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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시선
‘공부방 계급론’이
드러낸 현실
윤지연 (KBS 보도본부 시사제작2부 기자)
2021년 ‘이대남’ 논쟁이
놓치고 있던 것
지난 4월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 이른바 ‘20대 표심’에 정치권이 주목했다.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고스란히 언론으로 옮겨왔고, 거의 모든 매체에서 ‘청년 담론’을 쏟아냈다. 6월에는 제1야당 대표로 30대 남성이 당선됐고, 청와대는 20대 여성을 청년 비서관에 임명했다.
비슷한 시기, KBS <시사기획 창> 내부에서도 ‘이대남 논쟁’을 다뤄보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처음엔 ‘우리까지 이대남 논쟁에 뛰어들어야 하나’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 몇 달째 언론을 중심으로 쏟아진 소모적 청년 담론에 대한 피로감이 컸고, ‘세대론’ 위주로 흘러가는 데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프로그램이 한발 더 나아간 논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무용한 것’ 내지는 ‘유해한 것’을 하나 보태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대남’ 같은 담론이나 논쟁의 경우, 카메라로 촬영할 수 있는 이른바 ‘현장’이 없어 다큐멘터리 형식의 TV 프로그램 소재로 만들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2021년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는 데에 이견이 없어 취재를 시작했다.
그간 정치권과 언론에서 다루었던 청년 담론의 두 축은 ‘젠더’와 ‘세대’였다. ‘이보다 더 다를 수 없다는’ 20대 남녀는 ‘젠더갈등’이란 이름으로 무한 재생산됐고, 다른 한 축에선 오늘날 ‘청년의 어려움’을 ‘성공한 586’과 비교하며 ‘세대갈등’으로 진단했다. ‘이대남’은 ‘성별’과 ‘세대’를 축으로 끊임없이 ‘대립’하는 존재로 묘사됐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 언론은 몇 가지 통념을 마치 진리인 양 사용했다. ‘이대남’은 불공정에 유난히 민감한 특별한 공정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대남’이라 불리는 ‘집단’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유능하다고 믿는 남성우월주의자다. ‘이대남’은 과거 청년인 ‘586세대’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데 분노하고 있다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대개 ‘수도권 4년제 대학’을 나온 이들이다. 청년세대 중 고졸이거나 지방 소재의 대학을 나온 이들의 이야기는 사라졌다.
‘기회빈곤’에 주목하다
2021년 5월 13일,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의 연구실에서 첫 회의가 열렸다. 신진욱 교수와 미디어 플랫폼 기업 Alookso 천관율 수석 에디터, 신수현 데이터 총괄 책임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휴식도 없이 3시간 넘게 이어진 회의는 이후 두 달여 동안 몇 차례 계속됐다. 목표는 단 하나, 진짜 청년문제를 드러내 보자는 것이었다. ‘이대남 현상’, ‘젠더갈등’ 같은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청년세대인 18~34세 남녀 1,000명, 기성세대인 35세 이상 남녀 1,000명을 각각 조사했다. 전체 샘플이 2,000명에 이르는 초대형 조사였다. 설계 과정에서 인천대학교 박선경 교수가 합류했다.
주목한 건 ‘기회빈곤’ 문제였다. 지난 세기, 청년은 자산이나 지위가 없어도 기회만큼은 많았다. 청년에게 오늘의 고단함은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투자였다. 청년은 취약계층이 아니었기에 별다른 청년정책 역시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20여 년간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어떤’ 청년들은 ‘기회빈곤’을 해결해야 할 정책의 대상이 되었다. 남은 건 기회빈곤에 빠진 청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이를 위해선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같은 성취 변수를 배제하고 환경적 차이를 드러내는 데이터가 필요했다. 수백 개의 질문을 두고 난상토론이 이뤄지는 가운데, 신진욱 교수는 한 문항을 지목했다. ‘나는 청소년기에 부모님에게서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았다’라는 문항이었다. 하나의 문항이 청소년기 공부환경을 묻는 6개의 세트 문항으로 확대됐다. 부모 소득이나 주관적 계층의식 같은 질문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청소년기의 환경에 대한 객관적 측정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부모의 소득을 정확히 알거나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지만, 내가 공부하는 방이 따로 있었는지는 잊어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조사 결과, 공부방 6문항은 오늘날 청년들의 계층 분화를 보여주는 강력한 잣대로 확인됐다. 18~34세 청년세대 남녀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생계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그렇다 66% vs 아니다 33%).>, <집에는 내 공부방이 따로 있었다(그렇다 65% vs 아니다 34%).>, <정기적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받았다(그렇다 65% vs 아니다 34%).>, <독서실이나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그렇다 75% vs 아니다 25%).>, <부모님은 나의 학업을 지원해주셨다(그렇다 83% vs 아니다 15%).>, <부모님은 나의 대학 진학을 원하셨다(그렇다 84% vs 아니다 13%).>
응답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응답자를 세 그룹, 즉 상층 33%, 중층 43%, 하층 19%(모르겠다 응답 5%)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이를 ‘공부방 3그룹’으로 명명했다. 공부방 그룹별로 대학 입시 결과가 갈라졌고, 이후 일자리의 질까지 영향을 미쳤다. 공부방 하층 청년이 취약 노동시장으로 들어갈 확률은 상층 청년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삶에 대한 태도, 인간관계,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도 공부방 그룹별로 차이를 보였다.
<표 1> 청년 ‘기회빈곤’ 문제에 관한
설문조사
공부방 6문항 그렇다 아니다
생계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66% 33%
집에는 내 공부방이 따로 있었다 65% 34%
정기적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받았다 65% 34%
독서실이나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75% 25%
부모님은 나의 학업을 지원해주셨다 83% 15%
부모님은 나의 대학 진학을 원하셨다 84% 13%
무엇보다 기회빈곤은 청년세대 내 문제인 동시에 계층 대물림 문제였다. 아버지의 최종학력과 공부방 그룹은 강력한 연관관계를 보였다. 아버지가 대졸 이상인 비율은 공부방 상층에서 60%, 하층에서 26%로 상층이 하층의 두 배를 넘어섰다. 아버지가 중졸 이하인 비율은 상층 2%, 하층 21%로 차이가 10배 이상 벌어졌다. 청년문제를 세대 간 갈등으로 바라보는 게 얼마나 무력한 일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공부방 계급론’이 청소년기 이후의 삶, 그 자체를 가르는 상황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단일 청년 남성집단이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은 허상에 가깝다. 실제로 조사 결과, ‘이대남’에 대한 통념 가운데 다수가 허구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제 따져봐야 할 것은 ‘이대남 현상’이 왜 나왔으며, 어떤 계층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됐고, 어떻게 확대되어 재생산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대남 현상’은 일관되게 ‘공부방 상층 남자’에서 두드러졌다. ‘이대남 현상’을 얘기할 때 나오는 기계적 공정과 능력주의 신봉, 시장주의 등에 대해 하층 남성은 상층 남성과 달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청년,
그들을 찾아서
조사 설계가 KBS와 Alookso, 연구팀 공동의 작업이었다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청년들을 찾는 건 온전히 KBS <시사기획 창>의 과제였다. 우리가 만났던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다수이지만, 정작 주류의 청년 담론에서는 소외된 이들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졸이거나 지방 사립대 혹은 전문대를 나온 비수도권 거주 청년이었다.
가장 먼저 만난 이는 용접노동자 천현우 씨였다. 이미 몇몇 칼럼을 통해 주목을 받았던 천현우 씨는 사실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고졸 또는 전문대를 출신으로(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쇳밥을 먹는 블루칼라 노동자가 기성언론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는 경우는 산업 재해 피해 당사자로 마이크를 잡는 게 아니라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경남 창원에서 만난 그는 취업하고 10년 동안 11곳의 직장을 옮겨 다녔던 일과 자신이 겪은 노동 현장과 산업 재해 등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행이 되어버린 청년 담론에 대한 생각도 담담하게 밝혔다.
다양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KBS 윤지연 기자가 자리를 마련했다(2021.06). 출처 : 필자 제공
다양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KBS 윤지연 기자가 자리를 마련했다(2021.06).
*출처 : 필자 제공
“청년이라고 하면 하나로 생각을 하잖아요. 이때까지 청년 담론이라는 건 결국 수도권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못 살겠어’, ‘월세가 너무 높아’, ‘취업을 어떻게 하지’, ‘지하철로 출퇴근이 얼마나 걸리지’ 등 이런 것들 있잖아요. 사실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전체 청년의 20%나 될까요? 당장 제가 사는 도시에는 지하철이 없어요. 집을 구하는 것도 서울처럼 어렵지 않고요. 우리는 전혀 다른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여기에는 관심을 주지 않아요.”
“우리가 유령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주 먼 곳에 혹은 울산, 혹은 거제도 이런 데에 커다란 공장, ‘내가 살면서 한 번도 가볼 일 없을 것 같은,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저희가 일을 하고 있어요. 이곳의 삶도 여러 힘듦이 있고, 동시에 나름의 자부심과 나름의 노력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이런 의미로 제 글을 읽어주셨으면 해요.”
- 천현우 인터뷰 中
경남 창원에서 만난 청년 천현우씨 출처 : 필자 제공
경남 창원에서 만난 청년 천현우씨
*출처 : 필자 제공
이어서 지방 국립대 또는 사립대를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청년 4명을 만났다. 대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이들은 진지하고 솔직했다. 유쾌하고 명쾌했으며, 인터뷰 한 모든 내용을 그대로 방송에 내고 싶을 정도로 울림있는 메시지였다.
“얼마 전에도 서울을 갔는데 높은 빌딩들을 보면서 ‘일자리가 참 많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 기업들은 인턴 경험이 있는 친구들을 많이 뽑거든요. 취업하려면 인턴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지방에는 좋은 인턴 자리가 많지 않아요. 서울에서 알아보려고 해도, 인턴은 보통 최저임금을 받거든요. ‘그 돈으로 서울에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동안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선뜻 구할 수가 없어요. 연고도 없이 서울에서 사는 건 정말 힘들어요. ‘서울에서 태어난 게 스펙이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돼요.”
- 공의정(29살)
공의정 씨와 윤지연 기자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필자 제공
공의정 씨와 윤지연 기자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필자 제공
“처음 외무고시를 준비하면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공부를 더 잘할 텐데, 나는 과연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막상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까 이런 생각 때문에 시험 준비를 시도조차 못 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진입 자체를 못 하는 거죠. 이런 두려움 때문에. 대학을 진학하는 과정에서 이미 인서울 하지 못했다라는 패배감, 혹은 자신감을 잃어버린 측면이 있어서 고시 준비나 전문직 준비를 하는데도 도전 자체를 꺼리게 되는 것 같아요.”
- 최소율(23살)
“저는 앞으로도 대구에서 살고 싶어요. 제 친구들도 여기 있고 부모님도 여기 살고 계시고요. 모두 다 서울에 살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막상 취업하려고 하면 임금 차이도 그렇고, 인식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서울을 가야 성공한다’라는 생각이 워낙 많다 보니 교수님들도 대부분 서울에서 취업하라고 제안을 많이 하시죠.”
“청년 관련 행사들이 많아져서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직책 있는 분들 발언이 끝나면 그분들도, 취재진도 같이 다 빠져요. 청년들이 말할 때는 아무도 없는 거예요. 저희가 나설 자리가 많아지는 것은 맞는데, 진짜 많아진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자리에서조차 저희 자리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 최유정(24살)
‘공부방 계급론’이
드러낸 또 하나의 현실
공부방 계급은 청년의 삶 전체를 가르고 있었다. 그 자체로 매우 불공정한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공부방 계급론’이 드러낸 현실은 하나 더 있다. 부모의 학력이 대물림되고, 청소년기의 공부환경이 대학 입시 결과를 좌우하고, 이후 청년의 삶을 가르고 있는데도 어쩐 일인지 우리 사회의 학력차별 담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라져버렸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온 사회가 공정을 화두로 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 분석을 맡은 한국리서치 정한울 전문위원은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한국에서 학력 차별이 심각하다는 의견은 언제나 매우 높게 나옵니다. 그런데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학력차별 문제가 사라졌어요. 시민들은 여전히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다고 피부로 느끼는데 여론 주도층에서는 관심이 없다? 이건 반드시 짚어봐야 할 현상입니다”라고 발언했다.
청년
프로그램을 마친 후 후련함보다 고민이 더 깊어졌다. 신진욱 교수와 박선경 교수, Alookso 팀과 함께하면서 여느 취재 때보다 더 많이 배우고 생각할 기회를 얻은 덕분이다. 청년 논의를 확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말로 풀어야 하는 주제를 방송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등 경험이 쌓인 만큼 숙제도 많아졌다. 이 숙제를 잘 풀어내 조금 더 나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