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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시대의 취약 노동

이제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다는 자신감으로 잠시 긴장의 고삐를 늦추던 8월 중순, 이번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강도 높은 코로나19 재확산에 한국 사회가 다시 얼어붙었다. 사정이 나은 대기업들은 속속 전면 혹은 부분 재택근무를 선언하며 위기 대응에 나섰다. 지난 3월과는 달리 신속한 대응에 어느 정도 정연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는 일부 소수의 사업장과 노동자 얘기다. 가상 사설망(VPN, Virtual Private Network), 협업 툴, 화상회의 장비 등 기술과 조직 역량을 갖추지 못한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직원들에게 그저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직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일자리 유지에 큰 문제가 없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간신히 살아나나 싶던 도·소매, 음식·숙박, 관광 등 대면 판매·서비스업 노동자들은 얼마간 안전을 희생하고서라도 붙들고자 했던 일자리와 소득 위기에 다시 직면하고 있다. 한층 예측 불가능해진 21세기 경제의 제도적 발명품 ‘고용유지지원금’이 지난 6개월간 위기 산업발(發) 고용 대란을 방어했지만, 유효기간 이후를 점치기는 어렵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는 더욱 위태롭다. 상황이 다소 개선되었던 2020년 6월 기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상용 노동자가 0.8% 감소하는 동안 임시·일용직은 2.2%, 기타 종사자는 4.1% 감소했다. 5월의 격차는 더 컸다. 고용유지지원 대상자 리스트에 쉽게 이름을 밀어 넣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다수 분포하는 계약직, 간접 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그리고 비경제활동 상태로 빠져버린 청년의 일자리 회복은 난망하다.

코로나19 위기로 노동자 모두가 실업의 벼랑 끝에 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이 늘어난 쪽도 있다. 특히 집 밖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집 안팎을 연결하는 대고객 서비스 노동자들은 최접점이든 후선이든 감염 위험 속에 집을 나서 폭주하는 노동을 감당해왔다. 배달 및 물류 서비스, 콜센터 서비스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고용 면에서 상대적 안전지대 안에 있는 이들이 팬데믹 와중에 가장 주목받은 노동자 집단 중 하나였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시작은 서울 소재의 한 콜센터에서 최초로, 그것도 상당한 규모로 발생한 일터 집단감염이었다. 대중의 일차적 관심은 콜센터 노동자를 매개로 한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긴장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뒤이은 질병관리본부의 세세한 보고와 이후 연구 논문으로도 제출된 감염 원인 분석은 자연스럽게 작업 환경의 취약성이 노동자 및 그 가족의 건강, 나아가 생존 위험과 직결될 수 있다는 사회적 자각을 높였다. 바이러스는 콜센터 노동자의 남편에게 옮겨 갔고 암을 앓던 그는 곧 사망했다. 나쁜 작업 환경은 새롭거나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그동안은 사회적 관심 밖의 문제였다. 의료 인류학자 김관욱이 콜센터 상담사에 대해 “상담사의 몸은 전염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위태로운 존재가 되고 나서야 겨우 주목을 받았다”1라고 쓴 것도 이런 맥락이다. 대표적 e-커머스 물류센터의 집단감염, 과로로 쓰러졌거나 유명을 달리한 일련의 택배 노동자에 관한 소식이 콜센터 집단감염 사건을 뒤따랐다. 그제야 비로소 다양한 고객 서비스 노동자들이 어떤 작업 환경에서 어떤 노동을 감당해왔는지 주목받게 되었다. 일부 소비자 사이에는 이들 업종 혹은 사업체 노동자를 바이러스의 숙주와 감염원으로 간주해 대놓고 기피하는 이기적 혐오 정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생활 밀착형 대고객 접점 서비스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관심이 높아졌다. 이들 일터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문제 발생이 우연적이었거나 일의 속성 자체에 기인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일이 조직, 관리되는 방식에 비추어보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이처럼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의 서비스 노동자가 오랫동안 직면해왔던 다차원적 취약성, 그리고 이들 취약 노동자들이 위기 상황에도 더 취약하다는 불평등을 드러낸 극적 국면을 제공했다.

다시 팬데믹의 공포에 휩싸인 8월에는 3월과 달리 집단감염의 진원이 여기저기서 발견되며 일터 감염 소식 역시 일상화되었다. 1차 위기 국면의 각성이 무뎌지면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일터도 다시 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에 콜센터와 배달 서비스 등 생활 밀착형 대고객 서비스 노동의 일상화된 다차원적 취약성을 짧게라도 다시 상기해보고자 했다. 최종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 사업은 지난 몇 년간, 그리고 최근의 팬데믹 와중에도 외형적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첨단 ICT가 매개하는 산업의 끄트머리에서 개인 혹은 도급업체를 통한 아웃소싱이 당연한 관행으로 확산되었고, 이로 인해 간접 고용 혹은 개인 사업 등 정규 고용 관계 밖의 노동 거래가 일반적으로 정착했다. 이에 원도급사인 사용자 책임도, 노동 관련 규제도 잘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되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변화하는 노동환경과 새롭고도 오래된 노동 이슈를 압축적으로 안고 있는 일터다.

택배 노동자와 과로사: 팽창하는 시장의 노동자 취약성

최근 수업을 진행하는데 한 학생이 택배 서비스가 신종 고임금 직종이라 했다. 잠시 의아하였으나 이내 2019년 4월 말 다수 일간지에 게재된 기사가 떠올랐다. 당시 각 신문사의 편집 데스크가 뽑았을 제목도 대동소이했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연소득 6,937만 원… 억대 연봉 559명”.2 대형 택배사가 택배기사의 연소득을 전산으로 산출했는데 의외의 고소득에 놀랐다는 것이 요지였다. 땀 흘려 일하면 억대 소득이 가능하다는 언급도 잊지 않았다. 또 이들이 사용자에 종속되지 않는 개인 사업자임을 강조하며 연령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배송 물량 협의로 일의 양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택배 일의 이점도 덧붙였다. 그러나 개인 사업자로서 차량 유지 등 제반 비용을 제한 후 실제 손에 쥐는 소득이 4,500만~5,200만 원이라는 사실을 제목에 올린 기사는 드물었다. 본문에라도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시간과 강도를 언급한 기사 역시 찾기 어려웠다.

1건당 배달료는 800원, 하루 150건을 배달하기 위해 8시간 동안 휴식 없이 노동하는 배달 기사를 떠올려보자. 시간 내에 배달을 완료하기 위해 건당 배달에 허용되는 시간은 3.2분, 기사의 손에서 나갈 차량 유지비 등 제반 비용을 제하기 전 하루 매출은 12만 원, 하루 쉬고 주 6일 일할 때 월 310만 원이다. 고용노동부의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한국의 평균 노동자는 월평균 총 152.4시간 일하고 총 314만 원을 벌었다. 건당 3.2분 배달이라는 고강도 노동으로 월 300여만 원을 얻는 이 노동에 붙은 언론의 반응에는 해당 노동의 가치에 어떤 사회적 편견이 서려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이들의 소득수준과 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아니라, 긴 노동시간과 과로에 따른 건강 위험과 지속 가능하지 않은 노동 자체에 있다.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진 분류 노동이 그 한 원인이다. 최근 만난 한 노조 간부는 대부분의 택배기사가 허브와 스포크를 잇는 간선의 하차 후 배달 물품을 분류해 자신의 차량에 탑재하기까지 6시간여를 쓴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물량이 많아져 그 이상 소요되거나 심지어 하루 2회 탑재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같은 이유로 물류센터 상차가 지연되면서 예측 불허의 대기 시간도 덩달아 길어졌다고 했다. 분류 작업의 무급 노동 여부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하차 후 분류 작업이 배달 노동의 일부인 한 ‘순수한’ 배달 1건당 3분여 정도 소요하는 노동자가 월 300만 원 정도를 벌기 위해서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는 간단한 산술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기 시간이 추가되면 하루 노동시간은 더 늘어난다. 더 벌기 위해서는 건당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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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황한 이야기의 배경은 현재 노동을 조직하는 방식이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초래 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지난 6월 27일 토요일 오후 7년간 일해온 40대의 숙련된 택배 노동자가 가슴에 급격한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배달 물량이 남아 바로 병원에 가지 못했고, 다음 날 다시 온 극심한 통증으로 응급실에 옮겨졌으나 결국 7월 5일에 사망했다.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이 노동자는 자신의 휴대폰에 아침 6시 30분 하루 일을 시작해 하루 300건, 한 달 7,000여 건의 물품 배달을 소화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주 6일, 하루 평균 13~14시간, 주당 80시간 이상의 고강도 노동을 이어온 것이다. 특히 올해는 휴가철 등 비수기도 없이 이런 날들이 이어졌다. 분류, 탑재, 배달을 포함해 물량 1건에 소요된 평균 시간은 2.8분. 밤 8시 30분~9시가 되어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건당 배달료가 800원 정도였다고 가정하면 월매출 620여만 원, 연간에는 7,400여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을 것이다. 앞에 언급한 기사에 따르면 평균에 가까운 택배 노동자였고, 이는 많은 노동자가 같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서울노동권익센터의 2017년 조사에서 택배 기사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13시간 22분으로 나타났는데, 코로나19 이후에 시간이 더 증가했으리라는 추정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과로와 심혈관계 질환 사이의 높은 상관관계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올해 상반기,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는 알려진 사례만 4건, 3월 이래 거의 매달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모두 과로사로 추정되는 사망이다. 또 모두 쿠팡, CJ대한통운, 로젠택배 등 대형사 혹은 그 대리점의 도급을 받은 노동자들이다. 중소형사의 알려지지 않은 발병과 사망은 어느 정도일지 알 수도 없다. 앞서 언급한 노조 간부는 경기도의 한 노동자로부터 자신의 동료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는 제보를 받고 경찰서 등 여러 단계로 수소문한 후에야 그가 결국 얼마 전 돌연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의 죽음이다. 작가 김훈은 한 해 2,000여 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는다는 통계 앞에서, 죽음의 일터가 일상화되고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감수성을 상실해간다며 비탄했다. 심혈관계 질환에 따른 돌연사는 중대 재해 판정을 받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판정을 받는다 해도 그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사이 누구도 죽음을 책임지지 않는다. 이들을 ‘고용’하지 않은 택배사는 사과하지 않는다.

혹자는 일을 자율 조절할 수 있는 ‘개인 사업자’인 만큼 해당 기사들이 스스로 이런 사태를 막을 수는 없는지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다. 근력, 속도, 민첩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고강도 노동을 생애 노동으로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꼬박 꼬박 나가는 차량 대여비(지입 차주에 대한 렌털비)나 차량 유지비만도 상당하므로 노동자 스스로도 체력이 감당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빨리빨리 문화, 소비자 주권주의를 깊이 내면화한 한국의 소비자는 종종 갑질과 욕설로 노동자의 자존감과 인격에 상처를 입힌다. 과로사한 노동자 사례가 보여주듯 숙련노동자일수록 최대 물량을 소화하려 강도를 높인다. 이 노동을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택배사 입장에서도 숙련노동자가 더 많은 물량을 소화해준다면 비용과 불확실성을 한층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원-하도급 모두 국가가 정한 근로시간 규제를 준수해야 할 의무로부터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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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노동자가 극한 노동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인은 낮은 배송 단가다. 2000년에 박스당 평균 배송 단가가 3,500원이던 것이 2018년에는 2,500원 이하로 오히려 35%가량 떨어졌다. 자동화 등 물류 시스템의 선진화를 감안하더라도 5조 원 이상으로 급성장한 시장에서 물량 위주 경쟁이 벌어져왔다는 점, 단위 물량당 노동비용 인상이 고려되지 않고 물량을 담보로 한 노동력 덤핑(social dumping)이 진행되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분류, 탑재, 배달 등 주요 구성 요소 각각에 대한 적정 보수를 책정하고 배달료를 현실화하면 배달 노동자도 자신을 단기간 극한으로 모는 소모적 노동력 사용이 아닌 장기간 지속 가능한 노동을 위한 합리적 선택을 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더불어 규제 공백도 해결할 문제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도로 위 안전도 위협한다. 근로기준법 적용이 어렵다면 도로교통법을 통해서라도 일정시간 이상 노동을 규제할 방안이 필요하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노동을 통제할 권리와 교섭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대형 플랫폼과 물류 시스템, 브랜드를 지닌 소수의 회사가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상황에서, 그리고 정해진 물량을 몇 회 이상 제때 배달하지 못하면 계약이 해지되는 상황에서 개인 교섭력을 발휘하는 노동자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더 일할 수는 있어도 덜 하기는 어렵다. 2017~2018년 무급 분류 노동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노조에 택배 노동자들의 공감(그리하여 가입)이 증가했다는 점이나,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특수 상황에서 조합원의 경우 12시 정각에 분류 작업을 딱 중단하고 배달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택배 노동자들의 자율성을 개인 사업자의 개별 교섭력이 아니라 집합적 교섭력이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법원도 이런 택배기사의 노조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다.

코로나19와 급증하는 음식 배달, 라이더의 위험 노동

코로나19 와중에 팽창한 또 하나의 영역은 음식 배달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관심이 급증한 플랫폼 노동의 주 무대다. 이륜차가 배달의 주요 수단3으로 피크 시간대 경쟁이 치열하다. 좁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데다, 배달 물품의 특성상 배달 노동자의 유연성과 민첩성이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의 상품 품질에 대한 민감도도 매우 높다. 복잡한 동선과 주문에 대한 제어가 주로 최근 성장한 스타트업 플랫폼 혹은 지역의 오프라인 기반을 가진 프로그램사들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빠른 기술 적응력 역시 기본이다. 이에 젊은 노동자의 진입이 많고, 노동자도 대부분 기사가 아닌 라이더라고 불린다.

그런데 원래 음식 배달은 무료 서비스라는 소비자 인식이 강하므로 이 영역도 손님을 끌기 위해서는 낮은 배달 단가 경쟁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플랫폼사의 대응은 기본 배달료를 낮은 수준으로 묶고 다양한 알고리즘을 통해 수시로 변동 수당, 이른바 ‘프로모션’을 다양하게 가동시켜 피크 시간대 라이더 운용력을 높이고 고객 불만과 이탈을 줄이는 데 집중된다. 언제 프로모션이 중단될지 모를 불확실성 때문에 라이더들의 불안감이 크고 이는 안전 문제를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게임과 같은 프로모션에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반응하는 라이더들에게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라이더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을 높이기도 한다. 최근 시장이 팽창하면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들고 진입하는 플랫폼사가 늘어 이런 종류의 경쟁이 더 강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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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배달료 체계가 부재한 상황은 매우 낮은 노동시장 진입 장벽과 결합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위험을 높인다. 라이더는 진입 시 대개 특별한 자격을 요구받지 않으며 사전 교육을 받을 의무도 없다. 소수 예외적 플랫폼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개인 사업자인 라이더 업계 인정을 비롯한 체계적 교육을 시행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교통사고 및 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상당히 줄었지만, 이륜차 사고는 같은 기간 13.7%, 사망자 수는 14.4% 증가했다. 올해 5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7.5% 급상승한 온라인 음식 서비스 거래액과 관련 있는 통계로 볼 수 있다. 사고가 많으니 종합보험료가 올라 접근성이 떨어져(현재 500만~700만 원 수준), 개별 라이더는 보험 미가입 상태에서 운전을 감행한다. 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보험료를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물량을 소화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폭주를 감행한다. 악순환이다. 올해 1월 산재 보호 대상이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되면서 법적 장치가 강화되었지만, 전속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 산재 보호 범위도 충분치 않다. 여기에 신속 배달을 재촉하고 강요하는 음식물 판매사와 소비자 행동이 가세한다. 대개의 플랫폼은 판매사와 소비자 사이에서 라이더를 보호할 적절한 장치를 결여하고 있다. 감염병과 폭우에 시달렸던 올해는 특히 라이더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그러나 기상 악화 상황에서 오히려 할증 프로모션이 가동되는 예도 적지 않았다. 감염병 위기경보 발효나 기상악화 시 감속, 지역/거리/배달 제한 등 안전조치를 신속하게 시행하는 플랫폼의 책임경영이 필요하다. 돌발적 위험상황에서 라이더는 수락한 업무라도 불이익 염려없이 배달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라이더와 플랫폼 사이 권리와 의무에 대한 상호 신뢰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다시, 양자간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소통과 교섭의 장이 중요한 까닭이다.

집단감염이 드러낸 콜센터 노동환경: 3월 이후의 콜센터는 달라졌나?

8월의 코로나19 2차 위기 국면에서도 콜센터 감염 사례가 몇 건 보고되었지만, 더 큰 규모로 급속히 확산되지 않은 것은 지난 3월 구로 콜센터가 던진 충격과 중앙 및 지방정부의 전격적인 방역 조치 경험에 힘입은 바 크다. 구로 콜센터와 업종은 다르지만 5월 집단감염이 발생한 쿠팡 물류센터는 유사한 이유에서 사고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고위험 작업장이었다. 20세기 화이트칼라 조립 라인으로 불리기도 했던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밀집형 서비스 작업장인 콜센터는 고객 상담을 위해 외부 소음을 최대한 차단하는 밀폐형 설계가 기본이다. 비용 절감은 대개의 콜센터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다. 노동 집약형 사업장이므로 비용은 저렴한 노동과 등치된다. 같은 맥락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인하우스 콜센터도 꽤 있었으나, 운영·관리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2~3년 단기 계약의 아웃소싱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도급업체 변경에도 대개 고용은 승계되지만, 업체 전환 과정에서 10% 남짓 저성과자 등을 정리하므로 실적 압박은 상존한다. 전자 매트릭스에 근거한 실적 위주의 타이트한 인사 및 임금 관리가 특징이다. 아웃소싱업체는 단기 수율 극대화, 비용 절감형 사업 방식을 채택하고, 같은 맥락에서 여유 인력을 허용하지 않는 긴박한 고용 관리로 노동강도가 높으며 휴가·휴직 사용에는 제약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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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업체는 단기 수율 극대화, 비용 절감형 사업 방식을 채택하고,
같은 맥락에서 여유 인력을 허용하지 않는 긴박한 고용 관리로
노동강도가 높으며 휴가·휴직 사용에는 제약이 많다.

한편 체력 및 감정 소모가 큰 강도 높은 노동으로 진입 초기 노동력의 이직률이 높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이다. 20~30대 여성을 주력으로 하는 콜센터는 비용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도 여성 노동력 수급이 용이한 대도시에 위치한다. 의외로 서울의 도심 혹은 부심에 콜센터가 종종 발견되는 이유다. 당연히 높은 부동산 비용으로 인해 협소한 공간 배치가 특징적이다. 1인당 1㎡ 남짓 밀집된 작업 공간에 사무 및 상담 기기의 공유로 인한 오염, 공기 오염 등 작업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체계 미비로 집단감염 위험이 상존했다. 또 상담 업무 특성상 비말 확산이 쉽고, 뭔가 불만을 토로할 고객 비중이 높은 서비스의 특성상 마스크 등 보호 장비 활용도 상당히 제약되었다. 더불어 휴식 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고객 평가에 민감한 성과 관리로 장시간 마스크 착용은 더더욱 힘들었다. 한편 첨단 기술에 기반한 서비스 센터지만, 정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에게 기술을 활용한 유연근무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다. 특히 고객 정보 보호에 민감한 사업의 경우 재택근무 등은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감염 초기 대처에 실패했던 구로 콜센터가 특별한 예외적 사례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단감염 발발 직후 NGO 단체, 직장갑질119의 콜센터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긴급 간이 설문 조사에 따르면, 1,560여 명의 응답자 중 상당수는 코로나19 이후 상담 업무량이 증가 했으나(66%), 사업장 내 특별한 예방 조치가 없었으며(86%), 발음 부정확에 대한 고객 불만으로 마스크 미착용 상태로 업무를 진행한다(75%)고 응답했다. 그러나 정부의 예방 지침 발표와 긴급 점검 후 약 3주 정도가 지난 4월 초 2차 조사에서는, 책상 등의 위치, 방향 조정, 노동자 사이 투명 칸막이 또는 가림막 설치, 근무 밀집도 개선, 안전 장비 비치 등으로 위험에 대한 상담 노동자의 우려가 눈에 띄게 축소되었다. 일부 여유가 있는 공기업·대기업 콜센터는 간이 공간을 마련해 노동자를 분산하고 재택근무를 시행하기도 했다. 사업 모델의 특성상 고위험 사업장으로서의 위험은 여전히 상존하지만, 근무 여건 및 환경 개선으로 위험과 불안을 다소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2차 조사에서도 연차 및 휴가 사용의 어려움, 충분한 휴게 시간 미보장 등의 응답이 다수를 차지해 콜 볼륨 증가와 안전 조치 및 건강권 확보 간에 상당한 충돌이 있음을 암시했다. 같은 맥락에서 콜이 몰리지만 거리 두기 등의 이유로 일자리를 늘리지 않아 재직자의 작업 강도가 높아졌다는 응답도 다수 있었다.

출처 경기도청 120 경기도 콜센터

한편 집단감염 후 몇 개월이 흐른 8월 중순에 한 노조의 보도 자료와 관련 연구자 인터뷰로 접한 구로 콜센터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집단감염과 함께 구두연장된 하도급사 계약이 연내 만료됨에 따라 구조조정 불안이 높아진데다, 원도급사가 경영 실적 악화를 이유로 상반기 성과 수당 삭감과 하반기 성과 수당 비지급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성과 수당이 콜 볼륨과 같은 정량 지표의 일정 기준을 달성하면 지급되는 고정급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성과 수당 삭감 조치를 임금 삭감으로 해석했다. 노동자들은 원도급 손해보험사가 작년 대비 감소했지만, 1분기에도 적지않은 당기순이익을 올렸다는 점, 3~6월 집단감염 후 자가 격리 및 확진에 따른 입원 등으로 정해진 서비스 수준을 맞추기 어려웠다는 점, 또 이러한 상황이 콜센터의 취약한 근무 환경 및 관리 마비와 관련된다는 점을 들어 사용자의 귀책사유를 노동자의 실질적인 임금 축소로 대응한 데 대해 강한 실망을 드러냈다. 집단감염에 대한 원도급사의 사과가 없었다는 점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19 집단감염 이후 여러 조치가 원-하도급 관계나 그로 인한 노동자의 취약성을 개선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취약성 완화의 제도적 조건

코로나19 국면에서 드러난 대고객 서비스 노동자의 다면적 취약성은 각 업종의 고유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확산된 기업 간, 기업-개인 간의 하도급 관계에 수반되는 독특한 작업 조직 방식에 기인하는 바가 컸다. 대고객 서비스의 성격상 소비자의 특정 행위 패턴 역시 여기에 영향을 주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이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산재 의무 적용, ‘감정 노동자 보호법’ 확대 적용, 취업자보험(이른바 전국민고용보험) 적용 등 법·제도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적지 않다. 감염병 사태를 계기로 필수서비스노동으로 정의하고 보호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개인 사업자, 도급노동자라 하더라도 집단적 목소리를 만들고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좌우할 사용자와의 협의 통로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기제인 노조화를 위한 노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배달 노동자 조직을 담당하는 한 노조 간부는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인격이 무시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 현장에서 잠깐 일하다 갈 뿐이라는 노동자의 인식이 조직화의 최대 장애라는 것이었다. 지속 가능한 노동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노사 관계, 소비자 관계의 기본 조건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행위 주체 간에 신뢰를 만들 수 있는 인내심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시장의 질서를 주도하는 원도급 사용자의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태도와 이에 대한 사회적 촉구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음식 배달 플랫폼 노사의 주도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 실험은 주목할 만하다. 빠르게 확대되는 배달 플랫폼 시장 생태계의 건강과 신뢰를 회복하고, 시민사회에 대한 노사의 책임을 강조하며,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생태계 내 주요 노사 행위자들이 사회 협약을 체결해 자율 규범을 만들어가자고 뜻을 모은 것이다. 이 실험은 작은 규모지만 새로운 모델의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아웃소싱과 새로운 노동계약관계의 확산으로 법·제도나 단체협약의 사각지대와 노동자 취약성이 확대되고 있다.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노동계약 당사자의 신뢰를 쌓는 다양한 제도적 실험이 앞으로 활발히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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