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 정책기획위원회 회의실에 신진욱 정책기획위원회 위원과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한자리에 모여 ‘전국민 고용보험’ 제도의 설계와 도입, 운용과 실현 방안을 주제로 열띤 논의를 펼쳤다.
올해 초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내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하면서 해외시장으로의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기업 매출이 급감했다. 이로 인해 실업률이 증가하고 신규 취업자도 거의 사라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자영업자들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이렇듯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간 외면해왔던 취약한 노동시장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에 정부는 고용시장의 안전망 강화를 위해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와 여당이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위한 입법을 서두르면서 이와 관련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열린 정책》에서는 신진욱 정책기획위원의 진행하에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과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참여해 토론을 진행했다.
- 신진욱
-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고용과 노동의 문제가 전 국민적 핵심 이슈로 등장한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각계에서 활발히 토론되고 있는 ‘전국민 고용보험’ 제도의 설계와 도입, 운용과 실현 방안에 관해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오건호·이병희
- 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게 돼 기쁩니다.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세계 노동시장 강타한 코로나19,
사회보장제도 수준에 따라 충격 달라
국내 사회 안전망 및 고용 안전망 정비가 중요한 숙제
- 신진욱
- 그럼 본격적인 쟁점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가장 긴급한 현실 진단부터 질문 드리겠습니다. 올해 코로나19 충격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용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후 지난 반년 동안 추이가 어떤지요?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 이병희
- 아무래도 코로나19에 대한 방역과 경제 상황은 단기적으로 상충되는 면이 있습니다. 영미와 유럽 등 세계 각국은 이동 제한과 국경 봉쇄 등 강력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로 인한 경제적 충격도 상당했지요. 다만 노동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사회보장제도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느냐에 따라 그 충격의 정도가 달랐습니다. 미국의 경우엔 실업률이 10%를 넘어섰지만, 유럽은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적 노력 덕분에 노동시장의 충격이 완화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고용 유지 지원이라는 것이 위기가 상시화될 때 지속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코로나19 지속에 대한 불확실성, 2차 유행 전망 등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위기 이후 빠른 경기회복을 전망하는 학자들이 지금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화가 급진전될 뿐만 아니라 세계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세계경제는 급변의 시기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 오건호
- 저 역시 지금은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역사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부정적인 결과가 올 것이란 우려도 있고, 코로나19가 일상의 사회·경제적 관계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다시 일상적인 경제 경로로 복귀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다행히 V 자 혹은 W 자형 경기회복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만약 L 자형이 된다면 전면적인 경제·사회적 재구조화가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사회·고용 안전망은 우리 경제의 흐름과 무관하게 우리가 갖춰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고용 안전망은 매우 취약합니다. 지난 10년간을 살펴보면 노후, 빈곤, 건강과 관련된 안전망은 갖추 어온 반면 고용에 관한 안전망은 25년 전 고용보험이 도입된 이후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 유럽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지요. 사회 안전망, 고용 안전망을 정비하는 것은 방역과 독립적으로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충격, 고용 취약 계층에 더 커…
정확한 정책 대상 파악 필요
경제성장률 하락에 비해 노동시장에 더 큰 영향…
노동시장 취약성 반증
- 신진욱
- 이제 초점을 국내에 맞추어 보겠습니다. 한국의 노동 상황은 어떠하며, 어떤 계층이 가장 불안정한 상황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또 현재 고용 위기 상황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대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 오건호
- 지금 코로나19 상황을 맞아서 정부는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재난지원금 외에도 여러 맞춤형 정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등이 있지요. 다만 이제 지급이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아직 정책적 효과를 논하긴 이르다고 봅니다. 문제는 국민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비정규직, 여성 등 불안정한 고용 계층의 충격이 더 큰 만큼 그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이 필요한데, 현실은 정확한 정책 대상을 특정화하고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도망이 미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 입장에선 정책의 효과를 확신할 수 없어 더 과감한 정책을 펼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이병희
- 지난 2월 말 대구 지역을 시작으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된 충격은 노동시장에서 3~4월 취업자 수 급감, 휴직자 급증으로 나타났습니다. 2월 대비 3~4월 200만 명 정도가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고, 여기에 소득 감소를 경험한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을 감안하면 그 영향은 더 컸을 것으로 봅니다. 2분기 경제성장률 하락에 비해 노동시장의 충격은 훨씬 더 컸고, 이것은 우리 노동시장 구조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영어 표현의 ‘방 안에 있는 코끼리’라는 말처럼, 모두가 볼 수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죠.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집단은 아시다시피 특수형태근로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일용 노동자처럼 사회보장제도 밖에 있는 계층들입니다. 현 정부에서 이들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소득 지원 정책을 채택했다는 점은 매우 높게 평가합니다.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지난 20년 이상 위기가 발생하면 우리는 대체로 손쉬운 방법인 고용 조정을 채택했지만, 이번에는 고용 안정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고용 정책에서 새로운 정책 기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도화되지 않은 일회적인 정책의 한계가 명백하다는 점입니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지급 대상이 114만 명이지만, 실제 신청자는 176만 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들을 지원해줘야 하는데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개인이 각자 관련 서류를 챙겨야 했고, 그에 따라 지원금을 지급하는 시기도 지연되고 많은 행정 비용도 필요했지요.
정부, 취약 계층 직접 지원은 잘한 일…
제도 인프라 개선은 과제
코로나19 위기, 지금만의 문제 아냐…
고용 유연화로 사회 안전망에서 소외된 노동 사각지대 문제
- 신진욱
- 코로나19로 인해 고용과 소득에 충격이 크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것만은 아니라 오랫동안 있어왔던 구조적인 문제점이 더 심해지거나 가속화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위기는 어떤 의미에서 오랜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오건호
- 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지금 문제는 사실 지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전부터 있던, 알고 있던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로 폭발한 것이라고 봅니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기에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동안 사회안전망의 기본 구상은 노동시장에서의 표준화된 고용 모형, 즉 안정된 직장에 있는 사람이 고용 지위가 흔들릴 때 안전망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1980년경부터 노동시장이 유연화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안전망에서 포괄될 수 없는 새로운 노동 형태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그럼에도 기존 복지 체제가 조금은 미봉적인 방식으로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다 보니 계속 사각지대 문제가 커졌고, 결국 기본 소득 논의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다양한 고용 형태일지라도 소득이 있으면 그 소득에 따라 전체 안전망을 새로 짜는 것, 고용 지위에서 소득 기반으로 안전망을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출발점이 전국민 고용보험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2018년부터 기존의 고용 지위를 넘어선 방식의 안전망을 새로 짤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주고 있어, 서구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으로 갈 것이라고 봅니다.
낮은 사회보험제도 가입률···취약 계층 지원 정책 효과 떨어뜨려
정부, 보호 사각지대 살피고 체계적 제도 실행 필요
- 신진욱
- 제도의 문제에 좀 더 집중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행 고용보험은 가입자 비율이 50%에 미치지 못하고, 미가입자 중 70% 가까이는 가입 자격 자체가 없다는 문제점이 지적됩니다. 기존 제도가 이런 한계를 갖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이병희
-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은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일하는 사람 4명 중 1명은 자영업자라고 볼 수 있죠. 이들 대부분이 기업가형 자영업자라기보다 어려운 생계형 자영업자들입니다. 이러한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보험의 배제를 계속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또 학습지 교사, 택배 배달원, 보험설계사 등 자영업자와 임금 노동자 사이의 경계에 있는 특수형태근로자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고용 안전망에 들어가지 못하는 문제도 있죠. 다른 한편으로는 법적인 적용 대상임에도 미가입 상태로 보호받지 못하는 계층이 있습니다. 크게 보면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없거나(제도의 부재), 제도가 있어도 이를 준수하지 않는 문제(제도의 미순응)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의 원인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도 확장에 필요한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고용 형태 간 부담과 혜택을 공유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그런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규제를 무시해도 방치한 상태로 있었던 것입니다.
- 신진욱
- 현행 고용보험을 포함한 기타 근로장려세제, 고용유지지원금 등 대책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기존 제도들을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할지, 아니면 시스템 자체를 새로 만들어야 할지 궁금해집니다.
- 오건호
- 국내 노동시장이 굉장히 불안정한 고용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 니다. 그에 대한 대응 체계를 짜야 하는데 고용보험을 도입한 이후 진척이 미흡했습니다. 실제로 고용보험의 보호 대상이 되는 일용 노동자들의 경우 국세청에서 일용 노동자에 대한 소득 자료를 갖고 세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이들을 고용하는 사업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죠. 또한 지금도 고용보험의 가입 대상이 아닌 노동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는 논외로 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사람이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에도 행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사용자들의 무책임과 안이함으로 방치돼 있습니다.
- 신진욱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오건호
- 이런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소득에 기반한 사회보장제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정부의 소득 파악 능력은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IT(정보통신) 인프라 기반하에서 모든 거래 행위가 파악되기 때문에 제도 적용 대상을 하나하나 확대해나가기보다는 설계 원리를 소득 기반으로 바꾸면 노동 보호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이병희
- 부연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 정부에서 근로장려세제 등 저소득 가구에 대한 지원을 4조 원 규모로 획기적으로 늘렸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안정자금, 국민취업지원제도, 청년구직활동지원비 도입 등 굵직굵직한 정책을 많이 실시했 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방치한 상황에서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예를 들어 근로장려금이 가처분소득을 빠르게 늘리는 정책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분들의 사회보험 가입률이 40%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당장의 생활비 지원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실업이나 노령과 같은 미래의 사회적 위험에는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거죠.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방치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취약 계층 지원 정책은 그 효과가 반감될 뿐만 아니라, 재정적 지원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19년 보고서를 보면 사회보장제도가 고용 형태 간 격차를 줄이는 방법으로 개편돼야 하며, 그런 점에서 기여형 사회보험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국민 고용보험, 가입 대상 어디까지 적용할까?
일용 노동자, 특수형태근로자, 자영업자가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존재
- 신진욱
- 우리가 운전을 할 때도 사각지대가 넓으면 굉장히 위험하죠. 그런 의미에서 전국민 고용보험제도 논의가 나온 것 같습니다. 우선 ‘전국민’이라는 부분에 관해 말씀을 나눠보려 합니다.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개념은 현행 고용보험의 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업 상황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광범위한 계층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일 텐데, 핵심적으로 어떤 계층입니까?
- 오건호
- 경제활동인구의 약 45%, 대략 1,200만 명 정도가 제도권 바깥에 있습니다. 고용 보험 가입 자격이 있지만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일용 노동자 중심 으로 약 400만 명이고, 늘어나고 있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그리고 자영업자 이렇게 크게 세 그룹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 이병희
- 정부에서 고용보험의 단계적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고, 당장 오는 11월에 예술인이 고용보험 대상자에 포함될 예정입니다. 또한 현재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를 고용보험 대상자에 포함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입니다. 지난 5월 전국민 고용보험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을 보면 이러한 새로운 고용 형태뿐만 아니라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한다고 하셨는데, 이를 위한 소득 확인 인프라의 빠른 정비를 조만간 추진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다만 자영업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가겠다고 대통령께서 발언하신 바 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안은 오는 2025년까지 고용보험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만약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 인프라에 대한 부처 간의 합의가 원활히 진행된다면 그 시기를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개인적으로도 앞당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용보험의 자영업자 편입, 정확한 소득 파악이 중요
다수의 영세 자영업자, 재무제표 미비 등은 해결 과제
- 신진욱
- 전국민 고용보험과 관련된 쟁점 중 하나는 자영업자 계층을 포함시키는 문제 입니다. 한편에서는 자영업자 분들의 보험료 반발이 클 것이고 소득도 불투명해서 힘들다는 우려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영업자의 70% 이상이 고용보험제도 도입 시 가입하겠다고 응답한 조사 결과가 있고, 소득 파악 역시 문제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오건호
- 결국 고용보험제도 안으로 자영업자를 편입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소득 파악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자영업자에게도 임금 소득자에 준하는 원천소득 개념이 필요한데, 저는 이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매출이 파악되면 그에 기반한 이익률이 나올 수 있고, 현재 자영업자의 매출은 대부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임금 근로자가 매달 사회보험료를 내듯이 자영업자도 보험료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자영업자도 보험료를 내게 되면 어느 정도 비용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정 기간은 이들의 보험료를 부분적으로 감면해주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이병희
- 자영업자들을 어떻게든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사업소득자(자영업자)의 절반가량이 연소득 1,000만 원 미만인 지금의 상황에서 고용보험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과세 기준 미달이고, 재무제표 기장도 하지 않는 실정인 만큼 고용보험을 함께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는 많은 조사·연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소득 파악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실소득 파악을 얼마만큼 하느냐에 따라서 보편적인, 형평성 있는 제도로 발전할 수 있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 신진욱
- 현재 다양한 제도 개혁안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 한쪽에는 소득 비례 방식에 의한 고용보험을, 다른 쪽에는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실업부조 제도라는 두 기둥을 세우는 안이 많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제도가 설계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 오건호
- 현재 우리나라는 고용보험에 기반한 실업급여는 있지만 실업부조 제도는 없습니다. 소득이 작아 실업급여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고용 이력 등을 크게 따지지 않고 일정한 생계 보조를 하는 실업부조 제도가 보완재로 필요합니다. 다행히 내년부터는 실업부조 제도가 도입될 예정인데, 여전히 지원 금액이 월 50만 원씩 6개월 지급으로 너무 적습니다. 아직 시행 전이지만 급여 수준이나 포괄 범위를 넓혀서 좀 더 강한 실업부조 제도가 도입되기를 바랍니다. 전국민 고용보험과 함께 실업부조 논의도 좀 더 확장됐으면 좋겠습니다.
- 이병희
-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이중적 기능을 내제하고 있습니다. 소득 보장과 취업 지원 활성화 기능인데, 지금은 전자가 너무 약하게 도입됐다고 생각합니다. 대상자를 가구 소득 기준 중위 소득 50% 이하로 좁게 설정했는데, 우리 사회의 근로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여전히 고용보험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청년이나 경력 단절 여성처럼 노동시장에 신규로 진입하거나 재진입하는 계층들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 이라면 실업부조 제도가 잘 정착되기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시 많은 재정 필요…
재정 분담을 위한 연대 필요
가입 대상자 확대 위해선 중부담, 중급여로의 전환 불가피
- 신진욱
- 현재 일각에서 전국민 고용보험의 재원과 정부의 재정 건전성 문제를 우려하는 의견이 있고, 이에 대해 조세체계 개편이나 공정 과세를 강조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한편으로 여러 사회적 위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조세의 형태로 정부에 재정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은 계속 약화되고 있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전국민 고용보험의 경우 이런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 십니까?
- 오건호
- 실제로 전국민 고용보험이 도입된다면 꽤 많은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업급여 요구를 가진 불안정한 취업자들이 제도 안으로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기존 가입자와의 이해 충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는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위해서는 재정 확충에서의 사회적 연대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고용보험은 연대성이 강한 제도이고, 그런 면에서 기존의 고용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동자와 고용보험을 관리하는 정부가 이 제도의 지속 가능성과 안정성을 위한 재원 확충에 일정한 자기 몫을 분담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 이병희
-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노사가 각각 급여의 0.8%를 내고 있는데, 가입자의 부담이 이 정도로 낮은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두 배 이상 내고 있죠. 저부담, 저급여 체계로 지난 20여 년 동안 고용보험이 운영되어왔는데, 가입 대상자를 확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연대 원리를 확장하겠다는 뜻이고 결국 최소한 중부담, 중급여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이 낮은 취업자와 위험이 높은 취업자의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즉 부담과 혜택의 공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행정적 인프라만 가지고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정부의 힘만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돼야 합니다.
- 신진욱
- 징수 체계 면에서도 여러 이슈가 있지만, 프랑스의 일반사회보장세(CSG) 방식으로 현행 사회보험료 체계를 근로·사업소득 과세로 개편해 통합적으로 관리하자는 방안이 제안된 바 있습니다. 국세청 일원화는 노무현 정부 때도 추진했다가 반발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는데요, 이런 징수 체계 논의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 오건호
- 먼저 프랑스와 같은 조세 방식 도입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가 보험료 방식으로 경로가 많이 굳어져 있어 이렇게 가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으론 징수 시스템인데요, 현재 적용·부과는 근로복지공단 등 각 공단이, 징수는 건강보험공단이 하고, 국세청으로부터 소득 자료 협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득 기반 사회보험 체제에서는 보험률만 정해지면 적용·판정·부과·징수를 일원화하여 국세청이 하면 됩니다. 국세청이 과세 행정 업무에서 사회보장 시스템까지 같이 구축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고 봅니다.
- 이병희
- 사실 징수 체계의 문제는 행정부 내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소득 정보를 발굴하는 것은 국세청이 나서지 않으면 어느 공단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국세청에서 정보를 파악하고 제공해야 합니다. 징수 체계까지 일원화할 것인가는 가입자의 수용성에 따라 그 시기를 조정하면 될 것입니다.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를 한 번에 징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지만, 그에 따른 부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 ‘긍정적’…
더 높은 수준의 소득 파악 시스템 필요
고용보험 확대 위해서 ‘소득 기반 체제’로의 전환이 필수적
- 신진욱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기념사에서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공식화했습니다. 곧이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올해 말까지 전국민 고용보험 제도의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개혁안이 구체화되고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 오건호
- 정부가 2025년까지 2,100만 명 가입을 목표로 한 것은 좋다고 봅니다. 당장은 단계적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있지만, 2,100만 명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소득에 기반한 제도로 전면 전환하는 작업을 정부가 준비하고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신진욱
- 하지만 국민들이 느끼기엔 도입 시기가 너무 멀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 이병희
- 고용보험의 확대로 사각지대가 사라지면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도 사라지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정적인 근로시간 관리가 어려운 특수형태근로자, 프리랜서를 보호하기 위해선 결국 소득 기반 체제로 전환하지 않고는 고용보험 확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문제는 실소득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느냐 하는 것인데, 사실 국세청도 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업주가 원천징수 총액을 국세청에 보고할 뿐이지 개인별 내역은 보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세 행정의 획기적인 제도 중 하나가 원천징수인데,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만 원천징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상용 근로자가 1,800만 명, 일용 근로자가 780만 명, 특수형태근로자·프리랜서가 670만 명입니다. 중복 카운트가 포함된 수치여서 개인으로 따지면 더 적어지겠지요. 매달 하는 원천징수 신고를 개인별 내역을 신고하도록 법을 바꾸면 사각 지대에 있는 약 1,300만 명의 정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구 복지국가의 발달은 단순히 선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조세 행정 인프라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고용 안전망 강화는 사회적 계약의 문제… 대화 노력 계속해야
비용 분담, 부담 공유는 결국 배려와 연대로 이뤄져
- 신진욱
- 이미 올해 3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고용 안전망 강화를 위한 합의문’을 노사정 합의로 채택해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7월에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원 포인트 대화가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회적 대화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또 이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 오건호
-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서로의 의견 차이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고, 이것은 일종의 딜(deal)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계약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계약이 성사되고 구현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라는 절차를 거쳐야 되죠.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사회적 대화에 대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 이병희
- 지난 7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문에는, 노사정은 고용 충격이 취약 계층에 집중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형식이 어떻든 합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 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용 부담의 공유라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고, 결국 배려와 연대라는 원칙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기여형 사회보험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적 연대가 구현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제도 설계 과정에서 정말 고용 형태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논의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신진욱
- 끝으로 앞서 말씀해주신 노동 현실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여러 가지 제도 개혁을 잘 풀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점이 있으시면 이 지면을 통해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오건호
-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심각한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그것들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사회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취업 안전망에 있어서 고용보험이 그러한 연대를 가장 강하게 구현하는 제도이고, 지금은 반쪽인 제도를 전국민 고용보험을 통해 완성하자는 것입니다.
- 이병희
-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용어 자체가 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봅니다. 정확하게는 ‘취업자 고용보험’이 맞는 용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취업자 고용보험이 가능하려면 선진적인 행정뿐만 아니라 가입자들의 의식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미 사회적 사각지대를 방치한 경험이 있습니다. 과거 국민연금 적용 대상을 자영업자로까지 확대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바 있지요.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소득 파악 인프라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조세 행정과 사회보험 행정의 연계, 나아가서는 통합까지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신진욱
-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도 오늘 공부가 많이 된 것 같습니다.
- 오건호·이병희
- 오늘 좋은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