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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특집Ⅰ
청년세대의
인식과 성향
임동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새로운 세대의 출현?
최근 우리 사회에서 ‘MZ세대’로 일컫는 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청년층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공정성과 합리성을 무기로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 연령집단은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독특한 투표 행태를 보였고 이들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급속하게 상승하였다. MZ세대에 대해 쏟아지고 있는 관련된 사회적 담론들만 살펴봐도 가히 새로운 세대의 본격적 탄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관심과 담론에는 석연찮은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과연 이 새로운 세대는 얼마나 새로운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청년층은 새로운 가치관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집단으로 여겨진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1970년대의 청년문화는 청바지에 통기타를 맨, 해방과 서구지향을 꿈꾸었던 이데올로기의 발현이었으며 1990년대의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청년·청소년문화 또한 저항과 탈출 지향이었다. 현재의 ‘이대남(20대 남자)’, ‘이대녀(20대 여자)’로 불리는 젊은층은 기성세대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감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되지만 과거의 경우에도 새로운 세대는 늘 문화적으로 이질적 정체성을 표상하였다. 또 다른 미심쩍은 측면으로는 이러한 담론에서 늘상 나타나는, 청년층을 유사한 방식으로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김선기(2016)의 연구1)에서는 2010년에서 2014년까지 발간된 주요 일간지들에서 청년세대를 어떻게 다루고 대상화하는지를 분석한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정치권과 미디어에서는 청년세대는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하며 가르치고 훈계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미성숙하고 무지한 대상으로 취급하거나, 아니면 청년세대의 어려움에 대해 기성세대가 반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회의 책임을 강조하는 등 크게 정형화된 몇 가지 모습으로 청년층을 문화적으로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형적인 모습은 사실 구체적 내용만 약간 다를 뿐 지금까지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고, 그래서 청년세대 담론들이 어떻게 보면 뻔하고 근시안적인 이야기의 재반복일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위와 같은 사항들을 염두에 두고, 현재 우리나라 청년층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식과 태도, 성향에 있어 나타나는 특징들을 몇몇 설문조사 자료들을 활용하여 살펴보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청년정책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청년층의 인식과 성향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논의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다음의 여덟 개의 꼭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참고로 이 글에서 언급하는 ‘청년층’ 혹은 ‘청년세대’는 기본적으로 2020년 8월에 시행된 청년기본법에서 정의하는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들을 지칭한다.
성스러운 개인의 등장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발전된 산업 사회에서 나타나는 청년들의 모습은 매우 개인화된 삶과 그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개인’이 성스러운 대상이 된 시대에서 개인의 취향, 열정, 정체성, 권리 등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시 되며, 개인들은 이런 가치들을 새로운 세속 종교로써 받아들이고 절대화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전기(Biography)의 저자이자 주인공으로서, 그 전기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프로젝트화 하여 추진해 나가는,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성스러운 개인의 등장
그러한 과정에서 이전에 강조되었던 사회적 규범, 특히 개인의 생애 과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쳤던 가족과 관련된 규범과 인식들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결혼과 자녀를 가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세대가 갈수록 무거워지고 덜 당연시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와 사회학과가 실시한 한 설문조사(가족, 삶 그리고 사회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살펴보면, ‘자녀를 가지면 부모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약된다’는 문항에 대해 ‘매우 동의’하는 비율이 중장년층에서는 10.3%, 청년층에서는 17.7%로 나타나 후자의 집단이 부모라는 자리에 대해 더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다’라는 문항에 대해서는 중장년층의 경우 26.1%가 동의하는 반면, 청년층에서는 12.2%만이 동의했다. 또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 연애를 해야 한다,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 청년세대는 남녀 모두 중장년층에 비해 덜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차이에는 주거부담이 결혼으로 가는 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현실도 작용한다. 결혼을 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괜찮은 집’을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20세에서 34세까지는 27.2%, 그 이상의 세대에서는 18.6%가 동의해 일정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결혼과 자녀를 가지는 것뿐 아니라 개인이 공동체와 맺는 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가지는 기대와 욕구가 달라지고 있다. 2020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실시한 ‘현대인들의 사회의식과 일상생활에 관한 조사’에서는 일반인 응답자들로 하여금 어떤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싶은지를 물어본 바 있다. 이에 50세에서 65세의 중장년층은 57.3% 정도가 공동체에 많이 기여하고 공동체로부터 많이 받는 관계를 선택한 데 반해, 청년층의 경우 그보다 12%가량 적은 45.8% 정도만이 같은 선택을 하고 그 대신 공동체에 적게 기여하고 적게 받는 관계를 선택하였다.
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 것,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 등에 있어 나타나는 이러한 사회적 당위성의 쇠퇴는 청년세대의 개인화의 핵심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절망과 좌절
우리 사회의 청년세대 담론 중 핵심적인 것은 청년세대의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이다.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지각은 이미 2007년에 등장했던 ‘88만 원 세대’와 같은 비판에서부터 지적되어 왔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나 양극화의 문제에 더해 2010년대를 지나면서 부동산 가격까지 추가적으로 급등하자, 그전에 자기 계발, 처세술 등을 통해 표면적으로나마 노력을 통한 희망 혹은 계층 상승 이동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꺾이는 시점이 온다. 그때부터 청년세대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거나 노력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고, 오히려 어설픈 힐링과 위로는 역으로 분노를 자아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 초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이 27%에 육박하자 이러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청년세대의 이와 같은 심리는 설문조사에서도 감지된다. KBS가 지난 5월에 실시한 ‘한국인들의 세대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는 ‘집값 상승은 미래에 대한 나의 희망을 무너뜨렸다’라는 문항에 대해 청년 남성은 평균 64%가 동의했고, 청년 여성은 70%가량이 동의했다. 특히 ‘매우 그렇다’고 동의한 비율이 각각 46%와 47%에 달하였다. 사회적으로 젊은 세대가 ‘희망이 무너졌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이 정도의 수치가 나온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집값 상승은 청년세대를 좌절하게 만든다’는 문항에 대해 동의하는 비율은 청년 남성의 75%, 청년 여성의 82%가량이었다(그림 1).
<그림 1> 청년층의 집값 상승에 대한
인식
청년층의 집값 상승에 대한 인식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자신이 미래에 ‘하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에 있어서도 청년의 약 1/4은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인식했고 가능성이 ‘조금 있다’고 응답한 비율까지 합치면 거의 78%에 달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층의 탈출구는 무엇일까?’ 같은 설문에서 ‘암호화폐(비트코인, 이더리움 등)로 큰돈을 버는 것이 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문장에 얼마만큼 동의하는지 물었더니 청년층 남성의 39%, 청년층 여성의 30%가 동의하였다. 주식에 대해서도 유사한 응답을 보였다.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는 비율도 남녀 모두 50% 이상의 매우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그림 2). 한 사회의 젊은층의 1/3 이상이 암호화폐가 아니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씁쓸함을 넘어 거의 절망감을 안겨준다.
<그림 2> 암호화폐 및 주식에 대한
청년층의 태도
암호화폐 및 주식에 대한 청년층의 태도
‘공정성의 세대’가 아닌
‘상실의 세대’
그렇다면 청년세대는 일각에서 말하는 대로 공정성의 세대일까? 물론 예전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 연령에 따른 위계가 약화되면서 젊은이들도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보다 쉽게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청년들이 공정을 기준으로, 혹은 논리를 근거로 삼아 기성세대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공정성 자체를 세상의 절대적 원칙과 바람직한 사회규범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위와 동일한 설문에서 ‘절차가 공정하면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나는 결과를 수용할 의사가 있다’ 그리고 ‘내 보수가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보수가 능력과 공과에 따라 공정하게 결정되는 쪽을 택하겠다’와 같은 문장을 제시하고 그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물었는데, 놀랍게도 ‘공정성의 세대’라 할 수 있는 청년세대보다 50대가 그러한 공정성 원칙을 더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청년세대가 공정성의 원칙을 자주 제시하는 이유는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그들에게 펼쳐져 있는 미래 상황, 현재의 처지 등이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무언가를 잃거나 손해를 보고, 자원을 덜 확보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게끔 하는 것이다. 자원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많은 50대는 공정성의 원칙에 따라 조직이나 사회가 작동한다고 할 때 그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조금이라도 더 있다. 하지만 청년들은 그럴 수가 없다. 일단 내가 입을 손실을 막아야 하고, 필요하거나 가능하다면 불공정함을 주장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청년세대는 공정성의 세대가 아니라 상실의 세대이다.
얻을 것이 없으면
고생할 필요도 없다
(No Gain, No Pain)
현대의 청년세대는 일과 직업이 자신에게 의미를 주거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면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지 않고 철저하게 수단적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전 세대의 경우 일과 직업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생계유지의 수단이었다면, 전통적 규범이나 가족을 만들어가는 표준적 생애 과정을 따라야 한다는 가치관이 크게 약화된 지금, 현재 청년세대에게는 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제공해 주는 매우 중요한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직업(Job), 경력(Career), 소명(Calling)의 세 가지가 일치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러한 의미와 만족감, 소명의식을 주는 직업을 갖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즉 직업과 일이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충족감을 주거나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일 또는 직업과 적당한 거리두기를 한다. 실제로 지난 3월에 이루어진 ‘가족, 삶 그리고 사회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일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라던가, ‘내가 돈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직업을 가질 의향이 있다’와 같은 문항들에 대해서 청년층은 그 이상의 연령대에 비해 일과 직업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만으로 생각하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자신에게 경제적 안정과 함께 만족감과 소명의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거나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고생하고 노력을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가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어차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 자신을 배신할 노력과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변화한 환경에 대한 청년세대의 합리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해의 윤리
청년세대가 강하게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비교적 강한 감각으로는 서울대 김홍중 교수가 ‘무해의 윤리’라고 부른, 서로에게 폭력적이지 않은,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는,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무해한 관계의 추구이다. 이는 지난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개인을 취급했던 방식이 상당히 폭력적이고 위계적이며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 또한 개인의 권리와 목소리, 정체성에 대한 인정이 부족하고, 거대 담론들에 미시적 욕구들은 묻혀있었던 문화적 제약에서 벗어나 개인 서사를 받아들이는 맥락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서구 사회학계에서 새로운 개인주의라고도 부른, 개인이 지닌 취약성의 강화와 연계되어 나타난다. 현재의 개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개량하고 자아를 개선해야 하는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취급하는데, 이는 어떠한 정상궤도로부터 이탈하는 순간 이전 세대들에 비해 훨씬 직접적으로 개인의 정신 건강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무해를 추구하는 감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는 자신에게 잠재적으로 부담이나 어려움을 줄 수 있는 존재들로부터 최대한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공감과 보호 욕구가 강해지는 것이다. 셋째는 개인들 간에 서로 과잉근접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적절한 계기나 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한편으로 무해의 윤리가 지배하는, 폭력적이지 않고 강제적 요청이 없는 사회적 삶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인간적 상호작용의 어지러움을 통해 한데 얻을 수 있었던 긴밀한 인간적 접촉과 친밀함 또한 없는 상태도 만들어질 수 있다.
타인은 차갑다
그러한 무해에 대한 추구는 유해에 대한 경계로 나타나고, 결국 타인에 대한 거부와 경멸, 혐오를 낳는 힘이 되기도 한다. 타자는 잠재적으로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고, 자신의 평안을 깨트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KBS가 5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20대와 50대를 ‘따뜻하다’, ‘진실되다’, ‘다정하다’, ‘선량하다’의 단어들로 평가한다면 얼마나 동의를 하는지를 일반 시민들에게 물어보았다. 설문 결과 50대의 경우는 50대에 대해서 아주 높지는 않지만 약간 따뜻한 감정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청년층의 경우에는 50대에 대해 차가운 감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세대인 20대에 대해서도 비교적 차가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들이 보는 20대에 대한 감정은 조금 더 차갑다. 어떤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 따뜻한지 혹은 차가운지는 해당 집단이 나와 얼마나 협력할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뜻한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는 사실상 청년층의 경우 스스로도 다른 청년들이 나와 쉽게 협력할 대상이라 인식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청년층과 장년층(50대)의 상호인식을 들여다보아도 흥미로우면서 씁쓸한 경향이 나타났다. ‘가족, 삶, 그리고 사회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우리나라의 20대부터 60대 이상의 세대 중 가장 ‘이기적인 세대’가 누구인지, ‘불운한 세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가장 ‘운이 좋은 세대’가 누군지를 물어보았는데, 청년층과 장년층의 상호 인식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청년층과 장년층은 서로 상대를 이기적이고 운이 좋은 세대로 생각하면서 자신은 상대적으로 불운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년층의 이러한 인식은 남녀 간 차이에서 또한 드러난다. 청년 여성들은 주로 젠더 불평등 및 격차에 해당하는 부분들에 중점적으로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청년 남성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이슈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표출한다. 이러한 부정적 정서와 비판적 태도는 상호 간 인식을 차갑게 만들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우울감을 만들어 낸다.
위로와 자기에 대한
배려
앞에서 설명한 청년층이 마주한 상황은 여러모로 그들이 가진 심리적 세계를 위축시키거나 때로는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경제적 생존의 불투명함, 일생에 걸쳐 사회적 하층에 머무를 가능성의 두드러짐, 나와 함께하지 않을 것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타인들, 서로 간에 무해한 존재가 되어야 하기에 지속되는 개인 간의 사회적 거리 등이 겹겹이 청년층을 짓누르는 요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을 찾는데 집중한다. 이는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충분한 교류를 하기에 힘들어지고, 많은 시간을 온라인과 모바일 기기를 통해 보내야 하는 청년들에게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위로해 주고, 힐링해 주며, 잠시 현실 세계의 어려움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문화적 콘텐츠와 그 소비는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에게 위로를 주는 대상을 찾으며, 자신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안전한 상태에 있을 수 있도록 보호하고 배려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청년층에게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세대에서도 확산되어 있는 공통적 관심사이자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예전에 철학자 푸코가 말한 ‘자기에 대한 배려’와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국가가 호명한 국민 혹은 시장에 포섭된 소비자였고, 개인은 그러한 발전주의 그리고 이어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개발되고 성공적으로 작동되어야 하는 주체였다. 하지만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화된 청년세대는 그러한 주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자기 자신을 배려하고 보호하고 가꾸면서 고유한 방식으로 윤리적 모습의 삶까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른 세대와의
차이 부재
그리고 내부 다양성
이 글에서는 청년층 인식과 태도가 가지는 상대적 특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여러 설문조사 문항들을 활용, 그들이 가지는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그 차이를 몇 가지의 키워드로 요약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청년층과 중장년층 사이에 뚜렷한 차이 없음,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음, 집단별 차이가 크지 않음 등이다. 여러 정책들에 대한 태도나 입장도 유사하고, 복지에 대한 견해도 비슷하며, 정부예산 지출에 있어서 우선 순위 등도 많은 경우 유사하다. 가치관 등에 있어서도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세대 간 차이가 이렇게 작은 것에 비해, 세대 내 차이에 있어서 사실 큰 다양성이 존재한다. 지난해 경기연구원과 필자가 속한 공정성 연구회에서, 청년층 30여 명을 대상으로 표적집단 면접(FGI)을 실시하여 한국 사회의 공정성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실시한 적이 있다. 분량 상의 관계로 여기에 그 결과를 소개하기는 힘들지만, 인터뷰를 통해 드러났던 사실 중 하나는 젊은층 사이에서, 같은 성별 내에서도 공정성 문제, 젠더 문제, 세대문제, 미래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 다양하고 서로 상충되는 생각과 의견들이 많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다양성은 사실 청년층에 대한 고정관념에 가까운 이미지나 인터넷 게시글 및 댓글들만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러한 세대 내부의 다양성은 현재의 청년층을 너무 일괄적으로 일반화하여 규정하고 그 이미지를 도식화하는 것이 가질 수 있는 함정을 보여준다.
다른 세대와의 차이 부재 그리고 내부 다양성
청년정책의 방향은?
그렇다면 위와 같은 특징들을 보이는 청년세대에 대해 정책을 펼친다고 하는 경우 어떠한 방향을 택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정책들보다 전반적인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청년들이 마주한 ‘문제’들에 집중해야 한다. 청년층이 가지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 ‘MZ세대’라고 불리는 집단이 도대체 어떠한 집단이고 어떠한 가치관과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자체는 좋은 의도에 기초해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이 연령대에 속한 사람들을 지나치게 특수하고, 이해하기 힘들고,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정상에서 이탈한 집단으로 묘사하고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세대 담론이 사회적으로 폭증하는 순간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차이들마저도 그러한 인위적 구분으로 인하여 우후죽순으로 새로 생겨날 우려가 있다. 그들의 ‘마음’을 읽기 위하여 기성세대가 펼치는 제스처들, 특히 진정성 없이 얕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제스처들은 오히려 청년세대로 하여금 기성세대는 더욱 믿을만한 대상이 못 되는, 촌스럽고 감각이 없는 집단이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청년들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그들의 힐링을 위해 쓰여지거나 만들어진 저서 및 콘텐츠들이 막상 청년들에게는 비아냥과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제3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2021.03.30)
제3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2021.03.30)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위에서 언급했던 표적집단면접에서도 어떤 청년은 아무리 온·오프라인에서 사람들끼리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채널과 방법이 많아져도, 나보다 윗세대의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소통할 것 같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많은 ‘소통’들은 사실상 별로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청년층이 보이는 여러 심리적 경향성이나 욕구들은 상당 부분 그들이 처해있는 경제적 상황과 불안정성에 기인하는 것들이 크다. 즉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공정성에 대한 강조 또한 사실상 중·장년층에 비해 더욱 강하다기 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손실을 보기 힘들다는 생존주의적 감각에 의해 발동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청년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태도, 취향, 인식, 판단 등은 청년 집단 내에서도 매우 큰 편차를 보인다. 따라서 ‘청년세대는 공정성에 민감한 세대’라고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청년의 문제와 세대의 문제를 이해하거나 접근해서는 안 되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는 손실이나 자원의 감소를 더 이상 쉽게 감당하기 힘들다는 ‘문제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해야 한다.
세대론에는 항상 다른 세대를 손쉽게 파악하고 규정하려는 욕망이 작동하기 쉽다. 청년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간단히 규정하거나 손쉽게 일반화하지 말고, 그들에게 당면한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