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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특집
- 2021 대한민국 국가비전회의

2세션 : 안전한 세계와 책임의 미래

3. 보건의료 ‘레짐’의
미래와 공공성 강화
김창엽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 서울대 교수)
천관율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보건의료체계는
무엇이 변했는가
코로나19 유행은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일대 ‘사건’이다. 한 사회의 보건의료체계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범위의 건강 문제 발생과 의료 이용을 전제로 작동하며 운용된다. 신종감염병인 코로나19 유행은 양적·질적으로 처음 경험하는 건강 문제였다. 국경에서의 검역, 감염자 확인, 자가 격리, 치료,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큰 규모로 시행되어야 했으며 이를 위한 시설, 인력, 물자, 재정, 지식, 정보 등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보건의료체계는 일종의 ‘위기’를 경험하는 셈이며, 국가와 지역의 평시 체계는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하면서(adaptive) ‘변용(transformation)’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알랭 바디우의 말대로 “사건에 충실하다는 것은, 이 사건이 잉여적으로 부가되는 상황 속에서 움직이면서 이 사건‘에 따라’ 상황을 사고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유행이라는 사건에 따라 상황을 사고할 때 가장 충실하게 해내야 하는 실천 한 가지는 삶의 불평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디서나 코로나19 유행에 대한 대응이 불평등했고 그 때문에 다시 건강과 삶의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점이 행동의 출발점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콜센터와 물류센터에서 많은 확진자가 나온 것은 그곳 노동자의 체질과 ‘면역력’ 때문이 아니라 노동의 조건과 환경이 감염 예방에 불리했기 때문이다. 다시 감염병에 걸리거나 그럴 위험이 큰 노동자는 이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감소할 가능성이 증가한다. 인구가 적고 의료기관이 멀리 있는 일부 지역 주민은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실존적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건강과 보건의료의 불평등이 드러날 때 ‘공공보건의료’ 또는 ‘공공성’이 주목을 받는 것은 경험적이고 역사적이지만, 그것조차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구조를 반영한 결과다. 압도적으로 민간의 비중이 크고 사적(私的)·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보건의료체계가 시민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할 때 대안의 상상은 공공성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국가적 차원에서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공공병원 확대와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정치적 환경 변화이다.
‘의료 시장’의 구조 변동
코로나19 유행에서 드러난 보건의료와 사회적 대응의 불평등은 우연한 현상이라기보다 구조를 드러낸 사건이라 해야 한다. 단순화해서 표현하면, 그 구조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에 조응하는 보건의료 ‘체제’를 가리킨다.
널리 퍼진 통념과 달리(또는 상식 그대로) 한국 의료는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와 비슷한 면이 많다. 하나하나 항목별로 가격이 정해져 있고 생산자-공급자-제공자와 소비자-이용자 사이에 사고파는 거래가 일어난다. 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이 중간에서 지불을 대신하는 바람에 마치 공공도서관이나 공교육처럼 공적 서비스로 생각할 수 있지만, 값이 정해진 상품을 사고팔면서 수익을 올리고 자본을 형성하는 것은 시장 원리 그대로다.
사적 소유와 시장 원리가 관철되면 보건의료는 모든 측면에서 불평등을 초래한다. 과거 국민건강보험이 없고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했을 때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만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그런 불평등은 줄어들었지만, 다른 여러 축의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틀과 구조 자체가 변화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지역 불평등을 주목해야 한다. 병원을 경영할 수 있을 정도로 환자가 많지 않은 ‘소멸 위기’ 지역에서는 경제력이 있어도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한다. 감염병 전문병원은커녕 중환자실이나 음압 병실을 운영할 능력도 없는 것은 의료 경제의 원리가 관철된 결과다.
문제는 의료 경제의 환경, 특히 인구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의료 불평등과 불균형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압축적’ 고령화가 진행되는 데다 출생이 적고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가 감소해 ‘축소 사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인구가 적은 데는 총인구가 2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군이 나타나고, 많은 농촌 지역에서는 노인 인구 비율이 30%를 넘을 지경이다. 인구가 계속 줄어 조만간 소멸할 것으로 예상하는 곳도 여러 군데다.
이러한 인구와 지역 사정이 의료 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한국 의료가 시장 원리를 따르는 것은 의료기관 대부분을 민간이 세우고 운영하기 때문이다. 기관 수 또는 병상 수 어느 쪽을 기준으로 삼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공공의료 비중이 전체의 5~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 의료는 거의 전적으로 ‘시장형’ 의료체계라 불러야 하며, 공기관인 보건소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를 제외하면 모두가 시장에서 ‘생존해야’ 하는 경제 주체이다.
이를 분리해 보건의료 내부에서만 원인을 찾는 것은 잘못이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 왜 병원이 없고 있더라도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병원, 병원답지 않은 병원이 왜 그리 많을까? 병원이 있어도 전문의 구하기가 어렵다고 난리고 간호사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우연이라 할 수 없으니, 인구 축소와 고령화 그리고 시장 원리를 연결해 보자. 영화관, 프랜차이즈 커피집, 서점, 대형 마트가 없는 것과 꼭 같은 이유다. 수요가 적고 매출이 떨어지며 경영 수지를 맞출 수 없으면 시장이 무너지고 시장 원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인구가 더 줄고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의료 시장은 더 위축될 것이다. 이미 일부 지역은 병원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앞으로는 의원까지 줄어들지 모른다. 작은 의원 또한 어느 정도 숫자의 환자를 진료해야 수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의료기관을 더 많이 찾을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전체 인구가 줄어들면 결국 의료 이용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공공보건의료라는
과학적, 윤리적 대안
시장이 무너지면, 즉 시장이 작동할 여건이 되지 않으면 그러한 지역의 주민은 의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현실 가능성과 무관하게 두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계속 시장 원리에 맡기는 방법인데, 하던 대로 하자는 이야기니 사실 대안이라 할 수는 없다. 주민들은 영화관이나 휴대전화 가게를 찾아가듯 인근 대도시 의료기관을 찾아가야 하고, 그 결과 시장이 돌아가는 도시 정도나 되어야 병·의원과 의사에 다다를 수 있다.
코로나19를 경험한 후에도 중앙 정부와 많은 지방 정부는 알게 모르게 이 시장 원리에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드러내 말은 하지 않지만, 기본적인 보건의료 기반을 포기하는 듯한 태도도 적지 않다. 병원, 공장, 대학 그 무엇이든 경제 논리를 따르는 법이라 생각하면, 인구 감소와 경제 위축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회사와 학교는 생활 기반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생활 기반을 마련하자니 인구가 적고 경제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악순환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앙 정부에 부탁하고 요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처럼 보인다.
두 번째 대안은 시장 원리 바깥에서 공공 의료기관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방방곡곡에서 의과대학을 신설한다느니 대형 병원을 유치한다느니 하는 공약이 난무하지만, 시장 원리의 연장선에서는 다 불가능하다. 어느 병원이든 어떤 지원을 하든 의료 시장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면 무엇보다 먼저 시장이 시장답게 존재해야 한다. 인구 2만, 3만의 군지역에 얼마나 큰 시장이 만들어지겠는가? 발전국가 시절의 지역 성장 모델은 잊어야 한다.
민간을 활용하자거나 ‘공공민간협력’ 모델을 말하는 이도 있으나, 이 또한 어느 정도는 시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운영 중인 민간병원에 돈을 지원하고 인력을 구해주는 것으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작동하지 않는 시장을 두고 시장 원리를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상당한 재정을 공적으로 지원해야 하면, 차라리 공공부문이 직접 운영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공공보건의료 강화는 공공병원을 늘리는 것 외에도 다양한 경로가 있다. 공공부문이 의료기관을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기존 민간부문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기술적 전문성과 경험, 지역사회 주민의 신뢰, 공공부문의 실무 부담과 역량 등을 기준으로 각 지역이 다양한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와 전략이든 공공보건의료 강화는 공공부문의 ‘소유’라기보다 정치경제적 ‘책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상태를 그대로 두고 보든지 공공이 정치적 책임을 지든지 양자택일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유감스러운 일은 전자의 길이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는 점이다. 공공의료 확충에 많은 돈이 들고 따라서 국가 차원의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면, 지금 의료 시장이 무너지는 지역과 그 주민의 정치적 힘은 모든 측면에서 불리하다. 국가와 정부는 통치 차원에서 굳이 공공보건의료 강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거나 그러한 정치적 압력을 받지 않고 있으며, 일부 지역 주민을 제외하고는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넘어 현실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주장하는 시민사회(사회권력)의 힘도 약하다.
‘나라 만들기’ 레짐의
효율성 논리를
극복하는 과제
건강과 보건과 의료의 불평등은 왜 문제인가? 국가가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서 적은 인구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 어려워도 공공의료 확충을 택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더 나은 공동체와 더 좋은 사회 그리고 그 구성원의 품위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한국의 ‘나라 만들기’ 과정을 지배한 이념은 국가 발전, 특히 경제의 양적 성장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국가 이념은 지금도 큰 변화 없이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 새삼 이를 평가하고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근본적으로 변화한 지구적 환경(예 : 기후 위기)과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예 : 초고령화)을 고려할 때 이런 국가적 지향을 더 유지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불평등이 집약된 지역 의료 또한 지금까지의 국가 발전 전략과 무관하지 않았고, 현재도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무의면’을 없애자는 데서 시작해 1980년대 이후 접근성과 비용 부담을 줄이자는 정책 목표는 오늘 이른바 ‘문재인 케어’와 ‘치매 국가책임제’로 이어진다. 40년도 넘은 국민건강보험의 틀은 큰 변화가 없고, 의사가 모자라는 지역에 공중보건의나 보건진료원을 두겠다는 구상도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지금까지 보건의료 정책과 시스템의 작동, 그리고 그것의 실천 원리가 민간 부문 위주에 시장 메커니즘이었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의료의 접근성과 비용 문제를 해결하되 시장 원리에 따르는 것, 그것이 주류였고 패러다임이었다. 마침내 공공병원조차 이런 시장 원리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것, 그것이 바로 한국 보건의료 전체와 지역 의료의 오늘을 빚어낸 이념이자 원리라 할 것이다.
고령화와 인구 축소가 시장 원리와 모순된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지적했다. 공공부문의 역할을 키우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공공부문 확충조차 과거의 패러다임, 그중에서도 효율성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민간병원이 역할을 하기 어려운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면서, 인구 얼마당 하나의 센터를 둔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일부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이런 효율성 논리를 적용하면 몇 개 군을 합해야 한 개 센터를 세울 수 있고, 먼 곳에 사는 환자가 여기까지 오려면 응급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다. 감염병 대책으로 권역마다 전문병원을 둔다는 구상도 인구와 지역의 크기에 따른 ‘국가적 효율성’을 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인구가 적은 모든 지역의 의료 투자는 조만간 ‘비효율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고령 인구에 대한 의료는 그 자체로 효율성 논리와 조화되기 어렵다. 노인의 건강과 삶의 질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아니고 인적 자본도 아니다. 순전히 경제적 측면만 보면 사회적 부담에다 사회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국가 발전에, 경제성장에, 다시 성장 동력에, 경제와 효율성 논리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짐이요 사회문제다.
‘나라 만들기’ 이후 시기에는 효율성보다는 건강에 대한 권리가 노인 건강과 지역 의료의 토대, 그리고 제1의 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충분한 병원과 의사, 더 많은 보건진료원, 적절한 돌봄과 방문보건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는 인구 몇 명당 숫자를 따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어디에 살든 어떤 형편이든 적절한 의료와 돌봄을 받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살다 보니 인구 2만 명도 안되는 지역이라 응급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기본권으로서의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정책을 넘어 사회와 정치로
시장 원리가 아니어도, 또는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을 때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인구 3만 명인 지역에서 300병상 병원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비효율적인 지출을 할 수밖에 없다. 기존 논리로는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팬데믹에 대비하는 인력과 시설도 비효율적이기 십상이다. 효율성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려면 환자가 많지 않아도 필요한 전문의를 채용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필요한 장비를 사고 운영해야 한다.
시장이 사라지고 있다고 거듭 말한 것과 같이, 국가를 빼고는 정책과 투자의 주체를 찾을 길이 없다. 이런 사정에서는 시장 원리를 활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인바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렵다. 주로 돈이 문제가 될 터, 국가와 정부는 재정 사정을 앞세워 이런 투자에 소극적일 공산이 크다. 다른 정치적·사회적 압력이 없는 한, 또는 국가와 정부의 정당성과 책임성과 연결되지 않는 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과거 패러다임 그대로 민간과 시장 원리를 되풀이할 것이다.
여기서 의료 불평등에 대응하는 공공보건의료의 앞날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화’가 가능한지에 달렸다. 국가 차원에서 정책과 사업 논리로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하기에는 모든 조건이 불리하다. 현상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관계는 당사자인 시민, 지방 정부와 지역 주민, 그리고 이들의 상황과 고통이 어떤 정치를 만들어내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공공보건의료 ‘운동’이라 불러야 한다. 드러내고 말하며 요구할 때, 문제가 전국화하고 국가화할 때, 국가와 중앙 정부, 국회가 압력을 느낄 때 새로운 공공의료가 시작될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유행은 공공보건의료의 정치화와 운동이 살아날 수 있는 유력한 ‘기회’지만, 빠른 속도로 창이 닫힐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