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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인터뷰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임기 동안의 활동과
앞으로 풀어야 할
경제 과제를 말하다
코로나19와 국내·외의 정세 변화로 위기를 맞이한 경제,
정치·사회·문화 등 폭넓은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경제현실을 바라보다
이제민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임운택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분과 부위원장)
김가을
사진정다형
지난해 전 세계에 퍼지면서 우리의 일상까지 바꿔놓은 코로나19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까지 타격을 주었다. 이에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냈던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임기 동안의 활동 내용과 코로나19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코로나19로 입게 된 경제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국민경제와 관련된 정책에 대해 대통령의 자문을 수행하기 위해 헌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기관이다. 이제민 전 부의장은 이곳에서 위원을 역임하면서 쌓은 경험과 균형 있는 식견을 바탕으로 ‘사람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안착시키고 혁신적 포용국가를 구체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임운택

지난 2년 동안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서 정부 경제 정책에 많은 자문을 하시면서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학자로서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여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과 아쉬운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제민

우선 제가 재임 중에 느낀 것이 우리 정부의 공무원이나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잘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들도 국내·외 문제를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분들과 학계 간에 소통이나 연계가 좀 더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미국의 대통령직속 경제자문회의(Council of Economic Advisers: CEA)를 벤치마크해서 만들었지만, 한국의 여건이 미국과 달라서 실제 역할은 미국의 CEA와 같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미국의 CEA는 백악관 내부기구인 반면 우리나라의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청와대 밖에 있어서 사실상 대통령직속 위원회 중 하나일 뿐인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이번 정부에서만이 아니라 계속 있어왔던 문제이고, 앞으로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민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임운택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분과 부위원장)
생소한 이름으로 오해를 산 소득주도성장,
마음 급했던 최저임금 인상

임운택

본격적인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 정책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었습니다. 총수요 부족을 임금이나 소득으로 견인해내겠다는 것인데요. 기대와는 다르게 최저임금제도가 소위 말하는 ‘을끼리의 전쟁’으로 포커스가 맞춰지고 이후에 혁신성장, 포용성장으로 이름을 바꿔 결국 정부의 핵심적 브랜드 정책의 지위가 사라진 느낌이 듭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민

현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만을 내세웠던 것이 아니라 혁신성장,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이렇게 세 개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만이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것처럼 오해를 샀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명칭이 낯설고 특이했던 점이 주원인이라고 봅니다. 경제학자나 언론에서 볼 때 생소했거든요. 세계적으로 많이 쓰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라고 했으면 많은 분들이 더 쉽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용어의 생소함 때문에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일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은 그 내용을 보면 시장소득의 균등화, 생활비 저감, 사회안전망 강화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대침체 하에서 총수요가 만성적으로 부족하게 되었고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해야한다는 데 대해 많은 학자들과 국제기구가 찬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30~40년간 악화된 소득분배를 교정해야한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있지요. 우리나라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거기에 우리나라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무역 환경이 악화되고 있어서 내수 쪽으로 중심을 옮겨야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의 내용이 되는 정책은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것들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용어의 생소함 때문에 한번 논란이 일어나고 나니 사람들이 그 내용을 들여다보고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 굉장히 아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인 것처럼 부각되고 다른 정책에 앞서서 추진된 것도 서툴렀다고 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필요하지만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문제입니다. 한국은 10인 미만 기업의 종사자가 전체 근로자의 40%를 넘습니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요. 이들 대부분은 기술력이 높은 강소기업이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16%, 11% 식으로 올리니까 논란이 많았던 거죠. 예컨대 5년간 8%씩 지속적으로 올리는 예시제를 실시하고 근로장려세제 등으로 보완했으면 조금 늦더라도 실수령액 기준으로 공약했던 1만 원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보다 시야를 넓혀 소득분배를 교정할 수 있는 부동산 보유세 인상이나 불투명성·비리에 기생한 불로소득 제거 등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나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2018년에 한국경제가 2.7% 성장했는데 그 중 1.5%p, 즉 전체 성장의 60% 가까이가 민간소비 증가 때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최저임금 인상, 그를 위해 투입된 일자리 안정기금,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정책들의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추진에 서툰 점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를 다시 들여다보고 여러 방면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운택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분과 부위원장)
대침체에 더해진 대봉쇄의 여파 우려,
불평등 야기하는 K자 경제 회복 경계

임운택

작년에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전 세계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장 심각한 규모의 경제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K방역이라고 불릴 만큼 국제적으로 방역에 잘 대처해왔습니다.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받는 경제적인 영향입니다. 흔히 ‘포스트 코로나 현상’이라고 하는 여러 지점 중 상당 부분을 경제가 차지할 것 같습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국내외적 경제위기를 어떻게 전망하시고 계시는지요?

이제민

이 문제는 장·단기로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위기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10년 이상 ‘대침체’를 겪고 있었습니다. 대침체는 그 깊이가 대공황보다 얕아도 길이는 더 길었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 위기로 ‘대봉쇄’가 더해진 겁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빼놓을 수 없지요. 미·중 갈등 양상은 제가 보기에 불가역적인 것입니다. 이런 요인들이 상호 작용해서 앞으로 세계 경제가 우려할 수준의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개방경제체제에서 큰 이익을 누렸던 나라이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고, 이에 대해 우리가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방역은 OECD 주요 국가 중에서 가장 성과가 좋았지만, K방역이 K자 경제회복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만간 우리나라의 재정상태가 악화되어 외환위기가 일어난다든지 대규모 금융위기가 일어난다든지 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반면 그대로 두면 K자 회복으로 불평등이 확대될 것은 불을 보듯이 확실합니다. 구체적으로 현 상태에서 원격교육으로 교육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완화하거나 부동산 투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 등이 중요합니다.
이제민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위기에 대처하는 한시적 재정지출 아끼지 말아야

임운택

코로나19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경제문제만큼 중요한 일은 없는 듯한데요.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청년, 여성, 중소 상인들 등 경제적 약자들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난지원금, 기본소득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되는 중에 확대재정정책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확대재정을 어디에 투입하느냐도 중요한 사안인 거 같습니다. 여기에 좋은 조언을 해 주실 부분이 있을까요?

이제민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는 민간부문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정부가 재정정책, 통화정책, 일자리 대책 등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재정정책입니다. 재정 건전성 문제가 있는 데다 금융정책이나 일자리 대책도 결국 재정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정정책은 대상을 적절하게 선정해서 과감하게 투입하는 것이 요체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정보입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정보가 제대로 없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투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보를 축적할 수 있게 되어서 선별 지급이 가능해졌습니다. 재정의 재원이 무한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선별 지원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범위를 넓게 잡아서 지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선별한 대상에 대해 두텁게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어려움이 적은 게 아니거든요. 충분한 지원을 해줘야 위기 상황에서 버틸 수 있고 방역을 위한 협조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충분히 도움을 받지 못해 폐업을 하거나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인력이 생기게 되면 ‘이력현상(Hysteresis)’ 때문에 그 부정적 효과는 매우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원을 소홀히 한 결과가 매우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반면, 위기에 대처하는 재정지출은 한시적인 것입니다. 한시적 재정지출이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처럼 경제성장률이 금리보다 높은 나라에서는 시간이 가면서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가 공적자금 조성에 GDP의 25%를 썼지만, 지금 그 공적자금이 국채로 전환되어 국가채무 비율을 올리는 정도는 GDP의 3~4% 수준입니다.
한국판 뉴딜 정책, 정부의 리더십과 정책역량의 결집을 통해
성장잠재력 확충으로 연계되어야

임운택

코로나19로 야기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체질 전환 얘기가 나올 만큼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물 경제로 연계되지 못한 돈들이 금융시장이나 부동산으로 몰려다니는 것은 국내·외 공통현상이고요. 그래서 OECD 주요 국가들은 이번 기회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산업 정책을 주도하고 있고, 한국도 작년 7월 14일에 한국판 뉴딜이라는 정책을 내놓고 디지털 전환과 그린 뉴딜 전환을 핵심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펴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이제민

전체적인 시장경제체제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와 산업정책을 어떻게 추진하느냐로 나누어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자의 경우 산업과 금융의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지난 30~40년간 세계적으로 실물 또는 산업과 금융의 관계에서 후자가 발호(跋扈)를 해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공황 때 뉴딜 정책으로 산업의 지원을 넘어서는 금융의 확장을 눌러놓았던 것인데 197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오히려 금융이 산업에 대해 우위에 서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도 그런 맥락에서 일어났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도 그런 구도에서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실물경제는 부진한데 자산 가격은 급등하는 것이 그런 구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장경제체제가 앞으로 고쳐야 할 것 중 하나가 금융을 누르고 산업이 경제를 이끌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금융부문이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발호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정책의 경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투자해야 할 분야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은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부분 그 동안 논의되어 왔던 것들이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틀이 잡혀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서 체계적으로 이끌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투자를 하는 곳은 기업이니까 정부는 큰 그림을 그리고 기업이 나설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특히 그린 뉴딜과 관련해서는 기업으로 하여금 세계가 친환경으로 가고 있고 그에 거스르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과 함께 그것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라는 인식을 갖게 해줘야 합니다. 기업은 이윤 창출 동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해라’, ‘보조금을 줄 테니 해라’는 식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다행히 이미 상당수 기업, 특히 대기업이 그린 뉴딜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인식을 더 발전시켜 민관협력으로 그린 뉴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불경기 하에서의 산업정책은 토건 같은 과거 지향적 정책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1990년대 일본이 그랬습니다. 당시 일본은 거품 붕괴 후 토건 중심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미래 산업인 IT를 경시했기 때문에 지금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산업정책은 반드시 미래 지향적으로 비전을 세워서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추진해야 합니다.
급변하는 국제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상황을
전략적으로 아우르는 국가기구 필요, 국제협력을 주도할 필요

임운택

준비를 잘 갖추고 있어도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에 개방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외 경제 여건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정부가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교체됐음에도 미국의 대중 정책은 큰 변화가 없고, 미국이 유럽과의 관계를 회복한다고 해도 유럽도 이제는 과거처럼 미국 질서에 그대로 들어와 있지 않으려는 게 현재의 모습입니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할 때만 해도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상품만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가치를 수용하기를 원했는데 대침체 후 중국은 미국 따라하기를 중단했습니다. 최근에는 제조 2025로 미국을 위협하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WTO는 2000년대 초반 유지했던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을 포기하고 2015년 이후에는 다원적 다자주의(Plurilateralism)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제 환경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적 입장을 취해야할까요?

이제민

어렵고 광범위한 문제인데요. 문제를 둘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는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질서가 어떻게 바뀌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가 같이 얽힌 큰 문제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로 대침체가 지속됐는데 그것이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표적으로 포퓰리즘의 득세를 들 수 있겠지요. 포퓰리즘은 국내적으로 민주정치를 위협하고 국제적으로 규칙기반질서를 파괴합니다. 여기에 현존하는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겹쳤습니다. 중국은 과거 구소련, 일본, 유럽연합 같은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자 내지 잠재적 도전자보다 훨씬 강합니다. 거기에다 정치적 현실뿐 아니라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중국이 구미가 만들어온 가치관과 세계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만큼 세계질서는 ‘지각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우리가 이런 지각변동에 대응하는 문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 걸쳐 있기 때문에 여기서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당장 할 수 있는 일로서 정치와 경제를 아울러서 국가전략을 결정하는 기구를 만드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참고가 되는 것이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해결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한 곳이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였다는 사실입니다.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는 국방 장관, 국가안보 보좌관, 재무부 장관을 포함해서 정치·경제를 아우르는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질서의 지각변동을 맞고 있지만, 그런 큰 변동 하에서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 본 경험이 없다시피 합니다. 과거 훨씬 약한 변동이었던 냉전 후 세계질서 재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외환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상황을 전략적으로 보고 결정하는 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이런 것은 역시 출발에 불과하고, 이 문제는 더 광범위하게 국민적 합의를 모아서 대처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편 단기적으로 보아 바이든 정부가 들어와서 규칙기반질서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는 이익입니다. 거기에다 말씀하신 중국의 제조 2025의 1차 타깃은 미국이 아니라 바로 한국입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주면 우리 입장에서는 이익이지요.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의 대결 전략을 정비하면서 한국의 입지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미국 편에 서라는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나라들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아세안 국가들, 호주 같은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도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도에서 한쪽에 서는 것을 피하거나 그것이 불가피하더라도 시기를 늦추고 싶어 합니다. 이들과 협조를 통해 우리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민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임운택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분과 부위원장)
사회협약, 우리사회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임운택

교수님은 한국 경제발전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해 왔고, 그 중에서도 외환위기에 대한 중요 저서를 낸 바 있습니다. 현재의 경제적 조건과 환경이 그때와 똑같지는 않지만 큰 전환점에 서 있는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 체질 개선에 대해서 조언을 해 주시면 오늘 인터뷰가 뜻깊게 끝나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민

우선 기존의 체질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되리라 봅니다. 그런 점에서 외환위기 이후 진행되어온 금융의 발호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문제를 제외하고 볼 때 우리 경제의 체질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중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이고, 둘째 이중구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관계입니다. 이 문제들 역시 외환위기 이후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지금 전체 취업자 중에서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등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20% 정도입니다. 나머지 80%는 비정규직이거나 불안한 중소기업 직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직업훈련이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빈약합니다. 그것은 분배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인적 역량을 약화시켜서 성장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중구조를 해결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을 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거래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을 올리는 데는 여러 과제가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 수년 간 공을 들이고 있는 ‘혁신조달’ 같은 것도 중요한 과제지요. 나아가서 중소기업이 대학이나 정부 출연 연구원과 협력해서 혁신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소기업도 자체의 거버넌스를 개혁하고 경영행태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공정거래의 경우에는 지난 10여 년 간 일부 성과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하도급 관계에서 이익을 대기업관계자가 독점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 불공정 행위를 했을 때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단체교섭의 도입 등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제도가 아직 미비해서 실효성은 의심스럽기 때문에 계속 주시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이중구조는 외환위기 이후 문제가 되기 시작한 지 20여 년이 됐는데 지난 10여 년 동안 일부 개선된 점이 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정부도 비정규직 축소 정책을 폈기 때문이지요. 노동조합도 일각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얻어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급여체제의 변경입니다. 현재의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직무급이란 같은 직무에 대해 같은 임금 주는 것이니, 이것이 도입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가 발 벗고 나설 문제입니다. 민간부문에서는 직무급이 일부 도입되고 있으나 공공부문이 훨씬 뒤처지고 있는데, 정부가 앞서서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사회협약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회협약은 노사관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중구조 문제 등을 같이 다루고, 나아가서 재정이 뒷받침되는 사회안전망 구축과 결부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종합적으로 접근해서 사회협약을 도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운택

네 감사합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경제에만 포커스를 좁히지 말고 정치와 사회개혁 문제까지 함께 장기적인 안목에서 봐야 된다는 아주 좋은 말씀으로 마무리 해주셨습니다. 오늘 바쁘신데 긴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민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임운택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분과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