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뒤처진 시간을
따라잡아야!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한 적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고 시행령 제25조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20년의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100분의 30까지 감축하는 것’으로 명시했다. 2010년 감축 목표대로라면 2020년 한국의 배출량은 5억 4천 3백만 톤이 되어야 하지만 2019년 배출량은 7억 2백만 톤이다. 파리협정에 따라 한국이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억 3천 6백만 톤CO2e으로 줄여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2018∼2020년 목표 평균치인 690.9백만 톤CO2e이 되어야 하는데 2018∼2019년 평균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715.2백만 톤CO2e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자면 우리나라는 2030년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을 수립하고, 2030년 감축 목표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2019년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를 ‘총괄 및 조정 기능 부족’과 ‘체계적 이행점검 수단의 부재’로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 정책에 있어 온실가스 감축을 꼭 달성할 목표로 삼지 않았고 예산, 인력, 실행력 등 자원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책임체계를 명확하게 하고 정책 수립과 실행체계 구축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50 탄소중립 로드맵 수립
<그림 1> IPCC 1.5℃ 달성을 위한 2050 탄소중립 목표와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
“1.5℃ 경로에서, 전 지구 인위적 온실가스 순배출량은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소하고,
2050년경에는 net zero에 도달 해야 한다.”
출처 : 환경부(2020.11.19), 2050 장기전탄소발전전략의 주요 내용과
향후 과제 -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 공청회
2021년은 한국사회 탄소중립 로드맵 수립의 해이다. 발전(전력 생산), 산업, 수송, 건물, 농축수산업, 폐기물, 산림흡수 부문의 정책과 실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환경부는 2021년 6월까지 부문별·시기별 감축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산업부 ‘에너지 탄소중립 혁신전략’, 국토부 ‘건물부문 2050 탄소중립 로드맵’ 수립 등 정부 부처들은 총 26가지의 부문별 탄소중립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정부는 시나리오 작업을 기반으로 부처 협의를 통해 로드맵을 작성하고 구체적인 실행정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부처별 탄소중립 계획 수립에 있어 다음 사항이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계획을 수립 할 때 개별 감축 사업의 나열이 아니라 부문별 총량관리를 목표로 삼아서 수립해야 하는데 2050년을 배출 ‘0’으로 설정하고 백캐스팅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별 프로젝트의 수행을 지양하고, 수요관리와 전환을 동시에 고려하며 법과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탄소중립 추진전략 관련 합동 브리핑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정부 합동발표가 2020년 12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출처 : 기획재정부
정부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한 전환’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공정한 전환을 위한 노동자, 지역, 산업 대책을 수립할 주체와 로드맵이 부재한 상황이다. 시급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계획 수립 과정에서의 정보와 초안을 폭넓게 공개하고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거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각 부처가 수립 중인 계획을 통합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는 대통령소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데, 계획 간의 정합성과 통합을 조율하는 역할은 탄소중립위원회에서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탄소중립 사회로 가려면 기존 화석에너지와 경제성장 일변도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결정해야 할 중요한 방향이 있다. 탈석탄 시점, 내연기관 차량 생산판매 금지,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공항건설을 포함한 각종 개발 정책 등 논쟁을 유발할 만한 사안을 어떻게 논의하고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장과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정부가 먼저 혁신적인 계획과 능동적인 실행으로 앞장서야 한다는 점이다. 평소대로와 다름없는 정책에서 조금 더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탄소중립 사회 실현을 위한
10대 정책 과제
국제사회에서 논의하는 기후규제 제도는 2023년~2024년 경 본격 실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 실시 연도는 2023년, 배터리의 탄소발자국 의무화 연도는 2024년이다. G7 국가와 EU가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협의한 시점은 2025년이다.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2~3년 남짓이다. 이에 탄소중립 기반구축을 위해 연구를 시작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10대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탄소중립 공감대 형성과 실행조직 체계 구축
탄소중립 사회를 만드는 첫 번째 요건은 기후위기 대응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한 전 국민적인 공감과 합의(학습, 토론)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어린이, 청소년, 청년에 대한 교육과 관련 분야의 인력 양성은 가장 중요한 의제 중에 하나로 다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탄소중립 목표를 지키려면 이행·점검·평가·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하고 총괄 주체가 각 부처의 감축 목표를 달성하도록 강제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누가 어떤 권한을 갖고 탄소중립을 추진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정부조직 체계와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한다. 탄소중립위원회는 녹색성장위원회·녹색성장기본법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역할과 권한, 책임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과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해 매년 이행, 점검, 평가, 수정, 보완 권한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와 같이 독립적인 사무국과 재정체계, 총괄 조정을 할 수 있도록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2. 탄소통상·기후외교 시대 대비 전략 마련
EU와 미국이 탄소국경조정과 탄소가격 논의를 진행함에 따라 무역 통상 분야의 기준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제품 생산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가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한 것이다. 탄소발자국, 탄소세, RE100, 플라스틱세와 같은 제도가 국내 산업과 기업활동에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됨에 따라 탄소중립이 통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 해야 한다. 한국은 총리 주재로 탄소국경조정 대비 TF를 운영 중이고 탄소국경조정 도입 대응을 위해 생산품 탄소발자국 측정 방안, 탄소가격제 등 제도 정비 방안을 모색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 다자통상협력과에서 탄소국경조정을 다루고 있다. 탄소중립위원회에서 탄소국경조정을 포함한 탄소중립 통상 산업대책을 전담하는 체계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존 케리 전 국무부 장관을 기후특사로 임명했고 중국도 셰전화 전 중국기후변화사무 특별대표를 기후특사로 임명했다. 우리나라도 본격화된 기후외교를 전담할 기후특사를 임명하자.
3. 온실가스와 탄소발자국 측정을 위한 통계기반 구축
온실가스 배출량을 국가 주요 지표와 평가지표로 삼아 관리하지 않으면 총량을 줄이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온실가스배출량 통계를 국가, 광역, 지자체 차원에서 구축하고, 인벤토리 통계를 시민들이 알기 쉽게 가공하고 전달해야 한다. 더불어 탄소통상시대에서는 상품생산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측정과 감축 노력, 보고와 검증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EU를 중심으로 교역에 내재 된 온실가스 증빙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만 아니라 중소기업 차원에서 배출량에 대한 이력을 관리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4. 에너지 전환을 위한 가격시장 제도 마련 :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와 갈등 해결
탄소중립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이다. EU는 탄소국경조정에서 국가 전력망의 탄소집약도를 고려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것은 전력부문의 탈탄소화가 국가 경제·통상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력 중 석탄발전 비중을 낮추고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확대, 해상풍력과 그린 수소, 스마트그리드를 연계한 전력망 운영 효율화에 대한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에너지 전환에 있어 탄소배출 비용을 반영하는 가격과 시장제도 개편은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시장과 전기요금은 너무나 경직되어 있어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하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 현 전기요금과 시장체제에서는 에너지효율개선이나 에너지 시장의 신산업 진출과 성장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전력시장 구조 개편 없이는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도 탄소중립도 어려울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위한 갈등 해결도 주목해야 한다. 지역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주민참여와 소통방법론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5.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에 대한 대책 수립
국제적으로도 2009년 G20 국가가 약속했던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연방기관의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와 400억 달러(약 44조 원)에 달하는 화석연료 보조금 종료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화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을 많이 지출하는 나라로 분류되어 있어 폐지의 압박은 매우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출하는 화석연료 보조금은 연간 약 3조 5,000억 원 정도의 규모다. 2019년 예산을 보면 유가보조금 2조 원, 농어민 면세유 1조 1,000억 원 그리고 석탄 관련 보조금 3,400억 원 등이 편성되었다.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가 크게 영향을 미칠 분야는 물류 수송과 농수산업으로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영향이 큰 분야이므로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대안 마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6. 탄소중립 시대에 대비한 조세제도 개혁과 탄소세 도입
2050년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조세재정 분야의 장기 연구가 수립되어야 한다. 화석에너지에 부과하던 세금이 탄소중립 정책으로 인해 화석연료 소비가 ‘0’으로 수렴함에 따라 세수도 줄어들 전망이다. 예를 들면 내연기관 차량 생산판매 금지시점이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권고한 대로 2035~2040년으로 확정될 경우 유류에 부과해서 거둬들이던 세수가 대폭 줄게 된다. 탄소중립 시대에 에너지 소비 변화가 조세와 국가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국내 탄소세 도입 논의와 연구도 필요하다. EU와 미국이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본격 도입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EU와 미국에 탄소배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 된다. 어차피 탄소비용을 내야 한다면 탄소세를 징수하여 기업의 탄소배출 저감을 유도하고 탄소세로 확보한 세수를 탈탄소 기술과 경쟁력 강화에 투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전북 부안군 해상풍력 실증단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그린 에너지 현장 - 바람이 분다'행사(2020년 7월 17일)
*출처 : 청와대
7. 녹색금융공사 설립을 포함한 녹색금융 제도화 기반 마련
탄소중립에 알맞은 녹색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녹색금융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바이든 정부 들어 정부 주도의 녹색경기부양책과 금융 규제기관의 급진파 전진 배치를 통해 금융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로히트 초프라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국장, 연방거래위원 리나 칸 등은 공공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독점 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인물들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연방녹색금융기관 설립을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인데 1,000억 달러의 자본금을 공공재원으로 조성해 신재생 에너지, 청정운송수단, 건물 효율화, 산업 탈석탄화, 전력망 업그레이드 등의 다양한 기후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다. 연방녹색금융기관 재원의 40%는 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우리도 녹색금융공사 설립을 포함한 녹색금융 법제도화가 시급하다. 금융위원회가 상장기업의 기후관련 재무정보 공개와 ESG 적용을 2025년까지 의무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
8. 지역기반 사회적경제와 기후재난에 대한 회복력 구축
노후된 인프라와 사회기반시설을 기후위기나 기후재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재구축하고 탄소중립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코로나19 시대에 지역에 꼭 필요한 생존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회적경제가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역에서 가치를 생산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에 지역에 필요한 핵심 인프라는 공공의료, 폭염과 한파를 견디는 안전한 집, 편리한 공공교통과 자전거 도로, 폐기물을 만들지 않는 자원 순환, 집 근처에서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공원이다. 이상 기후에 대비해 도시 인프라를 개선하고, 새로 짓는 건물은 에너지제로 건물로 짓고 노후건물은 그린 리모델링을 하는 일에 돈을 써야 일자리도 만들고 온실가스도 줄인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교육을 하고 강과 숲을 가꾸고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며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시민들도 재난에 안전할 수 있도록 재난대비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경제가 그린 뉴딜과 만날 수 있는 영역은 에너지, 건물, 교통, 폐기물, 생태계 보호와 생물다양성, 교육, 재난 대비, 돌봄, 건강과 의료, 예술과 놀이, 먹거리 등 다양하다.
9. 정의로운 전환 일자리 안전망 : 탈석탄과 탈내연기관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 있어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와 손실 등이 지역사회와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정의로운 전환 원칙을 수립하고 사회적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탈석탄발전과 탈내연기관 시기가 가시화되면 일자리와 지역 경제에 충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1)탈탄소화 과정에서 영향받는 산업, 지역, 노동자에 대한 현황 파악 2)현실에 근거한 종합대책 수립 3)지원체계 구축과 실행 4)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지역과 산업 순환과 같은 체계적인 접근법을 마련해야 한다. 2050 탄소중립 전략에서 제시한 공정한 전환(취약산업·계층 보호 및 신산업체계 편입)에 대한 우선순위 선정 및 추진 주체와 절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관련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
10. 기후위기 대응 농업정책과 순환경제
한국은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낮아 기후위기에 대한 식량안보 차원에서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U는 공동농업정책과 식품정책 간의 협업으로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간다. 공동농업정책은 농업생산 시스템의 효율을 높여 식품 가격, 토지 이용 효율성에 영향을 주고 소비자들이 건강한 식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도 농업과 식품 정책 연계를 통해 먹을거리 생산·가공·유통·소비·폐기(자원 순환) 과정의 친환경성을 높이고 소비자가 친환경 먹을거리를 선택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순환경제는 우리나라에서는 폐기물 재활용 수준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모든 자원의 재제조, 재사용, 재활용으로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달성하도록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