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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가을  |  vol. 11

2021

10

vol. 11

열정 인터뷰
유례없는
인도주의적 구출작전 아프가니스탄에
‘미라클’을 선물하다
이경구 (국방부 국제정책차장)
박태균 (정책기획위원회 미래정책연구단장)
정미래
사진한상훈
아슬아슬한 긴장이 지속되던 아프가니스탄, 대대적인 혼란이 계속되던 카불이 지난 8월, 탈레반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국내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는 자국의 외교관이나 주재무관, 교민들을 탈출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내 교민들은 안전히 피난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아직 현지에는 주 아프카니스탄 대한민국 대사관과 KOICA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이미 탈레반의 무참한 처형이 예고되어 있는 상태에서 우리 정부가 주 아프카니스탄 대한민국 대사관과 KOICA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을 구출해 국내로 이송하는 ‘미라클 작전’을 펼쳤다. 이번 작전은 작전명대로 기적과 같은 구출작전이었다. 작전이 성공한지 12시간 만에 탈레반은 내국인 탈출 금지를 선언하였고, 공항 주위에서 연이어 폭탄테러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긴박한 생사의 중심에서 작전을 수행하였던 작전 책임자 이경구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이경구
긴박했던 상황에서 이루어낸
기적 같은 작전

박태균

‘미라클 작전’의 성공 후 보도된 내용을 보면 실패한 국가들도 많았고, 우리의 작전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 돌아간 것 같습니다. 작전명을 ‘미라클’로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작전에 동원된 총인원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경구

작전명을 ‘미라클’로 정한 것은 서욱 국방부 장관님입니다. 국방부와 합참에서 지난 7월 청해부대 ‘오아시스’ 작전을 모델로 하여 여러 가지 안을 제시했는데, 서욱 국방부 장관께서 미라클 작전으로 최종안을 결정하셨습니다. 특히 금번 작전이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이라는 전쟁 중인 국가에서 행해야 하는 어렵고 위험한 작전이며, 탈레반 치하에서 위태로운 아프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의미에서 미라클 작전이라고 명명하신 것입니다.
작전 인원은 총 70명이었습니다. 66명은 서울에서 출발한 공군을 비롯한 순수 작전인원이고, 4명은 선발대로 먼저 카불로 들어가 있던 김일응 공사참사관, 고관욱 주 UAE국방무관입니다.

박태균

작전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1단계 작전, 즉 파키스탄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하시는데 있어서 장군님께서 파키스탄에서 이전에 활동하셨던 부분이 많은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파키스탄의 협조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파키스탄 공항의 상황에 대한 정보와 직접적 경험도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이경구

작전을 3단계로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아프간의 카불 공항에 KC-330이 직접 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고, KC-330은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로 AIRBUS가에서 만든 AC-330과 동일한 기종입니다. KC-330은 비행기가 크고 이착륙 거리가 길어 연료 소모량이 많은 기종입니다. 또한 카불공항은 활주로가 길지 않고 고도가 약 1,700m로 주변이 산악지대라 KC-330이 이착륙할 여건 자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카불공항의 관제시스템이 마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조종사 자신이 지형을 보고 항공기를 조종하는 비행 방식인 시계 비행이 가능한 C-130만이 투입 가능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작전을 지위하는 제 입장에서는 카불에서 일거에 KC-330을 투입하여 한국으로 직접 수송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KC-330은 카불에서 이착륙이 되지 않으니 인근 국가에 중간기착지를 선정하여 작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중간기착지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1단계로 KC-330 1대와 C-130 2대를 투입하고, 2단계로 C-130으로 아프간 현지인들을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로 수송한 후, 마지막 3단계로 KC-330으로 한국으로 수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중간기착지로 선정한 것은 말씀하셨다시피 제가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유엔옵서버로 파키스탄에 근무해 현지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카불에서 가장 가까운 안전한 국가가 파키스탄이며,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는 1시간이면 비행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아프간의 인접국이기 때문에 현지 상황을 비교적 정확히 판단하고 있어 작전 수행 과정에서 파키스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란 종합적인 판단에서 결정된 결과였습니다.

박태균

작전지를 선정하실 때 파키스탄 외에 다른 지역을 고려하셨나요?

이경구

당연히 여러 지역을 고려하였습니다. 파키스탄이 작전을 수행하기에 가장 좋으나 파키스탄의 협조가 안 될 경우를 가정하여 인접한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이나 인도 뉴델리 등도 고려했습니다.
우즈벡의 경우 북쪽으로 탈레반 지역을 통과해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뉴델리의 경우 파키스탄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쟁 중이라 군용기가 파키스탄 영공을 통과하여 인도로 직접 비행하는 것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 외 중동 지역 몇 개국을 고려하였으나 시간이 4시간 이상 오래 소요되어 C-130을 운용할 경우 왕복을 위해서는 카불에 갔다가 인접한 파키스탄에 가서 중간급유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파키스탄이 중간기착지로 선정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국방부와 외교부는 물론 공군참모총장께서 직접 파키스탄 공군총장과 통화를 해 세부협조를 해주셨습니다.

박태균

2단계 작전으로 C-130을 선택하셨는데요. KC-330보다 군 작전 성능은 뛰어나지만 항속거리도 짧고, 수송 능력도 크지 않은데요. C-130을 선택하시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경구

C-130은 소형이라 항속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대공방어 능력과 유사시 전술 비행 능력을 갖춘 비행기라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 운용하는데 적합하다고 보았습니다. 상대적으로 KC-330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는 대형이라 이러한 대공 위협에 취약하기 때문에 아프간에 투입하기엔 다소 제한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과거 이라크 파병 시에도 우리 군은 쿠웨이트에 공군 다이만 부대를 파병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다이만 부대도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아르빌 지역으로 인원과 물자를 수송할 때 C-130을 운용하였습니다. 이때 C-130은 전술비행, 즉 지상 대공포 위협을 피하기 위해 급강하를 포함한 나선형 비행을 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혹시나 있을 아프간 투입과정에서의 대공포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C-130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 것입니다.
대신 C-130은 비행기가 작고 항속거리가 짧아 한국으로 올 때 시간이 좀 더 소요됐습니다. KC-330이 11시간 걸렸다면 C-130은 무려 17시간 정도가 걸린 것이죠. 바로 오지 못하고 태국에 들러 중간급유를 하고 오느라 시간이 소요된 것입니다.
이경구
착륙 후 1시간 내로 이륙해야 하는 상황,
이착륙 시간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

박태균

카불공항에 많은 나라의 항공기들이 작전을 펼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공항의 규모를 감안한다면 착륙을 하여도 비행기를 대기할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착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Prior Permission Required(사전 허가 필요, 이하 PPR)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와 혹시 PPR을 받지 못한 국가도 있었습니까?

이경구

저도 카불공항에 가보았는데, 비행기를 동시에 댈 수 있는 공간이 4대가 최대였습니다. 4대가 자국민이나 현지인들을 태우고 나가면 대기하고 있던 국가의 항공기들이 순차적으로 앞으로 이동해서 대기하는 체계라 공항사용허가를 받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카불공항을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미 중부사는 각국의 요구, 즉 PPR을 고려해서 착륙승인을 해주는데, 중요한 것은 착륙 후 1시간 이내에 이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국가 철수 작전에 심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착륙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착륙 시간은 문제가 없으나 이륙 시간은 철수자들의 집결과 연계된 문제라 철수자들이 집합되지 않으면 결국 빈 항공기로 이륙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입니다. 일본은 공군수송기가 카불공항에 들어갔지만 겨우 자국민 1명만 철수시켰습니다. 그 이유가 공항에서 1시간 이상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현지에서 약 20여 개국이 철수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국가들이 모두 PPR을 신청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미 중부사에서는 이를 모두 승인해주지는 않습니다. 현지 상황과 조력자 수송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승인해주고 있는 것이죠. 한국 같은 경우는 기간 중 총 52회의 PPR 승인 요청을 했는데, 모두 승인해주었습니다. 이는 중부사에 파견된 최희관 육군 대령 등 중부사 연락단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박태균

C-130으로 도착하신 후 비행장에 대기할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나라가 터키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터키는 아프간과 같은 이슬람 국가였기 때문에 현지에서의 활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나요?

이경구

이번 아프간 미라클 작전에 터키가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터키는 같은 이슬람 국가로서 아프간에 상당한 영향을 발휘하는 국가입니다. 또한 같은 계열인 우즈벡족을 비롯하여 상당수 투르크계 민족이 거주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상당합니다. 그리고 아프간 난민 중 많은 숫자가 이란 등을 거쳐 같은 투르크계인 터키로 가 난민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아프간에 상당수의 병력을 파병했으며, 카불공항 경계 및 운용도 터키군 600여 명이 미군을 도와 경계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카불에 들어가 임시 지휘소를 개소한 곳도 터키군 주둔지 인근 노천이었습니다. 지휘소래야 저희 인원들과 위성전화가 다였지만 이곳의 개소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터키 측에서는 우리 군 지휘소 개소를 위한 장소를 허용해 주었고, 나중에 우리 조력자들이 들어와 대기할 장소도 제공해주었습니다.
카불공항에 주둔한 각 나라는 현지인들이 자기들 부대 근처로 오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테러의 위협 때문이죠. 그러나 이번 작전을 하는 동안 터키군은 우리 군 작전인원은 물론 한국인 기여자들의 머물 공간까지 제공해주었습니다. 이후 제가 귀국한 후에 국방장관 명의로 미국과 터키군에 감사 편지를 보내도록 건의하였습니다.

박태균

카불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이 한정되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도착하신 이후 이륙할 때까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합니다.

이경구

작전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현지인들이 도착하는 시간을 정확히 맞춰 카불공항에 착륙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착륙 후 1시간 이내에 이륙하지 않으면 다른 국가의 철수 작전에 심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현지인들의 집합 시간을 고려해 파키스탄에서 출발하는 C-130 항공기의 출발 시간을 잘 선정해야 합니다.
첫 수송일이었던 8월 24일, 26명을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로 수송할 때는 이미 집결이 하루 전인 8월 23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수송 시 도착 후 약 20분 만에 이 인원들의 검색과 마스크 착용 등의 조치를 취한 후 바로 파키스탄으로 이동했습니다.
문제는 나머지 인원들의 이동이 자꾸 지연되었고, 이에 따라 융통성 있게 비행 스케줄을 조정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수송할 때엔 일부 인원이 추가됨에 따라 신원확인 등의 시간이 추가 되어 비행 스케줄이 조정하였습니다. 이후 두 번째 8월 25일 12시에 우리 비행기가 카불공항에서 현지인들을 태우고 출발하는데 1시간을 거의 소진했습니다. 당시 우리 비행기 뒤에는 독일 등 다른 국가의 비행기가 이미 대기 중인 상황이어서 우리가 빨리 떠나지 않으면 타 국가 작전에 심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카불을 떠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경구

박태균

아프간 기여자 분들이 원래 예정된 시간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 이분들을 수송하는 분들과의 통화나 접촉이 가능했나요? 가능하지 않았다면 이분들이 도착하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받을 수 있었나요? 사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카불에 들어가셨나요?

이경구

현지들과의 접촉과 통화는 주로 외교부에서 담당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말씀을 드리면 현지인들을 2개소의 집합장소에 모이도록 통제를 했습니다. 그래야 집결과 인원확인이 가능한 측면도 있고, 통제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현지인들과의 연락은 휴대폰 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었고, 문자메시지나 SNS를 통해 접촉했습니다. 접촉이 단절되는 경우 상호 간에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현지인들을 잘 접촉해 연락체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통신 관련해서 저와 같이 간 인원들의 경우 로밍을 했는데, 아프간이 이미 여행금지국가로 지정 돼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단 현지폰은 다행히 작동이 돼 국방무관 고관욱 대령이 가지고 있는 현지폰을 대여해서 활용했습니다.

박태균

아프간에 있는 한국 외교공관과의 연락 상황은 어떠했나요? 현지 공관과의 협력이 이번 작전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경구

현지 아프간 한국대사관은 이미 8월 16일에 카불을 떠나 폐쇄된 상태였으나 8월 23일 현지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김일응 공사 등 4명이 카불로 들어갔기 때문에 협조가 가능했습니다. 대사관은 이미 폐쇄되었고, 탈레반 지역에 위치해 있어 대사관 건물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전은 카불공항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카불공항 밖으로 이동하는 것은 미국 측이 불허했고, 나가는 순간 생명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카불공항 내부에 지휘소를 정하고 작전을 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런 측면에서 통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박태균

공항에서 이륙 허가를 받는 과정이 어렵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이륙할 준비가 되더라도 허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이륙을 할 수 없고, 이륙을 한 이후에도 적의 공격에 대한 대비를 위해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라 생각됩니다.

이경구

카불공항에서 이륙허가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이슬라마바드공항에서 한국으로 올 때 이륙허가를 받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이는 파키스탄에도 많은 국가들이 자국으로 수송을 하기 위해 집결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착륙이 워낙 많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태균

C-130으로 아프간에서 파키스탄으로 오실 때 수송인원 능력을 넘었던 것에는 어려움이 없나요?

이경구

8월 24일 첫 비행기로 들어간 26명을 제외하고 아프간 현지인 364명을 이슬라마바드로 수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사실 C-130 1대 수송 인원이 최대 100여 명인데, 우리 승무원까지 2배를 태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C-130 수송기의 의자를 모두 다 떼어내서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태워 수송한 것입니다. 비행기 안에 200여 명이 모두 타니 비행기 안이 너무 더웠습니다. 특히 수송 인원 중에 신생아 3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2번기 마지막에 탔는데, 발을 디딜 공간이 없어서 저도 겨우 램프 문에 기대고 짐에 몸을 의탁해 카불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수송시간이 길었으면 탑승객들 상당수가 탈진하거나, 영유아들의 경우 건강상 문제도 발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태균

이슬라마바드-카불, 카불-이슬라마바드 구간에서 기후적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난기류나 폭우 같은 이상 기상 상황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이경구

물론 기후적 어려움은 상당했습니다. 한국을 출발할 때 기온이 약 25도 정도였는데, 파키스탄은 37도로 굉장히 후덥지근했고, 카불은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었으나 태양이 강렬해서 임무수행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카불도 온도가 35도 정도로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상 기상 상황은 몬순지대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폭우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다행히 작전기간 중에 기상에 따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이경구 (환경부 장관)
마지막까지 어려웠던 작전
대한민국과 장병들이 함께 이루어낸 성과

박태균

파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출발하실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그리고 출발 성공에 관한 연락은 누구와 하였는지요.

이경구

이슬라마바드에서 출발할 때엔 상당이 걱정이 많았습니다. 비행시간이 11시간이나 걸리는 데다 약 400여 명이 비행기에 탑승하다보니 너무 좁았습니다. 최초 저희가 판단한 인원은 4세 미만이 100명이라 충분히 탑승이 가능하리라 보았는데, 실제로 어린이들이 커서 부모들이 무릎에 안고 타기가 어려웠습니다. 자리가 부족해 저희 의료진, 승무원 등 대부분의 인원들은 서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화장실의 경우도 4개를 11시간동안 400여 명이 이용하다 보니 애로사항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희 장병들 대부분은 화장실도 가지 않고 버티었다고 합니다. 이 기회를 통해 저희 장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연락은 당연히 저의 지휘계통인 국방부와 합참에 보고를 했고, 국방부와 합참에서는 유관기관에 관련 사항을 공유했습니다.

박태균

작전상 비밀로 진행해야했기 때문에 돌아오셨을 때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작전에 장군을 파견한 국가는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경구

당연히 작전보안이기 때문에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번 오아시스 작전 때도 그랬지만, 이번 미라클 작전 역시 가족들에게 일체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가장인 제가 위험한 일을 많이 한다고 걱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합니다.
기존에 카불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나 터키군을 제외하고 구출 작전 자체에 장군을 토입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공군 위주로 인원을 파견하고 있으며, 이들 파견 인원들은 대부분 인접국가 호텔 등에서 머무르고 있다가 카불에 인원이 집결되면 들어가는 시스템이라 우리하고는 정신적 대비 태세가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은 장군계급장이 동일한데, 이번 작전을 장군인 제가 지휘했던 게 미군과 터키군의 협조를 얻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박태균

장군님께서는 전체적으로 보셨을 때 이번 작전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지휘관의 판단, 결단 등이 작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국제적인 위치나 명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경구

이번 작전의 성공 요인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완벽한 작전계획과 이를 수행할 부대원들의 우수성입니다. 국방부는 유관 부처는 물론 파키스탄,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의 협조를, 합참에서는 빈틈없는 작전계획을 수립해주었고, 공군을 비롯한 부대원들의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이 없었다면 이번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방국과 주변국의 협조로 파키스탄에서는 공항 사용협조를, 아프간 현지에서는 미군과 터키군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외교부를 비롯한 유관기관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일치단결했기에 가능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저는 작전을 한 70명의 뛰어난 능력과 함께 한국의 신장된 국력과 국제사회 인지도가 이번 작전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태균

이번 작전을 경험하시면서 이런 상황이 또 다시 발생한다면, 어떤 요소들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경구

무엇보다도 위협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초에 민항기로 철수하기로 계획을 했다가 8월 15일, 카불이 탈레반에 일거에 장악되면서 민항기 철수가 불가하게 되니 군용기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위협을 고려해야 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으나 작전지휘관인 제가 군번줄을 챙긴 것도 저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최악의 경우를 고려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상황을 판단할 때 정확한 판단이 물론 중요하지만 위협과 대응방향을 다소 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태균

마지막으로 국민들이나 함께 임무를 완수한 부대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이경구

저는 지금까지 군 생활을 하면서 임무 앞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은 군인의 최우선 가치이며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전은 대한민국 전체가 한 것이며 우리 군 전 장병이 한 것입니다. 같이 임무를 완수한 부대원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대한민국 모두가 영웅입니다.
이경구

발행인 조대엽   발행일 2021년 6월 30일  
발행처 정책기획위원회 (03171)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209 정부서울청사 13층

편집위원 박태균(국민주권분과위원, 편집위원장), 김선혁(국민주권분과위원), 진민정(국민주권분과위원), 최승필(국민성장분과위원), 김민희(포용사회분과위원), 신진욱(포용사회분과위원), 최세정(지속가능사회분과위원), 김수연(분권발전분과위원), 김성경(평화번영분과위원), 황지환(평화번영분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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