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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중 정책 제언 - 황재호(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위원,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11월 25~27일 방한했다. 왕 부장의 방한은 지난해 12월에 이은 1년 만의 재방문이며 올해 8월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다녀간 뒤로 3개월 만이다. 코로나19로 정상 간 회담도 영상회의로 대체되고 외교 수장들의 해외 방문도 드문 상황에서 중국 외교의 쌍두마차가 모두 찾는 것은 그만큼 한국 중시와 한국의 높은 전략적 가치를 방증하는 것이다.

이번 왕이-강경화 외교장관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오는 2022년 한중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한중관계의 발전 방향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한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를 출범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양국은 2017년 ‘실질적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합의했지만, 무엇이 ‘실질적 전략적 협력’인지에 대해서는 그간 분명치가 않았다. 만약 중국의 대외 정책 슬로건인 인류운명공동체에서 한국에 대한 정책이 ‘(너는 내) 운명’이 아닌 ‘(지구촌) 공동체’에 가 있다면,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를 한중관계의 재정립 및 재도약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한중 양국의 발전 방향이 어떠하면 좋을지, 그리고 어떤 수준으로 설정하면 좋을지 몇 가지 정책 제언을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즉, 양국은 신형 한중관계를 수립해야 하며, 북핵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한국의 운전자 역할 지지를 확보해야 하며, 북핵 이외 영역으로도 협력을 확대해야 하며, 우리의 대중(對中) 관계를 연미합중(聯美合中)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제언하고자 한다.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신형 한중관계를 수립해야

코로나19 상황으로 계속 늦어지고 있으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이루어지면 양국 관계는 상당 부분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시 주석의 방한 여부와 무관하게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내심 한국 외교에서 자국 비중이 높아지길 기대하는 만큼 우리 역시 신형 한중관계(新型韓中關係) 수립을 고민해야 한다. 중국어로 ‘신창타이(新常態)’란 성장률 목표는 낮춰 잡되 지속해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적으로는 ‘서로 감당할 수 없는 기대는 낮춰 잡되 지속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관계로의 전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형 한중관계란 외교적 신창타이에 의거, 가능한 양국 협력을 한 걸음씩 실천하는 관계를 말한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되 차이점은 다음으로 미루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가 아닌 차이점도 해소해 나가는 구동화이(求同化異)의 관계다. 갈등과 오해가 발생해도 대화와 소통으로 해소 가능한 관계이기도 하다.

이번 정부는 중국과 이미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선언하였는데 이것이 실제에 부합하려면 몇 가지 ‘전략적 협력’이 가능해야 한다. 첫째, 양국은 보다 안전한 안보 환경의 조성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간다. 즉,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특히 한반도의 미래 건설에 함께 노력할 수 있다. 둘째, 양국은 보다 발전된 경제 환경 조성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간다. 즉, 지속가능한 경제 협력의 합리적·포괄적 합의의 바탕 위에 공동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셋째, 양국은 보다 개선된 인간안보 환경 조성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간다. 즉, 질병·재해·범죄·환경·테러 등 초국가적·비군사적 안보 사안에 대해 함께 협력할 수 있다.

이어 네 가지 기제가 작동되어야 한다. 청와대 차원의 위기 예방·관리 기제, 정부 차원의 외교·경제 2+2 고위급 전략 대화 기제, 군 차원의 비전통안보 협력을 통한 군사 신뢰 기제, 당 차원의 정치리더십 간 소통 기제가 그것이다. 특히 당 소통은 실질적 협력의 추동력이다. 한중 양국이 합의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경제·문화·외교로 확대되었으나, 안보·군사 영역의 이해차로 관계 발전의 정체 현상이 발생했다. 신형 한중관계 수립을 위해서는 중국공산당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새로운 접근법으로서 양국 당 정치리더십 간 소통 기제 강화가 필요하다.

그 때문에 시 주석의 방한 이전까지 한중 외교 당국은 이미 논의했던 많은 내용을 양국의 미래 발전 정책으로 충분히 숙성시켜야 한다. 이러한 협력이 가능하다면 양국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실질적’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 협력을 강화해야

한중 안보 협력의 시작은 쌍중단(雙中斷)이다. 쌍중단은 쌍궤병행의 전제조건이다. 쌍중단이 양국 유대의 최소 요건이다. 중국에선 쌍잠정(雙暫停), 한국에선 쌍중단으로 불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이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되어야만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진행) 과정에서 기회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중국이 큰 그림과 의지를 보이도록 하고, 양국은 평화체제와 비핵화 원칙, 입장에 상호 공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편 미중 갈등 상황에서도 중국은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북핵 해결에 대해 우리 마음보다 더 급하지는 않아도 한중 간 관련 이해관계는 상당 부분 일치한다. 시진핑 주석은 문제 해결을 위해 ‘조건’을 만들자고 강조했는데 어떤 창의적 방안이 있는지 협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중국을 ‘패싱’(소외)하지 못할 바에야 오히려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중국을 형식적으로 소외시킬 수 있어도 내용적으로는 역학상, 구도상, 상황상 어렵다. 오히려 중국은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평화체제의 내용과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에서 밑에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때문에 중국 ‘패싱’ 논란이 재발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몽니’를 경계해야 한다. 향후 중국을 한반도 문제의 상수(常數)로 두었을 때 한반도 논의는 더 복잡해질 수 있지만, 중국을 패싱함으로써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걸리는 시간보다는 덜 걸릴 것이다.

현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양국 간 달성 가능한 목표를 협의해야 한다. 특히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자 한국과 중국은 각각 무엇을 할 것인지 서로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격랑의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의 한반도 ‘촉진자’ 역할을 중국이 다각적으로 ‘촉진’할 수 있다면 한중관계를 긍정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운전자 역할 지지를 확보해야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 많은 논란이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원했던 소기의 목적은 사실상 달성되었다. 북미와 남북 간 직접 만남이 이뤄졌고 한반도 평화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대신 평화체제 과정에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 이는 한반도 상황이 나빠져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주변 환경이 개선되면서도 올 수 있다. 혹 상황이 악화되어 북한이 한국을 거부하거나 미국이 우리를 패싱할 수도 있다. 그래도 지난한 과정에 한국 역할이 중시될 상황이 얼마든지 있다.

비핵화 관련 북미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할수록 갈림길이 온다. 잘되면 전환점, 안되면 폭발점이지만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전환점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한국은 주변국이 오해할 수 있는 중재자나, 스스로 폄하하는 중개자가 아니며, 전체 국면을 제대로 전개할 수 있도록 방향과 틀을 잡는 설계자(planner)이자 기획자(designer)다.

정부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 필요한 시점과 구간에 다시 운전대를 잡을 기회는 계속 있을 것이다. 필요할 때 나서고, 나설 때 믿을 만한 운전자야말로 신 한반도 운전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한국은 포뮬러 원 역사상 최다 우승과 기록을 경신했던 독일의 자동차 경주 선수 미하엘 슈마허일 필요는 없다. 동네 지리를 가장 잘 아는 마을버스 기사처럼 구불구불 골목길을 밤낮으로 묵묵히 안전운행을 한다면 화려하지 않아도 모두가 우리 역할을 인정할 것이다. 결국 한반도 비핵화는 가야 할 길이 먼 만큼 길게 호흡해야 한다. 과속도 저속도 아닌 안전운행으로 한반도에 큰 전진을 이뤄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국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있도록 명분, 기회,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북핵 이외 영역으로도 협력을 확대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2월 20일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 코로나19 임상 치료 경험 공유와 방역 당국 협력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 첫 행보가 3월 13일 국장급 ‘한중 방역 협력 대화’ 화상회의였다. 곧이어 20일엔 한중일 외교장관 화상회의가 열렸으며 26일 문 대통령이 제안한 주요 20개국(G20) 특별화상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한국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은 꼭 북핵 해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방역 협력은 한중 양국이 북핵 이외 협력의 범위를 넓히는 데 유용한 동기이자 영역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는 가운데 한중 양국의 방역 모델은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중국 모델은 강력한 통제와 격리이고 한국 모델은 대규모 신속 검사, 투명한 정보 제공 및 사회적 거리두기다.

한국의 대중 정책 제언 2019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중국도 코로나19 외교에 적극적이다. 인류운명공동체의 한 축으로서 인류 방역 공동체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참여 국가들과 방역 실크로드를 건설할 의지와 여력이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의 반감과 경계심이 높다. 이에 비해 한국 모델은 국제사회의 호응도가 높다. 한국은 미중을 포함해 G20과 개발도상국 모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좁히기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K-방역과 C-방역 협력 여부와 강도에 따라 남북 생명안전공동체,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를 넘어 지구촌 인간안보공동체 실현의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다. 당장엔 한중일 3국 차원에서 협력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향후 10년 3국 협력비전을 채택했다. 국제사회 차원에서 전염병, 기후변화 같은 초국경 재난·재해 사안에 효율적이고 통합적으로 상시·수시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공동 협력체계 논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수십만의 희생자가 나왔는데 웬만한 현대 전쟁의 사상자 수보다 많은 만큼 글로벌 이타주의 차원에서 협력의 여지가 적지 않다.

협력동반자 관계를 어떤 수준으로 설정할 것인가?

국내에서는 한중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사자성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짧은 네 글자에서 우리의 전략이 읽힌다. 하지만 용어의 잘못된 사용으로 우리 자신과 상대국가에 혼동과 오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우리와 상대국 모두 이해되고 수용 가능한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가장 먼저 안미경중(安美經中)이다. 과연 우리 외교의 근간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인가? 안미경중은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지금 미국은 중국을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배제하고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만들려 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도 고민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안보 영향력에 그치지 않고 한국에 반중(反中) 경제전선 동참을 요구하는 등 경제 영향력도 확보하려 한다. 중국은 중국대로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로 우리에 대한 경제 영향력을 심화하면서 북핵 협력을 매개로 안보 영향력도 점증시키고 있다. 사드(THAAD)가 한국 경제를 위협했듯 이미 안보와 경제 사이 경계선은 무너졌고 미중 기술·경제 경쟁 속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는 더 커졌다. 안미경중이라는 표현 자체도 미국에는 안보 이익, 중국에는 경제 이익만 탐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결미연중(結美聯中)은 한국어로는 ‘미국과 결속, 중국과는 연대’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어로는 ‘미국과 결합, 중국과는 연맹’이란 뜻이다. 중국에선 연맹(聯盟)을 동맹(同盟)과 함께 쓴다. 미국보다 중국을 더 중시하는 느낌을 준다. 원래 의도가 미국과 동맹하면서 중국과의 좋은 관계의 유지라면 오히려 ‘미국과 동맹, 중국과는 결속’이라는 뜻의 연미결중(聯美結中)이 맞다.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친화’란 연미화중(聯美和中)은 표현상 문제는 없으나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 합의한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정확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화(和)’라 함은 화해, 우호 정도 의미로서 우호협력관계(1992년), 21세기를 향한 협력동반자 관계(1998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2003년)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협력’이라는 의미의 연미합중(聯美合中)이 현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수준에 더 부합한다. 협력동반자의 협력을 중국에서는 합작(合作)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대중 정책 제언

미중 관계와 국제질서 흐름을 주시해야 한다

국제질서가 코로나19 전후로 나뉜다면 미국 외교는 트럼프 전후로 나뉜다. 트럼프 시대 미중관계는 투키디데스와 킨들버거의 이중 함정에 빠졌다. 중진국의 함정을 넘어섰는지, 미국과의 경쟁에 ‘시간의 함정’을 파고 있는지 중국의 대응도 주목된다. 국내외 일각에서는 이미 국제질서가 미중 신냉전에 돌입했다고 단언한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변의 즉각 ‘올인’을 주장한다. 정말 우리는 신냉전에 들어섰는가?

하지만 미소 냉전이 이념·군사적 대립이었다면 미중관계는 정치·경제적으로 많이 얽혀 있다. 세계화 결과로 경쟁이 70, 협력이 30이다. 그래서 정확히 하자면 신냉전이라기보다 신경쟁이 맞다. 또 조 바이든 시대 미중관계도 경쟁 측면이 많겠지만 협력의 여지도 많다. 미중 경쟁은 역사 속 늘 있었던 강대국 간 경쟁이다. 또한 문명 간 충돌도 아니며 국익의 충돌, 상호 불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섣부른 해석은 오히려 상황을 오판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 외교는 국제질서 흐름이 어떻게 변화할지 주시해야 한다. 섣부른 판단으로 한쪽에 ‘줄을 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미국의 여타 동맹들의 반응을 살피며 한 템포 느리게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미중 사이에서 최악을 피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지난 4년 미중관계는 미중 수교 이래 가장 격렬했고, 이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있었다. 문 정부는 남은 1년여 절체절명의 외교안보 과도기를 현명하게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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