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03년 이래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꾸준히 자살률이 상승하였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 자살률은 남자 인구 10만 명당 38.5명, 여자는 인구 10만 명당 14.8명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다(중앙자살예방센터, 2020). OECD 회원국의 노인(65세 이상) 자살률은 2011년도에는 인구 10만 명당 79.7명에서 2016년도에는 인구 10만 명당 53.3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9년에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3,799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은 남자가 38.0명, 여자가 15.8명이다. 자살률 증가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노인 자살이 감소하였다면 어느 연령대에서 증가하게 된 것일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 청년 자살 사망률 적신호
<그림 1> 연령군별 남녀 자살 사망률
(통계청 사망원인별 사망률)
20-30대 남녀 자살 사망률
50대 남녀 자살 사망률
65세이상 남녀 자살 사망률
2017년 20대는 자살자 수가 1,106명으로 자살률이 16.4%였으나, 2018년 20대의 자살자는 남성이 767명, 여성이 425명, 총 1,192명이었으며, 자살률은 1.2%p 상승한 17.6%이다. 2019년에는 남녀가 각각 27.4명(인구 10만 명당), 18.3명으로 여성이 2018년에 비해 증가하였다(중앙자살예방센터, 2020).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며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라 불리는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송인한, 2020).
생명지킴활동가 교육
*출처 : 서울시자살예방센터
2) 높은 증가폭의
청년 여성 자살 사망률
한국 여성 자살률 역시 압도적으로 세계 1위이다. 코로나19 위기 속 2020년 상반기 남성 자살은 전년 동기보다 감소했지만, 여성 자살은 증가했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률이 2019년 상반기 대비 43%나 급증했다. 여성 자살 문제는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도 악화하는 추세였다. 2019년 사망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자살률은 전년보다 1.4% 감소했지만, 여성은 6.7% 증가했다. 특히 20대 여성에서는 26% 더 증가했다(장숙랑, 백경흔, 2019). 일반적으로 남성이 더 치명적 수단을 쓰기 때문에 남성 자살률이 약 2배 높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여성 자살률은 심각하다. OECD 통계에 따르면 리투아니아에 이어 세계 2위인 우리나라 남성 자살률은 OECD 평균의 약 1.9배다. 반면 세계 1위인 우리나라 여성 자살률(10만 명당 12.8명)은 OECD 평균보다 2.5배 높은 수준이다. 2위권인 벨기에·일본보다 약 50% 높다. 여성 자살률은 2002년부터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해 오고 있다. 가장 높았던 2009년에는 자살률 22.8명으로, OECD 평균의 4배나 되는 수준이었다(송인한, 2020).
3) 청년층 극단 선택의 원인
청년기는 심리적, 경제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을 성취하여야 하며, 배우자를 찾고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성인으로서 역할인 성숙함과 책임감을 발전시켜야 하는 시기이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발 취업난,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자살과 유의한 정적관계(김민경, 2013)에 놓여있다. 경제 불황으로 청년기에 주어진 과업을 이루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취업난과 스트레스, 우울로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으며, 이 요인들은 청년들의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인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첫째, 신체적 요인에는 루키즘(lookism), 외모지상주의 사회적 분위기로 외모에 많은 관심이 쏠리면서 체중에 관련된 관리를 하며 노력하는 것은 자살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전형진, 이건석, 김현진, 이영문 & 김준원, 2014). 외모에 대한 태도는 직접적으로 자살생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우울과 자아효능감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이정숙 & 조인주, 2018). 또한 자살 시도자는 비 시도자에 비해 갑상선 자극호르몬(TSH)의 혈청수치가 높다(Shen et al., 2019).
둘째, 정신적 요인들을 살펴보면 우울감은 자살생각에 주는 영향력이 커서 다른 변수의 영향력에까지 영향을 미치며(양아연, 2020), 스트레스와 우울은 자살 실행가능성에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양혁, 이경주, 고혜연 & 이상민, 2020). 스트레스, 정신건강상태, 지속적 불안, 불안 민감성(Stanley et al., 2018) 등의 수많은 요인이 모여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들을 자살의 과정에 발을 들이게 한다. 이때 이 과정에 진입하기 전에 우울과 공황증상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빠르고 강하게 자살의 과정에 진입하게 된다(Duffy, Twenge, & Joiner, 2019). 신체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유혹에 넘어가게 되지만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게 된다(고문희, 이미옥 & 이명선, 2013). 또한 하루 6시간에서 8시간 정도의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적게 수면을 취하는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와 우울, 자살생각, 자살시도 경험이 적다. 알코올에 대한 의존은 자살을 결심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용기까지 주며 자살률을 높이는 데 역할을 한다(김형수, 2008). 흡연은 니코틴의 효과로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게 하지만 그 니코틴의 효과로 곧 우울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을 자극하여 우울을 경험하게 하며, 자살까지도 생각하게 만든다(유선화 et al., 2018). 즉 흡연은 자살생각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우울감(양아연, 2020)에 영향을 준다(김태석 & 김대진, 2007).
제4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2021.06.09)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셋째, 사회적 요인으로는 경제력이 있다. 청년기에 부모로부터 심리적,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취업을 하고 경제활동을 하며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한다(이희용, 2020). 이 경제력은 외로움이나 고독보다도 우선순위로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박현주 et al., 2011).
4) 여성 청년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
현재 2030 여성의 자살률이 과거 2030 여성보다 심각하게 높은 코호트 효과(특정 기간 특정 질환이나 사망의 증가 또는 감소가 인정되는 현상)를 가지고 있다(장숙랑, 2020). 여성 노동이 비정규직의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여성 차별적 노동시장 구조를 지적하기도 한다(문다슬, 정혜주, 2018). 여성과 남성을 아우르는 모든 청년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실현하는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다(송인한, 2020).
자살은 3가지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시도를 하면서 비로소 자살이 된다(양아연, 2020). 현재 2030 청년들의 정신건강과 자살위험 실태를 파악하고 어떤 영향요인을 통해 자살생각 및 시도가 일어나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2주간(2021년 5월 26일~6월 2일까지) 자살예방센터 상담사 5명과 전직 자살예방센터장을 인터뷰하면서, 현장에서 만나는 청년 내담자 또는 전화 상담자의 특성과 현황들을 살펴보았다. 청년 정신건강 문제의 현황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청년을 집단화해서 보기보다는 개개인의 특성을 통해 취약성의 지점을 끝없이 탐구하고 세밀하게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30의 목소리를 통해 나오는 정책이 실효성과 시급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상담자들을 통해 2030의 목소리를 전해들을 수 있길 기대하며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최근 청년 자살생각,
자살 시도자의 특성
1) 표면적 차원과 은폐적 차원
20~30대로부터 자살예방센터에 걸려오는 상담전화는 재작년부터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최근 2~3년 정도 새로 유입되는 신규 상담자들의 전화가 50%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중에서 20~30대가 최소 60% 이상으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1인 상담요원이 24시간 기준으로 약 150건 정도의 전화를 받고 있다. 황순찬(2014)에 따르면, 자살행동의 원인은 표면과 은폐의 두 차원으로 나뉜다. 표면적 차원은 대인관계, 상실 등이다. 실제로는 본인이 자살생각 이유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은폐적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누적되어 온 것, 무의식, 시간성, 공격성 등이 은폐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누적되어 위험수위에 있을 때, 특정 실패 요인(특히 경제적 요인)이 발생할 경우 자살충동을 느끼고 자살행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인은 정작 무엇 때문에 죽으려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무의식과 시간성, 공격성 등이 맞물려져 있으면 자살 실행성이 높고 가능성이 높을수 밖에 없다고 보는데, 자살실행 능력은 죽음의 공포를 넘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내 삶의 보호요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순간에 실행력이 더 커지게 된다. 노인은 청년들과 달리 치밀하게 준비하는 경향이 있고, 자살 시도자의 자살성공률이 젊은 세대보다 4배 이상 높다. 청년들은 이유를 잘 모르거나 순간적이고, 여러 번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생명사랑 시민페스티벌
*출처 :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상담사들은 20~30대 청년들의 정신건강과 자살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① 가족 관계의 질, ② 실패의 경험, ③ 경제적 문제(일자리 등), ④ 파트너와의 이별 등을 들었다. 경제적 문제 또한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인데, 미래에 대한 막막함(내가 제대로 살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상대적 박탈감이 자살에 큰 영향을 준다. 적응을 못할 것이다, 변변치 못할 것이다 라는 절망감은 자살 생각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은 더 부정적인 생각들을 키워간다. 청년에게 가족은 가장 큰 보호요인일 것이라고 상담사들은 생각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실업 등 경제적으로 취약하거나 변화가 심각하게 나타난 계층(경제적 위상의 변화, 상실)에 취약성이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매달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도 18~20만 원의 빚이 새로 누적되는 상황 속에서 수급 청년들은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청년들 중에서 특히 가족에게 지원을 못 받고, 사회보장체계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면 자살의 위험성이 상당히 높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 상태의 청년들도 취약한 계층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지지 체계마저 부족한 경우 자살위험이 증가한다고 상담사들은 생각하고 있다.
2) 청년과 타 연령대의 차이
상담자 중 중년 남성 또한 많은데, 중년 남성은 일자리가 없으면 설자리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일자리가 없을 때 관계가 소멸되고 삶에 대한 믿음이 함께 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독거가 겹치면 중년 남성에게는 힘들고 갑갑한 상황이다. 일자리와 여가활동을 통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 신체적인 건강을 도모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상담을 요청한 청년들은 일상에서 가벼운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상담자를 연결해 줄 수 있는 ‘human library’가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다. 특히 군 제대 후 칩거하며 사회성을 잃은 청년들도 상담전화를 찾곤 한다. 은둔을 보이는 청년들은 상담사 입장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작은 중재로 쌓인 신뢰를 통해 변화를 도모할 수도 있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장기간 노숙생활로 변화의 조짐이 없다고 생각되는 노숙인도 소일거리와 소통의 창구를 포함한 자활서비스로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곤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러 차원의 자살 고위험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참여와 닿아 있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생계를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고,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나 작업이 있고, 누군가 만나서 상호작용을 한다면 자살생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기본은 갖춘 셈이다.
자살예방 봄캠페인
*출처 :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정신건강문제가 발견된 후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청년들은 감옥에 다녀온 것과 다르지 않다는 표현을 한다고 전언한다. 자살 시도자들에게는 안전하게 지내고 눈물 닦아 주고 한 끼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자살 시도자들은 응급처치 이후에 하룻밤이라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쉼터(shelter)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등에 노출되어 가족과 함께 지내기 힘들어하는 청년들, 그렇지만 경제적 이유 등으로 독립하기도 어려운 경우, 특히 자살시도 후에는 적절한 쉼터가 반드시 필요하다.
3) 여성 청년의 자살 관련 상담
여성이 취업한 근무환경인 비정규직, 서비스업 등의 특성과 더불어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가정 내부의 갈등은 증폭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상처가 많으면 각성 수준이 높아서 적은 자극에도 반응이 크고 충동적일 수 있다. ‘더 산다고 뭐가 나아질까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봤을 때 내 인생은 이미 끝났어요’라는 표현은 그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말해 준다. 상황은 더 절망적인데 비빌 언덕은 없고, 주변에 신뢰할 만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거나(연인과의 이별 등을 포함하여), 없다고 느낄 때 자살생각을 많이 호소하고 있었다.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 자살생각으로 이어진다. 상담사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 등교 중지 등의 이유로 양육 부담이 늘어난 것도 30대 여성의 자살생각과 시도에 영향을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재택근무, 아이 양육이 힘들지만 그보다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힘듦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이다. 이해받지 못하면 스트레스 요인이 되어서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고 해소되지 못한다. 여기에 가족 내 폭력 경험이 이어질 경우 자살 고위험이 된다. 자녀가 장애가 있을 경우는 더 심각한 고위험이다. 배우자 한 쪽이 아이를 감당할수록 힘든 상황을 겪게 된다. 20~30대 여성 청년 자살 사망률의 급증현상을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여성 청년들이 처한 삶의 환경과 조건이 다양하고 각자의 문제와 위험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고 유사할 수도 있다. 내 이야기를 성심껏 들어주고, 나의 힘듦을 편하게 호소할 사람이 있는가? 돌아갈 집이 그리고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는가? 그렇다면 자살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4) 20-30대 청년들이
처음 도움을 요청하는 곳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곳은 주위 사람(가족, 친구 등)이지만 생각보다 그들로부터 도움이나 위안을 얻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신뢰할 만한 누군가가 주위에 없는 경우에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찾게 된다. 친구들도 한계가 있고 많은 청년들이 들어줄 친구도 갖지 못한다.
가족 간의 유대감, 이웃 친구와의 공동체성도 옅어진 지 오래되었다. 종교나 신념 등 지지 체계, 가치 체계에서 도움 받기도 힘들다. 사실 상담기관에 가도 상담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담 전공자들은 많지만 상담사로 일할 곳은 제한적이고, 공공기관은 상담을 제공하기엔 여러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상담실적을 중시하는 공급모형으로는 현재의 청년 정신건강 문제를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다. 자살 관련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상담사가 턱없이 부족하고 교육, 양성체계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자살에 이르는 치명적인 도구들은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원은 없거나 멀다. 상담사들은 이것이 현재 청년 정신건강 문제를 해소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