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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부당한 규제인가?

현행 언론 보도 피해 구제 제도

언론 보도로 인해 명예를 훼손당했거나 인격권을 침해당한 경우, 잘못된 보도로 재산상의 손해나 정신적 손해가 인정되는 경우에 피해 당사자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에 따라 정정 보도 또는 반론 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상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소송 제기도 가능하다. 해당 언론사나 기자 등 보도의 주체는 형사상 명예훼손죄의 죄책을 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행 구제책들은 피해자의 피해를 구제하기에 상당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정정보도 청구나 반론보도 청구의 경우 인용된다 하더라도 그 형식이나 양이 원래 보도와 현저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원 보도가 있은 지 한참 뒤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피해 구제책으로는 매우 부족하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연간으로 발간하는 <언론관련 판결분석보고서>를 보면 2009년부터 2018년 까지 10년간의 언론 관련 손해배상 청구 사건 2,220건을 집계, 분석한 결과가 실려 있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손해배상 인용액이 500만 원 이하인 경우가 전체 금전배상 사건의 47.4% 이며, 500만~1,000만 원인 경우가 23.4%를 차지한다. 즉 손해배상 인정액이 1,000만 원 이하인 경우가 전체 사건의 70% 이상을 차지해 실질적인 배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보도의 주체가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기소된다 하더라도 형법 제310조와 언론중재법 제5조 제2항의 면책 사유가 적용되는 경우가 있어 명예훼손죄가 인정될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현행 제도는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책으로 미흡한 데 비해 그 피해 사례는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다. 오히려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는 가짜 뉴스가 빈번해지면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가해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우 피해자가 입은 재산상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2월 법무부 민법 (재산법) 개정특별분과위원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본격화되었다. 그러다 2004년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불법행위 중 상대방에게 해악을 끼칠 적극적인 의사를 가지고 결과 발생을 용인하거나 의도적으로 그 행위를 저지른 때 등 일정한 경우에 행위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하는 제도를 도입할지 여부에 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문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쟁점에 대한 추가 검토를 거친 후 도입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구체적인 입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조물 책임법」 등 17개 개별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논의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2004년에 이어 2012년에도 논의되었다. 당시 언론의 악의적 보도에 대해 고액의 손해배상을 명하는 ‘언론피해구제법’ 제정을 추진하였으나 우리나라 법체계와 맞지 않고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언론계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 되었다. 그런데 제21대 국회 개원 직후인 지난 6월 9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관련 논의가 급진전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골자는 언론사가 허위 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 보도를 하여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해당 개정안의 내용이 알려지자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단체는 즉각 반대 의견을 표명하였다. 언론 단체의 반대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민형사상 책임을 같이 지우는 우리나라 법체계에 맞지 않다. 둘째, 개정안 중 ‘악의적인 보도’는 그 기준이 모호해 사법부의 자의가 개입될 우려가 있다. 셋째, 현행 언론 중재법의 정정, 반론 보도 등의 절차만으로도 충분히 피해 구제가 이루어지고 있다.1 그렇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반대하는 이러한 견해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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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반대론에 대한 반론

언론 보도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형사상 명예훼손에 대한 고소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점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논리적인 근거는 될 수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는 여타의 다른 법률에서도 손해배상의 원인이 된 행위가 범죄의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이에 대한 형사상 처벌을 제외하고 있지 않다.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은 주로 영미법계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의 법이 언론 보도에 대한 형사상 처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법체계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또 ‘악의성’에 대한 기준이 없어 법원의 자의적 개입이 우려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이미 언론의 불법행위 책임에 미국의 ‘현실적 악의론’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2 즉 법원이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경우에만 언론의 책임을 인정하여 언론사의 면책 범위를 폭넓게 이해하는 한편 손해배상액은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는 바람에 피해 구제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2020년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40개 국가의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최하위인 40위를 기록했다. 5년 연속 최하위 기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의 책임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제도의 도입을 언제까지 반대만 하고 있을 것인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논의는 이제 찬반을 벗어나 제도의 효용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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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구제의 현실화를 위한 방안

정청래 의원의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논의에 물꼬를 트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강화된 요건인 ‘악의성’에 대한 입증과 고액의 소가로 인한 소송비용의 부담으로 오히려 소송 제기의 유인이나 인용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에 대한 보완책이 그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 여타의 법률이 모두가 해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을 요건으로 하는 데 비해 언론 피해자만이 강화된 요건인 가해자의 악의성을 입증해야 한다. 정청래 의원의 개정안에 의하면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이 악의성의 개념 요소인데, 이를 피해자가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또 인격권 침해로 인한 손해는 통상 정신적 손해인 위자료이다. 그런데 이 위자료의 결정은 결국 판사에게 맡겨져 있어 처음부터 위자료를 소액으로 인정하면 3배 배상이라고 해도 실질적인 배상의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즉 무늬만 징벌적 손해배상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강화된 입증책임과 소송 부담만을 지우는 방식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피해자의 입증책임과 관련하여 악의성의 요소 중 언론사가 허위 사실을 인식하고도 왜곡 보도를 하였음을 피해자가 입증하면,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힐 목적이 없었음을 언론사가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의 전환 규정을 두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여타의 법률이 공통적으로 가해자가 고의, (중)과실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경우 면책되도록 하는 규정을 둔 것과 비교했을 때 언론사에 과도한 입증책임을 부과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제도의 효용을 높이기 위하여 배상액의 하한을 규정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더라도 실제 손해 인정액이 위자료를 상향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면 제도의 효용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손해를 300만 원으로 산정한 후 위자료를 3배에 해당하는 900만 원으로 인정하는 경우와 처음부터 손해를 900만 원으로 인정하는 경우 차이가 없게 된다. 따라서 배상액의 하한을 규정하여 판사의 재량을 통제할 수 있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실질적 피해 구제 수단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제51조 제3항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안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34조 제4항은 차별 행위가 악의적인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면서 배상액의 하한을 500만 원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결론

일반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이라고 할 때는 민사상 손해배상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 및 사회적 억제라는 형벌적 성격을 더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언론 보도 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논의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피해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 피해 구제의 현실화를 위한 측면이 조금 더 강조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용어보다는 ‘배액(倍額) 배상’이 보다 정확하면서 언론사의 반감을 약화시킬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 지수는 높으나 신뢰도는 최하위인 현실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으로 언론이 제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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