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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칼럼Ⅲ
아동학대 근절 대책
더 이상 에둘러 갈 수 없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매니저)
3월 30일부터 2번 이상 가정 내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아동은 즉각 분리하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학대 신고를 받고도 아이를 살리지 못한 사건들을 수 차례 반복하며 분노와 무력을 느꼈던 어른들이 내놓은 답이다. 그 답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게 될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지난 1월 8일 혹한에 내복 차림으로 길거리를 배회하던 4살 여자 아이가 발견되었다. 아이가 장시간 방임되었던 정황도 함께 보도되었다. 아동학대로 16개월 만에 숨진 아이의 사건에 마음 아파하던 시민들은 4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비정한 어머니’를 비난했다. 아이를 양육할 줄 모르는 엄마에게서 아이가 다시 학대받지 않도록 ‘즉시 분리’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며칠 뒤 경찰 수사로 ‘비정한 어머니’의 사정이 알려졌다. 아이 아버지는 매달 10만 원의 양육비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자활 근로를 나가고 있었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근로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알아보던 차에 사건이 발생했다. 여론은 바뀌었다. 양천 사건처럼 악의적인 학대가 아니라 경제적 빈곤에 의해 일어난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어머니에게는 처벌보다 안정적인 양육 환경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적시 분리와 즉시 분리 그 한 끗에 담긴 차이
아동학대를 둘러싼 사실 관계가 정리된 보도로 사건을 접하면 어느 집에서 아동을 분리해야 하고 어느 집에 처벌보다 지원을 해야 하는지 구분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아동학대 신고 현장에서는 그 구분이 결코 쉽지 않다. 기사가 나는 시점만큼 사실관계가 드러나 있지 않을 뿐더러 부모가 ‘악의적’으로 학대하였는지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아니 애초에 어떤 행위부터를 ‘악의적’이라고 보아야 하는지 선을 긋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학대 행위를 하는 부모라도 하루 24시간 내내 ‘아이가 미워죽겠다’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부족한 나를 부모라고 사랑해주다니’라는 마음이 퐁퐁 솟았다가도 아이가 울며 보챌 때는 ‘얘는 도대체 왜 이래, 내가 뭘 그리 못해줬다고!’라는 원망하는 마음이 든다. 양육이 버겁다고 느끼는 감정과 그 힘듦을 아이의 탓으로 돌리는 내적 판단 역시 그 경계가 모호하다.
물론 아동의 안전을 위해 신속하게 아동을 분리해야 하는 현장도 분명 있다. ‘즉시 분리’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그러한 현장에서 아동을 보호하지 못했던 그간의 사건들에 대한 반작용이다. 해마다 가슴 아픈 사건을 접하면서 함께 트라우마를 겪었던 시민들이 이러한 요구를 하는 심정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즉시 분리’가 과연 피해 아동에게 최선인지 살펴보려면 아동의 피해 사실을 나열하는 뉴스에서 한 걸음 나와서 아동의 삶 전반을 바라보고 그려낼 필요가 있다.
아동권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즉시 분리’가 아니라 ‘적시 분리’를 이야기한다. 분리가 아동에게 큰 심리적 트라우마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분리에 신중하되 그러한 충격을 감안하더라도 아동의 안전을 위해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신고 횟수 등과 상관 없이 아동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이 어릴수록, 가정 밖 사회적 관계가 다양하지 않을수록 아동에게 가족은 같이 사는 혈육 그 이상으로 굉장한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세상에서 가장 큰 부분이고, 가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대 현장에서 아동을 적극 분리한다고 알려진 미국에서도 『입양 및 안전 가족 법률(1997)』에 ‘아동에게는 가족이 필요하고 가정이라는 영구적 장소가 필요하다. 연속성과 관계는 아동의 건강 발달에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아동보호의 노력은 안전이 유지되는 한 아동이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아동학대 현장에서 오랜 기간 일했던 임윤령 전 경북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1월 29일 ‘아동학대 대응 대책 진단 및 진상조사 특별법 제정 간담회’에서 충분한 고려 없이 학대 피해 아동을 즉시 분리할 경우 도리어 아동이 보호시설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탈출하여 가정으로 되돌아가거나, 분리에 ‘가담’했다고 여기는 사회복지사에게 거부감을 보이며 회복에 필요한 서비스 지원을 거부하거나, 가정 복귀 후에 다시 일어나는 학대 피해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는 등 역효과를 보인다고 경고했다. 같은 자리에서 학대 피해 아동의 변호를 오랜 기간 맡아온 신수경 변호사는 아래와 같이 호소했다.
“마치 무슨 명절 전 물류대란에 대비하는 것 같이 (학대 피해 아동을) 한 명도 빠짐없이 전국에 빈 시설이 있으면 다 보내버리겠다는 정부의 다짐은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려하라는 UN 아동권리협약과 아동복지법의 내용을 무색케 합니다. 아동은 아무 곳에서나 먹을 것만 주고 재워만 주면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한 아동의 삶과 일상이 총알배송처럼 ‘신속’하게 결정되는 나라라니, 상상조차하기 싫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미숙하다
“아이에게 질문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것이 아이의 책임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책임이고요. 그리고 이것으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해 아이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 부모가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 글을 무분별하게 공유하는 이른바 셰어런팅(Sharenting, 공유를 뜻하는 Share와 양육을 뜻하는 Parenting을 합성하여 만든 용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2020 아동·청소년과 미디어 포럼 : 우리 가족 랜선 라이프 다시 보기’에 참여한 한국언론진흥재단 진민정 선임연구위원이 토론을 마무리 지으며 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부모라도 사진이 되었든 이야기가 되었든 개인의 초상이나 사생활을 공개하는데 대해 자녀의 동의를 구해야 하지만 ‘본인이 동의했다’는 것이 자녀의 개인정보를 공개했을 때 발생하는 결과에서 부모의 책임을 면책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짚는 발언이었다.
맥락은 다르지만 재학대의 위험이 있는 가정에서 분리에 대한 아동의 의사를 묻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동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밝힐 수 있는 연령이나 상황이라면 당연히 물어보아야 하지만 ‘부모와 함께 있겠다’ 혹은 ‘부모와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아동의 의사를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이 결코 이후에 발생하는 일에 대해 ‘아동의 의사를 존중한 결과’라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아동의 연령이나 발달 단계에 따라, 학대 빈도와 강도, 가정 밖 사회적 관계의 경험 여부와 깊이, 가족과의 유대 관계, 피해 유형과 지속성에 따라서 아이들은 자신의 피해를 인지하는 정도도, 외부인인 아동학대 현장 조사자를 신뢰하고 도움을 구하는 정도도 크게 달라진다. ‘부모와 함께 살고 싶다’는 아동의 말이 어떤 상황에서는 ‘부모에게 맞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지만 이런 부모님 없이 사는 것은 더욱 무섭다. 내가 착하게 굴면 부모님이 나를 때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를 뜻하기도 한다. ‘부모와 떨어지고 싶다’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곧 자신을 받아줄 보호시설을 찾아 자신이 살아온 동네와 친구들까지 멀리 떠남을 뜻한다는 점을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도 있었다. 학대피해 아동을 만나는 사람에게는 아동의 진술이나 행동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의사만이 아니라 아동이 살아온 다양한 맥락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아동의 뜻을 살피고, 아이와 보다 깊이 있게 소통함으로써 아동의 필요와 바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필요하다면 아동의 표면적인 의사를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기도 해야 한다. 그럴 때라도 왜 자신이 아동의 의견과 다른 결정을 내리는지, 아동이 그 상황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선택지는 무엇이며 앞으로 아동에게 어떤 일이 예측되는지 아동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것까지도 ‘아동의 의사 존중’이 될 수 있다.
뿌리 없는 나무 같은 아동보호 체계
앞의 단락을 읽다 보면 아득해지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급박한 아동학대 현장에서 집집마다 다를 다양한 맥락과 변수를 따져 아동의 보이지 않는 의사까지 살핀 다음 결정을 내리라니. 안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결정에 따라 한 아동의 삶이 달라지는 만큼 그 결정의 무게도 매우 무겁다. 그래서 이 바닥의 내공이 쌓인 고수들조차 “과연 지금 이 결정이 아동과 가정에 최선일까?”라는 고민을 안고 산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경험과 지혜를 나누면 이 고민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고 보다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9년 기준으로 아동학대 현장조사와 사례관리를 맡고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 한 명이 맡는 학대 피해 사례는 64건이다. 전문가가 권장하는 15건의 4배가 넘는다. 이에 반해 종사자의 인건비는 사회복지시설 가이드라인의 86.7%이다. 일은 고되고 대우는 열악하여 사명감으로 버티다 떠나는 이가 부지기수다. 평균 근속 기간이 3.3년이다. 전문가가 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시민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아동학대 신고가 지난 5년 간 2배 이상 늘었고 사회적 관심이 당분간 계속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초조해진다. 아동학대 대응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해 10월부터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기초 지방자치단체에 배치되기 시작했지만 온라인 교육 40시간을 이수하고 현장에 배치된 이들이 전문가가 되려면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사람도 부족하지만 시설도 부족하다. 지금도 한 해 아동 4,600여 명이 학대 피해로 가정에서 분리되는 데 학대피해아동을 위한 쉼터는 전국 81개, 정원은 600여 명이다. 쉼터뿐 아니라 가정과 유사한 형태의 가정위탁제도로도 아동을 보호할 수 있지만 학대피해 아동을 위한 가정위탁제도를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는 4곳에 불과하다. 가정위탁제도는 지방이양사업이고 쉼터의 운영비도 국고에서 일부 지원받을 뿐 절반 이상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나 아동보호에 대한 관심에 따라 아동이 받을 수 있는 보호 서비스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아동학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즉시 분리’ 정책이 나올 때마다 분리가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차치하더라도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지난해 4월 지방자치단체별 재정여건이나 자치단체장의 관심도에 따라 소방인력이나 장비, 소방안전서비스 수준에 차이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소방업무에 대한 중앙 정부의 책임이 강화되었다. 학대 피해의 위험에 놓인 아동의 안전 역시 아동이 사는 곳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2020년 7월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것과 같이 ‘인프라를 과감히 개선’하려면 결코 적지 않은 예산이 들 것이다. 하지만 아동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에 예산 쓰기를 아까워한다면 국가의 의지가 딱 그만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학대 피해로 사망한 아이들의 죽음에서 아동보호체계의 맹점을 찾기 위해 지난 2월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어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를 하게 되면 중앙정부부터 기초자치단체, 민간 기관 등 다양한 층위에서 아동보호체계가 뿌리내리지 못했던 원인들이 드러날 것이다. 아동보호체계는 아동과 가족이 이용하는 다양한 기관과 조직이 함께 작동해야하기에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충돌과 진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에둘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동안 우리가 놓친 아동보호체계의 허술한 연결망을 손보지 않으면 그 어떤 특효약도 무효하다. 아이들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그 죽음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그것이 아이들을 기억하는 길이자 우리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