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학적 관점에서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국내 거버넌스의 실패사례이다. 통합적이고 안정적인 정부가 구축되지 못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아프가니스탄이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사태의 최대 책임은 누구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무엇보다 내부의 무능과 부패를 막아내지 못했던 국내정치적 구조에 가장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미국 역시 내부 문제 해결과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실패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악화되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부정부패를 잘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정부 내 고위층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국민을 버리고 가장 빨리 국외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심각한 부정부패와 국내 거버넌스 실패로 인해 미국이 아무리 많은 돈과 군사력을 투입하더라도 국가재건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이 테러전쟁 초기 탈레반과의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안정적인 아프가니스탄 국가재건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전쟁 자체에서 패배한 것이다. 현 사태는 아프가니스탄의 실패임과 동시에 미국의 실패이기도 하다. 미국은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을 중앙아시아에 전파하겠다는 생각에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정치 현실과 문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이 다민족 국가임을 감안하면 다양한 부족과 종교, 군벌들의 관계를 면밀히 고려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탈레반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역사적으로 외국 세력에 대한 반감 역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 역시 이러한 복잡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이것이 평화의 시작일까? 오히려 새로운 갈등과 혼란이 아프가니스탄과 국제사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19세기의 그레이트 게임처럼 아프가니스탄 상황은 향후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 사태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다. 2021년의 탈레반은 2001년의 탈레반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돌아온 탈레반이 국제사회와 공조하고 국내에서 안정적인 통치를 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어 국내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워낙 복잡한 국내 정치사회 구조의 갈등으로 일부 세력이 반탈레반 저항의 기치를 내걸고 있어 내전의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탈레반 정부 자체도 향후 아프가니스탄 국가 운영 과정에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지난 20년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와 사회를 재건해야 하는 과제는 탈레반 정부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폭정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원과 국민들의 지지가 필수적이지만 장미빛 미래는 없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20년간 미국의 후원 하에 민주주의와 세속주의 정치를 경험했기 때문에 탈레반 정부의 딜레마는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후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딜레마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철수한 것은 20년을 주둔했지만 더 이상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2조 달러의 재정을 투입하고도 민주주의 국가재건은커녕, 국내적으로 안정시킬 수도 없었던 점이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최근 중국 및 러시아 등과의 강대국 전략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지속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도 있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20년 동안 묶여 있으면서 군사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엄청난 제약을 받아 왔다. 향후 지속적인 주둔은 미국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켜 경쟁국들, 특히 중국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국에게 옳은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사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의 국력이 역사적으로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시작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냉전의 종식 이후 거침없던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반테러 전쟁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나 이후 아프가니스탄 내에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으로 전후 목표가 변경되었다. 당시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은 부시 독트린을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 세계에 확산하는 자유주의 성전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미국의 월등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예방적 전쟁도 불사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네오콘들은 민주주의가 확산되어야 세계질서가 평화로워진다는 소위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을 맹신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의 패권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20년간 피해가 늘어나면서 미국인들의 회의감은 증폭되었다. 미국의 상대적 역량 감소도 목격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수렁에 빠진 미국은 국력을 소진하고 다른 강대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빠른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로 글로벌 리더십 논쟁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1980년대 이후 제기된 ‘강대국 흥망성쇠’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미국 내에서는 글로벌 리더십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Don’t Come Back Home!)는 그룹과 과대팽창 및 국내 문제의 심각성을 주장하며 글로벌 축소 전략(Retrenchment)을 주장하는 그룹이 팽팽히 맞서 왔다. 미국은 그동안 해외주둔군재배치계획(GPR)을 통해 일부 해외 팽창을 축소하는 전략을 펼치면서도 여전히 개입주의적 전략과 글로벌 리더십을 견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는 상대적인 역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또한 미국 내에서는 ‘역내 균형자(Onshore Balancer)’로서의 해외 개입을 지속할 것인지, ‘역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로서 자제(Restraint)할 것인지 역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이러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위기와 맞닿아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프간 현지 조력자 및 가족들 한국 이송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2021.08.27).
*출처 : 법무부
다른 한편,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의 민주주의 재건을 포기함으로써 그동안 추구해 온 가치 외교에 커다란 타격이 불가피 해졌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올해 12월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개최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우려와 실망이 증폭될 수 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향후 난민문제 등 인도주의적 위기를 발생시키고 테러, 마약 등의 인간안보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아 바이든의 가치외교를 어렵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8월 31일 철군 작전 종료 시까지의 카불공항 상황은 향후 아프가니스탄 난민문제가 얼마나 심각해 질 것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중심이 된 테러와 마약 문제가 주변국으로 확산된다면 혼란이 증폭될 수 있다. 향후 인도주의적 위기와 인간안보 문제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가치를 강조할 때마다 아프가니스탄 사례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국경을 맞댄 이란 문제의 방향도 초미의 관심사다. 탈레반(수니파)과 이란(시아파) 사이의 종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탈레반과 이란이 직접 충돌하지 않는 이상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미국의 이란 핵협상에 미치는 영향 역시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다. 이란 핵협상 자체가 이슬람 종파문제나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국제비확산체제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인 측면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이란 핵협상에 적극적이지 않다. 트럼프가 탈퇴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그냥 복귀하기보다는 이란의 추가 조치를 요구하고 있어 합의가 쉽지 않다. 이처럼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전 행정부와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에서 아프가니스탄이나 반테러 전쟁이 외교정책에서 가지는 우선순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미국이 직면한 더 중요한 외교정책 아젠다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집중됐던 자원과 능력을 돌려 중국 및 러시아와의 강대국 경쟁에 집중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신이 타격받는 점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향후 새로운 방식으로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위한 노력을 집중할 것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왼쪽)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1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국방부 청사에서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에 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1.09.01).
*출처 : 연합뉴스
물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다른 지역에 미칠 영향성에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는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주변국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테러와 마약의 거점이 된다면 중동과 유럽까지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 특히 중동 지역에 대한 영향이 우려되는데, 난민과 테러 위험이 높아지면서 아프가니스탄이 제2의 시리아가 되어 주변국을 위협하게 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미국에 승리하면서 중동의 이슬람 국가(IS) 세력이 부흥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군의 철군 직전 발생한 이슬람 국가 분파인 IS-K의 테러는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미국의 반테러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면 중동정책 자체가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스라엘-아랍국 간 갈등, 이란-사우디 갈등, 종족분쟁, 석유 문제 등 여러 가지 변수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해 중동지역의 지형과 미국의 대 중동정책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