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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의 공간, 지역의 과학기술 R&D 체계 강화 필요성 - 소준노(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분과 부위원장, 우석대 제약공학과 교수)

들어가며

코로나19 극복 방안으로 제안된 한국형 뉴딜이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라는 3가지 가치 영역을 갖춘 형태의 한국판 뉴딜로 진화하고 있다. 이어 국가 대전환을 위한 지역균형 뉴딜로 확산·진화하며, 전략의 실체가 지역이라는 물리적·문화적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지역 주도의 틀이 마련되었다. 이제 대전환은 ‘2050 대한민국 탄소 중립’을 위한 그린에너지 기반 탈탄소 경제 사회 구축으로 이어지며 그 폭과 크기를 더해간다. 격동적인 산업구조 개편이라는 도전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이 강화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역대 정부들은 국토의 불균형 발전을 해결하고 성장을 지속하고자 다양한 성장정책과 지역정책을 개발하여 실행해 왔다.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하며 고속으로 진행되던 선진국 중심 세계화의 여건하에서, 궁극적으로 우리 나름대로 균형적인 국가 발전을 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연속선상에서, 국가균형발전의 기본 구조를 재구축한 문재인 정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기존의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제반 사업들을 밀도 있게 추진하고 그 성과를 얻는 데 역점을 두었으나, 예상외로 강력한 팬데믹이 되어버린 코로나19의 파급력을 분석하며 모든 계획을 다시 설정하였다. 현실적으로 실행 중인 과제들이 지닌 관성력과 성과의 추수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그 과정 중에 코로나19 이후 세상의 새로운 기반 조성에 필요한 미래 전략을 짜야 하므로 이 시점의 전환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한 한계 때문에 놓칠 수밖에 없었던 큰 틀의 국가 개조 방향을 다시 숙고하고 필요한 전략을 준비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혁신의 기회를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공동체의 미래가 결정된다. 이제 우리가 선택한 대전환의 공간이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의 공간인 지역이기에 지자체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데 필요한 소통 구조가 지역에서 작동해야 한다. 지역과 사회적 대화에 기반한 전략들이 미래를 위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진정한 혁신을 위한 대전환이 우리 사회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는 양극화, 불평등, 불균형 등의 갈등 요인을 해결하는 데에는 지역 기반과 역량의 강화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지역의 과제: 인구 변화, 지역 혁신 그리고 일자리

인구문제는 어느 사회든지 해결 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특히 지역이 합리적인 대응책을 완비하지 못한 현실에서는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인구 구조 변화가 사회 기반을 해체하는 수준의 지역 소멸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인구 변화는 자연적인 원인보다는 지역 문제에 대한 미숙한 사회적 대응과 정책적 안이함에서 기인한다. 여전히 지역에 적용하고 있는 인구 규모 기준의 단기 성과 몰입 정책은 지역의 인적자원과 취약한 인프라를 더 약화시키고 있다. 인재 유출이 가속되고 산업생태계가 부실해지며 일자리가 줄어드는 좋지 않은 순환고리가 형성되어 더욱 사태를 악화시킨다. 단순한 변화의 누적만으로는 이런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충격적인 지역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대전환의 공간, 지역의 과학기술 R&D 체계 강화 필요성 세종시 로컬푸드 직매장(출처: 세종특별자치시 홈페이지)

지금도 진행 중인 국가균형발전은 지역에 혁신도시라는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생각과 방법을 도입하여 지역을 혁신하려는 시도다. 지역 혁신에 필요한 역량을 단기간에 확충하는 방법으로 경험과 역량이 축적된 공공기관의 분산 배치를 선택한 것이다. 선순환을 촉진할 이 충격을 지역이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지속해서 지역 혁신으로 이어가려면 지역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주민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여 혁신을 수용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 축적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일의 크기와 관계없이 역동성을 갖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사례가 있다. ‘로컬푸드’는 그 지역의 일자리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킨다. 이를 통해 경제활동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노령의 농촌 주민들은 보다 넓은 소통 구조를 가지게 된다. 다양한 소비자들의 요구와 생활방식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지며, 동시에 사회공동체에 기여하는 일에서 얻은 존엄성과 자신감을 스스로 경험한다. 구성원들의 요구와 자신의 입장을 조정하여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경험이 지역공동체에 축적되는 것이다. 작지만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지역 혁신에 필요한 주민의 역량 축적이 일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성원의 이해가 서로 부딪쳐서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지역 이슈들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 내려면 다양하고 고도화된 혁신역량 축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역동성을 수반한 지역 일자리를 새롭게 마련하는 데에 역점을 두어야 함은 물론, 보다 적극적인 역량 축적을 위한 과감한 정책적 수단들이 지역의 여건에 맞추어 실행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R&D 현황과 지역 R&D의 중요성

세계 2위 수준의 GDP 대비 총 R&D 비용을 투자해가며 과학기술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아가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정부의 2021년 R&D 예산이 SOC 예산을 넘어섰으며 올해보다 13.1% 증가된 27조 4,000여억 원 규모다. 이와 같은 R&D 규모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투자 대비 과학기술 R&D의 낮은 효율성이 논란거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 R&D 경쟁력의 근본인 기초연구의 특성과 괴리된 연구비 지원 구조, 불필요한 경쟁 유발 PBS 제도, R&D 생태계의 부실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성과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더욱이 과학기술 R&D 투자는 단기간에 과실을 거두기보다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그 파급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국민적 단합과 적극적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지난해 일본의 무역 도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상황이나 올해의 팬데믹에 대응한 성공적인 K-방역 성과의 저변에서 제 역할을 한 혁신적인 과학기술 역시 그동안 국가적으로 꾸준하게 늘려온 R&D 투자의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국가 R&D 혁신 방안을 수립하고 연구자 중심의 창의적, 도전적 R&D 지원체계 강화, 혁신 주체의 역량 강화, 국민 체감형 과학기술 성과 확산이라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지속적인 국가적 관심과 투자에 기반하여 자원 투입 부문과 혁신 활동 부문은 매우 우수한 수준에 도달해 있으나, R&D 지원제도와 문화 저변 등을 포함하는 혁신 환경 부문은 하위권이라는 저조한 상황으로 엇갈려 있다. 전반적인 과학기술혁신역량지수(COSTII)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과학기술혁신역량은 OECD 7위권으로 양호한 편이지만, 지식 창출이 혁신적 시장 가치로 연결되는 국가 지식 가치사슬의 구성요소가 부실한 점이 취약 부분이기도 하다. 범국가적 R&D 컨트롤타워 기능을 조정하고 지역 공간의 혁신역량이 강화될 수 있도록 R&D 혁신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과제다.

여러 가지 정책적인 요인과 지역의 미흡한 역량을 이유로 지역의 과학기술 R&D에 대한 이해와 투자가 소홀하게 취급되어온 게 현실이다. 과학기술 R&D의 성과가 시장 가치로 연결되지 않은 이유가 시간과 장소에 관련된 ‘지역 지식’을 제대로 결합시키지 못한 데에 있다면, 소홀했던 지역 R&D 체계를 정비하고 강화하는 일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지역은 R&D 기획·관리 전담기관이 없거나, 테크노파크 또는 연구개발지원단 등의 중앙정부 관련 조직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지방의 지역과학기술위원회의 운영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지역 R&D 조정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조차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는 2018년에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른 ‘제5차 지방 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18~’22)’을 마련하여 지역 주도 혁신성장을 위한 과학기술 혁신 전략으로 삼고 있다. 나아가 매년 준비된 시행계획에 따라 관련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동안은 지역에 대한 R&D 투자가 중앙정부 주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기획 경험을 가질 수 없었고 그에 따른 역량 축적도 저조하였다. 큰 방향은 지역의 R&D 투자 결정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지역 단위의 R&D 투자 총괄계획을 수립하고, 중앙정부는 지역이 기획한 R&D 과제를 계속 지원함으로써 지역 주도적 지역 혁신 시스템이 확립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전환의 공간, 지역의 과학기술 R&D 체계 강화 필요성 전라북도는 R&D 컨트롤타워로서 위상 강화를 위해 2019년 전북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도지사로 격상하였다.(출처: 전라북도 홈페이지)

민간 참여를 확대하기 위하여 지역에서 진행할 R&D 사업의 기준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설정하고 추진한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지역 주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역 주도는 목표가 아니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지역 R&D 영역에서도 강화된 주민의 혁신역량으로 스스로 과제를 발굴하고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지역주민은 높은 수준의 의사 결정과 다양한 정보를 경험하게 되며 혁신역량은 더욱 고도화될 것이다. 당분간은 해오던 것처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공공기관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겠지만, 이제는 부분적으로라도 과제를 발굴하는 첫 단계부터 주민이 직접 참여하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 범위와 정도가 점점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지역 혁신이 지속성을 가지게 되며 지역의 과제를 해결할 현장 적합성이 높은 지역주민 주도 R&D 정책도 마련될 수 있다.

지역 R&D는 지역 주도 혁신성장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은 그 본성상 상당한 정도로 가치중립적이고 그 R&D의 결과 또한 분명하기 때문에, R&D 진행 과정에서 생기는 이견이나 갈등을 용이하게 조정하면서 합의에 도달하는 강렬한 경험을 하도록 해준다. 지역 R&D는 참여하는 지역주민에게 바로 이런 긍정적인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여 사회적 합의 기술이 축적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혁신은 공동체의 다양성에서 나온다. 획일화된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진정으로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없다. 다양성은 갈등이 생기는 여지를 주기도 하지만,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으면 갈등 대신 혁신을 만든다. 이렇듯 주민이 직접 참여하도록 만들어진 개방적인 지역 R&D 체계는 국가 경쟁력의 씨앗을 담은 소중한 자산이다.

지역은 한국판 뉴딜의 ‘정의로운 전환’이 실현되는 공간

지역 혁신을 견인하고자 지난 시기에 실행한 다양한 정책과 전략은 그 시점의 사회적·경제적 요구와 추세에 대응하면서 지역 발전에 영향을 미쳐 왔다. 어떤 정책은 다른 것에 비해 훨씬 오래도록 파급력이 지속되고 사회 전반에 걸쳐서 문화적 기초가 되기도 한다. 그 효과가 단기간에 그치는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여 지역사회의 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주민 스스로 요구와 결정에 따라 시작되는 경우나 출발은 관료 주도지만 적극적인 주민의 참여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지역 혁신의 전통으로 이어진다. 지난 시대의 농촌정책, 노동운동, 시민활동 등의 사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정적인 사례는 주민 참여가 낮은 편협한 목표를 가졌거나 회복이 이루어지기 힘든 자연 훼손을 내재한 경우에서 흔히 보게 된다.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지역 혁신과 지역 발전 관련 영역의 정책은 주민의 자발성, 즉 지역정책을 주민 스스로 결정하는 촘촘한 주민자치가 진정한 성공 여부의 결정 요인이다.

그동안 지역에서도 각 영역의 관련 공공기관과 기업 등을 중심으로, 인공지능과 데이터 과학기술이 동력인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혁명과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 트렌드에 나름대로 대응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수준에서 진행된 지금까지의 대응과 노력마저 소극적이고 느린 대응처럼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지금의 위중한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도, 코로나19 이후의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도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한국판 뉴딜은 특정 정부를 넘어 향후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고 문제 해결의 표준을 제시하는 국가혁신 전략으로 인식 되어야 한다. 개별 사업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혁신을 포함하는 대전환의 미래 비전’으로 연결되도록 전반적인 구조를 다시 만드는 것이 목표라야 한다. ‘공간·지리적 정의’가 실현되는 관점에서 현재와 미래 세대 모두를 위해 설계되고, 전 국토 영역으로 확장된 변화를 가속할 수 있는 구조가 의미 있다. 이 경우도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지역의 역할이 구조화해야 정책 성공의 새로운 모형을 얻을 수 있다. 한국판 뉴딜의 성공이 ‘지역화’에 달렸다.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느냐에 그 여부가 걸려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은 탄소 중립(넷제로)을 실현하는 일이다. 이제 출발했지만 그린 뉴딜이 확장되고 진화하면서 가야 할 절대 목표다.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서 선언한 ‘2050 대한민국 탄소 중립’은 전 지구적인 동참이 요구되는 인류의 과제다. 혁신적인 그린에너지 생산체계 구축과 과감한 산업구조 재편이 계획되고 실천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려면 이제까지 견지해온 성장과 효율성 패러다임을 먼저 탄소 중립에 부합하는 기준으로 바꾸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주민 주도와 적극적 참여를 좌우할 전제 조건이다.

탈탄소 경제 사회로의 전환은 경쟁력을 갖춘 재생에너지의 확보에 달려 있다. 지리적 여건은 다양하지만, 우리 국토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주요 재생에너지원은 태양광과 풍력이다. 여기에서 생산된 전력을 기반으로 해서 산업구조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탈탄소 신산업으로 개편되어야 탄소 중립의 친환경 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자연 환경 조건에 따라 변동이 크기 때문에 연속적인 전력 생산을 보장할 수 없다. 이런 간헐적 생산 특성 때문에 잉여 생산된 재생에너지 전력은 저장하거나 수소 같은 형태로 변환시켜 사용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원이 존재하는 지역마다 지리적 여건이 다르고 전력 생산과 소비 패턴도 다를 수 있어서, 이 영역도 현장에 적합한 경쟁력 있는 최적의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 지식이 결합된 에너지산업 R&D가 지역 주도로 수행되어야 한다. 생태계 존중의 정의로운 전환을 제대로 진행하는 데에도 혁신적인 지역 R&D의 역할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냈으며,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확연히 다른 세계를 탐구하도록 추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구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간단명료한 진리도 다시금 되새겼다. 대응 과정에서 인정받은 대한민국의 선도적 역할은 축적된 정보통신과 바이오 영역의 과학기술이 공동체 우선의 시민 참여 행동과 결합한 K-방역으로 각인되었다.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현장 경험이 결합한 드라이브스루 검사와 생활치료센터 등과 같은 새로운 기준과 모범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장 지식(지역 지식)의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밀집은 전염병의 확산에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분산된 지역 공간을 활용하는 효율적인 방안이 다양하게 마련될 것이다. 전염병 대응 역시 지역의 조건에 맞는 과제들이 도출되고 관련된 지역 R&D가 갖춰져야 현장에 적용되는 실용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역에서도 K-방역의 성과를 이해하면서 다시금 집단 학습의 기회를 얻었다. 과학기술 R&D의 한 부분을 경험을 통해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을 대전환의 역동적인 공간으로 삼는 착상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제안될 수 있다. 전염병의 확산은 막으면서 통행은 더 수월할 수 있는 교통시스템, 팬데믹에 강한 실내구조를 만드는 건축 기술, 살균된 공기를 순환시키는 경제적인 공기조절시스템 등도 공간·지리적 지역 지식이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생태적 기술이다. 생태적 기술은 원래 지역 지식의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하게 다룰 때 적용 영역이 분명해진다.

지역 R&D 혁신 자원 강화 방안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선제적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거나 신산업 육성이 필요한 경우, 통상적으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주요 전략은 혁신에 필요한 관련 R&D 지원과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지원이다. 다양한 종류의 정부 주도 지원 사업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지원들은 소외되는 산업부문의 피해를 막아줄 안전망이 구축된 기반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혁신 자원과 역량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역사·지리적, 문화적, 사회 경제적 여건이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나은 여건을 가진 지역이나 그렇지 못한 지역이나 공통적으로 자기 지역의 낙후도가 줄곧 심해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지역 주도 혁신 성장을 위해 지역의 자율성과 지역 과학기술 역량의 강화에 역점을 두었던 중앙정부 주도의 전략은 일정 부분의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기술혁명과 인구문제를 비롯한 거시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는 부족하였으며, 자치분권의 기반이 되어야 할 지역 혁신역량 축적에 기여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이를 보완하고 극복하기 위한 정책 마련과 지원이 실효성을 가지도록 중앙정부의 설득과 지역의 과감한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지역의 R&D를 통합적으로 전담 관리할 책임 있는 컨트롤타워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실행해야 한다. 스스로 지역의 R&D를 기획하고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지역 전문가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형 혁신체제로 운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주민자치 영역의 확대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지역과학기술위원회가 명목상의 기구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강화되도록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소통하며 지속해서 설득하고 요구해야 한다. 지역 과학기술의 투자와 사업을 정하는 데에도 지역의 혁신 주체들인 과학기술 전문가와 주민이 연대하고 협력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주민과 지역 과학기술계가 지역의 문제를 선정·기획하고 해결하는 주체가 되는 일은 후세대에게 과학기술이 지역 혁신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현장에서 보여준다. 주민 스스로 과학기술 정책을 다룰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지역 주체들의 역량을 강화시킨다.

지역 혁신을 위한 기존의 지역 거점대학 지원 방안은 개방-혁신 시스템으로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지역 국립대학별로 대학 특성과 여건에 맞는 지원을 통해 지역의 혁신역량을 강화한다는 현재의 사업은 단순한 지역 국립대 지원 사업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현재는 지역 혁신에 대한 별 파급효과 없이 결국 대학 내부 사업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지역혁신 주체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려고 연구와 교육 거점을 대학에 둔다는 착상은 옳다. 일반적인 연구 및 교육 지원사업과는 구분하여, 지역 혁신 주체 역량 제고를 위한 사업의 운영과 관리는 그 지역에 속한 모든 대학과 R&D 관련 공공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관리·운영하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그 사업의 거점이 어느 대학으로 정해지든지 소재만 그곳에 있는 것으로 하고, 그 대학의 일부처럼 그 대학이 관리·운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역이 필요로 하고 지역이 결정하는 그런 종류의 사업은 지역주민과 지자체가 관리하는 독립된 운영시스템을 갖도록 조직화해야 지역 혁신역량 축적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혁신도시 소재 공공기관이 보유한 역량을 소재 지역의 혁신역량 강화에 기여하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이 지역의 관심 과제나 주민의 요구에 맞는 연구 영역을 설정하는 경우, 제반 비용을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역 혁신 강화 관점에서 전략적인 협력연구 지원이 있어야 한다.

청년을 위한 공간과 지원 방안이 다양한 형태로 마련되어야 한다. 미래 세대가 대전환의 시대를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재구조화를 거치게 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탄소 중립 사회의 격동적 변혁에 대응하고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청년 활동 영역을 반드시 줘야 한다. 청년 세대가 주도하는 지역 R&D를 통해 상호 존중과 연대, 협력의 혁신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지역이 ‘에꼴 42(école 42)’1를 만들면 안 될 이유가 있는가. 미래를 위한 준비다.

대전환의 공간, 지역의 과학기술 R&D 체계 강화 필요성
대전환의 공간, 지역의 과학기술 R&D 체계 강화 필요성 프랑스의 에꼴 42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개소식이 2019년 12월 20일 개포 디지털혁신파크에서 열렸다.(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맺음말

지역에서 혁신역량을 키우는 데에는 중앙정부의 지원이나 기업 투자와 같은 외부의 역할이 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 역량 강화에 필요한 근본적인 힘은 주민 참여와 학습 기회에 달려 있다. 스스로 고유한 핵심가치를 세우고 지역에 필요한 일을 결정하는 주민자율성이 진정한 역량이다. 대전환의 사회적 대화를 위한 기본 동력이다. 규모가 큰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마을 단위까지 촘촘하게 심화되는 주민자치를 전제하는 자치분권이 필요한 이유다.

익숙해지면 급격한 변화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길 테지만, 흔히 급격한 변화는 사회적으로 불안을 야기한다. 변화의 격동기에는 일자리를 둘러싼 환경의 지형이 크게 바뀐다. 혁신과 포용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재난 상황과 기술혁명이 촉발시킬 지형 변화를 포용의 장치인 사회적 대화로 풀어내야 한다. 확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 미래의 속성이다. 예기치 않은 문제와 어려움이 돌발적일 수 있다. 주민 스스로 상황을 주도하는 경우 돌발의 충격이 완화될 수 있다. 다양한 지역 R&D를 경험하면서 학습 기회를 가져야 하고 그런 경험의 축적을 통해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역량을 강화해야 주도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긴다.

지역 발전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다양한 지역정책에 이어 최근에는 메가시티 논의까지 있다. 지역 발전과 지역 혁신이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발전 정책이나 제안 또는 진행 중인 사업들을 표현한 지도가 많다. 그런 공간분석 자료용 지도와 지역별 인구소멸 위험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겹쳐 보면,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소멸 위험지역들이 지역 발전 정책이나 핵심 사업들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판 뉴딜과 탄소 중립 사회로 가는 노정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지역의 혁신역량과 자원 미흡을 이유로 낙후지역은 습관적으로 제외하는 인식이 가장 먼저 혁신되어야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다.

  1. 2013년 프랑스 파리에 민간 주도로 설립된 대안적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으로 교수, 교재, 학비가 없는(3無) 학생 주도적 학습 등 혁신적 교육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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