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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특집
- 2021 대한민국 국가비전회의
3세션 : 조화로운 세계와 협력의 미래
3. 한반도 평화협력과
글로벌 신질서
김연철
(인제대 교수 / 전 통일부 장관)
1. 새로운 질서, 새로운 상상력
1971년 이후 지속되었던 미·중 협력의 시대, 즉 ‘키신저 질서’는 막을 내리고, 세계는 ‘낡은 것은 소멸했지만, 새것은 태어나지 않은 궐위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충돌하고 있고, 유라시아의 접경(유럽과 러시아,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분쟁과 긴장이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 여러 대립이 일어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 발칸반도의 다양한 민족 갈등의 도래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어떤 학자들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특징 중 지정학의 귀환으로 보기도 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공급망의 안보화가 추진되고,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기술 패권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은 전 분야로 확대되고 빨라지며 점차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군사 분야에서 미·중 양국은 ‘전략적 완충공간’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본격화하면서, 한반도의 연루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군사 분야에서 대중국 억제 전략을 강화하면서, 동맹의 기능과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유엔사를 확대하고 재활성화하려고 하며, 작전통제권 협상에서도 ‘시기’에서 ‘조건’으로 협상의 틀을 전환했다. 지금은 대중국 억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장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의 대전환이 시작되었으며, 질서 변화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구조적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은 상투적이지만, 동시에 상황 악화에 편승하는 주장은 위험하다. 익숙한 과거의 전략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시각에서 인식을 전환할 때로 보인다.
2. 한반도
비핵·평화 전략 :
인식의 전환 필요성
비핵화 평화전략에 대한 인식은 단기적인 해결 중심에서 장기적인 접근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비핵·평화 프로세스는 장기적인 과정이고, 한두 번의 협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면 불신을 낳고, 협상의 교착으로 이어진다. 또한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어렵고, 협상의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과 괴리가 발생한다. 이에 남북관계보다는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우리 외교가 어떻게 방향을 잡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 전쟁 이후 남북관계는 동아시아 지역 질서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했다.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새로운 질서 전환기에 남북 협력을 유지하면 지정학의 비극을 피할 수 있지만,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에 편승했고, 북·중 밀착을 선택했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남북관계의 공간은 축소되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중 협력을 전략경쟁과 분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장기적인 해결의 과정에서 협상의 목표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북핵 협상은 이행과정에 진입하기 전에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까지 모두 설계하려고 했다. 협상 목표만 확인하고 이행하지 못하고, 교착의 시간을 거쳐 다시 협상해서 목표만 재확인하는 ‘이행이 없는 합의’가 반복되었다. 이제는 이 합의를 다시 반복할 것이 아니라 작은 합의라도 이행하면서 그만큼의 신뢰를 쌓고 다음 단계로 합의해 나가는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종전 선언에 관해 여러 가지 입장이 있으나 이를 일종의 중간의 잠정과정으로 추진해보자는 것이 당시 합의의 문제의식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로 종전 선언이라는 것은 불안정한 휴전 체제에서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의 전환의 과정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있을 때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곧 휴전협정을 맺은 지 70년이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무장지대에 있는 당시 사망 병사들의 유해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우리는 이중의 군비경쟁 시대(남북한과 미·중의 군사분야 전략경쟁)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담론이 충돌하면서, 국내외의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면서, 동시 병행적 접근 원칙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휴전 체제에서 평화 체제로 넘어가기 전에 일종의 종전체제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대응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군비경쟁의 시대에 ‘적정억지’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3. 외교안보 분야
정책결정 구조의 혁신
포괄 안보 시대를 반영하는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 실질적인 포괄 안보의 시대에 대응 할 수 있는 외교안보 분야의 정부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를 담당할 제도의 신설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유명무실한 다양한 협의체와 회의체를 정비하고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외교 안보 분야의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도 중요하다. 미국에서 1947년 국가안전보장법 제정 이후 NSC를 만들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필요성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외교정책과 군사정책을 포함해서 문민통제의 제도화 수준은 매우 미흡하다.
외교정책의 민주적 통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비교하더라도 정무직의 채용 폭이 제한적이고, 민간 전문가를 채용하기 위한 개방형 인사 제도는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개방형 직위만 개방되더라도 많은 민간 전문가를 채용할 수 있는데, 운영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 내 조율체계의 혁신, 당정 협의와 초당적 협력 그리고 민관 협력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외교안보 분야의 관료적 비밀주의를 극복하고 정부 내부, 정부와 의회 그리고 민관 사이의 상황 인식의 공유와 토론 과정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충실해야 합의가 그만큼 이루어지고 정책 집행에도 동력이 생긴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부실하면 결국 집행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책결정구조에 대한 조금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