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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과제 광장Ⅰ
촛불민주주의 이후
‘더 좋은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직접민주주의와
숙의의 제도화
서유경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위원 /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그 추운 겨울 광장에 온기를 가득 불어넣었던 함성, 바로 그 대한민국헌법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그때 우리를 단단히 함께 묶어준 혁명의 시대정신(Zeitgeist)이었다. 그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주권 시대의 개막’을 선포하고 새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규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고, 2017년 5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립5·18민주묘지 연설은 새 민주공화국의 경악하리만치 새롭고 아프게 아름다운 액막이 진혼곡(鎭魂曲)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순풍에 돛을 단 듯 매끄럽고 순조로웠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의 판문점 군사분계선 상호 월경과 도보다리 회담, 5월 26일 통일각 2차 남북 정상회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장장 54시간에 걸친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평양공동선언’으로 쉴 새 없이 이어진 한반도발 외교 드라마는 가히 세계사의 한 장을 장식할 대(大)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새 공화국 헌법개정의 무산, 조국발 검찰개혁에 대한 야당의 극심한 저항과 이른바 조국사태로의 전화(轉化),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최종 결렬과 남북 교류 단절, 광화문 태극기집회와 서초동 촛불집회의 세 싸움,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극단적 대립, 부동산 정책 실패와 2020년 벽두에 찾아온 코로나19의 기습 등 현실정치의 냉혹함이 가차 없이 마각을 속속 드러냈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것이 촛불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 새 민주공화국의 새로움이 사라지고 이상이 증발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현 정부가 코로나19와의 싸움에 합리적으로 잘 대응함으로써 인적·물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객관적 사실 정도라고나 할까. 그래서 현재 집권 4년 차 말기인 문재인 정부의 ‘모든 것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리키는데도 여전한 40% 가까운 콘크리트 지지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들 한다. 무엇 때문일까.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2020년 사회통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대다수가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민주주의 수준에 대한 만족도 역시 매년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이 사실이 바로 문재인 정부의 콘크리트 지지율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자신의 국민적 자부심을 높여주는 정부, 자국 민주주의 수준을 만족스럽게 관리해주는 정부에 대한 지지는 너무나 당연한 합리적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한국인,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
한국행정연구원의 「2016~2017년 촛불민주주의 이후 국민인식조사 결과」는 우리 국민이 느끼는 정치적 효능감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응답자들은 촛불혁명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96.5%),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88.8%), 국민의 시민의식 향상(87.9%), 2017년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택(87.6%),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 분위기 조성(87.5%), 정치인들의 국민 의견 중시(77.3%) 등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효능감은 높은 수준의 정치참여 유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촛불혁명 참여 동기를 묻는 질문에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한다”라고 답한 응답자도 무려 88.7%나 되었다. 이 경우는 정치적 효능감보다는 자신이 속한 정치공동체의 주권자로서 국가의 정치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려는 시민공화주의적 책임의식이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촛불혁명
2016년 6월 27일에서 11월 23일까지 실시된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의 조사에서도 한국인의 정치적 효능감과 정치참여 의지 수준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과 ‘정치 이슈에 대한 이해도’는 최하위 수준이다. 바꿔 말해서 한국인은 정치에 관심은 별로 없는데 정치참여를 열망하고 정치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지는데 정치적 효능감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영국인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로 정치적 효능감은 평균 이하지만 정치 이슈에 대한 이해도 수준은 평균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 ISSP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영국 국민이 정부, 정치인, 공무원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정치참여의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이 설명은 영국인이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선호하고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 국민은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0년에 실시한 한국 민주주의 수준에 대한 만족도는 2019년 대비 0.4점이 상승한 5.7점을 기록했고, 5년 후 민주주의의 수준에 대한 만족도의 가정치는 이보다 더 높은 6.1점이었다. 이 조사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매년 조금씩 증가한 사실은 우리 국민이 문재인 정부하에서 한국 민주주의 수준이 향상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향후 5년 뒤를 가정한 수치가 조금 더 높게 나타난 것은 우리 국민이 문재인 정부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낙관적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10점 만점에 5~6점대로 나타난다는 것은 결국 매우 만족하는 상태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지금 더 좋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만 한다.
더 좋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고민
현대 숙의민주주의 이론가 피쉬킨(James Fishkin)은 『숙의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정치적 평등(political equality), 숙의(deliberation), 대중참여(mass participation)를 ‘민주개혁의 3중 딜레마’로 지목한다. 우선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정치적 평등은 보통선거권이 보장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것은 단지 정치적 평등을 위한 최소 조건일 뿐이며, 숙의 과정의 문제는 반드시 모든 의견의 반영이냐 아니면 더 가치 있는 의견의 반영이냐는 고민 상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또한 대중의 정치참여는 민주주의의 기본전제인 민주적 정당성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항상 어떻게 다수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것인가라는 딜레마를 수반한다.
고대 아테네의 이상적 직접민주주의의 경우는 우선 무작위추출법을 활용해서 시민들의 정치적 평등을 보장했으며 거기에 더 좋은 민주주의를 위해 숙의 방식을 결합했다. 현대 보통 시민권 시대에도 이러한 아테네식 직접민주주의 운영방식은 가능하지만 오직 ‘소우주(microcosmos)’—특정 정치 이슈에 대한 숙의가 이루어지기에 적합한 크기와 인적 대표성이 확보된 숙의 단위—내에서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형태가 됐든 숙의민주주의는 현대 대의민주주의 정치환경에서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대표성을 가지면서도 숙의적인 방식으로 일반시민들을 정치과정에 포함시키는 일이 더 좋은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최선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건은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숙의적 정치참여를 어떻게 보장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가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두 가지 운영방식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기존의 정치참여 제도에 숙의과정을 가미하는 형태로, 예컨대 선거 일주일 전에 ‘숙의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 식으로 투표라는 비숙의적 일회성 정치참여 양태와 숙의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것의 목적은 시민들이 정당의 진영논리나 집단 간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좀 더 객관적으로 신중한 선택을 하고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선택 대상이나 관련 이슈에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방식으로 관여하게 하려는 것이다. 선거에 앞선 ‘숙의의 날’ 행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일반 시민들을 거수기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숙의의 장으로 초대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과정에 직접 반영함으로써 실질적인 정치적 평등을 구현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유형은 2017년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숙의조사와 같은 원포인트 정책 숙의과정을 조직하는 방식이다. 이런 단발성 숙의조사의 경우는 국민참여재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숙의 결과가 사법 또는 정책 당국에 대한 권고사항으로 넘겨진다. 그럼에도 여론의 일시적 쏠림 현상이 즉각적인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함으로써 대체로 소기의 정치적 효과를 창출하게 된다. 2017년 당시 공론화위원회의 숙의조사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기조와 정면 배치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탈원전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었고 극단적인 갈등 양상으로 치달았던 국민 여론도 중심을 잡게 되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 위촉장 수여식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 위촉장 수여식(이낙연 전 국무총리, 김지형 신고리 공롱화위원회 위원장, 2017년 7월 24일)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그러나 최근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평가 결과를 두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다시금 민관 갈등의 고리가 된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일회성 공론화위원회 참여방식은 첨예한 갈등 해결의 미봉책일뿐 완전하고 영구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이에 우리는 숙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존의 정치참여 제도와 적절한 숙의 과정의 결합방식을 통해 숙의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요컨대 숙의적 참여 권한이 정기적으로 실행될 경우에만 직접참여와 간접참여 사이의 간극이 메워질 수 있고 시민들과 대표자들 사이에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대화 채널이 효과적인 방식으로 가동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근래 전 세계적으로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 기제들의 민주적 유용성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위스의 국민발안제: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의 결합
국민발안제(popular initiatives)는 특정 국가공동체 내 구성원의 삶과 관련된 법과 규칙의 내용을 국민이 직접 제안하는 제도로서 주권자의 의사를 헌법개정안이나 법률안에 담아 정치공동체의 규범에 직접 반영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정치참여의 가장 적극적인 실현방식으로 볼 수 있다. 특히나 이것은 절차상 숙의과정과 국민투표(referendum)를 반드시 통과해야 하므로 부득불 숙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결합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입법부는 대개 법안 발의권을 독점하거나 법안 입안 및 심사와 연계된 숙의과정을 입법부 내·외부의 소수 관련자와 이해당사자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민발안에 의한 입법과정은 일반적으로 국민 전체를 상대로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위해 공개적인 숙의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자연히 대중의 정치참여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스위스는 이런 방식으로 헌법개정안에 대해 국민발안제를 실시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시민들에 의해 발안된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되는데 전부개정안은 중간절차 없이 바로 국민투표에 회부되며, 일부개정안은 의회가 심의와 성안 절차를 거쳐 국민투표에 회부한다. 1891년 헌법개정안 국민발안제도가 도입된 이래 2016년까지 총 209건이 발안되었지만 단지 22건만 최종 채택되었을 정도로 통과가 쉽지 않다. 이 중 73건은 철회되었고 대개의 경우는 연방의회가 회부한 역제안(a counter-proposal)이 통과되었다. 국민발안이 채택된 대표적 사례로는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중지(1990), UN가입(2002), 이슬람 종교첨탑 설치 금지(2009), EU국가로부터의 이민 제한(2014) 등이 꼽힌다.
연방헌법의 개정안 발안은 18개월 이내에 스위스 선거권자 10만 명의 서명을 모아서 함께 제출해야 하며 특히 일부개정안 발안은 개정의견 제안 형식과 특정 조항에 대한 개정안 제안 형식으로 구분된다.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과 칸톤 투표에서 칸톤 과반수 찬성, 즉 이중 다수득표 방식으로 승인된다. 연방의회는 연방헌법 일부개정안 국민발안에 대해서만 심의권을 가지며 형식요건과 내용에 결격사유가 발견되면 무효를 선언할 수 있다. 또한 개정의견 형식의 발안에 대해서는 개정안을 작성하여 국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고, 개정안 형식의 발안은 바로 국민투표와 칸톤투표에 각각 회부되지만 이때 연방의회는 해당 발안의 채택 또는 거부를 권고할 수 있으며, 절충적인 성격의 역제안 제출도 가능한데 이 경우는 원안과 함께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여기서 스위스의 헌법개정안 국민발안제에 숙의과정이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지 검토해보자. 우선 선거권자 10만 명의 서명을 18개월 내에 모아서 제출해야 한다는 발안의 조건은 시민들이 긴 호흡으로 필요한 정보 수집, 공론장 조직, 소통과 설득을 통해 헌법개정안을 숙성시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허용한다. 둘째, 매년 정기적으로 4회(또는 3회) 국민투표 기회가 주어지며 서명자 요건 충족이 어렵지 않아 반복 발안이 용이하다. 재(再)발안의 경우 숙의과정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셋째, 국민투표와 칸톤투표라는 이중 다수득표 방식은 국민발안제의 남용 방지책인 동시에 칸톤투표를 겨냥한 주민 간 소통과 설득의 불가피성을 제도틀 속에 내장함으로써 국민발안제가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한다. 끝으로 연방의회에 헌법 일부개정안 국민발안에 대한 심의권과 역제안 제출권을 부여함으로써 시민과 입법부 사이에 건설적인 숙의와 상호 견제가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국민발안제의 세계적 확산
실제로 국민발안제가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에 일으킬 수 있는 파급효과는 상기한 내용 그 이상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사실은 국민발안제가 대의민주주의가 보증하는 형식적인 정치적 평등과 숙의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실질적인 정치적 평등을 함께 묶는 매개체로서 기능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공화국 안에서 국민이 자기 삶의 규칙을 자기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간, 비용, 물리적 제약이 심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국민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얼마든지 쉽게 입법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과거에 전문성 부족과 정보의 취약성 때문에 참여를 주저했던 시민들도 이제는 인터넷 검색엔진 등의 도움으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입법과정 참여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이런 획기적인 정치참여 환경 변화 덕분에 법률안에 대한 국민발안제를 도입하는 국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일의 경우는 2005년 연방의회가 전자청원제도를 도입하여 4주간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청원위원회가 논의하도록 했다. 영국은 2006년 내각이 전자청원 사이트를 개설하였고 2015년부터는 하원과 공동으로 운영하며 발의안이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게 되면 하원 본회의에서 반드시 논의하도록 하고 있다. 핀란드는 2012년 12월 헌법개정을 통해 법률안에 대한 시민발안제도를 전격 도입했는데 이 경우는 6개월 내에 5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의회에 법률안으로서 접수된다.
우리의 경우 국민발안제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었고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도 국민발안제 도입에 찬성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헌법개정이 무산됨에 따라 헌법에 대한 국민발안제의 도입이 무산됐다. 이에 국회는 2019년 4월 국회법 개정을 통해 전자청원시스템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2020년 1월 10일 국민동의청원 사이트를 개통하여 비록 제한적인 형태기는 하지만 국민발안제 도입의 물꼬를 텄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선거권자는 누구나 입법청원이 가능하며 법률안 전자청원 후 30일 안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자동으로 국회 논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법률안 발의는 더 이상 국회의원만의 배타적 권한이나 국회의 재량 사안 또는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법률이 정한 국회의 의무가 되었다. 이 법률안 국민발안제는 전자청원 사이트 개통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83건의 청원이 동의 대상으로서 공개되고 이 중 7건의 청원이 10만 명 전자서명 요건을 충족하여 국회 심사대상으로 접수되는 등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더 좋은 한국 민주주의:
헌법개정안 발의권을 국민에게!
「대한민국헌법」 제128조는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헌법개정에 관한 발의권을 국회와 대통령으로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 직접 개헌안이나 헌법의 수정조항을 발의하거나 제안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의 헌법개정 절차는 헌법개정안의 제안, 공고, 국회의결, 국민투표, 공포의 순서로 진행된다. 그러나 국회의원 재적과반수 발의의 경우 발의안 심사과정에 대한 별도 절차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별다른 국회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바로 헌법개정안의 제안이 성립될 수 있다. 따라서 의원 발의안의 경우에 국민 의견 수렴과정은 생략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국민은 헌법개정의 거의 모든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2018년 3월 13일 개헌 자문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2018 대한민국헌법 개정 추진 백서』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실정이 백일하에 드러난 2016년 말부터 정치권과 시민사회 내에서 1987년 헌법 체계가 지난 30년 동안 변화된 국민의 기대치와 시대적 상황에 적절히 부응하지 못한다는 인식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에 2017년 1월 국회가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2월 21일 야당 원내대표들이 야 3당 단일안을 마련하여 별도의 개헌추진 절차를 밟기로 합의함으로써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개헌추진 활동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같은 기간 시민사회 내에서도 일부 시민단체들과 관련 학회들 사이에 개헌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고 개정안도 여러 가지가 입안되었지만 이들에게는 발의권이 없었다.
두 번째 헌법개정 주체인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8대 후보 시절은 물론 19대 후보 때도 ‘개헌 3대 원칙과 국민주권시대를 향한 5대 개헌 내용’을 발표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개헌 의지를 표명하였다. 당선 이후는 개헌을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하여 2018년 6월 지방선거 시 개헌 국민투표 시행을 목표로 정했다. 특히 국회의 개헌안 마련이 불투명해진 시점인 2018년 1월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개헌추진 목표를 재확인하고, 이어 2월 5일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6월 지방선거 시 투표에 부칠 대통령 개헌안 초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학계, 시민사회, 법조계 인사 총 33인이 참여하는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개헌안을 마련하고 대통령이 이를 발의했지만 결국 국회의결 단계를 넘지 못해 좌절되었다.
우리는 상기한 헌법개정 무산과정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헌법은 헌법개정의 주체를 대통령과 국회로 이원화하고 있지만, 사실상 국회가 헌법개정권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국회의 입법권 남용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의회는 4년간 약 1천 건, 일본의회는 회기 당 약 5백 건 정도 법률안을 발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반면 우리의 20대 국회는 무려 24,073건의 법안을 발의했고, 그중 9,138건을 처리하고 나머지는 폐기했다. 이처럼 기껏 발의된 법안의 반도 처리하지 못하고 회기를 마치는 국회, 동일 사안에 대한 무더기 발의 관행, 종료 시한에 쫓긴 날치기 통과 방식 등은 견제받지 않는 국회의 입법 전횡이 초래한 폐단들이다.
국민청원
2020년 국민동의청원제도 도입과 함께 국민이 직접 입법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참에 국민이 헌법개정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게 국민발안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이는 우리 헌법 제128조 제1항을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선거권자 50만 명의 발의로 제안된다’라고 바꾸면 간단히 해결될 일 같이 보인다. 문제는 이것이 겉보기와 달리 국회나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안을 발의한 후 국회 의결 절차를 밟거나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해야 할 국가의 중대사이므로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우리 국민이 헌법개정의 세 번째 주체로서 국민주권의 실질적 의미를 구현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 국민이 국가의 최고 입법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촛불민주주의 이후 더 좋은 한국 민주주의의 청사진을 직접 그릴 수 있게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결국 헌법 제128조 제1항의 개정이 시급한 선결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