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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개정의 쟁점과 포용적 재생산 정책 - 김경희(정책기획위원회 지속가능분과 부위원장,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과 그 이후

2020년,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모든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산적한 정치·경제적 현안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진통하고 있다. 필자는 이 와중에 다른 이슈들에 밀려 입법시한이 목전에 있지만 별다른 전망이 어려운 ‘낙태죄’ 개정의 쟁점과 재생산 정책의 과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형법의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임신부가 낙태할 때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임부의 동의를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한의사·조산사·약제사 등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70조 제1항이 헌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낙태죄는 1953년 형법에 규정된 이후, 2012년에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이 있었고, 그 후 7년 만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현행 낙태죄는 2020년 12월 31일까지만 적용되며, 올해 말까지 대체입법안을 마련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 자동 폐지된다. 헌법불합치의 이유는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규정한 우생학적, 유전적, 전염성 질환, 강간, 근친혼, 보건의 사유를 제외하고는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한 어떠한 사유와 기간에 대한 고려 없이, 전면적이고 일률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처벌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잉 침해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했고, 임신 전 기간에 걸쳐 여성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헌법불합치 판결로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여성의 출산을 통제해 온 정부 정책의 변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정부는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별다른 사회적 논의 없이 입법시한 약 3개월을 남겨 둔 10월7일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의 요지는 현행 ‘낙태죄’를 유지하면서, 임신 14주까지는 임신중지(낙태)를 허용하고, 15주에서 24주 이내의 임신중지는 ‘일정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신중지의 조건으로 상담과 숙려를 의무화했다. 정부는 개정안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실제적 조화를 추구했다고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해 활동해온 시민사회에서는 30여 개 이상의 비판 성명서가 발표됐으며,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문화된 ‘낙태죄’

개정안의 취지에도 나타나듯이 임신중지를 둘러싼 논의는 여성의 선택권 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이분 구도로 전개되었고, 법률에서는 태아의 생명권 프레임이 지배해왔다. 여성과 태아는 분리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대립하는 구도를 형성해온 것이다. 막상 생명권 존중 프레임은 현실정치에서 모순적으로 나타났다. 낙태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과정에서 산아제한 정책과 호주제 영향 아래서 음성적인 임신중지가 행해졌고 용인됐다. 모자보건법의 우생학적 사유에 따른 낙태 허용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생명존중의 가치와도 모순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저출산 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임신중지와 비혼을 저출산의 원인으로 보고 처벌을 강화하고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동안 여성의 출산과 임신중지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주목하기보다는 도구적 관점을 취했던 것이다.

2017년 낙태죄 폐지 촉구 청원 인원이 20만 명을 넘어 청와대는 임신중지 실태와 낙태죄 폐지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는 답변을 한 적이 있다. 그 후속 조치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8년에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 생애에 임신을 경험한 사람의 19.9%가 인공임신중절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 개정에 찬성한 여성은 75.4%에 이르렀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여성은 59.9%, 남성은 43.7%가 낙태죄 폐지에 찬성했으며,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여성은 30.1%, 남성은 42.5%가 응답했다. 2030세대는 훨씬 높은 60% 이상이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 연령별 차이가 있으나, 낙태죄 개정을 요구하는 대중적 인식이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임신중지를 방지하겠다는 입법의 목적이 제 기능을 한 것은 아니다. 임신중단 수술로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을 받은 의사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27명에 불과했고, 2018년 이후 낙태죄로 기소된 사례는 모두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거나, 불법 임신중절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도 적용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1

‘낙태죄’ 개정안의 쟁점들

현재 논란을 이해하려면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요지를 개괄하고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개정안은 임신 14주 이내에는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으며, 임신 15주에서 24주 내에는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낙태 허용 예외 사유와 덧붙여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함께 고려한 취지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임신 주수의 기준은 임의적이어서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임신 초기에 판별이 어려운 경우도 문제가 된다. 무엇보다 여전히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것은 여성을 판단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쟁점이다.

둘째, 개정안은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의 경우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상담과 24시간의 숙려기간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4시간이 경과해야 임신중지가 가능하고, 수술 시기가 늦어져 여성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위기 갈등 상황의 임신에 대해 상담 등의 조치를 통해 사회적 지원을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사회적 상담 지원에 대한 원칙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은 문제가 지적된다.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정보, 교육, 건강관리를 위한 상담 지원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나, 그 목적이 위기상황을 입증하기 위한 것에 두어지는 것은 문제인 것이다.

셋째,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배우자 동의 요건을 삭제하고, 자연유산 유도 약물을 허용하였다. 자연유산 유도 약물의 허용은 그동안 여성들이 요구해왔던 것으로 이번에 반영되었다. 또한 심신장애가 있을 때 법정대리인의 동의로 대신할 수 있고,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의를 필요로 하지만, 어려운 경우에는 상담사실확인서 등으로도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를 가진 사람과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의 제한이라는 점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넷째, 개정안은 의사의 개인적 신념에 따른 낙태 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의사가 임신중지 시술을 거부하게 되면 임신 출산 등에 관한 긴급전화나 종합상담기관에 대한 정보를 안내할 의무를 두고 있다. 그러나 시술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의료기관을 안내할 의무가 명시되지 않아 상담기관을 거치는 동안 임신중지 시기를 놓치거나, 시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전전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 의료 서비스의 접근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또한 임신중지 시술 거부권은 진료 거부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의료법과도 상충하여 쟁점이 된다. 한편에서는 의사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진료 거부를 용인하는 최초의 사례여서 이후에 의료접근성을 저해할 개연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

‘낙태죄’ 개정의 쟁점과 포용적 재생산 정책 지난 11월 5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낙태죄 완전 폐지를 위한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낙태죄’ 개정 과정의 폐쇄성과 사회적 논의의 부재

어느 사회에나 각축하는 사회적 쟁점이 있고, 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자 하며, 그 일환으로 여러 입장을 경청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 낙태죄 개정은 첨예한 사회적 쟁점이기 때문에 개정안 마련 과정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대화가 요청됐다. 그러나 낙태죄 개정 과정은 임신중지 비범죄화 입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커다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현 정부는 성인지 관점을 사회 정책에 반영하고 성폭력 및 성차별적 조직문화를 근절하려는 취지로 8개 부처에 양성평등담당관실을 설치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 거버넌스의 주요 기구로 양성평등위원회를 두고 있다. 낙태죄 주무 부처인 법무부의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8월에 낙태의 처벌에서 여성과 태아가 평등하고 안전하며 건강하게 임신 및 출산, 임신중단, 그리고 출생과 성장이 가능한 여건을 조성하는 법과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방향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와 재생산권 보장을 권고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그 권고와는 다른 방향을 담고 있다. 모자보건법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또한 임신중지 비범죄화 입장에 대해 폐쇄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 성평등위원회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추진 방향과 주요과제를 건의하였고, 자문위원회를 개최하여 개정 경과와 내용에 대한 공유와 논의를 출산정책과에 요청하였다. 그러나 형법 개정안이 나오지 않아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공유하기 어렵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들었다. 그러나 개정안의 골격은 이미 8월에 국무조정실 주관의 차관회의에서 정해져 있었고, 자문위원회는 입법예고 불과 일주일 전에 개최됐다. 양성평등정책을 위한 자문기구를 부처에서는 정책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입법예고기간도 형법은 40일이었으나, 모자보건법은 예고기간 단축의 특별한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2주에 그쳐, 논쟁의 여지를 축소하고 다른 의견을 경청하려는 의지가 희박함을 보여줬다.

또한 사회정책에 성인지 관점을 반영하기 위한 성별영향평가법 제2장 제5조에 따르면 법령의 개정은 성별영향평가의 대상이며 법제처 법령안 심사 이전에 평가를 결과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원칙적으로는 법 개정 이전에 사전 평가를 하고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개정안은 입법예고 이후에 성별영향평가 의견을 주무 부처에 의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랜 기간 국민적 관심사이며 여성건강 및 성평등 관련된 사안에 대해 그 절차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회 본회의 종료를 하루 앞둔 12월 8일에 낙태죄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하지만 낙태죄 존치론자 6인과 폐지론자 2인으로 구성되어 공청회 참여자의 편파성으로 심한 비판에 직면했다.2

낙태죄 개정 과정에서 보인 사회적 논의의 부재는 정책에 대한 신뢰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갈등이 진통을 동반한다고 하더라도 낙태죄와 같은 중요한 사안에 대한 사회적 대화는 필수적이다.

포용적 재생산 정책의 과제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포털사이트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구하는 청소년에게 산부인과 의사를 사칭해 접근해서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에게 징역 23년이 구형됐다는 기사를 접했다.3 임신중지를 처벌하기 때문에 음성적인 방법으로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임신중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추세는 처벌이 아니라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유엔의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협약 국가에 임신중지의 합법화를 비롯하여 임신 및 임신중지 전후의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권고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2018년에 한국 정부에 대해 낙태죄 폐지와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권고한 바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도 낙태죄 개정안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담고자 했으나, 낙태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어서 비범죄화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정부의 개정안과는 달리 일부 여당 의원들은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대표적으로 권인숙 의원안은 낙태죄 전면 폐지와 임신 주수나 사유의 제한 없이 임신 중지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사회는 임신중지 비범죄화와 함께 재생산권 개념을 중심으로 한 포용적인 재생산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재생산권은 여성의 출산을 인구 조절 정책의 대상으로 보는 것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로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1950년대 이후 제3세계의 인구 증가를 빈곤과 자원 부족의 원인으로 우려한 국제기구는 출산 조절을 위한 국제원조와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우리나라의 가족계획 사업도 이런 맥락에 있다. 그러나 경제개발 패러다임에 입각한 출산 조절 정책은 제3세계를 타자화하고 여성의 출산을 국가 관리의 대상으로 봤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서구 여성운동에서도 재생산권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의 권리 확보를 위한 중요한 정치적 의제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재생산권은 차별·강압·폭력 없이 출산 여부·자녀수·시기·방법을 선택하고, 이에 대한 자원과 정보의 접근을 보장하는 권리로 정의된다.4

‘낙태죄’ 개정의 쟁점과 포용적 재생산 정책

한국에서는 2016년 낙태죄 폐지운동에서 본격적으로 성과 재생산권 개념을 제기하기 시작했으며,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의 권고 내용인 여성이 평등·건강·안전·행복하게 임신·임신중단·출산할 권리를 보장하고, 태아가 건강·안전·행복하게 출생·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패러다임은 재생산권의 의미를 풀어 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말까지 국회가 대체 입법을 하지 않는다면 형법의 낙태죄 처벌 조항은 없어지고 결국 임신중지는 비범죄화될 것이다. 또한 인공 임신중절수술의 허용에 대한 모자보건법 14조도 무효가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임신중지에 대한 포용적 재생산 정책 접근을 위한 견고한 논의와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보건 의료 서비스 정책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앞으로 남아 있는 중요한 국정 과제라 할 수 있다.

  1. 사문화된 낙태죄, 폐지가 답이다.”, 〈여성신문〉, 2020. 10. 27.
  2. “낙태죄 개정 시한 다가오는데…국회는 ‘졸속 공청회’”, 〈경향신문〉, 2020.12.08.
  3. “포털서 임신중지 문의했다 성범죄 노출...청소년 의료상담 지원 시급”, 〈한겨레신문〉, 2020.12.22.
  4. 성과 재생산 포럼 기획,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후마니타스, “낙태죄 폐지 투쟁의 의미를 갱신하기” 『나영』, 2018,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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