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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 + 코로나19 시대 일자리의 미래

광장과 밀실

돌이켜보면 지난 20세기 후반은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던 광장의 세기였고, 세계화와 집단 안보를 두 축으로 평화 정착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이루었던 진보의 세기였다. 특히 시민 참여 민주주의의 정착과 노동 3권 보장을 통한 노동자 권익 향상, 그리고 국민의 기본 생활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복지국가의 등장과 같은 일련의 세기적 개혁도 사람들이 모여서 교류하며 소통하고 때로는 집단적으로 저항하였던 광장의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한국의 현대사만 보더라도 1960년 4·19 혁명,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민주 항쟁, 그리고 최근의 촛불 집회까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변곡점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목소리를 이루던 광장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개인은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밀실 문화로 후퇴하였고, 국제적으로는 인적·물적 교류가 통제되는 성곽도시화되어 속물적 자원민족주의와 천박한 인종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고착될 경우, 이성이 창출한 최고의 진보적 가치인 ‘포용성’이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 인류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문명 세계를 더욱 발전시킨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21세기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과 맞물려, 이번 코로나19의 재난적 위기도 결국 새로운 질서(뉴노멀)의 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의 중첩적 위기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난 재난의 특징은 첫째,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으며, 둘째,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집중 공략하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난적 위기의 고통이 사회 취약 계층에게 가장 먼저 오고, 가장 강하게 괴롭히며, 가장 나중까지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재난적 위기로 가속화된 사회 양극화는 위기가 종식되어 경제가 안정된다고 해서 완화되거나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새로운 질서로 정착하는 패턴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 양극화와 소득 양극화 수준이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즉 정보 격차가 더해지면 자본, 기술, 좋은 일자리, 여론, 정보, 기회, 능력, 인맥, 그리고 지성마저도 다 가진 소수의 지배계급과 사실상 아무것도 갖지 못한 대다수 피지배계급으로 분열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다음의 세 가지 속성으로 설명한다. (1) 기하급 수적 기술 진보, (2) 융·복합과 불확실성, 그리고 (3) 탈경계화가 그것인데 이는 현재 전 인류를 재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와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닮아 있다. 첫째, 인공지능의 발전 수준과 코로나19의 창궐 속도는 모두 기하급수적 지수 증가를 통하여 인간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인공지능의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 인간의 노동 능력을 넘어서게 되면, 대부분의 일자리를 대체하며 일자리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코로나19의 창궐도 지수 증가를 거듭하여 사회의 의료 자원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미증유의 재난 상태가 되고 있다. 둘째, 제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모든 사물이 연결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복합으로 산업의 경계가 무너짐에 따라 신산업이 출현하여 우리 삶과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역시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질병으로, 그 자체를 정의하고 예측하기 어려워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과연 이 감염병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불확실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셋째, 제4차 산업혁명으로 초고속 무선통신과 클라우드 네트워크가 발전 하면서 상품 간, 상품과 사람 간, 그리고 사람 간에 경계가 무너지고 초연결(hyper-connectivity)되고 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초연결되어 있는 21세기 페이스북에서는 20세기에 사람을 나누던 국적, 인종, 계급, 성별, 학력 등의 분할선은 중요하지 않다. 코로나19 역시 국적, 인종, 계급, 성별을 넘어 창궐 하는 탈경계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는 ‘따로 또 같이’ 새로운 질서를 추동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일자리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의 중첩적 위기는 일자리 영역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올 상반기부터 세계 경제가 대침체기에 접어 들면서 대량 실업 사태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전염병에 걸려 죽기 전에, (일을 못 해) 굶어 죽게 생겼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저명한 노동경제학자로서 미국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는 올해 4월 26일 자 <가디언(The Guardian)>에 실은 기고문에서 코로나19 이후 미국 사회에 네 개의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첫 번째 계급은 원격 근로가 가능한 근로자들(The Remotes)이다. 주로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 경영자 그리고 기술자들이 이 계급에 해당한다. 이들은 IT 기술의 발전을 십분 활용하여 집 안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화상회의를 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업무는 사무실 바깥에서 컴퓨터로 수행하고 있다. 임금이 삭감될 위험도 없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 상태를 보이는 이들은 전체 미국 근로자의 약 35% 정도를 차지한다. 두 번째 계급은 필수 노무 제공자들(The Essentials)이다. 간호사, 요양보호사, 아동 보육교사, 농부, 트럭 운전사, 경찰관, 소방관, 군인 등으로 미국 근로자의 약 30%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 대부분은 고객과의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중 상당수가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장비가 부실하며, 아파도 유급 병가나 휴가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등 건강 보장의 사각지대에 머무르고 있다. 세 번째 계급은 무급 노동자(The Unpaid)로, 회사의 경영상의 이유로 무급 휴직 중인 근로자나 무급 가족 종사자들이 해당된다. 이들은 미국 취업자의 약 25%를 차지하고, 현재 미국 실업자보다 규모가 크다. 마지막은 잊힌 사람들(The Forgotten), 즉 사회적 거리 두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교도소 수감자들이나 불법체류자 구치소, 이주 노동자 캠프, 원주민 보호구역 거주자, 노숙인, 그리고 생활 시설 거주자들이다. 이들은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진단하고 적절한 의료 이용과 충분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데도 이들 중 극히 소수만이 이런 혜택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재난이 계급 양극화를 초래하는 사례는 현재 미국 사회가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1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원격 근로자들은 디지털 산업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안락한 작업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수준과 안정적 고용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 나머지 세 계급(필수 노무 제공자, 무급 노동자, 잊힌 사람들)은 코로나19 위기와 함께 디지털 전환의 희생자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새로운 계급의 등장과 계급 간 분열 현상은 비단 미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행 조사국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非) 재택근무(비원격 근무) 일자리는 전체 취업자 중에서 74%, 고(高)대면 일자리는 55%로 나타났으며, 특히 감염에 취약한 비재택·고대면 일자리는 전체 취업자의 46%에 이르고 있다. 또한 코로나19에 대한 고용 취약성은 저소득, 저학력, 저기술, 청년, 여성 등 취약 계층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부터 경제의 활력은 이미 떨어지고 있었고, 특히 디지털 전환으로 고용 취약 계층의 일자리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었다. 사실 코로나19는 시간이 문제이지만 결국은 인간의 통제 범위에 들어와 관리될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전환에 따른 일자리 생태계의 손상은 감염병 창궐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영속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기술적 실업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자리’는 생활의 방도이자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자 사회적 관계를 맺고 이어주는 네트워크로,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일자리는 기계제 대공업이 정착된 18세기말 이후에 새로 등장한 개념으로, 그 이전에는 생활상 활동(activity)과 직업상 일(work)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풍차나 우마(牛馬)와 같은 자연에너지를 이용하여 자연을 경작하는 행위와 화석에너지를 사용한 기계를 이용하여 일하는 일자리는 천양지차이다. 특히 장원경제의 해체로 노사라는 새로운 생산관계에 편입된 노동자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이 장착된 기계에 노동력을 투입하면서 생산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노동력은 상품으로 시장의 수급에 따라 자유롭게 사고 팔리게 된다. 즉 기계제 대공업 체제하에서 상품화된 노동력이 수요에 따라 수급이 조절되면서 실업이라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16~17세기 영국에서 발흥한 인클로저운동(enclosure movement)기에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1면 18~19세기의 기계제 대공업의 확산은 기계가 노동자들을 잡아먹는, 이른바 기술적 실업자를 양산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점에서 인클로저운동으로 농경지에서 추방당했던 농민들이 목축 울타리를 파괴한 케트의 난(Kett’s Rebellion, 1549년)과 뉴턴의 난(Newton Rebellion, 1607년)이 일어났다면, 19세기 초 방직기의 발전으로 실업자가 양산되자 방직 노동자를 주축으로 기계파괴운동(luddite movement, 1811~1816년)이 일어난 것은 필연적 결과였다.2

<양털을 손질하는 노동자들>(1519년) 아이작 반 스와넨브르크 작품

하지만 19세기 당시 기계파괴운동을 조직하였던 방직 노동자들의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19세기 중후반을 거치며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한 사회의 고용률이 노동자를 일자리로 끌어들이는 힘과 노동자를 내치는 힘의 균형에서 결정된다면, 실상 산업화 이후 어느 나라에서도 일자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일자리를 보완하는 긍정적 힘이 일자리를 대체시키는 부정적인 힘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대니얼 서스킨드(Daniel Susskind)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3

첫 번째는 생산성 효과이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생산성이 높아지면 품질 좋은 재화와 용역을 싼값에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고, 이는 그 상품의 수요 증가로 이어져 노동력의 수요를 창출한다. 이른바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 구조를 말한다. 두 번째는 파이 확대 효과이다. 경제가 성장하면(파이가 커지면) 사람들이 상품을 소비할 소득이 늘어나게 되고, 그런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수요 역시 증가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파이 탈바꿈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새로운 가치 생산 영역이 만들어지면서 노동 수요 역시 충분히 창출되어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한국의 산업화 초기에 경공업을 중심으로 노동 수요가 일어났다면,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에서,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IT 산업에서 엄청난 노동 수요가 창출되었다.

하지만 기술 진보에 따른 일자리 보완 효과를 디지털 전환기에도 기대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기계와의 경쟁’4에서 인간의 노동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의 흐름이 있다. 첫 번째는 기하급수적 기술의 발전을 인정하면서도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인간의 이성으로 기술을 통제하였던 경험에 비추어 이번에도 인간의 노동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파괴운동이 벌어졌던 산업혁명 초창기뿐만 아니라 제2차 산업혁명에 해당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눈부신 기술 발전5에도 인간의 노동을 보완하는 긍정적인 힘이 대체하는 부정적인 힘을 월등하게 앞섰다. 물론 지금의 디지털 전환기 혁신의 속도는 그 이전의 변혁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교육을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키며 통신과 교통 인프라에 투자한다면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기술이 지금과 같은 속도6로 발전한다면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인간 노동의 대부분이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쪽이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빅데이터, 클라우드, 3D 프린팅이 산업 간, 직종 간 경계를 허물고 초연결되어 기술의 발전이 어느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업무 잠식 속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AI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 발전에 따른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이 대량 실업의 태풍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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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표기에서 인력 표기로

기술의 진보가 어느 지점을 통과하여 AI가 인간의 업무 대부분을 대체한다면 인간은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운송업계에서 퇴출된 말(馬)의 신세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동차의 힘을 마력(馬力)으로 표기한다. 현대 8세대 쏘나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152마력이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 자동차의 힘이 152마리의 말이 끄는 힘과 같으며, 포드 머스탱 Mach-E의 1,400마력에 비하여 약 9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식한다. 이 같이 자동차가 마력을 기준으로 힘의 크기를 표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계제 대공업의 총아인 자동차가 그 이전의 지배적 운송 수단이었던 말을 대체하면서 말의 힘을 기준점으로 자동차의 힘을 측정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기계의 발전으로 자동차 간 편차는 커지지만, 말의 힘은 고만고만해서 표준화하기 쉽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즉 말 사이의 힘의 차이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작은 반면에, 새로이 등장한 자동차는 워낙 다양한 종류가 있기 때문에 힘의 차이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20세기에 자동차가 맹렬한 속도로 말을 대체하였듯이, 21세기에는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즉 AI의 발전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인간의 노동을 전면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자동차의 힘을 몇 마력(馬力)으로 표기하듯이 AI를 이용한 시스템의 능력을 몇 인력(人力)으로 표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구글에서 개발한 어떤 인공지능 시스템의 능력을 표기할 때, 과거 몇 명의 노동자 몫을 한다는 식으로 몇 인력으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바야흐로 인간이 생산의 주역에서 밀려나 어느새 생산의 주체가 된 AI 시스템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점으로 쪼그라드는 시대가 오게 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2016년 초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인 이세돌 9단을 4 대 1로 이기면서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알파고(AlphaGo)가 있다. 그런데 알파고는 이제 진화를 거듭한 새로운 버전인 알파고 제로(AlphaGo Zero)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초기 알파고가 전문 기사의 수법 3,000만 개를 학습함으로써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인간을 이겼다면, 알파고 제로는 기보 없이 바둑의 기본 규칙 몇 가지를 프로그래밍해서 스스로 학습하게 하는 방식으로 알파고보다 훨씬 강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2016년 당시 베타 버전이었던 알파고가 인간(프로기사)과 호선 정도의 실력(승률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을 보였 다면, 현재 최고의 AI 바둑 프로그램은 프로기사를 3점에서 4점 사이로 접고 둘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 경우 베타 버전의 알파고와 최고의 바둑 프로그램인 릴라 제로의 기력(棋力) 차이를 설명하는 단위가 인간(프로기 사)이 접고 들어가야 하는 치수(置數)7 차이가 되는 것이다.

AI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AI가 바둑으로 인간을 이기는 것은 인간의 달 착륙만큼이나 새로운 차원의 도약을 의미한다. 바둑의 수 자체가 우주의 별보다 많아 무한대에 가깝기도 하거니와(무려 361!),8 계산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인간만이 이해하는 오묘함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알파고의 등장으로 바둑의 미학이나 기세, 모양, 그리고 맥이라는 개념도 미분(微分)을 계속하게 되면 결국 0과 1로 분해되는 단순 계산으로 치환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두뇌 게임이라는 바둑에서도 인간이 AI에 무너진다면, 우리의 일자리는 무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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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노동의 시대는 저물었는가?

물론 자동화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있을 것이고, 자동화가 가능하다고 해도 수익이 나지 않아 여전히 인간의 노동에 의존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다. 또한 명인이 정성스럽게 수작업으로 만드는 음식이나 가구처럼, 관례적으로 자동화된 기계로 대체되지 않은 일도 있을 것이고, 아예 법령으로 일정한 자격증을 가진 인간에게만 허용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계에 의해 잠식되지 않는 일자리가 현재 경제활동 인구에게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는가?

미래의 노동시장을 연구하는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는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대다수 인간의 일자리는 자동화된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우리의 일상을 보더라도, GPS를 이용한 내비게이터가 자동차에 상용화된 지 얼마 안 되어 무인 자동차가 거리를 주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육체적 피로를 느끼고 때로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인간이 운전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예 인간이 운전하는 것이 불법인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또한 단순 길 안내를 하던 로봇이 이제는 꽤 전문적인 상담을 하는 챗봇으로 진화하였으며, 요양 시설의 노인을 안전하면서도 불평불만(?) 없이 수발하는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전쟁도 AI가 지휘하는 로봇이 하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지난 8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응용물리연구소(APL)에서는 최고의 베테랑 조종사와 AI가 항공전 시뮬레이터로 겨루는 실험을 하였는데, 결과는 5 대 0으로 AI의 완승이었다. 체스, 퀴즈 프로그램, 바둑에서 인간을 이긴 AI가 항공전에서도 인간을 압도한 것이다. 이러한 예는 무수하게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노동이 자동화된 기계에 의해 전면적으로 대체될 것인지, 대체된다면 어느 정도 규모로 언제 본격적으로 일어날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 확실한 것은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의 중첩적 위기에 어떻게 대비를 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코로나19의 재난적 위기로 일자리 생태계는 점차 피폐해지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어려웠고, 아마 내년은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정신을 담은 새로운 그릇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가 최후를 맞은 벙커에서 현대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1942)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실제 히틀러가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도 전쟁 이후의 새로운 세상을 그려봤을 것이다. 한편 승전국 영국에서는 1945년 7월 선거에서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자(Let us face the future)”는 구호를 내건 클레멘트 리처드 애틀리(Clement Richard Attlee)의 노동당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이끌었던 보수당을 큰 의석 차이로 이기고 집권하였다. 집권 이후 노동당 정부는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더불어 <베버리지 보고서>의 제안대로 사회 보장제도를 정착시킨 복지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결국 전쟁 이후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정신을 담은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코로나19의 재난적 위기로 일자리 생태계는 점차 피폐해지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어려웠고, 아마 내년은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우울한 전망은 공황과 전쟁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공황 그리고 팬데믹과 같은 커다란 위기가 닥치면, 기존 질서는 파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는 창조적 파괴의 패턴을 보였다. 그리고 그 패턴의 특징은 첫째, 압도적인 힘으로 이전의 다양한 논란거리를 잠재우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며, 둘째, 그 이전 질서로는 절대로 되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이제껏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새로운 관리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방식 중의 하나가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기본 소득이다. 기본 소득은 좌우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지지하는 매우 독특한 제도이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보수주의 우파 진영에서는 복지국가의 관료화에 따른 번문욕례(繁文縟禮)를 해소할 수 있는 묘안으로 기본 소득을 주장한다. 반면 소득 재분배와 사회적 권리를 강조하는 진보 진영에서는 노동력의 상품화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물적 토대로서 기본 소득을 지지한다. 특히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수요를 유지해야 하는 현재와 같은 극심한 불황기에는 누구나 조건과 조사 없이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이 바람직 하다. 하지만 이후 경제가 안정화되었을 때 조건과 조사 없이 누구에게나 이전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충분히 지급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기본 소득의 기본 정신을 받아들이되, 실정에 맞추어 다양한 변주(變奏)를 신축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 중의 하나는 일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일자리에 출근하여 일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공동체 활동, 예를 들자면 환경 감시나 숲 해설과 같은 자원봉사, 가족 내 보육이나 돌봄, 무급 교육이나 훈련 등에 참여하는 것도 일자리로 인정한다면 건강한 상생의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1. 당시 농경지와 공유지가 목축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수많은 농부가 농사지을 땅에서 쫓겨나자, 토마스 모어는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표현하였다.
  2. 기계파괴운동을 벌인 사람들은 방직 노동자라기보다는 자본가로부터 하청을 받아 납품하는 방직 수공업자였다. 이들은 방직기의 도입이 자신의 일자리를 줄일 것을 염려하여 방직기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이게 된다. 이러한 기계파괴운동은 산업혁명기 시장경제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신의 권익을 주장한 최초의 노동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후 이 운동은 노동자들의 선거권을 요구하는 차티스트운동으로 이어지고, 이 선거권을 바탕으로 1900년 노동자의 정치적 이익을 대표하는 노동자대표위원회가 결성되어 영국 노동당의 창당(1906년)으로 이어진다.
  3. 대니얼 서스킨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김정아 옮김, 와이즈베리, 2020, 35-40쪽.
  4. Erik Brynjolfsson and Andrew McAfee,Digital Frontier Press, 2011.
  5. 당시 주요 대도시의 박람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오리라고 믿었다. 전기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었고, 자동차와 비행기가 등장하였고, 무엇보다도 의료 기술과 위생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문명사회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6. 지난 80년간의 기술 발전 속도가 앞으로 80년간 지속된다면, 2100년에는 지금의 기계와 시스템이 무려 1조 배나 강력해진다고 추산한 바 있다. 이건 기술의 축복이 아니라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대니얼 서스킨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김정아 옮김, 와이즈베리, 2020, 181쪽 참조).
  7. 바둑을 둘 때 실력이 약한 쪽이 미리 접히고 두는 돌의 개수. 일종의 핸디캡.
  8. 우주에 있는 원자 개수가 12x10⁷⁸이라고 하는데, 바둑의 경우의 수는 정확하게는 2.08x10¹⁷⁰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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