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의
국제법적 고찰
국제법 권위자인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딘스타인(Yoram Dinstein) 교수는 “전쟁은 기술적 혹은 물리적 차원에서든 둘 이상 국가의 적대적 상호작용(hostile interaction)”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물리적인 적대행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종전을 위한 대표적 방법 중의 하나인 평화협정 체결 등을 통해 법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전쟁을 종료시키지 않는 한 기술적 차원에서는 전쟁 상태로 해석되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경우, “정전협정 발효일인 1953년 7월 27일부터 물리적인 적대행위가 사실상 종료되었더라도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주장이 그래서 가능하다. 이는 한국전쟁이 법적으로 종료되기 위해서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논하려면 종전의 국제법적 개념을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 서울대 이근관 교수가 논문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수립의 국제법적 함의(2008)”에서 이를 유용하게 분석했다.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 채택된 ‘고전적 의미’의 정전의 개념은 “교전 당사자 상호협의에 의한 군사작전의 정지”였지, “전쟁의 종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국제법 이론에 의하면 정전은 “적대행위의 일시적 중지가 아니라 장래의 최종적인 평화조약에 선행하는 사실상의 전쟁 종료”이며, “재개는 가능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1953년의 한국전쟁 정전협정 역시 “적대행위의 완전한 중지”를 의미하며, 만약 북한이나 중국이 도발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전쟁이 된다고 본다. 굳이 조약을 따지지 않더라고 미국과 중국 간에는 1972년 관계 정상화를 위한 ‘상하이 공동선언’ 이래 전쟁 상태가 종료되었다. 남북 간에는 “기술적으로 여전히 전쟁”인 측면은 있지만,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6·15 공동선언의 채택과 함께 무력분쟁은 종료된 것으로 보는 게 다수설이다.
판문점 휴전회담
*출처 : 연합뉴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의 목적을 보게 되면, 남북관계는 그 특수성 때문에 “적대국가 간에 외교관계 회복”과 같은 통상적 최종상태(end state)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인 특수 관계의 인정”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이미 이들 합의서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북 간에도 평시 관계가 아닌 것은 맞지만 국제법상 전시로 보기도 어렵다. 결국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을 국제법적으로 본다면 “계속되고 있는 전쟁 상태를 비로소 종료시키는 창설적, 형성적 효력을 가진다기보다는 이미 종료된 전쟁 상태를 확인, 선언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합의, 선언 또는 신사협정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종전선언의 주체와 정전협정 주체의 일치 여부를 보면, 정전협정이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인 데 비해 종전선언은 정치적 합의이므로 주체가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 종전선언의 당사국에서 설혹 정전협정에 조인한 중국을 배제하더라도 별다른 법적 문제는 없다. 같은 조약인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조차도 그 주체가 일치하지 않는다. 종전선언의 효과를 보면, 종전선언은 정치적 합의나 신사협정이므로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더라도 한반도는 여전히 정전협정 체제 아래 있게 된다. 이는 군사분계선이 종전선언에 의해서 국경선으로 전환되지는 않음을 의미한다.
평화협정 체결이 종전의 대표적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평화협정 체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 UN 체제에서는 일반적이지는 않다. UN 헌장(제2조 4항)은 “회원국가의 무력행사 삼가”를 규정하고 있다. 단지 ① UN 안보리 결의에 의한 군사적 조치와 ② 무력공격을 받는 국가의 ‘자위권 행사’의 두 가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무력사용을 허용한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합법적인 전쟁 발발의 순서가 ‘최후통첩(Ultimatum)에 이은 선전포고 후 개전’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개전을 위한 선전포고의 개념이 현 UN 체제 아래에서는 없다. 이는 선전포고에 대응하는 개념인 평화협정 개념의 약화를 말한다. 평화협정은 1842년 난징조약,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 1919년 베르사유조약이 대표적이다. 2차 대전 이후 평화협정 사례로는 1973년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 간 체결된 파리평화협정(Paris Peace Accords)과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1991년 캄보디아내전을 종식시킨 파리평화협정 그리고 2020년 2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의 평화협정이 그것이다. 일반적인 평화협정에는 영토와 범위, 사면, 전쟁포로 교환, 평화 시 체결한 기존 조약들의 효력 재개, 배상금 문제 등이 담겨 있다.
다음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시 국회 비준 동의와 국가 승인의 문제가 있다. 그런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선언 등 남북 간 포괄적 합의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가 불발에 그친 전례를 볼 때 그 실현이 쉽지는 않다. 필수 불가결한 절차도 아니다. 또한, 딘스타인(1992, “Armistice”)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조약 당사자 상호 간에 국가 승인 문제가 파생될 수 있다고 본다. 상호 승인을 않는다고 하여 조약을 체결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만약 평화협정이 남북 간의 기본관계를 규율하는 경우는 묵시적 승인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묵시적 승인으로 간주할 경우는 현행 헌법 제3조(영토)로 인해 위헌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위헌 상태가 국제법상 효력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관계이다. 전쟁 종식을 위해 평화협정을 체결할 경우, 그 안에 종전선언을 포함한다. 통상적으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제1조에 규정하는 방식이다.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별도 형식으로 종전선언을 하는 것은 일반적이 아니다. 난징조약, 이집트·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모두 그 협정의 제1조에 종전선언을 규정하고 있다. 종전선언이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꼭 필요한 절차는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