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웹사이트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대통령기록관에서 보존·서비스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입니다.
This Website is the Presidential Records maintained and serviced by the Presidential Archives of Korea to ensure the people's right to know.
국정과제 광장Ⅴ
남북한 공공인프라 연결을 통한‘한반도 뉴딜’
민경태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위원 /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미·중 전략경쟁 시대의
생존 전략
사람이든 국가든 고난이 닥치면 감춰져 있던 내면이 드러나게 된다. 코로나19는 누구도 미처 예상치 못한 전 세계적 위기상황을 초래하면서 미·중 갈등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분쟁을 통해 미·중 패권경쟁이 본격화되자 지난 40년간 ‘키신저 질서(Kissinger Order)’하에서 상호 협력에 중점을 두던 과거 방식에 큰 변화가 왔음을 알게 되었다. 양국 간 긴장은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군사·안보·기술·가치 등 모든 분야에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경쟁 상대로 부상하는 중국에 조만간 뒤쳐질 수 있다는 초조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기술굴기’가 있다. 중국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기부양책으로 제시한 ‘신(新)인프라건설’ 정책은 2018년 12월 중국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처음 언급되었는데 5G, 빅데이터, 인공지능, 산업인터넷, 신에너지 충전, 특고압, 고속철과 궤도교통, 위성 네트워크 등 8대 중점 분야로 구성된다. 이제 중국의 신인프라는 더 이상 토건산업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기반시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에 집중하며 막대한 투자를 했다. 특히 미·중 기술 냉전의 초점이 된 5G 이동통신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프라 기술로서 중국이 상당한 우위에 있다. 5G로 가능해진 사물인터넷 발전은 인공지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중국의 기술 도약에 대해 미국은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누가 핵심기술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세계 제조업 패권과 국제 권력구도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된다고 해서 군사적 충돌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강대국들이 보유한 핵능력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일방적 승자가 되기 어려우며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상태에서 전쟁으로 얻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지지층은 중국과의 무역 단절이나 전면적 충돌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대중 적대정책이 완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했던 리쇼어링을 통한 미국 제조업의 부활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떼어 놓으려는 노력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경제적 상호이익 구조가 미·중 충돌을 억제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된다면 국제정치는 냉전시대의 진영 간 대립을 재연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다자주의를 앞세워 동맹과 우방국들의 연대를 통해 중국 견제와 압박에 나설 것이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 분단 상황, 북핵 문제 등으로 인해 다른 어느 국가보다 미·중 갈등 상황에 취약하다. 만약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당장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장기적인 전략적 경쟁자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서로 공생관계라는 뜻이다. 결국 미·중 관계는 사안에 따라 제한적인 갈등과 협력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미·중 사이에서 어느 일방을 선택하는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편 가르기 논리로 한반도의 지정학에 매몰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미·중 전략경쟁을 초월하는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경쟁력을
되살리는 방법
한반도의 지리적 경쟁력은 대륙으로 접근하거나 해양으로 진출하기에 용이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과 직접 연결되어 소통하던 것은 이미 역사 속의 얘기가 되어버렸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립으로 인해 한국은 ‘섬 아닌 섬’으로 전락했다. 해양세력은 한반도가 대륙으로부터 단절되어 해양의 영향권에 놓이기를 바란다. 남한만이라도 대륙으로부터 떼어놓아 해양세력의 일부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대륙세력은 북한을 그 영향권 아래에 유지하려고 애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에도 오랜 기간 만나주지 않았던 중국 시진핑 주석은 2018년 북미 관계가 갑자기 호전될 분위기가 보이자 김 위원장을 세 차례나 중국으로 불러들여 극진히 환대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반도에는 대륙과 해양의 대립으로 인해 남북한을 서로 떼어 놓으려는 원심력이 작용한다. 패권국은 다자주의라는 이름으로 자기편을 줄 세운다. 안보 분야에서 미국은 일본·인도·호주와 함께 쿼드(Quad) 4개국 협의체를 가동하고 있다.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지리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해양세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대(對)중국 전선을 구축하려는 포석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고조되면서 미국은 한국·베트남·뉴질랜드 3개국이 추가로 참여하는 ‘쿼드 플러스’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는 미·중 모두 쉽게 양보하기 어려운 곳이다. 동아시아를 무대로 하는 체스판에서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이자 빼앗겨서는 안 될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러한 배경을 들여다보면 답답한 한반도 상황이 보다 쉽게 이해된다. 2018년 남북 정상이 만나 남북철도 연결,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등을 어렵게 합의했지만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의 봄’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이 평화적 교류협력을 진행하는 것은 중국의 영향력을 저지하기 위한 공고한 전선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바로 이것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이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모두 자국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한반도의 분단을 그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오로지 우리의 몫이다. 단순히 북한이 ‘개과천선’ 한다고 해서 한반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거대세력 간의 지정학적 대립을 이대로 유지한 채로는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요원하다. 지정학의 역학구도를 그대로 따르면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아예 판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 뉴딜 사업 중 하나인 대륙철도 상징조형물 ‘잇다’ 제막식(2020년 12월 10일, 서울역 맞이방)
*출처 : 국토교통부
지정학이 아닌 지경학(Geo-Economic)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지정학적 충돌에서는 배타적으로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지만, 지경학적 연결에서는 복합적인 선택과 연계 협력이 허용된다. 한국이 미·일 주도의 아시아개발은행(ADB)만이 아니라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검토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한반도의 탈진영화를 위한 해법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지정학적 충돌의 접점이라는 말을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물류·교통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자리를 의미한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한반도의 특성을 되살려 지정학적 에너지의 충돌을 지경학적 협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만약 한반도 주변국가의 이익이 실현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지정학적 대립과 충돌마저도 상호보완적 교류와 협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한반도를 무대로 하는 거대한 이익 공유 시스템을 설계하고 주변 강대국들을 설득해 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북한 경제개발과 남북 경협의 효과가 미·중의 이익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지정학적 기득권을 대체할 수 있는 지경학적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새롭게 창출되는 이익은 한반도에 분단과 대립 상황이 유지될 때 얻을 수 있었던 기존 시스템의 이익을 훨씬 초과해야만 한다.
북한과 함께 하는
‘한반도 뉴딜’
<그림 1> 국제 협력을 통한 북한 인프라 개발
출처 : 필자 작성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5월 취임 3주년 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의 모범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국가기반시설의 스마트화 등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선도형 경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통해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있어서도 전통적 개념의 토건산업 중심이 아니라 첨단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판 뉴딜이 단지 남한 내부에서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라 북한을 포함하는 남북경협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한반도 뉴딜’로 확대되어야 한다. 지금 북한은 제재로 인해 힘겨운 상황에서 코로나19로 경제난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시스템으로부터 고립된 북한을 그대로 놓아둔 채 남한만의 뉴딜로 격차가 확대된다면 미래 한반도의 번영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완화하고 사회적·문화적 상호 이해를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미래 세대의 통합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한반도 뉴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한과 북한이 각자 보유한 산업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상호보완적 산업협력 구조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철도·도로·통신·에너지 등 공공인프라 네트워크는 혈관과도 같이 남북한 산업을 연결하게 될 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대동맥으로 기능하게 될 철도는 단지 남북한을 잇는 것이 아니라 뉴딜 경제권을 동북아와 유라시아로 확대하는 경제적 영토 확장을 가능하게 해 준다.
북한을 통과하는 철도가 연결되면 부산과 목포는 한반도 남단의 항구도시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관문 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동남아의 크루즈 관광객들이 목포에 와서 KTX로 갈아타고 서울과 평양을 거쳐 베이징, 모스크바, 유럽의 도시들로 여행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컨테이너를 실은 선박이 부산항으로 와서 한반도 종단철도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물류가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경제적 영토가 넓어지면 다양한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탄생하고 일자리 창출 기회도 열릴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의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접목하여 북한 젊은이들과 함께 벤처를 창업하고 중장년층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북한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교육·자문·멘토링 등으로 기여할 수 있다. 한반도 뉴딜을 통한 북한의 경제성장은 평화를 더욱 공고히 하고 미래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번영으로 이어져 ‘평화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
국제 컨소시엄을 통한
공공인프라 건설
비상업적 공공인프라인 철도는 북한의 군사력 증대와는 무관하게 국제사회가 함께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기반시설이다. 따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유엔을 설득해서 철도에 대해서는 경제제재의 예외조치로 적용받는 것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혼자서 시도하기 어렵다면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제 컨소시엄은 남북한을 비롯해서 중국·러시아·일본·미국 등 국가들로 구성될 수 있으며 철도망 구축과 함께 북한 경제특구 개발에도 이들 국가의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국제 컨소시엄의 기능을 철도 연결에만 국한하지 않고 북한 경제특구 개발까지 포함하는 것은 경제적 목적 이상의 전략적인 의미가 있다. 북한 성장의 열매를 참여 국가들과 나누는 이익 공유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향한 국제사회의 동의와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반도 주변 국가들은 북한 개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중국은 창지투(창춘-지린-투먼) 산업벨트의 해양 네트워크 연결을 위해 북한의 나진항 부두를 확보하고 철도망을 구축했으며 이제는 신의주 신도시 개발과 평양-신의주 구간 경의선 고속철을 계획하고 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한반도로 연장해 극동러시아 지방을 연계 발전시키려는 신동방정책을 구상해왔으며 북·중·러 접경지역 경제특구 개발에도 관심이 크다. 북한과는 내륙철도 현대화 사업을 협의한 바도 있다.
일본은 북일 관계가 개선된다면 전쟁배상금을 활용한 대북 투자가 가능할 것인데 특히 원산과 같은 동해안 항만도시의 경제특구 개발이 유망하다. 2019년 9월에는 북한이 일본 측에 평양-원산 구간의 신칸센 건설 의사를 타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은 동해안 관광단지와 단천 주변 자원개발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자부품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북한 광물자원 개발에 미국이 함께한다면 의미 있는 전략적 포석이 될 것이다.
서울과 평양을 잇는
다중 교통망 구축
남북한 경제협력의 핵심지역은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는 경의선 축이다. 두 도시를 잇는 교통망은 실질적인 남북한의 대동맥으로서 상호보완적 산업협력의 기반이 될 것이다. 서울과 평양의 직선거리는 200km 밖에 되지 않는데 이미 상용화된 중국 고속철이 시속 350km 이상임을 감안하면 신(新)경의선 고속철의 서울-평양 구간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게 된다.
<그림 2> 서울-평양 철도 연결 제안
출처 : 필자 작성
따라서 미래에는 서울과 평양이 서로 떨어진 두 개의 도시가 아니라 ‘서울-평양 메가시티’라는 단일 광역 경제권으로 기능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남북을 촘촘하게 잇는 다중 교통망 구축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을 감안하면 서울과 평양 사이의 평야와 완만한 구릉 지대가 가장 중요한 개발 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을 통과하는 교통망은 단지 남북한만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여객·물류 수용능력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서울-평양 구간에만 최소 2~3개의 철도노선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기존 경의선 철도 노선의 특성상 고속화하기 어렵다면 개보수하여 화물 전용으로 활용하고 대신 새로 건설하는 신(新)경의선은 김포·개성·해주·남포 등을 경유하는 노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수도권 광역교통망인 GTX를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GTX-A 노선은 파주 운정역까지 예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좀 더 연장하여 임진강을 건너면 바로 개성이다. 운정을 종착역이 아닌 경유역으로 전환하고 평양까지 철도를 연결한다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구축 가능한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다. 또한 서울·경기 남부를 잇는 GTX-D 노선은 인천공항·김포공항과 연계하고 강화도·교동도를 거쳐 해주와 평양까지 연결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강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북한은 올해 1월 노동당 제8차 당대회를 통해 국가경제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전략적 방향을 제시했다. 그 무엇보다도 내부 역량을 강화해서 ‘자력갱생’을 통해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금속 및 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중해 전체 경제 부문에서 생산을 정상화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농업과 경공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자원과 역량이 제한된 상태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원자재를 조달하고 타 산업과 연계 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순수하게 자력으로 경제난을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 국토를 가진 나라가 경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그나마 이 정도까지 버텨온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유엔 경제제재가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경제발전 방안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북한은 중국에 더욱 밀착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미 관계가 교착된 상황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남북은 서로 멀어지는 상태이다. 이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거시적인 방향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중국에 기형적으로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탈피하고 대신 남북이 경제적으로 연계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철도·도로와 같은 공공인프라 구축은 남북 경협의 기반이 되는 핵심 사업으로서 남북한 모두에게 중요하다. 북한도 이번 당대회에서 ‘철도 현대화’ 계획을 언급했다. 만약 남북 관계 교착 국면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북한은 중국과 협력해 평양-신의주 고속철을 건설하고 러시아와 함께 내륙철도 현대화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철도연결에 합의하고 기초조사를 진행한 후 더 이상 진전이 없다. 북미 관계가 교착되면서 남북 교류도 모두 정지된 상태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남북 교류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 마치 상식과도 같이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야말로 70년 분단을 통해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과 패배의식이 아닐까. 현실적으로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남북 협력의 전제조건으로 둔다면 실제로 아무 것도 진행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북한 비핵화 문제와 남북교류 사업을 서로 연계시키지 않는 디커플링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우리 정부는 미래 한반도의 성장기반이 될 남북철도 연결을 위해 보다 강한 추진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편으론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대륙세력과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미국이 남북철도 연결에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전향적 태도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 교류·협력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미국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한·미·일이 경제적으로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동북아의 핵심 거점인 한반도를 둘러싸고 초강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과 대립, 때로는 관여와 협력이 앞으로도 변화무쌍하게 펼쳐질 것이다. 우리 스스로 강한 의지와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물살을 거슬러 헤쳐나갈 용기가 없다면 열강의 다툼과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 수동적으로 몸을 맡긴 채 그저 주어진 현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를 맞아 앞으로 우리 정부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한반도의 미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