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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과제 광장Ⅱ
변모하는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한국판 뉴딜의 성공,
국민이 고른 참여에 달렸다
김공회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분과위원 /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
한국판 뉴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판 뉴딜이 선포된지 이제 1년이 되어 간다. 돌아보면 정말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뉴딜’의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것이 지난해 4월 22일이었고 정부의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이 발표된 게 7월 14일이었다. 불과 80여일 만에 대통령의 언급이 종합적인 정책 패키지로 정리된 것이다. 이 「종합계획」에는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 등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2025년까지 국비 114조 원을 포함해 총 160조 원을 투입해 19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이 담겼다. 이후 ‘지역균형 뉴딜’이라는 차원이 새롭게 추가되면서 한국판 뉴딜은 그 체계성과 내실을 다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간 계획 수립 단계에서 보였던 급박함이 요즘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의 전국적인 3차 대유행 그리고 보궐선거와 같은 잇따른 주요 정치 일정으로 한국판 뉴딜이 슬쩍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림 1> ‘한국판 뉴딜’을 다루는 중앙정부 부처의 보도자료와 언론기사 건수 추이
‘한국판 뉴딜’을 다루는 중앙정부 부처의 보도자료와 언론기사 건수 추이 / 중앙정부 부처 보도자료
(a) 중앙정부 부처 보도자료**
‘한국판 뉴딜’을 다루는 중앙정부 부처의 보도자료와 언론기사 건수 추이 / 언론기사 건수
(b) 언론기사 건수***
* 2021년 3월 20일자까지.
** 출처 : http://www.knewdeal.go.kr (검색일: 2021.03.24.).
*** 출처 : http://www.bigkinds.or.kr (검색일: 2021.03.24. 검색어: 한국판 뉴딜). 중앙지·경제지·지역종합지·방송사·전문지 등 이 사이트에 등재된 모든 언론사 대상.
<그림 1>은 그것이 단순한 기우가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왼쪽은 대통령의 뉴딜 필요성 언급이 있었던 지난해 4월부터 최근(3월 20일)까지 중앙정부 부처들이 발표한 뉴딜 관련 보도자료 개수의 월별 추이를 보여준다. 이는 우리 정부가 개설한 범부처 ‘한국판 뉴딜’ 포털 사이트(http://www.knewdeal.go.kr)에 게시된 보도자료들을 대상으로 했으니 나름의 포괄성을 갖추고 있는데, 이로부터 「종합계획」이 발표된 7월 이후 월평균 74개 정도의 정부 보도자료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뉴딜을 구성하는 개별 사업을 시행하는 중앙정부 부처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으니 아무 문제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뉴딜이라는 것도 결국엔 정부의 여러 부처들이 행하는 사업들의 묶음일 터이니 뉴딜이 시행 단계에 잘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까?
<그림 1>의 오른쪽 그래프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http://www.bigkinds.or.kr)에서 위와 동일한 기간을 대상으로 ‘한국판 뉴딜’이 언급되는 언론기사 건수의 월별 추이를 나타낸다. 「종합계획」이 발표된 지난해 7월을 예외로 간주한다면 4월부터 11월까지 뉴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상승기조였으나 이후 빠르게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꾸준히 일을 하고 있는 반면, 국민 여론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 여론이 만들어지는 토대이기도 한 언론매체에서 한국판 뉴딜의 존재감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교는 아주 단순하고 엄밀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한국판 뉴딜이 처한 현실의 중요한 하나의 단면, 그것도 매우 우려스러운 단면 하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렇게 뉴딜이 공론장에서 논의되지 않고 정부 부처들의 일상적인 사업들로 전락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뉴딜’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제3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
제3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2020년 11월 16일)
*출처 : 청와대
애초 ‘뉴딜’이 무엇이었던가? 우리 경제와 사회의 재편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안팎의 변화에 대응하여 산업 전반의 틀과 내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 동시에 사회의 주요 세력들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른바 ‘새로운 사회계약’)이 뉴딜이다. 그러니 이런 과정은 민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게 최선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시급성과 중요성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 것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의 역할은 새로운 거래(뉴딜)의 규칙을 세우고 민간의 주체들이 성의껏 거래에 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넘어설 수는 없다. 뉴딜이란 우리 경제와 사회의 전반적 체질, 그 안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뉴딜에 우리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토록 하는 것, 그리하여 뉴딜을 다시 뉴딜답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1주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 한국판 뉴딜이 취해야 할 기조다.
코로나19, 뜻밖의 '기회'?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19의 대유행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기획이다. 지난해 코로나19의 발발, 그리고 글로벌 팬데믹으로의 급속한 확산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고 전 세계 경제전문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기침체가 닥치리라고 입을 모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치명적인 감염병에 걸릴 것이 두려워 사람들은 밖에 나오질 않았고 무장한 군경만이 텅 빈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도 연출되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은 정부의 기본 책무다.
대부분의 정부들은 이런 책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반면 우리 정부는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을 정도로 감염병의 전염을 성공적으로 틀어막아 피해 자체를 최소화했고 덕분에 확보한 정책수행의 공간을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방책들로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차원이 있었는데, 하나는 과거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와 관련된 것이다.
첫째, 코로나19의 대유행을 통해 드러난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나 바로 그런 성공 때문에 남다른 어려움을 겪어온 것도 사실이다. 크고 복잡한 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인프라가 아직은 엉성하며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고도성장기에 최적화된 제도들도 성장률은 다소 낮더라도 안정적인 경제에 맞게 정비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에 대하여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를테면 사회안전망 강화를 촉구한 지가 이제 줄잡아 20년은 되었지만 우리는 그간 고도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개혁에 소홀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코로나19 위기는 그간 차일피일 미뤄온 숙제를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와도 같았다. 우리 정부는 ‘안전망 강화’를 한국판 뉴딜의 3대 정책방향 가운데 하나로 삼음으로써 여기에 화답하고자 했다.
<그림 2> 선진경제권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선진경제권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출처 : IMF(http://www.imf.org).
다른 한편으로 성공적인 방역으로 형성된 자신감을 발판 삼아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서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한국판 뉴딜 구상에 투영할 수 있었다. 뉴딜을 구성하는 두 개의 축, 그러니까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기획은 그런 포부를 실현시킬 구체적인 사업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것들은 ‘지역균형 뉴딜’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받을 터다.
다가오는 소멸시효
그러나 우리가 성공적인 방역으로 획득한 ‘어드밴티지’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한부인데 그 유효기간은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의 충격이 예상되었던 것보다 덜 하다는 이유로 빠르게 단축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것은 각국 정부들이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는 덕택이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니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 기관이 ‘선진국(advanced economies)’으로 분류한 20개국(한국도 포함)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12월 31일까지 투입한 재정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2.7%에 달한다. 금융적 지원도 11.3%나 된다. 각국의 현황은 <그림 2>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엔 아무리 방역이 성공적이었다고 해도 지원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도 이 그림은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불균형 또한 유효기간 단축에 기여했을 것이다. 재정 여력이 떨어지는 기타 신흥국이나 저소득국도 선진국에는 미치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경제 방역에 나섰다. 이렇게 주로 정부가 코로나19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지난해 경제의 규모는 비록 줄어들기는 했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예상되었던 것보다는 수축의 정도가 훨씬 덜 하다. 이는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표 1> 주요 기관의 세계경제 및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단위: %)
기관명 전망시점 세계경제 한국경제
2020 2021 2020 2021
국제통화기금
(IMF)
2020.06. -5.2 5.4 -2.1 3.0
2021.01. -3.5 5.5 -1.0 3.4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2020.06. -6.0 5.2 -1.2 3.1
2021.03. -3.4 5.6 -1.0 3.3
한국은행 2020.08. -4.1 4.7 -0.8 2.8
2021.02. -3.7 5.0 -1.0 3.0
* 자료 : 각 기관.
**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전개 양상에 대한 상이한 시나리오에 입각해 기관들은 복수의 전망치를 내놓는 일이 많았는데 표에 제시된 숫자는 모두 기본 시나리오에 입각한 전망치들임.
우리 어드밴티지의 소멸시효를 재촉하는 다른 요인들도 있다. 백신 개발이 예상보다 앞당겨짐에 따라 코로나19와의 ‘전쟁’의 국면이 방역에서 백신접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대체로 방역은 국내 문제라고 볼 수 있는 반면 백신은 국제적인 힘의 논리에도 강하게 결박되어 있어 우리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책 구사의 자율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영역이다.
끝으로 국제경제적 불확실성도 얼마간 정리되고 있다는 점도 살펴야 한다. 줄잡아 2007~2008년의 선진국발 금융공황이 발발한 이후 국제경제질서는 그야말로 무질서가 대세였다. 공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반짝 경기회복 정도를 빼면 선진경제권은 장기침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고 그러는 사이에 포퓰리즘적 정치세력이 크게 성장했다. 이들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에 폭넓게 분포하면서 기존의 ‘정치문법’에서 벗어난 행보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는데 여기서 선진 세계의 최강대국에 속하는 두 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도널드 트럼프와 보리스 존슨이라는 의외의 인물이 정치적으로 최고 권좌에 올랐기 때문이다. 두 나라 각각에서 이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대항했던 세력들도 관습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다. 바로 이러한 혼란이 지난해 코로나19의 대유행 와중에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브렉시트 일단락으로 영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앓던 이’ 하나가 빠진 격이었고 미국에서는 아예 대통령이 보다 예측 가능한 인물로 바뀌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일종의 ‘정상화’로의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전환'
사실 우리의 한국판 뉴딜에도 들어가 있는 ‘디지털’과 ‘그린’은 코로나19 대유행이 발발하기 훨씬 전부터 자본주의의 발본(拔本)적 변화의 방향을 가리키는 양대 키워드였다. 4차 산업혁명이니 녹색성장이니 하는 담론들이 우리 사회에서 유행한 것도 그런 사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체로 그런 논의들은 특정 정권의 ‘트레이드마크’, 또는 특정 자본의 ‘숙원사업’의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왜일까? 아무래도 세계 자본주의 구조의 커다란 전환과 같은 문제를 둘러싸고는 경제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들 간의 이해관계 대립이 어디에서보다 첨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4차 산업혁명이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문제인 것이다.1)
이 갈등은 경제의 구조전환을 원하는 쪽과 원하지 않는 쪽의 갈등이라기보다는, 구조전환 자체는 받아들이지만 그 속도와 방향을 둘러싸고 상이한 이해관계를 갖는 세력들 간의 ‘전략적’ 갈등이다. 신생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 토요타 같은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 사이에서 미래차의 향방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의 강자 폭스바겐도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으니 말이다.2)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구조전환을 현실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요 강대국 정부들과 저마다의 업계에서 글로벌 차원의 독점력을 갖는 몇몇 대기업들을 포괄하는 집단 내에서 각자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조절되어 마침내 적정 수준에서 실효성 있는 합의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국 정상들 간의 양자 및 다자 협의는 물론이고 다보스(Davos) 포럼 같은 비공식적인 성격의 자리들도 긴요한 역할을 한다.
지구 전체가 코로나19라는 큰 재앙을 동시에 겪은 지금이야말로 그러한 조절 내지 협의를 이루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현대사의 향방을 결정지은 많은 국제적 협의들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에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코로나19와 직접적인 관련은 적겠지만 어쨌든 때마침 대서양 양안에서 국제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기존 질서가 자리를 잡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올 초 취임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으로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에 복귀를 선언했고 역시 트럼프 치하에서 좌초되었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 유럽과의 공조 움직임도 재개될 것이다.
‘전환’이 의미하는 것
그러면 이렇게 ‘디지털’과 ‘그린’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구조전환을 한다고 하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살펴볼 질문이다.
10년 단위로 세계 10대 기업 순위가 어떻게 달려졌는지를 보면 석유화학 분야의 공룡들이 물러난 자리를 IT 계열의 신흥 강자들이 조금씩 차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변화의 향방을 미리 가늠하고 대처하고자 할 터이다. 바로 이것이 지난해 여름 발표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 엿보이는 핵심 문제의식이다. 이는 스스로 디지털과 그린으로 명명한 자본주의의 변화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거기 알맞은 재화나 서비스를 다른 나라보다 먼저 개발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한다는 기획으로 읽을 수 있다.
이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만약 문제가 이런 정도에 그친다면 새로운 물결에 동참할 것인지 여부는 어느 정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리라. 예를 들어보자. 「종합계획」이 말하는 ‘그린’이란 대체로 선진경제권을 중심으로 한 환경규제 강화 움직임을 의미한다. 이런 규제의 영향을 받는 업종에 속한 기업이라면 생산과정을 개편(예: 탄소 사용을 낮추도록 가치사슬을 조절)하거나 신제품을 개발(예: 친환경 선박)함으로써 선제적으로 변화에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맞서기 싫으면 업종을 바꿀 수도 있고, 여차하면 까탈스러운 유럽에 물건을 팔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기업들은 한국판 뉴딜에도 동참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EU
EU는 2023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글로벌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협의들은 ‘돈의 향방’을 바꾸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가치체계 전체를 뒤흔들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환경규제가 일부 선진적인 지역에서만 행해지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럴까? 흔히 일국 내에서의 규제를 그 나라 정부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겪으면서 그런 믿음이 신화임을 깨달은 바 있다. 이를테면 적정 수준의 환경규제 여부가 국가신인도 결정에 반영된다면, 꼭 과거와 같은 구제금융 사태를 겪지 않는다 해도 우리 국민 모두가 부담을 져야 할 것이다. 둘째, 탄소배출의 비용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특기할 점이다. 거의 모든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생산방식과 생활방식을 확보한 기업 및 개인들에게는 고스란히 이득이 된다. 서유럽 등 선진국들이 탄소 가격이나 탄소세를 높이거나 새롭게 부과하는 움직임이 지난해와 올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3)
끝으로, 최근에 ‘ESG 경영’이라는 것이 빠른 속도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도 언급해 두자. ESG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의 약자로 과거 지속가능경영이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니 하는 것의 새로운 이름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영행태가 점차 기업에 강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단 지난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위 세 가지 가치의 중요성이 부각되기도 했으니 그 자체로 경제적 가치도 상당함이 입증된 터다. 또한 최근 몇몇 글로벌 투자회사들은 기업의 이른바 ‘ESG 지수’를 투자결정의 핵심 요소로 삼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향후 보다 일반화될 전망인데, 그럴 경우 ESG 경영에 소홀한 기업은 분야와 업종을 막론하고 금융기관에서 돈을 조달받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4)
세계의 강대국들과 대기업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이끄는 까닭이 뭘까? 자기들에게도 상당한 비용이 될 터인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들에게도 부담이 되지만, 남들에겐 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용 부담의 세세한 규칙은 그들이 정하지 않는가.
미래를 위한 자양분
글의 서두에서 한국판 뉴딜의 성공이 국민 모두의 고른 참여에 달려 있다고 한 것은 바로 그래서다. 그것은 당위가 아닌 우리 경제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단순히 하나의 역병이 초래한 아수라장을 수습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돈벌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목전에 둔 것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이며, 거기 적응하지 못하는 국민은 엄청난 비용을 치르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위기만 놓고 보면 우리는 성공적인 방역을 발판으로 그 어떤 나라보다도 발 빠르게 ‘포스트-코로나’라는 화두에 몰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제껏 수 십 년에 걸쳐 시민의 광범위한 동참 아래 꾸준하게 미래를 위한 자양분을 축적해온 선진국들을 넘어선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자양분에는 기업들의 윤리성, 그것을 강제하는 시민들의 감시, 너무 위험하지 않은 적정 수준의 근로조건, 생태친화적 소비 및 생활 행태 등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그것들은 좋기는 하지만 굳이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 번거로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이런 자양분들을 경제적 가치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자본주의 전환이 내포하는 경제적 본질이며, 자본주의는 그런 것조차 돈벌이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체제다. 이런 성격을 가리켜 자본주의가 진보적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진보의 과실이 인류 모두에게 균등하게 향유되지는 않으리라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니 저런 자양분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 가급적 빠르게 스며들게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필요한 일이다. 한국판 뉴딜이 거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애초 구상이 무엇이었든 한국판 뉴딜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사태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1) 김공회, 「‘4차 산업혁명’,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그 실체와 의미」, 「의료와 사회 제6호, 2017.
2) “폭스바겐의 전기차 야망… 테슬라 넘어 1위 굳히기 목표”, 조선비즈, 2021.03.11.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3/11/2021031102258.html)
3) “독일, 올해부터 탄소세 부과”, 투데이에너지, 2021.01.20. https://www.todayenergy.kr/news/articleView.html?idxno=232944.
4) ESG는 환경뿐 아니라 흔히 ‘경제민주주의’라고 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이를테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인데도 이사진에 노동자 대표를 포함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외부에서의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ESG는 우리 경제의 민주화를 촉진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주체성이 결여된 외부로부터 강제된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일지는 고민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