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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3·1운동의 울림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 위해 자신 있게 나아가야

지난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였다. 한민족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일찍이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가 출범한 바 있다. 숭고한 3·1운동의 정신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활동을 펼쳐온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가 2년 2개월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지난 9월 14일, 그동안 위원회를 열정적으로 이끌어온 한완상 위원장을 동 위원회 소속 기획분과위원장이었던 김정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이 만났다. 지난 100년을 기억하기 위해 위원회가 펼쳤던 활동의 열매와 앞으로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3·1운동의 감동적 울림을 바탕으로 민주·평화적 새로운 주류 세력을 만들어내야
김정인
안녕하세요, 위원장님. 지난 6월로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 활동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먼저 위원장으로서의 소회를 여쭙고 싶습니다.
한완상
간단한 질문인데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먼저 위원회 활동은 일단 끝났으나 3·1운동이 가진 감동적 울림은 결코 끝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김정인
감동적인 울림이란 어떤 것인가요?
한완상
서유럽 중심의 백인 우월주의에 입각한 폭력적 식민주의가 아시아, 아프리카로 거세게 번지고 있던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3·1운동은 서양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비폭력 평화적인 시위였죠. 21세기 들어서도 세계의 지배 질서가 충격적 이리만치 심각하고 폭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국내에도 폭력적 성향이 남아 있는 것을 주목하면서 소회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100년 전에는 사회 진화론(Social Darwinism)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폭력적으로 아시아, 아프리카를 강점하고 식민 통치를 했어요. 그런데 지금 사회 진화론이 되살아나는 양상이 보입니다.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유럽의 브렉시트(Brexit)이고,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즉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어 백인 중심적인 지배 질서를 강화하는 것이죠. 이런 폭력적 흐름을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서, 저는 미국과 중국 간의 대결이 폭력적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왜 중국을 포위하려고 하느냐.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 역할을 했던 스티브 배넌의 이야기를 보면 중국에 대한 공포가 심해요. 중국 포위 정책을 강화시키다 보니 바로 중국 대륙과 접해 있는 우리의 입장이 미묘해지는 거죠. 그래서 3·1운동의 비폭력 평화 시위가 주는 감동을 재현해봐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안타깝다는 소회를 갖게 됩니다. 불과 얼마 전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퍼져 나왔던 평화 프로세스의 성장 동력이 죽어버렸어요. 평화의 길이 열리지 못하고 오히려 지난 분단 상황에서 경험했던 남북 간 폭력적 대결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되면서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고, 앞으로 더 심각한 폭력적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겠구나 염려하게 됩니다.
남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극우 세력도 커지고 있어요. 남북 관계가 악화되기를 고대하는, 주로 친일 세력에 기반하는 냉전 세력이 아주 강고하게 남아 있는 현실에서 100년 전 3·1운동의 평화 시위가 가슴 시리게 그리워지는 거죠. 객지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 상하이에 모여 3·1운동의 감동적인 울림에 영향을 받아 임시정부를 탄생시켰습니다. 임시정부를 이끈 핵심 애국자들 중 몽양 여운형이나 우사 김규식 선생이 광복 아닌 광복을 거치며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좌우합작이었습니다. 반탁운동을 하다가 나중에서야 적극적으로 좌우합작에 나선 백범까지, 좌우합작을 하지 않으면 민족상잔이 불가피하다는것을 깨닫고 있었어요. 그분들이 추구했던 것이 평화입니다. 민족상잔보다 가슴 아픈 폭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위원장으로서 이런 사실을 다시 확인하며 그분들의 좌절된 아픔, 좌우합작으로 가지 못했던 아픔, 그리고 같은 동족에 의해 저격당했던 그분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실망과 좌절을 역지사지하면서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위원회가 발족할 때 받은 대통령의 뜻은 이런 겁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을 잡아서 체포하고 고문했던 세력이 지금 분단 상황에도 존재하니까 이제는 새로운 정치 주류 세력을 만드는 데 3·1운동의 메시지를 통해 도와달라는 거였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2년이라는 한시적 시간으로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계와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대통령께서 위원회가 출범할 때, 또 3·1절과 8·15 광복절에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위원회가 어떻게 새로운 주류를 만들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주문을 하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럼에도 지난 2년간 기초를 닦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해야 하는 범위 내에서 과연 내가 했는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안타까움이 소회로 남는거죠.
김정인
현실 참여적 지식인의 길을 걸어온 위원장님답게 현실적인 문제를 엮어서 평화의 문제로 소회를 말씀해주신 게 인상적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주류 교체의 문제는 제 생각에는 주류 교체가 되고 있는 과정에서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 위원들의 구성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또 한편으로 보면 최근의 정치적인 변동을 통해 교체가 현실화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완상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부차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2년간 활동을 하고 백서를 만들어 다시 보니까 ‘아~ 일은 굉장히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3·1운동의 감동적 울림에 대해 국민들이 깨달은 바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민주·평화지향적인 주체 세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씨는 뿌렸으니 자라는 걸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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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바른 독립선언서, 나라다운 나라 등 국민 참여 사업 3·1운동의 정신이 스며들도록 애쓴 활동들
김정인
위원회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한완상
가장 인상적인 일을 말씀드리자면 독립선언서를 쉽게 풀어쓰는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1955년에 대학 입학시험을 봤는데 당시 문제에 최남선 선생이 쓴 3·1운동 독립선언서가 나왔어요.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더군요. 최대한 노력해서 답을 썼지만 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아쉬웠는데 지금 다시 봐도 모르겠더라고요. 주체 세력화를 하려면 주체 세력이 될 사람들이 이해해야 감동적인 울림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쉽게 풀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초·중생들이 읽어도 감동적인 가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위원회 안에 학자들을 뽑아서조심스럽게 맡겼지요. 그렇게 고쳐진 것이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입니다. 바르게라는 것이 참 중요한데 옳게 그 가치가 표현됐느냐죠. 그런데 바르게 고쳐졌더군요. 중·고생들을 불러 윤독했더니 모두가 이해했다면서 3·1 독립선언서가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고 자긍심을 느끼던 게 인상에 남습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 수만 명이 모여, 대통령이 먼저 읽으시고 10여 명이 윤독했는데 청중들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3·1운동의 정신이 가슴에 스며들게 하겠다고 말했는데, 스며들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스며들면 정치적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일은 100년 후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한 일입니다. 당시 인증위원회를 통해 인증된 국민인증사업이 1,200개 가까이 돼요. 전국적으로 지역, 종교, 세대, 성의 벽을 넘어 모였던 3·1운동 당시와 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3·1운동이 다시 일어나는 느낌이었죠.
마지막으로는 작년에 국제세미나를 하면서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 교수를 모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커밍스 교수는 진보적 학자들도 인식하지 못하고 쓰던 ‘일제 식민지’라는 말을 두고 “왜 당신들 스스로 식민지라는 말을 쓰는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식민지는 유럽 백인 국가가 아시아, 아프리카를 억압할 때 내세운 정치적 이론으로, 백인 문화와 문명이 인류 최고이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피식민지 국가는 야만 국가라는 인식이 담긴 말이에요. 문화적, 역사적으로 조선이 일본보다 낮은 야만국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에 가까울 수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쓰느냐고 슬쩍 나무라는 걸 보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잠시 프랑스를 강점했지만 프랑스의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독일의 식민지였다고 하지 않는다고 일깨워주었지요. 그는 식민지라는 말 대신 억울하게 당한 것이니 강점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 그는 우리 진보적인 사회과학자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이런 이야기도 하더군요. “여러분이 군사독재로 고생할 때 주제 강연을 오면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편했다. 내 강연에 참석했다는 것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 정부가 들어서서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진보적인 학자임에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 정부가 못한 게 있더라도 내가 예전에 왔을 때의 불편했던 마음이 없어졌으니까 그건 이해했으면 좋겠다.” 아주 인상 깊은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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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공공적 가치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해, 가해자의 역사를 존중하는 식민지 근대화 이론에 분노
김정인
네. 저도 위원장님이 하신 일 중에 독립선언서를 이해하기 쉽게 고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쉽고, 감동적으로 고쳐졌다는 데 동감합니다. 저도 인증심사위원장으로 위원장님이 하신 일에 조금 관여를 했는데요. 저는 그 일이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두 가지가 위원장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하시니 뿌듯하네요.
한완상
우리 백서의 (국민인증사업을 실은) 부록이 800페이지나 돼요. 앞으로 한국의 시민운동에 대단한 길잡이가 될 거예요.
김정인
인증사업에 참여한 분들을 통해 저마다 자발적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즐겁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이어서 질문드리자면,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중책을 맡으시면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셨을 것 같습니다. 역사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한완상
E.H 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마음에 들었어요. 팩트는 스스로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팩트에는 항상 이야기하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개입됩니다. 역사적 서술이라는 건 해석자에 따라서 더 빛이 날 수도 있고 왜곡될 수도 있거든요.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들이 항상 걱정해야 할 점입니다. 그런데 역사 서술의 해석이 잘못 굴절되어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요. 제가 보기에는 전쟁과 같은 큰 충돌에서 폭력으로 이기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역사의 정사로 서술해요. 이 과정에서 패한 사람들의 역사는 정사 대접을 받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나요. 인류 역사에서 여성, 유색인종과 같은 약자들의 목소리가 정사에는 없어요. 독립운동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원회에서 약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길을 열어주려 했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유관순 열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100년 전에는 여성들, 특히 소녀들이 무슨 발언권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유관순이 만든 임팩트는 대단합니다. 전영택 작가의 《순국처녀 유관순전》을 읽게 되었는데, 짧은 책이지만 3·1운동의 감동이 폭발적으로 다가왔어요.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나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을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이 구절을 봤을 때 우리 역사책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동이 전해졌고, 유관순의 입장이 정말 약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라고 느꼈고, 이런 것을 적는 게 역사라고 생각했어요. 이렇듯 올바른 공공적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사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 같은 역사적 사실이 정사보다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는데 그게 왜 안 됐을까요? 바로 지식인과 지식 기사의 차이입니다. 지식 기사는 있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정보나 지식을 체계화해 지배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만, 비판적 지식인은 반대로 잘못된 것을 뒤집는 개혁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합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예언자적인 비전이죠. 지금의 기존 질서를 뒤집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비전인데 이런 대안적인 안목이 지배자의 역사를 정사로 만드는 사람에게는 없어요. 그것은 짓눌린 사람들에게서만 나오는 거예요. 민중사회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지식 기사가 아닌 지식인이 내놓는 대안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권력 주체에게는 항상 위협이 됩니다. 미래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용기 있는 작품들을 역사학자나 사회학자들이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서 한일 관계를 보자면 지난 100여 년간 일본은 줄기차게 가해자이고, 우리는 피해자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해자의 역사를 존중하는 식민지 근대화 이론이 나올 수 있었는지 다시 한번 분노를 느낍니다. 우리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폄훼하며 반일 종족주의라는 이름으로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피해자의 대안을 내는 입장은 항상 공공적이고 정당하고 떳떳합니다. 이것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의 대답입니다.
세계적으로 번져가는 탈식민지화 운동, 우리도 일제 잔재 청산을 시작해야
김정인
위원장님의 오래된 지론인데 지금까지도 일관된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역사를 볼 때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역사, 정사에 의해 가려진 역사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러면 현실로 돌아와서, 현재 코로나19가 야기한 세계사적 격변에 우리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완상
지금 코로나19 상황은 인류 역사상 겪는 최초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도 역병이 있었지만 이번 코로나19가 촉발한 변화에는 특징이 몇 가지가 있어요. 스페인 독감 같은 것은 국지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전 세계가 동시다발로 피해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질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내도록 촉구해요. 이제까지의 선진국, 후진국이라는 구분이 깨지고 백인은 문명인이고 비백인은 미개인이라는 우월주의도 동시에 깨지니까요.
미국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있습니다. 서구는 지난 2,000년간 바다를 지배했던 세력이 세계를 지배했어요. 로마제국이 그랬고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서구 제국주의의 물결이 동쪽으로 오며 20세기 초반에 중국까지 왔는데, 이제껏 바다를 지배했던 세계 패권 국가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육지 대국 앞에서 딱 멈추고 그것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터졌어요. 중국과 미국의 대결 속에서 세계 패권 국가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가가 하나의 질적인 변화인 거고요. 사실 우리 인류는 코로나19 발생 전까지는 인류가 핵전쟁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핵전쟁이 일어나면 종말이기 때문에 인류 멸망을 막는 것은 핵 억제력이라 생각했고, 한반도도 핵무기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요, 코로나19로 그 인식이 달라졌어요. 핵이 아닌 세균 억제력이 관건이 된 겁니다. 앞으로는 역병 억제력을 잘 개발한 나라가 인류를 위기에서 구하는 괜찮은 나라이고 선진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말이죠.
이러한 역병을 억제하는 데 한국이 제일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 일본, 독일 보다는 나은 거 같아요. 서양 언론에서도 한국은 민주주의적 개방성을 바탕으로 역병에 대처하며 정부가 대단히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한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역병 통제는 자칫하면 전체주의적으로 흐를 수 있는데, 한국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전체주의적 겉모습이 나타날지 몰라도 실제는 민주적인 투명한 조치를 통해 국민들이 억울하게 죽는 것을 방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코로나19라는 역병의 치유와 극복을 위해서 민족공조로 남북이 공동 대응하면 좋겠어요. 코로나19의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서 공공의료분야 남북교류협력사업 차원에서 남북이 함께 코로나19 방역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지난 6월 개성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등 남북 관계가 크게 악화한 상황에서 남북 교류와 협력이 다시 살아나고 남북 관계도 획기적으로 진전될 것입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비백인들에 의해 탈식민지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탈식민지 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한 게 대학입니다. 세실 존 로즈는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을 구상한 영국의 제국주의자적 지식인이자 로즈 장학금의 설립자인데,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대학생들이 시위를 해서 교정에 있던 로즈의 동상을 철거했어요. 식민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요. 이 탈식민지 운동은 점차 번져나가고 있죠.
미국에서는 시민들이 흑인을 눌러 죽인 경찰 공권력에 저항하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일어났잖아요. 이 운동으로 프린스턴대에서도 공공정책학원 이름에서 윌슨의 이름을 떼어냈죠. 우드로 윌슨이 국제연맹을 창설하고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해서 우리 지식인들이 고무됐었는데, 사실 그의 민족자결주의는 가짜입니다. 윌슨이 말한 약소국은 백인들의 약소국이지, 우리 같은 비백인 아시아 민족주의를 이야기한 게 아니거든요. 이런 반식민지 운동이 번져가고 있는데, 왜 우리는 탈식민지를 이야기하지 못합니까? 일제의 잔재가 남아서 소위 식민지 근대화 이론을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식민지 유산을 철폐하고 적폐 청산을 하자는 이론가들을 향해 반일 종족주의라고 욕을 하는데요. 왜 우리 한국의 지식인들은 가만히 있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에요. 우리도 일제 잔재 청산을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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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새집이 되기 위해서는 적폐 청산을, 남북 관계 회복 위해서는 스스로 물러서는 새우가 되지 말아야. 100년 전 비폭력 운동으로 세계를 감동시키고, 세계적 역병에서 가장 선진적인 우리 모습에 자부심 가지길
김정인
그러면 이제 마무리로 들어가서 위원장님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계시는 한반도 평화의 길은 어떻게 열려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완상
대통령 선거 직후, 당선이 확실시되던 시점에 제가 문 대통령께 드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면 방해되는 잘못된 유산을 단시일 내로 청산해야 한다. 그것도 6개월 안에 해야 한다”고요. 청산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것을 재생산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면 썩어서 구린내 나는 적폐를 쌓아두면 안 된다고요. 그것은 새집이 아니라고요. 반드시 짧은 시간에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지나왔습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퍼져 나왔습니다. 한반도기가 들어서고 3만 5,000명 관중이 박수를 치는데 새 역사가 오는구나 싶어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평양 능라도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우리 대통령이 역사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한반도를 비핵화해서 평화의 터전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넘겨주자. 우리는 5,000년을 같이 살았고 70년 짧은 분단을 했다. 우리는 강인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니 평화를 만들자”라고 했을 때 사실 저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반도를 비핵화해서 평화를 만들자는 말에 평양 시민들이 저항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죠. 북한은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해 핵 억제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미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이 있는데, 우리 대통령의 연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그런데 연설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어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든 생각은 여기에 우리가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 중 어느 누구도 북한의 15만 민족 구성원 앞에서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조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너무 빨리 안심했다는 게 한으로 남아요. 다음 해가 됐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저쪽에서 “금강산과 개선 공단만이라도 남북이 공조합시다”라고 한 번 더 이야기 했을 때 받았어야 했는데 우리 정부 사람들을 보니 미국의 견제가 심하다고 선뜻 나서지를 않았어요. 시간이 지났는데도 한미워킹그룹의 눈치를 보느라 어떤 조치도 안 했어요. 새로 임명된 통일부장관도 이와 관련된 언급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넘어갔어요. 공식적으로는 말할 수 없더라도, 비공식적으로 다른 채널을 통해서라도 유감 표명을 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민족공조를 통해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려면, 한미워킹그룹에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100년 전에는 강대국이 고래고 우리가 새우였지만, 지금 우리는 새우가 아니잖아요. 스스로 물러서서 새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하반기 과제 중 첫째로 해야 할 것은 남북 관계 복원입니다. 모든 채널을 동원해 우리 입장을 전달하고 다시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신뢰는 연기하면 안 되고,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가장 옥죄는 불의한 모순에는 민족 모순, 계급 모순, 성 모순, 세대 모순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북 모순이 풀리지 않으면 다른 여타의 것도 안 풀릴 수밖에 없어요. 계급 모순 타파를 위해 노동운동을 하다가 잡혀가면 국가보안법으로 빨갱이가 됩니다. 정부의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면 전부 다 색을 칠하여 이상하게 되는 걸 겪었으면서도 지식인들은 남북 모순에 대한 것은 부차적으로 보고 성, 계급, 종교 모순과 같은 이슈에만 집중하는 것에 저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정부에서 남북 신뢰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요구하고 싶은 것은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계 반식민지 운동 이야기입니다. 불신의 늪에 빠진 한일 관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데요. 아베의 정책을 계승하는 스가가 새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총리와 신뢰의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 위원장이 된 뒤 일본 대사관의 수석공사가 점심을 내겠다고 왔었습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이런 위원회를 만드니 양국 관계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짐작해서 온 거지요.
저는 수석공사에게 일본 식민지 교육을 받고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가미카제를 찬양하는 군가를 부르고 다녔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칠판에는 항상 일본군이 승리한 것을 적어서 자긍심을 불어넣어줬는데 전쟁이 끝나고 보니 거짓말이었다고요. 내 나이가 80 중반인데 내가 죽기 전에 증오의 감옥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했어요. 그 증오의 감옥은 당신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열쇠는 당신들 손에 있다고. 그랬더니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돈을 더 많이 내라는 것이 아니다. 일본 최고지도자가 공식적으로 나라를 강점해 식민지 무단통치를 하고, 해방된 이후의 분단 상황에서 일본이 미국 지도하에 경제 강국이 되고 미국의 강력한 우방이 되는 동안 우리는 전범국이 받아야 할 분단의 고통을 일본 대신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에서 비 오는 날 무릎 끓고 사죄한 것처럼 진정으로 우리 민족에게 사죄를 해달라고. 그건 돈도 안 드는 일이고 나부터 감옥에서 나오는 기쁨이 될 거라고요. 이제 스가 총리가 새로 취임하였으니 우리 정부가 그 이야기를 시작해야죠.
하나만 더 얘기합시다. 한반도를 분단시킬 때 38선을 그은 실무자로 참여했던 대령 3명이 있습니다. 그 중 두명은 잘 알려진 미8군 총사령관 찰스 본스틸,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 국무 장관을 한 딘 러스크입니다. 소련군이 선전포고 후 남하하는데, 미국은 몇 년간 수만 명을 죽이고 원자폭탄으로 태평양전쟁을 끝냈음에도 공은 소련이 가져가겠구나 하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진군하는 소련군을 정지시키는 작업을 이 세 사람을 시켜 했던 거예요. 이들이 상황실의 지도를 보고 38선을 그은 것은 5분여의 짧은 시간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던 러스크가 한 이야기를 봤어요. 자신이 지금 아는 것만큼 그때 알았으면 선을 다르게 그었을 거라고 했더군요. 그 이야기가 굉장히 얄밉고 허무하게 들렸어요.
그들은 모두 로즈 장학생 출신입니다. 로즈 장학금은 앞서 말한 세실 존 로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식민 잔재의 혜택을 받은 그들이 그 일을 했다는 것이 슬픈 겁니다. 딘 러스크는 국무 장관을 지내며 우리를 후진국으로 얕보기도 했죠. 그런 걸 생각하면 좀 자존심 있는 협상을 통해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100년 전의 비폭력 운동으로서 세계를 감동시켰고, 지금 인류가 최초로 겪는 세계적인 역병 위기에서 누구보다 선진적으로 잘하는 민족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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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선제적 사랑의 정신, 평화적 3·1운동 정신으로 돌아가서 진작시켜야
김정인
현실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셨고, 감정까지 솔직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무리로 들어가서 정부가 학문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실 듯합니다.
한완상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몽양 여운형을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몽양의 일대기를 다룬 《혈농어수(血濃於水)》라는 세 권짜리 책에 보면 해방 정국에서 남북 합작할 때 시달렸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책에 보면 몽양의 참모들이 테러에 대비해 미군정에 부탁해 경호 체제를 마련하자고 해요. 테러를 10번쯤 당했거든요. 그런데 몽양은 그것을 거부하죠. 경호는 오랫동안 일제강점기에서 고생했던 백성들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라고요. 몽양은 만약 죽는다고 해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기 참모들한테 “내가 지금 하려는 좌우합작은 사랑의 정신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요. 강덕상 일본 시가현립대학 교수가 “몽양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좌우합작을 했다”고 쓴 글을 봤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거예요. 《혈농어수》에도 보면 몽양도 그렇게 이야기하죠. “나는 좌우합작을 사랑의 정신으로 한다”고.
저는 한반도 평화를 이룩하려면 몽양의 사랑의 정신으로, 좌우합작을 하듯이 해야 한다고 봐요. ‘preemptive(선제적)’라는 말을 쓰고 싶어요. 미국에서나 어디서든 보수적 강경론자들은 적을 선제적으로 폭격하자고 합니다. 클린턴 때도 영변 핵시설을 선제적으로 공격하려고 했어요. 선제적 공격은 불가피하게 전쟁을 촉발시킵니다. 하지만 ‘preemptive love’, 즉 선제적 사랑은 그와 반대입니다. 선제적 사랑의 정신으로 남북 간의 평화 프로세스를 되살려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게 제대로 되면 나라 전체에, 남북 전체에 자유로운 분위기가 생깁니다. 남북 정상이 왔다 갔다 하고 각계각층이 왔다 갔다 하면, 색깔 칠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런 평화적 분위기를 3·1운동 정신으로 돌아가서 진작시켜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100년 전에는 됐는데 지금은 왜 안되나요? 지금 우리는 10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국력을 갖고 있어요.
김정인
오늘은 그동안의 소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저도 위원장님을 모시고 2년 동안 있었지만 이렇게 위원장님의 생각을 정리해서 들어본 적이 없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선배 학자로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위원장님이 가지신 생각을 듣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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