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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인 제안내용

제목
학교를 바꿔주세요
작성자
naver-user
분류
초·중·고 교육
작성일
2021-10-18
조회수
160
내용
학교를 바꿔주세요

차례

학교를 바꾸지 않으면 학원에 보내라
공교육의 목적
교육의 목표
미래 인재
학생의 자유
교육의 양
수행 평가
평가 제작
인성 교육
진로 교육
교육정책
수업시간
교사와 강사
교육과정과 법
시험
교사의 자율
교과서
대입
교육방식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예체능
학습예측
특수교육
해결 방법


학교를 바꾸지 않으면 학원에 보내라

학부모님. 학원에 보내십시오.
현재의 대한민국 공교육은 당신의 자녀를 길러주지를 못합니다. 학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학습지를 시켜도 되고, 인터넷 강의를 들어도 되고, 과외를 시켜도 되고, 문제집을 풀도록 해도 됩니다. 어떤 방법이든 좋으니 공교육만을 신뢰하는 짓은 하지 말아주세요.
소수의 학생을 빼고는 공교육은 당신의 자녀를 훌륭하게 기르지도 못하고, 공부를 잘하게 만들지도 못합니다. 인성도 기르지 못하고, 사회성을 기르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교육과정이 그렇게 짜여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교육과정은 이미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데 최적화가 되어 있습니다. 배우기 위한 교육과정이 아닙니다. 복습하기 위한 교육과정입니다.
어떻게 수업을 잠깐 듣고 한글을 배울까요? 어떻게 수업을 잠깐 듣고 글쓰기를 배울까요? 어떻게 두 시간의 수업으로 덧셈을 외우고, 구구단을 배울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안 됩니다.
초등교과의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와 같은 주지 교과는 잠깐 복습해주는 용도로 되어 있으며, 미술 교과를 통해 그림 그리는 법조차 배우지도 못하고, 음악 교과를 통해 계이름조차 배우지 못하고, 체육 교과를 통해 운동을 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중학교에서 더 어려워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더 어려워합니다. 학교만 믿고 올려 보내기에는 당신 자녀의 일생은 한 번 뿐입니다.
주변에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만나보았지만 예외는 극히 일부였고, 교육과정에서 말하는 목표를 이루는 학생도 소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변해야 합니다.
저는 교육과정을 고발하고, 그 교육과정대로 짜인 교과서를 고발하여 대한민국의 교육을 변화시키는 것이 이 책의 목표입니다. 이 책을 읽고 학부모님만의 전략을 짜서 자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아니면 최종 내용처럼 교육과정을 갈아엎고, 대한민국 정책을 싹 갈아엎기를 바랍니다.

왜 학원인가?

학원은 사교육으로 학생들을 잘 지도한 곳만 살아남는 구조입니다. 잘 가르치지 못하거나 아이들을 즐겁게 하지 못하면 사장되는 구조이지요. 잘 가르칠수록 돈을 많이 법니다.
하지만 학교는 공교육으로 학생들을 잘 지도하고, 잘 지도하지 못하고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잘 가르치는 교사를 판별하지 않기 때문이죠. 또한 가만히 연차만 싸여도 돈을 많이 법니다.
그렇다면 공교육과 사교육 둘 중에서 어떤 교육이 빠르게 성장을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사교육입니다. 사교육은 잘 가르치면 더 많은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사교육은 점점 더 잘 가르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공교육은 점점 더 잘 버티는 사람이 남게 됩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실력도 있지만 공교육의 가치를 위해 남는 분들도 계시죠. 그러나 아닌 분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공교육은 잘 가르치는 교사를 판별하지 못하고, 사교육은 잘 가르치는 교사를 판별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이 구조적인 차이가 교육의 질을 바꿉니다.
게다가 공교육의 경우에는 계속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선생님들을 괴롭히는 구조입니다. 각종 업무들이 쏟아지기도 하구요. 학원은 학생을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데, 학교는 학생을 가르치는 수업보다 각종 잡무들이 엄청나게 있습니다. 수업 시간보다 업무를 하는 시간이 더 많기도 합니다.
또한 승진구조라는 공교육의 시스템을 따르기 위해서는 공교육에서는 각종 업무를 더 많이 하고, 대회에서 수상을 해야 승진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업무를 잘하는 사람이 승진을 하기도 하지요.
학원은 어떤가요. 수업을 잘하고, 성적을 잘 올리는 교사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학원에서는 수업 준비를 하고, 같은 수업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수업을 더 잘하게 됩니다. 그러나 학교는 한 번의 수업을 하고, 수업이 사장되기도 합니다. 학원은 일 년에도 여러 번 수업이 가능한 구조이고, 학교는 일년에 한 번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담임교사의 경우에는 한 번만 하는 수업이 많지요.
물론, 학교의 목적은 학생의 인성과 사회성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각종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곳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인성과 사회성조차 측정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좋은 교사를 선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는 좋은 교육을 선별하기도 어렵고, 이에 따라서 교육의 발전이 더딘 것이지요.
우리는 ‘측정할 수 있는 것만이 체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 공교육에 비해 사교육은 ‘학생 수’라는 간단한 측정도구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교육은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고, 더 나은 교육이 가능합니다. 측정될 수 있으니 더 잘 가르치는 교사가 남는 것이지요. 학교가 다양한 내용을 측정하기 전까지는 사교육이 더 좋은 가르침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교육의 목적

공교육의 목적은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을 보장하는 것이다. 각 나라의 국민으로서 최소한으로 알아야 하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이 공교육의 목적이다. 이는 지식, 기능, 태도를 포함하는 것으로 학생들이 앞으로 사회에 나갈 때 꼭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공교육이 변질되어 일정 수준을 학습하지 못해도 다음 학년으로 진학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각 학년에서 꼭 배워야할 내용을 배우지 못해도 진급할 수 있게 되자 학년이 올라가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더욱 웃긴 것은 최고의 교육기관이라는 대학까지 이상하게 되어서 학사를 받았음에도 그 내용에 전문적이지 않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는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총점의 70점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교사가 되거나 최소점수만 통과해도 교사가 되고 있다. 이는 교육이 최소 기준도 잘 채우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최소수준을 배우지 않아도 진급하게 되면서, 교사들도 최소수준이라는 것을 설정하지 않는 교사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각 교과별로 분명하게 배워야할 내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아니,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시간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학교에는 교사마다 고유업무가 있고, 이 업무를 하기 위해 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적다.
게다가 교사가 가르치는데 주어진 시간은 특정 내용에 따라 매우 부족하기도 하다. 수업을 하다보면 정해진 수업 시간에 비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시간이 훨씬 많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가르칠 수 있는 시간, 즉 시수는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가르칠 수가 없다.
여기에 학생마다 수준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게 가르쳐야 하는데 이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예를 들어 1학년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3학년만 되어도 수업하는 데 곤란함을 느낀다. 이런 부분이 4학년, 5학년, 점차 학년이 올라가면서 더 많은 곤란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영어와 수학에서 더 잘 드러나기 때문에 학생들은 영어와 수학 학원을 다니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기초학력을 보충할 수 있는 수업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교육을 따로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학원에서 배우거나, 인터넷에서 찾거나, 집에서 따로 배운다.
심지어 학교에서 최소한으로 배워야하는 것을 잘 배웠는지 국가에서는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기초학력평가를 하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은 없다. 연 1회 테스트 하는 것으로 학생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학교는 학생들은 최소한 알아야 할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배우지 않아도 진급할 수 있는 현재 공교육의 시스템으로는 대책이 없다. 배워야 하는 것은 꼭 배우도록 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며, 이 시스템이 나오기 전에는 학원에 보내야한다.

교육의 목표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행복하고, 사회에 행복을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다.
행복은 ‘자신의 만족하고, 타인에게 만족을 더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만족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교육은 일반적인 만족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이 만족을 누릴 수 있도록 기르는 것이 교육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만족은 무엇일까? 우리는 만족하는 순간을 보면 의식주가 확보된 상태에서 만족한다. 편안한 곳에서,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뜻한다. 의식주를 누리는 방법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의 방법으로 의식주를 누리는 것이 일반적인 만족이다.
타인에게 만족을 주는 경우는 무엇일까? 앞서 말한 자신의 의식주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동을 뜻한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생육으로 기쁨을 주기도 하고, 의식주를 만들어주고 도와주는 행동도 있고, 국가나 집단에 이득을 주는 방법도 있다. 이 외에도 만족을 주는 서비스를 통해서도 타인에게 만족을 주면서 자신도 행복을 누린다.
그런데 자신이 누리고 있는 만족감보다 더 큰 만족감에 집착을 하거나, 남이 누리고 있는 만족을 빼앗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우리는 불행한 사람으로 본다. 불행하기 쉬운 방법으로는 거짓말이 있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불행한 것이다. 또한 살인-간음-도둑질-질투와 같은 것으로 스스로를 불행하게도 한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자신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식주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살 수 있게 하며, 불행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여러 교과들을 배우고 학교에서 연습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교육의 목적이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흔히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이 교육의 최종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이 의식주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명문대에 진학하지 않아도 의식주 확보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회구조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의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대학입시는 중요할 것이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공공자본주의’가 필요하다. 부동산과 자본을 49년에 한 번씩 자발적인 기부를 받고 기부자의 자손까지 혜택을 누리게 해주어야 한다. 근본적은 자본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하프리셋(Half-Reset)해야 대학에 안 가도 괜찮은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사회 구조의 혁신은 불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원에 보내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는 공정한 교육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잘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 인재

미래 인재는 미래에 잘 적응하는 천재다. 천재(天才)는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재능도 있는데 시간과 장소, 사람에 맞게 잘 적응하는 사람이니 미래인재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이 미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하늘이 주어진 재능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운이 좋게도 한 분야의 전문가인 부모의 자녀들은 부모님이 하는 일을 그대로 하면 재능을 물려받기도 해서 유리하다. 또는 부모님 주변에 자신의 재능과 유사한 재능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유리하다.
그러나 학교 교육은 어떠한가. 특별히 학생의 재능을 잘 찾아주는 교사를 만나지 않는 한 학생은 자신의 꿈을 찾을 수가 없다. 학교 진로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교사는 재능을 못 찾아주기는커녕 아이들의 재능을 꺾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재능이라는 것은 특수한 분야에 매우 압도적인 능력을 뜻하는데, 이런 재능은 초기에 이상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재능이 있는 아이일수록 비범하게 보인다. 비범한 행동은 이상한 행동으로 보여 주변에서 꺾어버릴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재능인지, 그냥 이상한 행동인지에 대한 구분을 대부분은 할 수 없다. 그 분야의 천재만이 알 수 있고, 천재는 아니더라도 전문가는 되어야지 알 수 있다. 선생님은 대부분 진로 전문가도 아니고,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다. 따라서 공교육에서는 학생들의 행동을 누적해서 관찰해서 이 행동이 어떤 재능의 씨앗인지를 찾는 것이 필요한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학원은 이와 달리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다. 각 과목을 반복해서 가르쳐 주는 학원에 보낼수록 아이가 남다른 것을 발견하기 쉽다. 그렇기에 학원은 천재를 발견하는데 유리하다. 음악, 미술, 체육 분야의 인재가 더 잘 발견되는 것도 이와 같은 논리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니깐 천재를 길러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는 미래인재가 될 수 없다. 미래는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를 통해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할 수 있다. 과거를 보면 착하고, 소통할 줄 알며, 배울 줄 알고, 진실하고, 정의롭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적응을 잘했다.
적응을 잘하기 위해 착함-소통-배움-진실-정의-존중과 같은 요소들은 행동으로 익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익히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배우고 나서 그 행동들을 반복해서 익혀야 사회에 적응을 잘한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 만남이 필요하다.
여기에 기본적인 상식들을 익혀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상식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학교에서 어떻게 미래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까? 그러니 학원에 보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학생의 자유

학생에게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학생일 때 강제적으로 무엇인가를 했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자유로움을 주고,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학생이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없다는 행동이며, 무책임한 행동이다. 학생에게 알아서 하도록 하면 정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잘 될 확률도 있으나 잘못될 확률도 있는 것이 학생이 스스로 결정해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은 학생에게 안정적인 삶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확실하고 쉬운 길이 있으면 그 길로 안내하는 것이 보호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학생이 주도적으로 무엇을 할지 정하고, 그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확실한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안내하고, 책임과 함께 자유를 줘야지, 자유만 바로주면 안 된다.
물론, 자유에 책임을 동반할 경우에 아주 낮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자신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모범 사례가 있는 경우만 가능하다. 친구가 좋거나, 이웃이 좋거나, 롤모델이 있거나, 좋은 책을 읽었거나 하는 경우 말이다. 본보기도 없는데 자유만으로 아이가 잘 될 거라 기대함은 망상이다.
현재의 사회는 역사 속에서 남은 사회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서 살아남은 사회의 관습과 방법을 익히지도 않는 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서 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며, 교만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실제로 주도적으로 결정해서 하도록 하면, 무엇을 할지를 모른다. 대부분은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거나, 누군가가 추천해준 것을 한다. 아이들은 진로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추천이나 무언가를 보고 결정을 한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에 따라 배우고자 하는 일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재능은 꽃피우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배우는 것보다 스승을 찾아서 배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전에 프로젝트 수업이라고 학생에게 자유를 주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결정하게 해준다는 수업을 들으러 가보면 대부분은 선생님이 정해준 주제로 학습을 한다. 또한 형식적이고, 행사적인 수업이 대부분이다. 시간과 학습량, 학생 수로 인해 제대로 된 자유를 주지 못한다.
반대로 진짜로 학생에게 자유를 주는 수업을 보면 학생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기도 하고, 그냥 즐기기만 하거나 자신의 장기자랑으로 끝이 난다. 이런 수업도 자신의 진로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낭비되는 시간이 많아 모든 수업 시간에 적용하기에는 어렵다.
결국 학생의 자유는 먼저 꼭 알아야할 것을 충분히 배우고 나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칼을 쓸 줄도 모르는 아이에게 칼을 지워주는 것과 동일하다. 자유를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고, 자유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학생에게 자유를 주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아이가 심심해하고, 자유시간을 선용할 줄 모르면 학원을 보내는 것이 좋다.

교육의 양

학교에서는 배워야할 것이 많다. 이유는 세 가지다. 시간이 부족하고, 배워야할 것을 배우지 않았고,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시간이 부족하다. 아이들이 배워야할 내용에 비해서 수업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꼭 알아야한다는 것을 정해놓기만 하고, 그 내용을 가르칠 시간도 딱 정해져있다. 그 시간보다 적게 가르쳐서는 안 되고, 더 가르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학급별 상황에 따라 시간이 부족한 수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가에서는 자율권을 주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는 학교 감사라는 벽이 있기 때문에 바꾸지를 못한다. 따라서 그냥 주어진 대로 수업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 결과 실제 수업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학생들이 해당 학습 내용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실제적으로 필요한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지도 않은 채 국가에서는 정해진 시간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각 교과, 각 내용별로 이권 다툼이 있기 때문에 교육부는 함부로 시간을 변경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학원은 마음대로 수업시간을 조정할 수 있으며, 유연하게 수업할 수 있다. 따라서 학원이 학교보다 잘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다.
둘째, 이전에 배워야할 것을 배우지 않으면 배울 것이 많게 느껴진다. 사람의 머리는 활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응용해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앞서 알아야할 내용을 잘 배우지 않으면 지금 배워야할 내용이 엄청 많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서 덧셈을 모르는 아이가 나눗셈을 배운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아이는 덧셈과 뺄셈, 곱셈까지 알고 있어야지 나눗셈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라도 모르는 순간 나눗셈을 할 때 엄청 많은 시간이 든다. 이처럼 학습에는 위계가 있는데 앞서 배워야할 내용을 모르는 아이에게는 배움이 힘들게 된다.
그러나 학원은 학생의 수준에 따라 가르쳐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학습량을 조금 더 잘 조절할 수 있다. 또한 수준별 수업이 가능하거나 수준별로 학교를 나눌 때는 조금 더 학습량 조절에 유리했겠지만 지금의 구조에서는 초-중학교에서 이렇게 수업하기는 어렵다.
셋째,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학습량이 많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때 쓸데가 없는 것은 두 가지 의미이다. 아이들이 느끼기에 쓸데없거나, 진짜 안 배워도 되는 것도 있는 경우이다. 아이들이 느끼기에 쓸데가 없어도 진짜 필요한 것이면 가르쳐야겠지만, 아이들이 느끼기에 사람에 따라 필요성이 다른 내용은 선택적으로 배워야 한다.
그러나 학습내용이 정말 필요가 없는 것이라서 안 배운다는 것보다는 시간에 비해 그저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학습내용에 따라 필요한 시간을 잘 선별하고, 꼭 배울 수 있도록 하며, 학교별로 필수적인 내용을 더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 맞춤형 교육이 되면 공교육이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수행평가

초등에서는 수행평가 위주의 학습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중고등학교에서도 수행평가가 많이 이루어진다. 수행평가는 학생들에게 결과가 아닌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시작된 평가이다. 그러나 실상은 결과를 더욱 보고 있으며, 과정은 피상적으로 파악된다. 과정은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생들은 수행평가를 하다보면 복습할 내용의 일부를 빼고 복습하게 된다. 왜냐하면 객관식 평가에 비해 수행평가는 평가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로 인해 객관식에 비해서 수행평가는 특정 내용을 빼고 확인하게 된다. 서술형을 늘릴수록 더욱 그렇다.
또한 수행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되는데, 수행평가를 위해서 배워야할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이런 이유로 수행평가는 학생들이 배워야할 시간을 바꾸어 평가를 하는 시간이다.
여기에 현재 수행평가 시스템은 재시험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복습할 기회가 적다. 자신의 한 번의 테스트 결과가 곧 자신의 성적이기 때문에 미리 배우도록 만든다. 시험이라는 것이 두 번 이상은 쳐서 더 좋은 성적을 자신의 성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시스템은 딱 한 번의 행동이 자신의 성적이 되기 때문에 미리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사교육으로 더욱 몰아넣고 있다.
심지어 수행평가는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학생들 대부분이 학원을 다닌 다는 점을 생각하면 학생들에게 많은 시간을 빼앗는 행동이기도 하다. 수행평가가 내신에 반영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잠을 포기하고, 쉼을 포기하고, 무언가를 포기하고 수행평가를 준비하게 된다. 숙제인 경우는 더욱 심하게 잠을 포기하고, 숙제가 아니더라도 연습을 위해서 포기한다. 이는 학생들에게 많은 시간을 빼앗는 것 중에 하나가 수행평가이다. 너무 많은 수행평가가 힘들어서 학교 성적 관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또한 이 수행평가를 통해서 아이들의 삶의 질이 상승하고, 무언가를 배울 수도 없는 시험을 보기도 한다. 학생들은 이것을 왜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면서도 하기도 한다. 특히 예체능 과목에서 하는 서술형 평가가 그렇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없다. 아이들마다 배우는 데 시간이 다르게 걸리기 때문이다. 진정한 수행평가를 하려면 기본 학습 내용을 복습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아니, 기본 학습내용 복습하기도 부족하다. 그러나 성적에 반영해야하는 현재 구조에서는 수행평가가 잠깐 배운 것으로 풀 수 없는 고난이도로 구성된다. 이는 학교 수행평가가 학생들을 사교육에 보내는 구조인 것이다.
시험은 교육을 평가하고,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여 다음 교육을 위해 이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평가를 고정적인 틀에 못 박아버리는 행동은 학생들을 더욱 사교육에 보내는 것이다. 학교에 어떤 명령을 내리기 전에 정말로 그 행동이 옳은지를 보아야 한다. 그게 아니면 학생들은 더욱 사교육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평가 제작

좋은 평가가 되려면 국가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평가 문항을 만들면 된다. 그러나 모든 교과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문제 유출과 비용, 학교별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 유출은 일괄적으로 문제를 만들다보면 나오는 문제다. 예시 문항을 보급하는 순간부터 많은 사교육 기관에서는 그 문제를 어떻게든 구해서 이용하게 된다. 문제를 모른다면 출제진이 무슨 학과를 나왔고, 논문을 썼는지를 알아내서 문제를 예측할 수가 있다.
비용 문제도 국가에서 전문가들을 모셔서 평가 문항을 만들다보면 비용이 많이 든다. 학교별 특성에 맞게 만들고 싶은 문항도 있을 수가 있다. 따라서 일괄적으로 내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예시 문항과 학습 자료 개발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교육은 백년지대계’이기 때문이다.
평가 내용 중에서 반복해서 해야 하는 문항들도 많다. 이렇게 변함없는 내용들은 평가를 공개해놓고 교사들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좋은 교육을 해줘도 학생이 연습하지 않아서 달성하지 못하면 학생을 진급시켜서는 안 되고 보충시켜야 한다.
또한 학습 내용에 누구나 최소 수준은 달성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학습자료가 있어야 한다. 지금의 교재는 교육과정에 맞게 잘 만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그 교재만을 가지고 필수적인 내용을 학습할 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평가와 수업은 일체화될 수 없다. 평가는 평가이고, 수업은 수업이다. 평가를 할 때 알려주는 것은 평가가 아니며, 수업을 할 때 평가를 하는 것은 과정중심평가이다. 그러나 과정중심평가는 피드백이 꼭 필요한데 피드백을 받는 순간 주관성과 불공정성이 포함되어 객관적일 수가 없다. 즉 진정한 평가를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과정중심평가는 역량 중심으로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역량은 정치-경제적인 논리가 다분한 단어이다. 역량은 정치적인 계획과 노동계의 요구가 담겨있는 단어이며, 정말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역량을 강조하면 지식은 소홀해진다.
현재 사회에서 지식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에 지식이 무슨 필요인가는 논리이다. 그러나 지식이 있어야지 창의성도 나오고, 각종 역량도 생긴다. 역순서는 거의 없다. 착한 아이에게 역량은 지식보다 못하다. 지식이 있는 아이에게 연습을 하다보면 나오는 것이 역량이기 때문이다.
결국 평가는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지표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필수 문항에 학교별 선택권도 주어서 보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과정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위해 교과별로 역량에 이름표를 붙이는 행동을 했다. 이런 방법은 학력에는 분명한 손해이며, 제대로 배웠는지 확인받지 못하던 아이들은 사교육을 의존하게 된다.

인성교육

대한민국은 자살하는 청소년이 많다. 2021년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10만명당 자살이 9.9명이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10대가 0명임에 비교해서 훨씬 더 심각한 것을 보여준다. 교사인 나에게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자살이 더 심각한 문제다.
공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으로 만든 다는 것은 결국 인성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성교육은 인간의 본성을 지니도록 돕는 것으로 나와 이웃, 공동체와 자연에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나의 국가도 모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관용주의만 알려주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보다 우선되는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정의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진리주의 교육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에게 공경한다. 어른에게 예의바르게 한다. 살인하지 않는다. 도둑질 하지 않는다. 때리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는다.’와 같은 옳음을 우선적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너도 옳고, 나도 옳아. 우리는 모두 옳고 존중해줘야 한다는 사고를 심어주게 되면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 왜냐하면 다 옳으면 내 생각도 옳으니 선생님에게 아무런 교육을 안 받아도 되지 않는가.
사회는 분명하게 지켜야할 선이 있고, 규칙이 있고, 법이 있다. 그런데 다 옳다는 생각을 넣어주는 순간부터 모든 교육은 그르친다.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욕을 먹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잘못을 해도 처벌을 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멋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넣어주고 있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규칙을 어기면 처벌을 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인성교육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규칙들을 알려주어야 한다. 기본적인 예절, 대화방법, 글 읽기, 글쓰기, 부지런함, 역사, 법, 정의, 독립심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런 것은 외우고 익혀서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완전하게 길러서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야한다.
인성교육에는 엄격하게 하여 인성교육을 거절하거나 어기는 아이에게는 매를 들어야 한다. 확실히 규칙을 어긴 아이에게 체벌해야 한다. 학교든, 가정이든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도 반복적으로, 심하게 어기기도 한다. 그런 아이에게도 벌이 없으면 한 명의 인권 때문에 선한 백 명의 아이의 인권이 위협받는다. 이렇게 바뀌는 것이 현재의 교육 정책 속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존중만 강조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서 기본 규칙들을 알려준다면 더 많은 인재들이 나올 것이다. 거짓말을 해도 벌을 받지 않는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교육의 1순위는 행복이며, 진정한 인성교육으로 높은 수준의 행복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진로교육

인성 교육이 충분히 된 아이는 진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진로 교육이라는 것은 자신의 길에 대해 교육 받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진로 교육을 제대로 받는 데는 순서가 있다.
첫째는 기본 소양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예의 바른 등 인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반칙을 일삼으며, 이기적인 아이에게는 진로교육을 시키면 안 된다. 사회에 좀 먹는 사람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초 소양을 길러야 한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를 알려면 자신이 다양한 기초 지식을 익히면서 깨달아야 한다. 기초 소양 없이 느낌으로, 주변의 추천만으로 선택을 하면 자신의 재능을 다 확인도 못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기초 지식을 외우고 연습하면서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진로를 탐색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살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단계이다.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데, 학교에서는 체험의 폭이 다양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역사회에서 협력하지 않으면 그저 외부업체의 배만 불러주거나 학생에게 잘못된 지식과 경험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직이수도 안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학교가 돈 버는 공간’으로 바뀔 위험도 있다.
진로까지 탐색이 된 학생에게 선택적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아이에게 굉장히 유용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선택을 했으니 더 흥미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한다. 강조하기 위해 설명을 하겠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모르며, 안다고 하는 아이들도 자신의 성적에 따라 돈 많이 버는 직업을 말하는 아이들이이며,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이 좋게 좋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의 적성에 맞게 선택할 수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성교육도 못 받았고, 기초 지식도 없고, 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대학입시에 유리하게 과목을 선택할 것이다. 꿈도 없는데 성적이라도 잘 받아야지 선택권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는 편한 과목을 선택할 것이다. 성적 받기 편하거나, 과제가 적거나, 재미가 있는 등 자신의 취향에 맞는 편한 과목을 들을 것이다. 셋째는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지역 간의 격차, 학교 간의 격차, 학생 간의 격차는 심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교육은 더 성행할 것이며 특히 학교에 침투할 수 있는 사교육은 대성황을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 과목 중 가르칠 수 없는 과목이 생길 것이고, ‘학교는 돈 버는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교육에서 유치원은 나와 가족, 초등은 마을, 중등은 지역, 고등은 시/도, 대학은 전국, 대학원은 세계에서 활용되는 지식을 익히고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진로교육이 급하게 가면 낙오되는 사람이 생기고, 이로 인해 사교육은 발전하고, 공교육은 탁아기관처럼 퇴보할 것이다.

교육정책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탑-다운(Top-down) 방식의 운영이다. 이 방식의 좋은 점은 결정이 빠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결정이 빠른 만큼 위험도도 매우 높다. 학생은 한 번 뿐인 일생(一生)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최초로 세워지고, 공교육을 의무화하는 과정에서는 교육정책의 탑다운 방식이 매우 의미가 있었다. 문맹률도 낮추었고,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즉, 앞선 대통령들의 교육 정책은 아주 훌륭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제 교육이 안정화에 들어서고, 교육 정책들은 한계에 부딪히면서 학교의 실정과 상관없는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정책들을 살펴보면 교육부에서 생각하는 것은 판타지 위주의 정책이다. 학교 교원들의 생각과 학생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들이 많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그래서 정책을 정하기 전에 시범학교에서 해보고, 부작용이 나오는지 정밀하게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시범학교에서는 소위 열심히 하는 교장에게 시키고, 열심히 하는 교사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시범학교에서 데이터를 모으는 데에 있어서 객관적이지 않는 주관적인 자료로 모으는 경우가 많아서 믿을 수도 없을뿐더러 학생들에게 정말 효과가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서는 10년 뒤에 확인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5년에 한 번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한민국을 엎으려한다. 대통령이 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정책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천천히 연구를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교육 정책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빨라도 10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교육 정책을 내놓든지 그 정책은 시범학교 - 선택 정책 - 전체 정책으로 차근차근 올라가야 한다.
이번에 고교학점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고민하고 있는데 학교의 입장은 매우 좋지 않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고교학점제를 할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공간적인 문제다. 교육청에서 수업을 개설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그 수업을 듣기에는 매우 많은 거리가 걸린다. 기관에서 수업을 개설한다고 하면 교육에 안 좋은 지식과 가치를 주입시킬 위험이 있고, 비용이 많이 들고, 불공정한 채용 위험이 있다. 학교에는 다양한 교과를 열 공간도 없다. 여기에 꿈이 없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방관하게 하며, 학교 선생님들이 고교학점제를 수행할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고교학점제를 의무화할 것이고, 선택적으로 고교학점제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따라서 학부모들은 고교학점제에 유리한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특정지역의 부동산이 오를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희망하면 교과는 열어야 하니 교육의 질은 더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학원에 가야할 것이다.

수업 시간

학생들의 집중력은 20분이 평균이다. 그러나 수업시간은 그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초등은 40분, 중등은 45분, 고등은 50분이다. 많은 시간을 준비한 수업은 그래도 오래 집중할 수 있으나 현재의 학교 구조에서는 많은 시간을 준비를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각종 업무와 생활기록부 관리 등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학교에는 시수라는 용어가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최소한으로 들어야 할 수업 시간을 수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수가 한 학기 17주를 기준으로 짜여있는데 시수가 4단위면 17 * 4시간으로 68시간이 시수가 된다.
이때 시수라는 것이 국가 교육과정에서 20% 조정이 가능한 것처럼 적혀있다. 그러나 적혀있을 뿐 학교에서는 학교 감사로 인해, 교과별 교수들의 압박으로 인해, 시수를 바꿔야하는 이유를 남겨야 해서 등 여러 이유로 실제적으로는 조절이 불가능하다.
학교별로 최소 수업 시수를 조절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교과를 더 가르칠 수가 없다. 이로 인해 학교에서는 경직적인 수업을 해야 한다. 학생은 자유분방하고, 하루하루 컨디션과 관심사에 따라서 다양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이에 딱 맞게 수업을 할 수도 없고, 수업을 이렇게 하기에는 맞춰야할 서류가 너무 많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하지도 않은 채 학교 밖에서 교육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학교 밖 교육은 또 다른 교사의 부담이 될 것이며 교사의 수업시간을 빼앗고, 불필요한 서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학교 밖 교육을 통해 유익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학교 안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학생들이 앞서 배워야할 내용도 배우지 못하는 상황이다. 앞에서 배우지도 못하고 이해가 안 되니 학교에서는 자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잠은 안자도, 목표와 상관없는 수능 준비만 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계적으로 학교 밖 교육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공교육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학교 교육활동도 위축될 것이며, 학교 밖 교육은 위탁하는 기관에 따라 교육의 질이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나 공교육은 일관되고, 안정된 교육을 주는 것이 주목적이다. 절대로 모험이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 밖 교육을 신경쓰기보다는 학교 안 교육에 먼저 초점을 맞추고, 학교 안에 경직된 시수와 서류를 맞춰야하는 구조적인 한계에 먼저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좋은 학교 밖 교육은 교사-학생-학부모가 알아서 찾아서 신청을 하고 있다. 교실 속, 소풍, 방과 후, 주말에 듣고 있다. 따라서 학교 밖 교육 활동은 학생의 자율에 맡기고, 교육 지원청에서 안내하는 정도로 가야한다.
하지만 학교 밖 교육도 단계별로 확대한다면서 도입할 확률이 높다. 국가 정책은 취소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학부모들은 좋은 사교육을 찾아서 대입 준비에 최적화된 학교 밖 교육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사와 강사

학교는 원래 교사만 있었다. 교대나 사범대를 졸업한 교사만 있었다. 그러다 행정을 도와주는 행정직 공무원이 들어왔고, 교대나 사범대를 졸업하지 않은 교사들이 들어왔다. 이와 함께 강사들도 들어왔는데 이들은 교원 자격증이 없거나 정규 교사와 협력해서 수업을 같이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학교의 상황에서 너무 많은 시수에 부담스럽거나, 학교의 업무가 과중한 교사들은 이 강사들의 수업 시간에 강사만 수업을 하는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다. 학교는 여러 이유로 강사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 때도 단독으로 수업하기도 한다.
단독 수업을 하는 강사들 중에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강사들은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대부분이며, 그들은 전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 실력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해주는 분도 있다.
그러나 교육은 전문가라고 잘하지 않는다. 교원자격증 없는 강사는 수업의 비안정성과 평가의 주관성, 높은 직업성을 띠기 때문이다. 학생은 보편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강사의 교육은 안정성이 없어서 한 번의 잘못된 교육으로도 아이가 망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위험한 교육 방식이다.
앞서 말했듯 공교육의 목적은 일정 수준의 학습을 보장하는 것이다. 4년간 대학에서 준비해서 교원자격증을 받은 교사와 강사가 똑같이 수업을 할 수 없다. 무자격자의 교육은 일정 수준의 교육을 보장할 수 없다.
또한 교원자격증 없이 수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대와 사범대 교수들이 쓸데없는 것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교대와 사범대에서는 교육의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교원자격증을 가지고 학생을 위해 사는 교사와 강사의 차이는 크다. 한시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강사다. 강의를 하는 사람과 교육을 하는 사람은 다르다. 실제로 강사 제도는 실패한 제도로 평가받아 추가채용을 안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면 자녀에게 유익할 것이라는 증명되지도 않은 이야기가 학부모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일부 전문가와 강사를 제외하고는 강사의 교육시간은 꽃잎처럼 흩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름답고 보기엔 좋지만 교육의 효과는 증명되지 않은 꽃잎처럼 말이다. 하지만 의무교육을 하는 공교육의 시간은 귀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사회에 나오는 특성화고 같은 곳에서는 강사의 교육이 효과적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곳이더라도 강사나 전문가들에게 4년간의 교육을 받고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기간 동안은 고교학점제를 강제로 진행하는 것은 공교육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나 전문가의 교육은 시민들이 보기에 있어 보이는 정책이며, 전문가이나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취업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학부모는 하향평준화로 가는 학교만이 아닌 다른 길도 찾아두어야 한다.

교육과정과 법

교육과정은 행정 규칙이다. 이 말은 법 중에서 헌법과 법보다 낮은 행정 명령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이 생기면 교육과정은 갈아엎을 수 있다. 학생들의 교육과정은 법보다 더 잘 바뀔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소리다.
이로 인해서 각종 이슈가 생길 때마다 교육과정에는 범교과 교육이라는 환상적인 용어로 교육에 침투해왔다. 땡땡땡 특별법이라고 만들어서 교육과정에 꼭 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 행정 규칙이니 법에서 하라고 하면 꼭 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은 오랜 시간동안 증명해야 한다. 어떤 교육 내용을 추가하고, 어떤 교육 방법을 강제하고, 어떤 평가 방법을 요구할 때는 항상 오랜 시간을 검증해야 한다. 최소 10년은 기본이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행정 규칙으로 머물러 있어 정치적-경제적 요구에 따라 너무 쉽게 바뀌었다. 그로인해 손해 보는 것은 학생이다.
사회는 바뀌어가고, 바뀌는 사회에 따라 교육은 잘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교사들이 잘 반영해서 해준다. 학교에 자율권을 주어도 최신식의 교육 내용을 반영하기도 하며,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교육을 하고 있다. 교사는 그런 것을 할 수 있게 교육받은 교육의 전문가이다.
그러나 교육은 많은 국민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표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다. 그리고 노동계에서는 미래에 필요한 교육을 미리 해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커다란 영향력을 미루어 볼 때 교육과정은 최소한 법의 위치로는 올라가야한다.
교육과정이 법으로 올라갈 때 아주 오랜 시간을 검증을 받으면서 10년 이상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만들어야 한다. 이때 교육과정의 이분법을 만들어서 ‘바뀌지 않는 교육과정과 바뀌는 교육과정’ 두 가지로 만들어야 한다. 바뀌는 교육과정은 편하게 손 댈 수 있게 행정명령으로 두고, 바뀌지 않는 것은 최소 50년 정도는 두고 보면서 봐야한다.
현재 교육과정의 한계 속에서 우리가 기대해야하는 것은 범교과 교육은 다 날려버리는 것이다. 인성, 건강, 안전, 인권 등 각종 법으로 강요되어 온 범교과 교육의 의무화를 모두 폐지시키고, 교사의 전문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교육하도록 해야 한다.
범교과 교육의 의무화를 중단한다고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일수록 교육과정에 잘 넣어야 한다.
현재의 범교과 교육은 동영상을 보여주는 단순한 시간이거나 범교과 교육을 한 것처럼 서류만 조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막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정말로 범교과 교육의 내용을 아이들이 익히지 못하고 있다.
범교과 교육은 유연하게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폐지해야 할 항목이다. 그러나 법이라는 것이 쉽게 바뀔 수도 없으니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교과서에 담아 꾸준히 교육은 해야 한다.
또한 정치-경제와 교육의 분리는 중요하며 앞으로 변하지 않는 교육과정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학생이 중요하다면 말이다.

교사의 자율

학생에게 자율권만 주는 것은 위험하나 교사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상황에 교사가 맞게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에 특성에도 맞고, 지역과 학교의 상황에 맞게 교육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자율권을 주는 방식이 자칫하면 오히려 자율권을 해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율권을 주는 대신 서류를 남길 것이 많도록 하면 대부분 자율권을 쓰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율권을 주는 방식이 교육청을 통해 주어도 마찬가지다. 교육청에서는 학교의 상황과 다른 교육 정책을 내놓는다면 학교는 자율권을 받아도 자유롭게 할 수가 없다. 권한이 교육부에서 교육청으로 바뀐 것뿐이지 하고 자율권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에 자율권을 지나치게 주면 학교가 교실에 제약을 줄 수도 있다.
이처럼 자율권을 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율권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자율권으로 인해 벌어질 문제들이다. 자율권을 잘못 주면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첫째, 자율권으로 인해 지역별 격차가 발생한다. 지역에 따른 인프라의 차이, 교육청의 차이, 교사의 차이 등 다양한 차이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지역별로 교육과정을 구성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국가에서 짜 준 교육과정에 비해 수준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공교육은 국가 교육을 보장해야 하는데 지역 교육과정으로 인해 수준차가 나면 위험하다.
대부분의 교육청에서는 많은 장학사와 파견교사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그만큼 교육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일을 이미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지역 교육과정을 교육청에서 짤 여력이 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좋은 교육과정이 나올 가능성이 낮다. 현재의 장학사의 수를 두 배 정도로 늘려주지 않는 한 지역교육과정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학생의 특성을 맞춘다는 것이 어렵다. 학생은 편하고 쉬운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학생이 처음부터 공부를 좋아하고, 배움을 즐거워하겠는가. 처음부터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은 매우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학생의 특성을 자칫 잘못 맞추다보면 노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면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된다.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구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교별로 자율에 너무 맡기다 보면 학교는 눈에 띄고 있어 보이는 것을 하거나 쉽게 넘어가고 싶은 유혹이 생기게 된다. 그러다보면 학생이 학습이 하지 않고 행사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의 기준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객관적인 조사는 함부로 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런 조사들이 학생이 사교육에서 잘 배웠는지를 평가하는 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권을 주는 것은 신중해야 할 문제이다. 급한 것은 국가가 기준을 제시하고, 누구나 기준을 달성하는 교육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시험

학생에게 시험은 하기 싫은 것이다. 그러나 학생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시험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공부 결과를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의 흐름이 바뀌어서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을 싫어하는 문화가 생겼다. 이는 학원에서는 춤추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시험을 안 칠수록 사교육은 더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지 않으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학습을 더 안한다. 시험에서 틀린 문제를 보고 다시 학습을 시킬 수 있는데 시험을 안치니 무엇을 아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학습을 제대로 안하면 학습결손이 생긴다. 그 결과 학습결손을 채우기 위해 학원으로 가게 된다.
현재 수학 학원과 영어 학원이 가장 인기가 많은 이유는 수학과 영어는 누적된 학습결손이 잘 드러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덧셈을 못한 아이는 곱셈에서 들어나고, 곱셈을 못하는 아이는 나눗셈에서 들어난다. 결국 아이는 학습결손을 해소하기 위해 학원으로 가는 것이다. 학교가 해결해줘야 할 문제를 학교가 인정하지 않으니 학원에 가는 것이다.
학교 문화에서 아주 잘못된 문화가 아이를 속이는 것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못한다고 말 못하게 하는 것은 아이를 속이는 일이다. 부진학생에게 나는 학습이 부진하구나 그러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인데 부진학생이 낙인 당할까봐 무서워서 아무것도 안한다. 이것은 작은 것을 무서워해서 큰 것을 잃는 판국이다.
학습은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르다. 어떤 아이는 빨리 배우고, 어떤 아이는 느리게 배운다. 또한 과목별로 빨리 배우는 것과 느리게 배우는 것이 있다. 따라서 학습 미도달 학생은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다. 학습 미도달 학생을 상태를 그대로 받아드리게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원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학습 미도달을 비밀스럽게 하는 것부터 학교가 문제다.
결국 시험은 학생들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평가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 틀려도 괜찮다. 대신 평가에 미도달한 학생이 있으면 다시 재시험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재시험을 몇 번이고 볼 수 있고, 시험을 보고 나면 피드백을 몇 번이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학습 미도달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모두가 학습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되면서 다양한 학습 평가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다. 이 평가 문항의 질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문화다. 학습 평가 시스템은 오로지 공교육에서 개발해서 공교육이 모든 권리를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평가 시스템은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 기관이 데이터를 받아서 자신의 사교육을 더 키울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이 평가 데이터가 엄청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평가 시스템을 공교육과 커넥션을 이룬 사교육은 더 승승장구할 것이다. 학부모들은 이룬 사교육을 활용하는 것이 자녀 학습에 유리할 것이다.

교과서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교과서는 교육과정에 따라 잘 짜여있는 교재이다. 이제는 디지털 교과서까지 나와서 자료를 보여주는데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여전히 교과서가 가지고 있는 독점적인 저작권이 너무 커서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저작권이 문제가 된다.
학교 공교육의 가치는 교육이다. 돈이 아니다. 공교육에 이바지를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돈이 주어지고, 의식주를 걱정할 필요 없을 만큼 혜택을 주는 것은 옳다. 그런데 교과서를 만드는 권한을 국가에게 받아서 이 권리를 지나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수업을 할 때 그 교과서를 온라인을 중계하는 것도 교사들은 조심해야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다면, 이미 학생들의 수만큼 교과서를 판매한 출판사는 선생님이 수업뿐만 아니라 수업 이후에 학생들에게 주는 자료에 대한 권리까지 제공해야한다. 왜냐하면 학교는 공교육이고, 출판사의 교과서 저작권보다 학생의 교육 질 상승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나친 권리 보호로 인해 온라인 교육권이 침해받고 있다.
게다가 교과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는 권리는 매우 중요하다. 이때 적절한 비용을 국가에서 지불하는 방식으로 저작권에 대한 응당한 보상을 하되, 학교에서 쓰는 콘텐츠에 대해서 자율권을 더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이 좋아하고, 그 콘텐츠로 효과가 확실하다면 어떤 콘텐츠든지 가져올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 선생님들 중에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 콘텐츠가 일회용으로 끝나거나 공유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실속은 없는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교육부에서는 이런 콘텐츠별로 효과를 검증하여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콘텐츠 제작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질 좋은 수업 자료가 더욱 이루어진다.
미래의 교과서는 디지털 교과서로 어떤 출판사의 내용이든 가져올 수 있으면 한다. 어떤 출판사의 내용을 써서 그 내용으로 학습이 더 잘 되거나 많이 쓸 경우에는 더 저작권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이때 새로 진입하는 콘텐츠도 적절하게 추천이 되어서 좋은 콘텐츠는 영원히 남을 수 있도록 하고, 돈도 주면 많은 자료들이 선순환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교원의 디지털 활용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있을 것인데, 이런 사람을 위해 적절한 인원 충당이 필요하다. 이때, 전담인력은 교사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 충원되는 사람은 교사여야하지, 다른 인원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학교에는 교원이 많이 있어야지 학생에게 도움이 된다. 돈을 아끼겠다는 경제 논리에 빠져서 행정직을 뽑으면 안 된다.
하지만 교과서는 계속해서 저작권을 요구할 것이고, 저작권을 오픈한 것처럼 하지만 교사들에게는 불편하게 줄 것이다. 반면 학원가는 학생 맞춤형 교재 제공에 용이할 것이라 사교육은 더욱 좋은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다.

대입

대학 입시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큰 관심사 중에 하나다. 많은 아이에게 있어서 어떤 대학과 어떤 과에 들어가는 가에 따라 자신의 미래 직업이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입제도는 공정하지 못하다.
현재 대입제도가 공정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제도 자체의 허점이다. 대입 제도가 특정 계층의 아이들을 위해 계속 바뀌어왔고, 이로 인해 많은 허점이 있다.
첫 번째 허점은 내신의 부정이다. 학교별로 학업 수준은 차이가 난다. 과목도 다르고, 허위로 기재할 수 있으며, 부정 시험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정상화를 빌미로 내신제도가 계속 강조되어 왔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배울 수 있는 가르침을 주고, 기회가 많아지면 공교육은 자동으로 정상화된다. 그럼에도 내신제도로 대학을 진학시키면 정상화된다는 것은 착각이다.
두 번째 허점은 대학별 입시제도의 차이다. 대학마다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더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자신의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제도가 다양할수록 평범한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갈 수가 없다. 따라서 제도가 다양화하는 것은 대학에 유리한 것이고, 아이들에게는 불리한 제도이기 때문에 제도의 단순화가 중요하다. 최소한 학과별 통일된 제도가 필요하다.
세 번째 허점은 수능이 일 년에 한 번 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능 제도는 기회가 최소 두 번 있어야하고, 세 번 있으면 더 좋은 제도다. 수능은 기회가 적다. 일 년에 한 번 뿐인 시험은 일 년을 더 기다리게 만든다. 따라서 입시제도는 여러 번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네 번째 허점은 대학이라는 제도의 모순이다. 대학은 필요한 사람만 가야하는데 다 가야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점이 문제다. 또한 대학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대학도 있는 것이 문제다. 대학은 실력있는 인제를 기르고, 대학에서 졸업장을 따는 것이 아주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 입시는 학과별로 통일된 지침을 만들어서 사람을 뽑되, 이 지침은 10년 동안은 유지될 수 있는 지침이어야 한다. 1년에 변경가능한 비율은 3% 이내로 줄여야한다.
또한 대학입시는 수능과 같은 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비율이 가장 많아야 하며, 이때 수능은 2번 이상의 기회가 주어져야한다.
한편 각 학과별 특색에 맞는 사람을 뽑을 수 있는 대회를 일 년에 두 번 이상 열어서 수상자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한다. 이 대회에 수상할 방법은 공정하게 배울 수 있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부유층 자제에 대해서 학과별로 1% 이내의 학생은 많은 돈을 기부한 사람의 자녀를 입학 시켜서 그 대학에도 혜택이 가게 당당하게 돈으로도 입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대학의 수입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교육에도 손해가 된다. 또한 기부입학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따라서 대입제도는 겉보기만 바뀌고, 대학과 사교육에 유리할 것이다. 따라서 사교육에 보낼 이유가 많다.

교육방식

대한민국에서는 ‘역량중심교육’이라는 단어가 유행한다. 학생의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이라는 이야기다. 교육부에서는 교육과정을 통해 역량이 길러진다고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런 역량이 정말 길러졌는지 제대로 확인도 할 수도 없고, 수업 때문에 길러진 것인지, 원래 있던 것인지 구분하지도 않는다. 여기에 교과역량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교사와 학생들을 괴롭힌다.
여기에 배움중심수업이라는 학생의 배움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방식도 있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서는 안 되고, 스스로 지식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방식이라는 이야기다. 의도는 좋지만 학교에서 배움중심수업을 하는데는 적합하지 않다. 이미 학원에서 배워오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시수가 부족하며, 학생의 참여와 협력을 도모하기에는 학생수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정말 배움이 일어났는지, 이미 알고 있는지도 정밀하게 확인안한다.
학생중심이라는 단어는 마법 같은 단어이다. 학생을 위해서 수업을 계획한다는 것이 대접받는 것 같고, 좋은 의미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인지, 학력도 올릴 수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학력이 진정으로 효과가 없음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학력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현재의 수업방식은 역량을 강조하고, 학생 참여형 수업을 위주로 하면서 공교육의 기본적인 질과 표준이 사라져버렸다. 주입식 교육과 학력고사는 최소한의 질과 표준을 보장한다. 그런데 학생-학부모-교사의 감정을 더 중요시 여기는 현재의 방식은 학력저하를 반드시 불러올 것이다.
학력의 기본적인 질을 보장하고, 학력을 강화하면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국가에 이득이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문을 골고루 가르치고, 정확한 지식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검색해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아는 것과 찾을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여기에 지식 중심의 교육이 전문적인 교사에게 이루어져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전인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6차 교육과정까지는 지식 중심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7차 교육과정부터는 이 흐름이 변화되었고, 학생들은 더 많은 사교육을 활용하면서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더 배우고 있다.
지금의 역량중심교육이나 학생중심형 배움중심수업도 분명히 의미가 있다. 약간의 수업은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수치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수치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체계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체계적으로 개선할 수 없는 것은 무질서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공교육은 학생들의 기본적인 학습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더 효율적이고, 보장된 방법이 있으면 효율적인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아이들은 반드시 외워야 할 것이 있고, 연습해야 할 것이 있다. 따라서 학습중심의 주입식 교육도 필요하다. 하지만 공교육에서는 이렇게 하기 어려워 사교육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국어

학생이 공교육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과목은 국어다.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읽을 줄 알고, 쓸 줄 아는 것은 국가가 책임져야할 기본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욕할 줄 알고, 이해할 줄 모르며, 소리 내어 읽을 줄 모르고, 긴 글을 쓸 줄도 모르고, 눈치도 없다.
왜냐하면 학교의 교과서는 ‘역량중심’과 ‘배움중심교육’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역량을 기르고, 스스로 학습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학교 현장에서 보면 복습용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의 교육은 ‘활동’이 아닌 ‘배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계의 신조는 활동으로 배움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는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착각이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워오니깐 가능한 것이지 아이들 대부분은 배움을 얻지 못한다.
모든 교과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문제다. 학교에 입학하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한다. 한글을 못 읽는데 어떻게 다른 교과를 하겠는가.
그런데 현재는 미리 한글 공부를 해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만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따라서 학부모가 따로 한글 공부를 시켜두었거나 선생님이 공교육의 커리큘럼을 무시하고 몰래 한글만 지도해야 가능하다.
학생들이 1학년을 지나 2학년이 되어도 자음을 순서대로 쓸 줄 모르고, 모음도 다 쓸 줄 모르는 아이가 대부분이다. 아니, 6학년에게 시켜도 대부분의 아이는 받침의 종류도 다 모른다. 한글에 대해서 기초도 모르는 것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을 할 때 어떻게 말을 해야 하고, 들어야 하는지를 모른다. 교과서를 보면 말을 하고 듣는 활동들은 많다. 간접화법은 배우지 않으니 눈치도 없고, 직접화법만 안다. 개념을 알려주고는 있다. 그러나 외우게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니깐 남는 것이 없다. 저학년이나 고학년이나 매한가지다.
대화를 할 때 기본지식이 없으니 자기 마음대로 말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학교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된다. 심지어 남의 말을 들어도 듣는 것이 아닌 듣는 척만 하게 된다. 그 결과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다.
말을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읽을 줄도 모르니 다른 사람의 생각도 이해하지 못한다. 기본적인 글쓰기도 들리는 대로 쓰거나 동영상에서 자주 나오는 말로 바꿔서 쓴다.
어휘나 문법도 전혀 외우지 않으니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쓴다. 국어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문법이 있는데 이 문법들을 ‘활동’으로만 지나쳐버리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잊어버린다.
한자를 모르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말에 대부분이 한자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한자교육을 거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자는 ‘활동’이 아니라 ‘암기’이기 때문이다. 주입식 교육은 나쁘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수업으로 배웠더라도 복습하지 않으니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따라서 외우도록 하는 사교육에 보내서 학습을 보충해야 할 것이다.

수학

한국에서 배우는 수학은 계산이 많다. 이전에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算數)로 교과서가 적혀있었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컴퓨터가 나오면서 수학을 할 줄 몰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다. 컴퓨터가 더 빨리 계산할 줄 아는 데 왜 학교에서 수학을 하는지 의문인 것이다. 그러나 수학이 계산만을 위한 것일까?
수학의 가장 중요한 점은 계산이 아니라 논리를 배우는 것이다. 수학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수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논리는 기르는데 적합한 도구다.
그런데 아이들이 수학을 배우지 않으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해줘’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논리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생각해야하는데 이유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은 질 줄 모르고, 요구만 할 줄 아는 아이도 늘고 있다.
수학에서 가장 많이 하는 계산도 논리력과 연결된다. 계산하는 방법을 익히고, 그 계산의 규칙대로 계산을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논리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답을 구하는 과정 속에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개념을 구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도 논리력을 증진시키고, 사고력을 증진시켜준다. 게다가 과정을 생략하고 답만 구하는 방법이나 문제집을 풀어서 다른 문제에 응용하는 것도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어렵다. 수학 수업도 국어 수업과 마찬가지로 ‘활동’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학에서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한데 그 과정이 학생마다 차이가 크다. 그러나 수학 시수가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에 비해 ‘배움중심수업’으로 가르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수천년의 세월동안 천재들이 발견한 것을 아이들이 발견하기를 바라는 방법으로 어떻게 배우겠는가.
또한 수학에서 연습을 하는 양이 교과서에서 턱없이 부족하기에 기능을 익힐 수도 없다. 개념을 기적적으로 발견하거나, 선생님의 힌트를 통해서 찾았다고 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이들이 개념을 익히고 논리적으로 풀이하는 과정은 연습이 필요하다. 이 연습은 내용에 따라 상이한데 교과서의 연습문제는 서술형 문제 위주로 되어 있어서 매우 부족하다. 결국 따로 문제집을 풀거나 복습을 충분히 한 학생만 잘 풀 수 있으니 수포자, 수학 포기자가 생긴다.
결국에 학생들은 수학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린 뒤 진급하게 된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아이들은 제대로 된 학습을 못한 채 올라오다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수학의 대부분의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연습할 기회도 없어서 따로 시간 내어 공부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교육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주입식 교육을 허용하고 많은 연습을 할 수 있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활동은 배움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학원에서 배우기를 바란다.

사회

사회 교과는 도덕, 역사, 지리, 일반사회와 같은 교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이 생활하면서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개념을 이해하고, 규칙을 익히고, 역사를 이해하고, 주변에 대해
익힐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는 학생들에게 활동 위주로 정해져 있는데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알게 되는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역량 중심 교육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교육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활동보다는 왜 해야 하는지 이해시키고, 착한 행동의 예를 외우도록 하고, 규칙을 어기면 체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 교과서의 내용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과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아이들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는 내용도 있다.
사회에서는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특정단원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이 있어서 주입식 교육으로 해도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꼭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기에도 한계가 있다.
역사에서는 국가의 역사를 암기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배울 시간이 부족하다고 외워야할 내용을 줄여버리고 있다. 꼭 알아야할 것들도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역사에 대해 외우고 이해하는 것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외우지도 못하고, 외운 것을 통해 현시대를 비판적으로 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필요한데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하다가는 정치적 중립성에 걸려서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꼭 필요한 역사를 통한 현재의 정책 이해하기와 같은 수업은 할 수도 없다.
또한 정치적으로 역사교육 내용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를 왜곡한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은 초기의 교육과정에서 정해진 내용에서 주의 깊게 수정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에서도 아이들이 지역의 지도를 이해하고 읽을 줄 아는 능력에 대해 익혀야 하는데 활동위주로 되어있어서 시간이 부족하다.
사회에서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 있는데 진짜 사회 문제를 해결도 못하는 국가의 문제는 아이들이 해결하기도 힘들다. 또한 아이들에게 사회 문제를 찾는 것도 어렵다.
여기에다가 사회탐구영역에 있어서는 선택과목이 너무나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 교과들에 대해 모든 전문성을 기르는 것은 어렵다. 선택과목의 내용은 대학에서 익혀도 된다. 따라서 선택과목을 폐지하고 공통과목으로 누구나 익힐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선택과목의 교수님과 선생님들 문제로 이렇게 되기 어렵다.
사회교과에 일괄적으로 균등화해서 나눈 비율도 바꿔야하고, 사회 전문가를 기르는 것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사회 상식을 기르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도 있다.
결국 현재는 한 과목만 가르치는 학원에 비해 공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러니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는 계속해서 있을 것이다.

과학

과학은 사실 넓은 의미로는 수학, 사회, 국어를 모두 포함한 의미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등을 한정해서 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러나 초등-중등-고등 별로 과학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 우선 초등의 경우에는 선생님들이 과학에 대한 오개념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많은 과목을 가르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교육대학에서는 과학적인 개념을 외우지 않아도 교사가 될 수 있고, 교사가 되고 나서도 이에 대한 점검을 전혀 하지 않고 수업을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전담 교사를 두거나, 실험을 지원해주는 사람을 배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에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도 못한 사람이 많다. 동영상으로 대체하는 수업도 많으며, 학생들은 이런 수업 속에서 꼭 알아야할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중학교로 간다.
게다가 과학 교과서도 다른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활동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핵심 개념을 이해하지 않은 채 넘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과학자는 일부분에 불과한데 과학자를 만들려는 목표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어서 교과서를 봐도 이해가 안 된다. 그 결과 외워야 할 것도 모르고 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친절하지 못하고 많은 내용 구성에 이해도 못하니 과학 수업 포기자, 과포자가 늘어난다.
또한 과학 실험을 하는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그런데 실험교구가 유통구조가 이상하게 되어 있고, 실험교구 확보가 법적으로 되어 있기에 아무거나 사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교구를 선별하고 일괄 배포하거나 지역별 실험실을 설치해서 공용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기초 개념이 없는 채로 상급학교로 진급한 학생들을 이미 지도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진급할 때마다 갑자기 배울 내용이 확 늘어나면서 과학에 대해 멀어지게 된다. 억지로 20%씩 과학교과를 나누어놓는 것도 바꿔야한다.
여기에 교과서에서 지나치게 실생활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이지만 학습한 내용을 꼭 실생활과 억지로 끼어들려고 한다. 원리에 더 관심이 있는데 억지로 실생활을 넣어서 이해를 어렵게 한다.
또한 과학 교과서가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고,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되어있다. 교육과정의 내용을 단시간에 개발하고, 특정 교수의 의견으로 만들면서 생긴 문제이다.
게다가 과학탐구 영역 쪽도 그 분야의 전문이 아닌 사람이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과학탐구에서 필수적인 내용만을 잘 정리하고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내용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사람을 뽑고 수업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과학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배워도 될 내용까지 고등에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학교나 교육부에서는 이렇게 과학탐구 영역이 재구성하는 여력이 없다. 선생님의 수업의 질을 높이기도 쉽지 않고, 오히려 더 세분화하는 분위기이다. 따라서 사교육에서 과학탐구를 공부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다.

영어

영어는 글로벌 사회에서 꼭 알아야할 언어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중요성에 비해서 학생들이 영어를 배울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는 여태껏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만으로 영어를 잘 한 학생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영어는 스펙이다. 영어 성적이 자신의 취업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입장에서는 외국인을 만날 일이 조금이라도 있는 기업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채용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방법은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이지만 언어를 다루는 과목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시수가 딱 정해져있다. 따라서 학원을 통해 영어 수업 안 하는 날에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거나 매일 영어 숙제를 내주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잘하기 위해서는 영어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해야한다. 영어와 한국어의 어순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외에도 여러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국어의 문법 원칙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기에 국어 교과의 문법부터 이해시키고 나서 영어의 문법 원리를 외우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법을 못 외우더라도 큰 원칙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어떤가.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초등학교에서 알파벳도 모르고, 대소문자도 구분 못하는 아이들이 엄청 많다. 기본적인 발음도 구분 못하고, 말 한 마디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매일 하지도 않고, 내용도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선생님들도 국어와 영어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국어와 영어에 대한 문법의 큰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이해되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모르면서도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또한 영어를 잘 한다고 영어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현재는 잘 가르치는지를 확인하지 않고 채용한다.
게다가 영어 학습 방법이 활동 위주로 되어 있다. 학생들이 말을 따라하고, 말을 따라 쓰고, 알파벳을 쓰고, 글을 쓰고, 글을 읽고, 문제를 푸는 이런 활동 위주다. 하지만 활동을 하는 것과 익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리나라는 활동을 했으면 가르쳐주었다고 착각한다.
말을 못하더라도 영어로 된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이 현재 교육과정의 목표라면 글이라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해석한 글을 알려주는 시간이 더 많고,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알려주는 시간은 훨씬 부족하다. 또한 글의 수준도 급격하게 어려워져서 어떤 기준으로 올리는지, 아이들이 학습 시간 내에 그 내용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인지에 대한 점검조차 없다.
결국 학생들은 발음하는 방법도 익히지 못하고, 영어로 된 글을 피하게 되는 수준으로 된다. 이는 당연하다. 수업으로는 영어를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사교육을 받은 아이만 영어를 잘하게 되고, 영어 학원은 교육과정이 바뀌지 않는 한 망하지 않을 것이다.

예체능

음악, 미술, 체육. 세 개의 교과는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교과이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악기를 배울 수 없으며, 그림을 잘 그릴 수 없고, 운동을 잘할 수 없다. 타고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예체능 교과도 가장 큰 문제는 가르치는 것이 아닌 활동을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술에서 어떤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백 번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겠는가. 어떻게 잘 그리는지를 알려주는 활동이 필요한데 이런 방법을 대부분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음악도 리코더 하나를 익히는데 있어서도 수십 시간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리코더를 찔끔찔끔 배우고 넘어간다. 악기 하나를 익히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 목표라고 해도 제대로 익히지 않고 넘어가야 시수가 맞춰진다.
체육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체력을 기르고 각종 기술을 배우는데 있어서 많은 시간이 걸리는 데 제대로 된 배움 없이 활동만 하고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학교가 배우지 않고 경험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면 교육과정은 이렇게 두어도 괜찮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이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으면 교육과정을 갈아엎어야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를 줄 알고, 음악을 들을 줄 알며, 원하는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 원하는 그림을 간단하게 그릴 줄 알고, 미술 작품을 감상할 줄 알고, 간단하게 제작할 줄 아는 사람. 다양한 운동을 즐길 줄 알고, 좋아하는 운동 하나는 꾸준히 하고, 체력적으로 건강한 사람. 이와 같은 목표를 위해 교육과정은 재편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계이름도 모르고, 음악을 틀면 졸고, 그림도 그릴 줄 모르고, 비만이 늘었다. 학원에서 음악-미술-체육을 배우고 있다.
특히 체육에서는 학생들의 건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운동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피구나 축구처럼 공으로 아이들끼리 놀거나, 자습시간으로 체육시간이 악용되고 있다. 스포츠클럽도 허위허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며,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학교의 현실과 맞지 않아서 어렵다.
예체능 교과에서는 재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학교에서 예체능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가르쳐준 사람이 없으니 좋은 사교육이나 부모님 밑에서 배웠거나 재능이 좋은 아이들만 잘하는 구조다.
따라서 교육과정 자체에서 꼭 배워야할 내용을 더욱 엄선하고, 그 내용을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초등에서 중등, 중등에서 고등 등 진급할 때 악보 읽기, 간단한 그림 그리기, 최소 체력 기준 같은 테스트를 추가해서 기준 미달은 진급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학원에서 배우도록 하자.

학습 예측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예체능 교과 외에도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시수가 배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통합교과(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도덕, 실과, 기술, 가정, 정보, 제2외국어, 한문, 교양과목, 전문교과, 창의적 체험활동(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이 있다.
이와 같은 교과를 포함해서 모든 교과들이 학교에서 제대로 된 학습이 되지 않는다. 모든 교과에서 활동 위주로 수업이 구성되어 있으며,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지를 객관적으로 연구하지 않는다.
학습 예측을 국가에서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학생에게 큰 손해이다. 왜냐하면 시간을 예측할 수 있어야 아이들이 배울 내용을 정할 수 있는데 학습이 예측되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양을 배우도록 규정할 수 있다. 또한 배울 수 없는 내용을 배우도록 할 수도 있다.
학습을 얼마를 했을 때에 어떤 학습이 되었는지는 일개의 교사가 연구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러니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과 방법을 통해 학습이 되는지 탐구하지 않는다. 선생님을 뽑을 때 교육 실력을 측정하지도 못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강제로 아이들을 붙잡아서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면 강제로 있는 시간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이 방법으로 교육을 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그 교육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반면에 학습에 대해서 축소하면 아이들이 배워야할 내용에 대해서 학업 성취도도 낮추게 된다. 배울 수 있는 시간에 덜 배우게 하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일까. 학습량을 줄이다보면 기초학력을 미달하는 아이가 늘어난다.
또한 학습을 줄이는 것도 싫다고 통합 교육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통합 교육을 해서 아이들이 정말 배울 수 있는지, 의미있는 교육인지, 아이들의 선택에 따른 교육인지, 입시나 미래와 연결되는지 파악하지 않는다.
특히 문제는 학교가 아이를 탁아하는 공간, 평가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맡겨두는 공간이니깐 어떻게든 붙잡고 있으려고 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자든지 놀든지 그냥 두고 아이를 방치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는 시험을 치는 공간으로 내신 점수를 받기 위한 곳이지, 아이들의 실력이 길러지는 공간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이는 실제로 아이들의 실력이 안 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결국 해결방법은 학습 예측 능력을 길러서 아이가 배울 때 얼마나 걸리는지를 파악하고,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또한 배우지 못한 아이에게 기회를 다시 제공해야 한다. 여러 번 기회를 제공하고, 성공할 때까지 다시 할 수 있는 성취 평가제가 필요하다. 이때 각종 비리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는 배우지 못한 아이를 모른다고 평가하고 끝난다. 따라서 기회가 없는 시스템을 대비하기 위해 학원이나 집에서 미리 연습하고 오는 방법 밖에 없다.

특수교육

특수교육대상에 대해서 교육을 해주는 특수교육은 신체나 정신에 장애가 있는 학생을 교육해준다. 국가에서 지체장애나 시각, 청각 등 특수한 상황에 맞게 교육을 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특수학교의 수는 부족하다, 이로 인해 강제로 일반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는 아이들 중에서 지적 장애 아동들이 있다. 이 아이들 중에 지능이 타인보다는 낮아서 일상생활에 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지능에 차이가 있는 경우이다.
지적장애로 판정받는 아이들 중 일부는 염색체의 원인 등 유전적인 요인도 있다. 그런데 지적 장애 아동 중 일부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생긴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있다. 받아야 할 교육을 못 받아 잘못 분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계선 지능의 아이들은 느린 학습자로도 불리는데 이런 아이들은 배우는 속도가 느린 것이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학습에 있어서 조금 더 오래 걸리는 것에 맞게 학교에서 기초부터 다지고, 자신이 스스로 복습하면 학교 교육에 따라갈 수 있다.
후천적인 지적 장애의 경우에는 가족과 교사들이 관심을 안 주었거나, 사교육을 못 받았거나, 눈이 나쁘거나, 학대했거나, 감정 조절을 못 받았음 등의 이유로 생겨난다.
따라서 경계선 지능의 아동들에 대해서 검사부터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이 아동들을 대상으로 천천히 교육해주는 교육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게 연습하면 개선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
특수교육대상자의 경우에는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학습 시스템이 더욱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학생들은 학습 욕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수 학생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도 개발을 해서 아이들이 누구나 받고 싶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일반 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자와 함께 하는 통합 학급을 구성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개별화교육계획을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혼자서 작성하기에는 어렵고, 학급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장애 정도가 심할 경우에는 특수학교로 보내 자기 몸을 다룰 줄 알고, 대화할 줄 알며,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생활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부모는 분리교육을 거부할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한 진단절차가 개선되야 한다.
결국 정부에서는 학생들에 대해 예방-진단-판별-배치하는 것이 더욱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원인을 발견하고,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정의와 원리, 절차가 명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후천적인 특수교육대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줄이고, 취소하는 경우는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누리과정에서부터 손을 봐야하고, 더 나아가서는 부모교육부터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은 챙기지 않으므로 임신부터 육아까지 안전하고 좋은 방법을 알아두어야 한다.

해결방법

대한민국 공교육은 망했다. 청소년 자살자도 많고, 사교육비도 엄청 나가고 있고, 문해력도 부족한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한국의 청소년은 학원에 다니는 것으로 부족한 교육을 채워야한다. 그 결과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공교육에는 희망이 있다. 오래전 대한민국은 교육 혁명으로 부활한 나라이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의무교육으로 문맹률이 80%인 국가를 짧은 시간 만에 문맹률 20%로 만든 기적이 있다. 이후 여러 대통령의 교육정책으로 국민들을 잘 교육한 역사가 있다. 그리고 이제 국민의 의견을 받아서 교육과정을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
국민의 의견을 받아서 함께 의견을 작성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의견을 작성하는 것보다 훨씬 유용하다.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 더 좋은 해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결이 되거나, 전문가의 의견만을 받아서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소수의 의견 중에 더 좋은 해답이 있으면 그 의견을 받아서 해결해야 할 것도 있다.
또한 국가의 교육정책은 일괄적으로 강요하는 것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따라서 자유학기제든 고교학점제든 자율성을 가지고 학교의 특성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때 정부나 교육청의 압박도 주어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현재 학생과 학부모에게 이런 암담한 교육 현실 속에서 해결방법이라고 줄 수 있는 것은 ‘지금 당장 학원에 보내라.’는 소리뿐이다. 교육 정책을 바꾸는 것은 신중해야 하고, 천천히 바뀌는 동안은 대안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좋은 교육 정책을 받아드려서 국가의 교육에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바꿔야할 교육과정이 하나 두 개가 아니며, 지금 바뀌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결방안은 다음과 같다.
1. 공교육의 목적을 공민의 행복으로 둔다.
2. 학년별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무제한으로 테스트하여 최소 수준을 달성 후 진급한다.
3. 학교의 각종 업무 중에 공통으로 할 수 있는 업무는 공통화·자동화한다.
4. 실력 미달의 교사는 행정직으로 돌리고 실력을 쌓은 교사만 재임용시킨다.
5. 실력 있는 교사는 의식주가 걱정 없도록 집 제공·월급 증가 등으로 인센티브를 준다.
6. 교대와 사범대의 졸업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일반대의 교원/강사를 금지시킨다.
7. 학생과 직업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하고, 재능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도록 돕는다.
8. 규칙을 어긴 아이에게는 가르침을 주고, 의식적으로 반복하면 강력한 체벌을 준다.
9. 기본적인 공부를 하고,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보낸 뒤 원하는 내용을 연습하도록 하여, 누구나 배우고 싶은 것은 배울 수 있게 한다.
10. 어떤 교육을 받으면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교육법을 개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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