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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칼럼Ⅱ
K컬쳐의
현재와 미래
홍석경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이라는 매직워드로 표현되는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성공은 한국 대중문화가 동아시아의 한류현상을 넘어서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다는 증거로서 최근 몇 년간 뉴스를 달구어왔다. 세계 속 대한민국의 위상변화를 동반하는 이러한 문화적 성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가는 현재의 문화적 성취를 이어가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또는 하지 말아야하는 지에 대해 큰 질문이 열렸다. 성공한 개발도상국 한국에서 선도국 한국으로 모든 정책 마인드를 전환해야 함을 대중문화가 앞서서 깨우쳐주고 있다.
<오징어게임> 이후
달라진
서구언론의 태도
1990년대 말 중국 언론이 한국드라마의 과도한 중국 내 인기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 한류(Korean Wave)란 용어를 만들어 낸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외국에서의 성공은 습관적 국제뉴스로서 일상적인 즐거움의 대상이 되어왔다. 드라마뿐 아니라 케이팝, 단순한 한국 화장품의 인기를 넘어선 K뷰티라는 새로운 미적 실천, 패션, 음식, 관광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디어문화의 성공을 기반으로 한 광범위한 대중문화 영역이 인기의 대상이 되었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대한 해외팬덤을 형성한 케이팝이 BTS를 선두로 미국이라는 글로벌 대중문화의 코어에서 거둔 놀라운 성취를 관망하면서 서구의 미디어들은 먼저 트렌디한 문화를 즐기는 청년세대의 문화현상이라고 이해했다. 언어의 영향력이 미미한 댄스음악계열에서 한국의 아이돌 그룹의 인기는 디지털문화와 SNS로 연대하는 청년세대에 국한된 현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었다. 언론과 평론가, 학자 등 서구의 엘리트 문화매개자들은 이것이 기존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위협한다기보다 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디지털 세대의 세계관과 문화실천이 만들어낸 새로운 역동성으로 이해했다. BTS가 지닌 힙합아이돌로서의 특수성, 그리고 미국에서의 공식적인 성공은 그동안 한국 케이팝 아이돌 문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 잣대로 일관하던 유럽산 비평의 담론을 좀 더 우호적으로 변화시켰지만, 팬덤과의 충돌을 피하려 굳이 표현하지 않는 저변에는 여전히 세계화 시대 청년세대를 매혹시킨 트랜디한 로컬문화일 뿐이라는 평가가 내재한다.
<기생충>과 <미나리>의 성공, 그리고 봉준호 감독과 윤여정 배우가 수상식 소감에서 보여준 당당하고도 알맹이 있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지적은 한국 대중문화의 자의식과 주체성을 보여줬지만, 이 또한 특별한 개인들과 천재의 세계인 문화영역에서는 그가 속한 나라의 처지와 상관없이 만날 수 있는 사례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한국영화가 세계 속에서 존재감을 지니게 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어쩌면 한국경제와 영화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예상할만한 일이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진출한 93개국에서 <오징어게임>의 즉각적인 성공, 이 사건의 전조가 되었던 <킹덤>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과 뒤이은 <지옥>, <마이 네임> 등의 성공은 한국대중문화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님을 증명했고, 이제는 서구의 권위적인 매체들이 그동안의 관망의 태도를 바꿔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은 압축성장한 한국사회 빈부격차 현실을 칼로 베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한국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픈 나라에서는 이를 한국사회가 저런 빈부격차의 비극을 안고 있다고 평론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문제를 이토록 처절하게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문화적 역량이며, 문제의 극복이나 해결, 성찰은 문제를 직시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이 스토리의 비극성보다 밈으로써, 성인의 놀이로써, 널리 소비된 것 또한 성숙한 문화산업의 결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서구언론은 도대체 어떻게 한국 같은 나라가, 식민지와 전쟁, 기아와 압축성장을 경험한 개도국 한국이 이런 문화물을 만들고 문화수출국이 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들은 쉬운 설명을 찾았다. 압축성장의 동력이었던 국가가 문화 또한 작은 국내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수출용으로 투자하고 진흥해서 오늘날과 같은 케이팝과 드라마, 영화제작과 수출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딱 들어맞는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유럽 국가들과 북미, 일본에는 절대 하지 않는 질문, 어떻게 문화를 수출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국에는 제기하면서, 그 주체를 국가로 이해한 것이다. 국민의 창의력과 문화적 능력을 인정하는 대신,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가를 원인으로 이해하는 것은 서구중심적 세계관을 흔들지 않고서도 수용할 수 있는 성공 스토리다.
한류는 전파가 아닌
수용현상이다.
그런데 이 같은 서구언론의 이해는 교묘하게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첫째, 한류는 수용현상이지 전파나 수출현상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한류가 의도적이지 않아서 우리에게 놀라웠던 것처럼, BTS든 <오징어게임>이든 서구언론이 믿고 싶은 것처럼 수출용으로 ‘개발’한 콘텐츠가 아니다. 한때 영화제용 영화나 세계 가요제용 가요가 생산되기도 했고, 지금도 한국 스포츠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기 위한 엘리트 체육의 결과인 것이 사실이지만, 케이팝이나 드라마의 성공은 순전히 한국 대중문화의 산물이 디지털 환경 속에서 해외 수용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수용된 현상이다. 케이팝 팬덤은 모든 노랫말과 연관 콘텐츠를 스스로 번역하면서 상호연대하는 거대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냈다. 또, 한국드라마의 팬들은 다국적 ‘팬섭(자막)’ 팀을 만들어서 다국어로 자막을 달아가면서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드라마를 수용하고 있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렇게 축적된 경험 위에서 가능했다. 이미 미국 내 동아시아 드라마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한국드라마가 최고 인기였으며 동아시아의 최고 콘텐츠 강자인 한국이 넷플릭스의 우선적 글로벌 파트너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류가 수용현상이라는 지적은 한국 정부가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폄훼가 아니다. 교육받은 청년세대가 형성된 1980년대가 민주화의 10년이었다면, 1990년대는 그동안 억눌렸던 문화적 욕구와 갈증이 터져나온 시대였다. 1992년에 서태지가 케이팝의 원형을 갖추고 혜성처럼 나타났고, 1990년대 중반에는 케이팝 아이돌 시스템, 한국드라마의 현재를 만든 방송3사의 10시 드라마 정면경쟁 환경이 만들어졌다. 민주화된 한국 정부는 단계적으로 여러 검열을 해제하고 일본문화를 개방했으며, 빠르게 정보 하부구조를 구축해나갔다, 콘텐츠진흥원을 통해 문체부가 제작과 해외 홍보를 지원했지만, 이것은 수출가능한 문화산물을 지닌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의 문화적 발전과 해외 진출을 위해 하는 지원이지 그보다 특별한 수준이 아니다. 해외 공관의 지나친 이벤트 중심의 홍보활동 그리고 문화물의 성공을 바로 경제적 이익으로 환원하는 데 익숙한 국내언론 또한 ‘한류 국가지원설’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보인다.
‘월드케이팝 콘서트’ 개최.. 함성 대신 박수(2021.11.14).
‘월드케이팝 콘서트’ 개최.. 함성 대신 박수(2021.11.14).
*출처 : 국민소통실
개발도상국의
문화정책에서
선도국의 문화정책으로
‘한류국가주도설’의 문제는, 문화공공외교의 관점에서 한국의 국가이미지와 문화적 영향력을 증진하는 데 역행하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한국을 선진국 대열에 동등하게 포함하지 않고 뛰어난 개도국으로 묶어두는 멘털리티라고나 할까.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한류국가주도설의 낙인을 벗어나 한류가 지속되도록 지원하고, 이것이 한국의 문화공공외교의 중요한 에너지가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한국대중문화가 한류는 아니나 한국대중문화의 발전은 한류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이다. 한국대중문화 미디어 문화형식의 핵심인 텔레비전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외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된 현재, 내일의 한류를 구성할 많은 프로그램이 방송을 통해 생산되고 매개되고 있다. 한국 연예뉴스는 이제 미국의 버라이어티 언론의 뉴스이기도 하고,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드라마와 영화뿐 아니라 한국의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도 제작하는 현실이다. 한류가 근본적으로 수용현상이므로, 한류증진의 백약이 있을 수는 없다. 결국 한국대중문화의 양적·질적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류현상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책일 뿐이다. 여기서 대중문화의 ‘발전’은 무엇이며, 그것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선진국 대열에 선 한국이 대중문화에 대한 시장주의적이고 경제환원적인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대중문화정책을 세우기 위해 제기해야 할 질문이다.
대중문화를
동시대 문화유산으로
간주하고 자산화하기
몇 년 전 1990년대 인기 쇼프로그램이었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히트가요를 되살린 동명의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또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들 모두 대성공을 거두었고, 최근엔 방송사가 자사의 아카이브를 활용해서(KBS의 <모던코리아> 다큐멘터리 시리즈), 또는 역사의 주역들의 인터뷰 기록을 통해서 (SBS의 <아카이브 K>) 한국사회의 근접과거와 그 기억을 동반하는 영상 다큐멘터리가 주목을 끌었다. 방송사의 유튜브 채널은 더욱 적극적으로 방송사의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대중문화의 핵심인 방송이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인식했음을 말해주지만, 방송영상은 여전히 보편적으로 의미가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 어느 시점에서 현재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대중문화의 물질성을 담보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미디어문화이고, 그 핵심에 방송영상이 있다. 대중문화에는 공동체의 집단기억과 세대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현재의 성공한 K컬처의 근원은 바로 이러한 공통의 경험이다.
한류가 발전할수록 국내외에서 이러한 근원을 찾아보고 그로부터 재창조하며 동시대적인 자료로서 이것을 재활용할 필요성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모든 선진국이 방송영상 아카이브를 만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뉴스뿐만 아니라 예능과 픽션물들, 정당한 기준에 따라 수집된 미디어문화의 자료들은 대중문화를 문화유산으로서 보존하고 후세에 전달할 뿐 아니라, 데이터 사이언스와 인공지능의 도움을 얻어 색인·정리되고 처리된 영상은 새로운 영상산업의 중요한 일차차료가 될 것이다. 이미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 가장 이른 시점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뿌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참조하고 연구하며 재창조할 수 있는 아카이브의 구축은 바로 지금 필요한 한류와 대중문화 진흥을 위한 우선 정책이다. 아카이브는 한류와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할 뿐 아니라 한국학 해외교육자들에겐 황금의 교육자료를 제공할 것이며, 한류국가지원설 같은 근거없고 비맥락적인 주장의 생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지식생산의 환경을 구축할 것이다.
K컬쳐에 대한
담론생산의
국내외 균형의 문제
K컬처는 한국 대중문화 발전을 위한 노동조건의 향상과 아카이브 등 하부구조의 구축을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확보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자동적으로 문화선진국의 위상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대중문화의 발전에 대한 국가주의적 이해는 국내의 연구수준과 해외연구사이의 지연에 기인한다. 세계화 과정에서 한국은 지식담론의 영어화에 노력해서, 영어저술이 한국어 저술보다 몇 배로 평가받는 기이한 환경을 만들어냈다. 영어저술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국사회와 대중문화 연구분야에서 한국은 절대적인 연구수준의 우위를 점해왔으나 영어로 출판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어저술의 인용체계 내부에 진입하지 못하고 학문적 영향력이 제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은 그동안 외국어 저작의 한국어 번역에 애를 썼지만, 외국어로 번역되는 한국저술은 고전과 문학작품뿐이다. 그 결과 외국의 한국학 학자들이 영어출판을 위해 출판사가 요구하는 출판지원비를 한국 정부가 지원해주는 반면, 실제 더욱 중요하고 우수한 한국의 저술들은 영어로 번역되지 못해 인용되지도 인정되지도 못하는 모순적 상황이 만들어졌다. K컬처의 지속적이고 안정된 ‘발전’을 위해서 국가가 진정 추진해야 할 정책은 문화기술 개발이나 문화홍보에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문화라는 넓은 의미의 지식자원을 보존·큐레이션·재활용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선순환의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오늘날 K컬처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과거의 하부구조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통해 구축한 우수한 정보기술과 디지털문화였다면, 이젠 진정 그 콘텐츠의 하부구조 구축에 집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