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시대,
헌정환경의 변화와
국가혁신의 필요성
대전환의 상황은 서로 연계해 있기는 하지만 국제환경과 국내환경을 구별해서 살펴 볼 수 있다. 국제환경의 보편적 조건은 지능정보사회의 도래, 세계화의 지속, 탈탄소-기후변화현상의 가속화로 요약할 수 있다.
지능정보사회의 급속한 진행은 디지털 혁명 혹은 제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환경의 도래로 설명된다. 정치과정은 물론이고 시민생활의 기반이 가상현실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는 환경은 공공의 목표설정이나 실행 등 권력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탈탄소-기후변화 환경은 인류의 미래가 새로운 위기국면에 처해 있고 전통적인 방식을 뛰어넘는 혁명적 대응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난 2년여간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현상 속에서 그 동안 주춤하다고 이해되던 세계화가 사실은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 확인시켜주는 상황에 있다. 팬데믹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 할수록 인간의 ‘사회적 동물’로서 본성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지구촌은 이제 모든 것이 공간적 및 공간초월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인류의 기본 조건임을, 즉 세계화를 변수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고정적인 조건으로 생각해야 하는 환경을 맞고 있다.
국내에서는 1987년 체제 이후에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와 자유화라는 배경 외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분단체제의 질곡 속에 평화통일이 우리 사회의 특수조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의 환경변화는 전통적 국가 패러다임의 대개조, 즉 국가-사회 대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제는 매우 중장기적이면서 거시담론적 성격을 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전통적 헌정 패러다임으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속도를 제동하는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나 미시적 과제의 차원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성격을 띤다. 다시 말해, 거시적 비전과 미시적 섬세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환경에 놓여 있으며, 이를 배경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국가와 시장 및 사회, 그리고 개인의 관계 정립이 다양한 차원에서 요구된다. 또한 새로운 헌정 패러다임은 그에 대응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 세부적인 실천과제를 설정하고 실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림 1> 대전환 시대,
헌정환경의 변화와 국가혁신
이처럼 대전환시대 헌정개혁의 기본적인 방향은 민주공화국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성취하는 것이며 이를 권력개혁의 차원에서 비춰보자면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를 구축하여 모두가 더불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실현하는 민주공화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토대로 하는 민주공화국이 좋은 거버넌스를 위해 정부를 혁신하고 전자 정부를 기반으로 하여 분권화·지역화·자율화·국민참여의 과제를 달성해야 하는 그런 거시적인 비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비전의 실현을 위한 기본적인 목표는 헌정의 다원화와 분권화이며, 그 실현과제는 시민의 권능화(empowerment)와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공적 영역에의 참여 강화와 전통적인 수직적 권력관계, 지배관계들을 기능적으로는 분권하고 공간적으로는 지역화하며, 관계적으로는 수평화하는 것이다.
국가-사회 대개혁의
기대효과
‘좋은 거버넌스’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을 달성하기 위한 분권화·지역화·자율화·수평화의 실천 과제는 정치개혁, 정부혁신, 사법개혁 등 전반적인 국가사회 권력체제의 대개혁을 이룰 것을 요청한다. 국가-사회의 대개혁은 민주-독재, 사익-공익, 중앙-지방 등 이항대립적으로 단순하게 설정된 실천 과제의 세부지향가치를 복합적이고 다양한 대체가치로 설정할 것을 요청한다. 궁극적으로 민주공화국에서의 국가와 사회 그리고 그 구성원인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다양한 차원의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서 책임과 공동의 권리를 동시에 주장하고 이행해야 하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권력실현단계를 이해하고 각각의 단계에서 다양하게, 때로는 상호보완적으로, 때로는 상호견제적으로 작용하는 다양한 세부지향가치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전통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한 개별 권력들의 법적 책임성과 그에 따른 독립성은 공개성과 투명성이라는 실행절차의 새로운 세부지향가치에 의해 보완되고 견제되어야 한다. 아울러 국가의 존립 목적인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인권친화적인 방법을 국가권력행사의 기본가치로 삼는 것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또 신체의 자유나 재산권 등 시민생활의 기본적 요소에 대한 제약이 이루어지는 경찰작용 및 검찰작용 등 법집행에 있어서는 상호견제와 부패방지를 위한 고려가 추가적으로 강조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다양한 차원과 단계에서의 세부지향가치들을 예시로 정리하면 <그림 2>와 같다.
<그림 2> 국가-사회 대개혁의 기대효과
분명한 것은 인권보장, 부패방지, 분권화, 자율화 등 공공부문의 대응성과 상호신뢰성을 강화하는 방향은 정부기능의 경제성과 효율성과 효과성을 향상시키는 가치와 병행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이 모든 종합적인 세부지향가치들이 다양한 단계와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복합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국가-사회 대개혁의
방법과 내용
국가-사회 대개혁을 영역별로 세분하면 정치개혁, 정부혁신, 사법개혁 같은 제도개혁과 문화개혁으로 이루어진다. 정치개혁은 헌법개정이나 입법개정 등을 통한 의회, 정당, 선거개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혁신은 전자정부화와 함께 행정혁신과 지방분권 개혁이 필요하고 사법개혁에서는 민주화, 분권화, 특히 현안이 되었던 검찰개혁의 지속적인 추진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 모든 제도개혁은 문화개혁과 병행되지 않으면 유명무실하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다변화되고 다원화되고 복합화된 현상 속에서 국가와 사회와 시장과 개인이 모두 새로운 헌정 패러다임의 변화에 병행해서 대응해 나아가기 위해서도 이런 문화개혁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또 그것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시민참여와 시민교육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권력개혁이 시민생활 일반, 즉 민생과 동떨어졌다는 인식이 많으나 사실은 민생의 개선은 이처럼 다양하고 복합적인 지향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개혁을 토대로 국가-사회 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달성되지 않으므로 권력개혁이 곧 민생의 과제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한편 국가-사회의 대개혁은 헌법개정과 같은 거시적 개혁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헌법개정이 마치 국가와 사회의 모든 과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헌법은 국가와 사회의 기본법으로 헌정질서의 대강을 정할 뿐이며 그 구체적 실현은 오로지 입법이나 행정 및 사법의 구체적 정책결정 및 집행 과정에서 구현된다. 특히 실질적인 개혁은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하부제도개혁이 관건이다. 따라서 헌법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그 방식을 추구하더라도 우선 입법개혁을 통해 달성가능한 개혁과제를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권력기관 개혁의 필요성
권력개혁의 필요성과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권력기관 개혁의 필요성을 예시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권력기관은 넓게는 국가기관 전체를 포괄할 수 있다. 그러나 협의로는 법집행권력을 의미할 수 있으며 경찰 및 검찰, 정보권력, 과세권력까지 포함할 수 있다.
권력기관이라는 명칭 자체는 독재체제의 영향하에 권위주의적 이미지를 가지지만 그것이 공동체를 삶의 조건으로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수단임을 부정할 수 없다. 국가권력 없이는 민주공화적인 인권의 보장이라는 문명적인 조건 달성이 불가능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국가의 권력기관들을 어떻게 민주화하고 자유화하며 분권화함으로써 그 오남용을 막고 본연의 질서유지기능에 충실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설정의 문제다.
그런데 민주화 이전에는 법치 없는 권력 만능의 시대가 되면서 이들 권력기관 사이에서도 우열관계가 경찰권력이나 정보권력 중심으로 전개된 역사가 있다. 민주화의 결과인 법치가 강조되면서 오히려 그것이 역으로 과도하게 전개되어 부작용이 나타나는 단계에 이르렀다. 법치가 법집행 권력기관의 문화적인 인식 변화 없이 진행되다 보니 ‘분권 없는 법치’라는 법치 만능의 폐해가 생겨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화가 독립성의 명분하에 권력기관의 전횡을 초래하는 역설을 부른 셈이다. 독재체제하에서 정보권력에 종속되어 제대로 된 본연의 법집행기능에 소홀했던 검찰권력이 민주화를 거치면서 법치라는 명분하에 모든 법집행 권력의 중점에 서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권력기관 내부에서 상호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고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어 심지어는 민주적으로 형성된 국가권력을 위협하는 검찰공화국화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제1차 민주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제2차 민주화를 달성하는 것이며, 그 핵심은 권력기관의 분권화와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여 독립성과 책임성의 민주공화적 조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진영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기본적 권력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권력기관 개혁의 필요성 : 검찰공화국의 구조와 배경을 사례로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서는 검찰공화국화하는 검찰권력의 중앙집권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과거에는 형사사법 집행절차가 검찰을 중심으로 일원화되고 지배력에 집중됨으로써 사실은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기준이 되고 생활영역에서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검찰공화국화가 광범위하게 전개된 배경에는 ‘자의적 불공정’을 구조화할 수 있는 형사사법 만능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여 생활영역의 자율성과 조화를 이루도록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한 단면만 엄격하게 강조해서 법치를 과도하게 추진하다 보면 다양한 생활영역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사안들, 특히 갈등해소를 법 등 형사사법절차에 의해서 해결하자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것이 민주화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독재시절의 과잉정치규제, 과잉행위규제가 효과적으로 청산되지 못한 가운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행위 대부분이 형사사법의 규제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런 형사사법 만능주의의 문화적·제도적 환경에서 형사사법절차에 있어서 법치의 도구인 영장청구권,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모두 다 가진 검찰이 그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정치는 과도하게 사법화되고, 그것이 또 악순환으로 이어져 검찰이 자의적으로 권력적인 작용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을 검찰의 자의적 법해석과 집행을 기준으로 재편될 수 있는 위험한 반민주공화국적인 환경이 구축된 것이다.
이것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된 원인은 정치나 법치의 영역에서 견제력을 발휘해야 할 관료, 언론 그리고 대학조차도 이 불공정한 카르텔 형성에 자의적으로 참여하면서 정치권력과 사회권력이 특정 사회세력에 독과점화되고 양극화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정-경-관-언-학 카르텔의 정점에 검찰이 위치하여 모든 시민생활을 자의적인 법해석집행을 통해 형사사법적으로 과잉통제하는 한편, 스스로의 권력 오남용에 대해서는 내외부의 통제를 철저히 거부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있어 ‘자의적 불공정’을 구조화하는 위험에 직면했다.
권력기관 개혁과 공정한 사회
개혁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것과 반대로 오히려 일각에서는 권력기관 개혁의 피로도를 호소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민주공화국의 필요에 대해 시민 교육적으로 학습 및 체화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권력기관의 개혁은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을 구축하는 민생의 전제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이 다양한 가치관과 세계관의 차이에도 공생·공영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문명적이고 평화적인 공동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체는 민주국가, 법치국가, 복지국가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민생과 권력기관 개혁이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권력기관 개혁의 평가와 과제
권력기관 개혁은 아직 완성된 성과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이는 매우 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함을 인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은 1단계 개혁 실행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분권화의 구도를 달성한 것이고, 더욱 민주화하고 분권화해야 하는 2단계 개혁의 필요성을 오히려 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단계 개혁은 분권한 권력기관들이 검찰공화국 현상으로 귀결되었던 아픈 질곡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추가적인 권력개혁으로 공정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과제를 안고 있다. 정보권력은 분권화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민주적이고 사법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더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경찰권력도 마찬가지다. 경찰조직 일원화 모델에 의해서 조직과 권한 비대화가 초래한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자치경찰제의 추가 개혁이나 강화된 수사권 등에 대하여 인권친화적 제도와 문화를 착근하기 위한 개혁이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검찰개혁은 공수처 제도 정착을 위한 추가 개혁이 필요하고 추가적으로 직접수사권을 재조정하기 위한 과제를 안고 있다.
제도적 추가 개혁 방안들을 고민하는 한편, 문화적 개혁을 추구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결국 권력기관 개혁은 제도개혁과 문화개혁의 동시 진행이라는 이중 개혁이어야 한다. 법집행기관의 독립성은 존중하면서 민주적 통제나 전문적 통제의 대상인 책임성을 요구받아야 하는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 제2단계 권력기관 개혁에서 특히 강조되어야 할 점은 이들 권력기관 사이의 기능배분과 통제장치의 구축 외에도 시민의 능동성에 바탕한 민주적 통제가 완전한 권력기관개혁과 공정사회의 미래를 보장하는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기본조건 하에서 모든 권력기관에 헌법이 요구하는 적법절차 원칙에 따른 법집행이 이루어지도록 사법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권력기관개혁의 지속적 조건이자 최소한의 기준임을 이해하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