목받게 될 수 있다.

에듀테크는 학교와 교육행정기관의 관계를 바꿀 수도 있다. 에듀테크에서는 물리적 거리가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근거리에 있는 행정 기관에서 학교를 관리할 필요가 약해진다. 에듀테크를 통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양의 각종 정보와 데이터가 수집되고 축적되면, 이를 활용하여 슬기롭게 정책을 결정하고 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본래 교육행정은 학교를 지도·감독하는 일보다는 학교의 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지도·감독이 주된 기능이었다. 향후에는 데이터에 기반한 고도의 교육행정 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육행정기관 종사자들의 역량을 제고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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