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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특집Ⅰ
자율과 타율 조화 위한
언론개혁이 필요하다 1)
‘언론개혁’과 ‘언론규제 강화’는 동의어가 아니다
심석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많은 사람이 언론개혁을 얘기한다. 한국 사회의 언론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잘못된 보도를 하는 언론은 망할 정도의 제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난다. 자칫 올해에도 언론에 대한 규제 강화 논의가 불붙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난무하는 언론개혁론을 보면 걱정스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연 이런 언론개혁이 언론의 사실 보도와 권력 감시라는 기본 기능을 인정하는 것인지, 언론 자유는 모든 국민의 핵심적 기본권이고 언론사들의 활동 또한 그런 기본권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은 생각하고 있는지, 문제 보도라고 지목하는 것들에는 어느 정도나 의견이 일치하는지, 그리고 도입하자는 규제가 개혁하려는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일 뿐만 아니라 적정한 수단이기는 한지 등이다.
이런 의문을 품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언론에 대한 주장들이 워낙 정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문제라고 지목하는 보도가 다르고 언론의 권력 감시라는 기본적인 사명조차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조건 공적 규제를 강화하자는 논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에 대한 분풀이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또 언론에 대한 어떤 규제도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이미 수많은 규제가 언론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또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규제만능식 접근으로 언론에 관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언론에 대한 공적 규제는 최소한에서 멈추고 언론 품질에 관한 많은 부분은 자율규제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이다.
한국에는 규제가 없어서 무책임한 보도가 나온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더구나 규제가 많다고 좋은 보도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규제도 탐사나 고발 같은 바람직한 보도는 위축시키면서 정파적 보도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여 이 글에서는 언론의 본질과 언론개혁이라는 것의 방향성을 따져본 뒤 자율과 타율이 조화를 이루는 언론 정책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언론 독립성이 빠지면 ‘언론개혁’이 아니다
‘언론개혁론’과 정치-언론 사이의 후견주의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의 언론 보도는 무책임하고 엉터리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무책임한 엉터리 보도’로 지목하는 것들이 서로 다르다. 언론 권력의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 환부가 무엇인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런 상황은 한국 사회의 정파성과 무관하지 않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를 보면 한국의 언론 소비자들은 자신과 견해가 비슷한 언론을 선호하고, 언론의 독립성은 상대적으로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언론을 객관적인 공적 정보를 얻는 창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공감하고 견해를 공유하는 언론을 기대한다는 말이다.
조항제 교수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2)에서 사람들이 언론을 공감과 유대의 대상으로 인식한다고 지적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언론이 객관적인 사실 보도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 자신과 같은 견해를 공유하며 응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보도를 강화하는 쪽으로의 언론개혁을 주장할 리가 없다.
한국에서 ‘언론개혁’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처럼 모호하게 만드는 데는 정치와 언론 사이의 후견주의가 큰 몫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언론인이 특정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을 일종의 금기로 여긴다. 보도나 논평 관련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은 일정한 기간 전에 사퇴하지 않으면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제한한다. 여러 언론사는 퇴직 후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기 전에 정치권으로 가는 것을 금지한다. 겉으로 이렇게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는 것과는 달리 정치와 언론의 관계는 매우 끈끈하다. 권력은 언론을 적극적으로 메시지 전파 수단으로 활용하고, 언론은 권력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현실적인 영향력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뒤를 봐주는 후견주의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언론의 독립성’은 언론의 본질 문제
본질적으로 언론은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가져야 한다. 비현실적인 명분론이 아니라 언론의 본질에서 오는 필연적인 요청이다.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 세력이라도 언론은 그냥 사실에 기반을 두어 보도해야 한다. 그 정치 세력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도 사실 보도를 하지 않는다면 언론이 아니다. 기사 판단의 기준은 누군가의 유불리가 아니라 오로지 공익이어야 한다.
특정 조직의 기관지는 그 조직에 불리한 내용은 보도하지 않고 오로지 그 기관을 위한 일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기관지도 정기간행물로 등록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언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정부가 운영하는 홍보 채널이 언론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정 기업의 홍보물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국영 매체를 국제 여론전에 동원한 것을 생각해보자. 러시아 의회는 아예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사실 보도를 처벌하는 법률까지 만들었다. 전쟁 상황에서 러시아의 국영 매체는 언론으로서의 기본적인 기능 자체를 상실해버렸다.
같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이라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가치라도 권력과 언론은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르다. 사실 검증의 원칙 아래서 공익성에 기초한 보도를 할 때만 언론이다. 선거 보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의 승리를 위해 그 진영에 유리한 내용은 보도하고 불리한 것은 보도하지 않는다면 언론이 아니다. 사실성과 공익성의 원칙을 모두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들은 코바치와 로젠스틸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3)에서 강조한 것처럼 언론과 언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잣대가 된다.
권력을 쥔 쪽은 독립적인 언론이 불편하다.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는 언론도 권력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바로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니 권력이나 그 지지 세력이 제기하는 언론개혁론에 언론 독립성 강화가 포함될 리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언론의 본질적 원칙과 가치를 훼손하는 제도 개편이 언론개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언론진흥재단이 번역해서 출간하고 있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의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 최근의 언론개혁 논의를 이런 기준에서 살펴보면 어떨까?
2. ‘가짜뉴스와의 전쟁’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문재인 정부 언론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가짜뉴스’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은 독립적인 언론을 불편해한다. 오로지 사실에 입각해 공익을 기준으로 보도하는 언론은 어떤 권력자에게도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권력은 항상 자신과 우호적 관계 속에서 관리 가능한 언론 환경을 구축하기를 원한다. 어떤 권력이든 자신의 의도대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 우호적인 언론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언론에서의 ‘우군 확장’ 전략을 매우 거칠게 추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편한 관계였던 지상파 방송사들을 견제하겠다며 4개의 종합편성채널을 한꺼번에 허가하며 방송 시장의 구조를 바꾸어버렸고, 공적으로 지배력이 미치는 방송사에 우호적 인물을 투입했다. 여기에 반발하는 언론인들과 큰 갈등이 빚어졌고, 군사 정권 이후 다시 해직 언론인이 양산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당시 이들 정부의 언론 정책에 맞선 언론인들을 지지했고,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언론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집권 기간 내내 이런 언론개혁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언론 정책의 핵심은 ‘가짜뉴스와의 전쟁’과 ‘징벌적 손해배상제’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결국은 가짜뉴스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언론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가짜뉴스’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언론의 독립성 강화 정책일 수는 없다.
‘가짜뉴스’는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공격하기 위해 퍼뜨린 말이다. 뉴스라는 것은 그 자체로 사실을 전제한 것이어서 가짜라면 뉴스가 될 수 없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그래서 ‘뉴스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언론 불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로인해 유럽에서는 공식적으로 가짜뉴스라는 말 대신 ‘허위조작정보’라는 용어를 쓴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비판적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인은 물론 정부 관계자도 비판적인 보도가 나오면 일단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원래 언론 보도가 100% 정확할 수는 없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찾아서는 사실인 부분까지 모두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는 일이 계속됐다. 유력 인사들이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애용하면서 지지자들 사이에 언론에 대한 불만과 비판 여론도 커졌다. 잘못이 드러나도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일단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으로 보도를 공격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지면서 사회적으로 언론 자체를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언론피해구제 문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실제로 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너무 작다는 불만도 있다. 문제는 보도 피해라는 것 자체가 대부분 정신적인 것이라 정확히 손해를 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명예훼손 등의 피해 배상은 대부분 ‘위자료’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위자료는 정신적 피해를 주관적으로 평가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가 적정한 위자료 액수인지 판사의 자의적 판단 가능성이 있다. 현재 법체계 아래서도 실제 손해와 상관없이 수억 원의 위자료 판결이 나오기도 하고, 피해라고 보기 애매한 사건에서 수십만 원의 명목 배상을 명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4년 차에 대법원이 이 문제를 연구해서 대책을 마련한 적이 있다. 2016년 7월 20일에 ‘전국 민사법관 포럼’에서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 초안이 발표되었고 이후 연구반이 구성되어 10월 20일에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이라는 대책이 제시되었다. 명예훼손을 포함해 위자료가 적용되는 모든 유형의 불법행위가 다뤄졌다. 대법원은 2017년 1월 이 연구반의 보고서 요약본을 판사들에게 공개하는 것으로 연구를 마무리했다.
당시 마련됐던 내용은 형사 재판에서의 양형기준과 유사한 측면이 있어서 조금 더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해 구체적인 기준으로 제시했더라면 지난해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는 불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논의가 이루어졌던 당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태가 집중 보도되던 시기였고, 이런 보도를 계기로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와중에 대법원이 언론 보도에 따른 손해배상 강화 방안을 공론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보도로 인한 손해배상액이 터무니없이 작다는 얘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배상을 인정하는 범위를 빼놓고 이런 논의를 진행하기는 어렵다. 언론에 책임을 묻는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개별 사건의 배상액 평균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큰 사안으로 배상 범위를 좁힌다면 배상액 평균도 올라갈 것이다.
또 정정이나 반론, 기사 삭제나 수정 등 금전 배상 외의 다양한 피해 구제 합의는 배상금의 적정성 논의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 민법과 언론중재법은 이른바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이라는 개념으로 금전 배상 외의 다른 해법을 인정하고 있고 실무적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이런 복합적 피해구제가 이루어지면서 금전배상액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4)
징벌적 손배제로 단순화된 언론개혁론
이런 다양한 측면은 전혀 언급되거나 고려되지 않은 채 오로지 전체 언론 사건의 손해배상액 평균이 낮다는 점만 강조되며 ‘잘못에 책임을 지지 않는 언론’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여기에 조국 전 장관 사건 보도 등을 놓고 지지자들의 언론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언론 정책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라는 구호로 단순화됐다. 나중에 법안 처리를 위해 민주당은 이를 ‘민생법안’이라고 주장했는데 정말 이것이 민생법안이라면 왜 UN이나 국제인권단체들이 이를 비판하고 나섰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원래 언론 보도의 공익적 가치를 대변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직접 피해를 봤거나 불만이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주장을 펼친다. 이런 감성적인 주장 앞에서 언론의 독립성이나 사회적 공론장의 중요성 같은 이성적인 이야기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손해배상액 평균이 낮은 것이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범위가 넓고 복합적인 피해구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제도 하에서도 판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고액 위자료가 선고된다는 점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마치 언론을 획기적으로 바꿀 마법의 지팡이처럼 보이게 만든 2021년의 언론개혁론은 너무나 많은 중요한 논의를 건너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22년 대선 과정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이른바 전통 매체가 아닌 개인 미디어들의 일방적 콘텐츠가 광범위하게 이용자들 사이에 퍼지면서 언론과 언론이 아닌 것에 대한 구별이 모호해지고 있다. 본회의까지 올라간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법안도 유튜브 등을 통한 조직적인 허위조작정보나 일방적인 정보 유통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렇다고 그런 개인들의 표현까지 규제에 포함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 허위조작정보의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전통 언론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3. 현재의 언론 규제들의 영향과 개선 방향
오보 등 몇몇 문제 사례를 지목하며 언론을 ‘사회적 흉기’로 운운하는 언론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언론을 격하게 공격하는 사람이라도 사회에 관한 공적 정보는 언론을 통해 얻을 수밖에 없다. SNS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추천하는 정보만 본다는 경우도 있지만 대중이 SNS에서 퍼 나르는 정보의 대부분도 애초에 전통 매체들이 보도한 것이다. 그렇기에 공적 정보가 언론을 통해 제대로 공급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언론 정책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언론에 대한 규제들이 과연 공적 정보의 유통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형사 처벌 문제
형법은 사실을 언급하는 경우에도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명예는 ‘객관적인 사회적 평가’인데, 그 사람이 숨기고 싶어하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형성되어 있던 그 사람에 대한 외부적 평가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런 외부적 평가는 실제로는 오해이고, 이렇게 형성된 것은 가짜 명예, 즉 ‘허명’이다. 개인적으로 숨기고 싶었던 사실이 드러나 당황하게 된 감정적 피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해하던 상태를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해 보호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둠으로써 모든 사실 보도가 일단 형법상 범죄가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사실 보도도 일단 범죄 구성요건에는 해당하기 때문에 공익성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위법성을 면제받기 때문이다. 사실 보도를 하더라도 언론은 법원의 위법성 판단이 나올 때까지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때문에 언론은 아예 당사자를 특정하지 않는 편법을 쓴다. 무슨 내용을 보도하든 대상이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공적 영역에 관한 사항은 사실을 얘기하는 한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책임을 면하는 것이 명확하게 제도화된다면 한국 사회의 공적 논의가 크게 활성화될 것이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언론 보도를 둘러싼 법적 공방도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사생활·초상권 등의 보호 범위와 공적 정보의 유통 문제
사생활권 또는 프라이버시권은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개인적인 평온을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온전하게 내밀한 영역을 보호받는 것은 내적 안정과 평화를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 한 다른 사람과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의 공법적 생활 관계는 기본적으로 공적인 영역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개인의 인격권 보호를 확대한다며 사생활의 비밀, 또는 개인정보로 보호할 영역을 점점 확대해가고 있다. 나의 권리가 커지는 것은 좋지만 당장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가해자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개인적 권리를 강조하다 보니 이제는 공인들, 특히 고위 공직자까지 자신의 업무와 관련한 사항조차 사생활의 비밀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 이름이 판결문에서 익명 처리되고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일정 또한 사생활 보호라는 명목으로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다.
초상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 전직 보도본부장의 재직 중 발생한 일을 실명 보도를 하며 사진을 썼다고 초상권 침해를 인정하는 것이 정당한 공적 논의 보장의 측면에서 타당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적 정보라고 해서 모두 보도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 권리 보호가 공적 논의를 과도하게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사생활이나 초상권과는 다른 문제이지만 피의사실공표죄도 공적 정보 유통과 관련해 검토가 필요하다. 피의사실공표죄는 어떤 때에는 무시되고 어떤 때에는 과도하게 활용되는 전형적인 이중 기준 사례일 뿐만 아니라 언론의 정상적인 취재와 보도조차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죄명을 두고 있는 나라가 한국 외에 달리 없는 상황에서 공무상비밀누설죄가 실제로는 더 폭넓게 수사 비밀을 보호한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지금처럼 ‘네 편’에 대한 수사 상황 보도는 무제한으로 해도 되고 ‘내 편’에 대한 보도는 모든 것이 피의사실공표라는 식의 진영적 싸움만 반복할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4. 자율과 타율의 조화를 위한
언론개혁이 필요하다
한국 언론의 품질에 문제가 없다는 사람은 없다. 주요 매체들까지 눈앞의 상업적 이익에 매달리고 한편으로는 정파적 보도를 일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지금도 언론에 대한 규제 체제가 공적 논의를 다양한 방향에서 제약하는 상황에서 더 강한 규제를 도입해 언론을 통제하자는 단순 논리는 언론의 본질적 기능만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규제들도 정파적 보도의 범람을 막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적인 의제를 다루는 의미 있는 보도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론개혁에 대한 동력을 언론에 대한 대중적인 불만에서 가져온다면 당장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공격하는 데는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 전체적인 공적 정보의 유통을 확대하고 공론의 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언론개혁의 정상적 방향과는 완전히 정반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에서 시작된 언론 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잘 살려서 언론은 무엇인지, 어떤 언론이 필요한 것인지 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이런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영역은 한국 사회가 법률이라는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규제를 하고 어떤 영역은 언론의 윤리적 자율규제에 맡길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이미 한국의 언론 규제 체제는 중첩적인 법적 규제를 한다고 해서 언론의 품질 향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을 규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규제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금지할 영역은 최소화하되 불법은 명확하게 선언해야 그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도 단호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대신 책임 있는 언론이 스스로 엄격한 윤리적 자율규제를 시행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언론의 품질을 실질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집행하고 있는 각종 기금이나 정부 광고 운영 방식 변경을 통해 언론 자율규제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도와준다면 큰 추가 비용 없이도 언론 전반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의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 보도의 내용 심의를 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런 내용 심의를 바탕으로 한 규제는 자율에 맡기는 등 원칙에 입각해서 공적 규제 체제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론개혁을 논의할 때마다 언론사와 언론인을 기득권이라고 비난하면서 외부적 규제가 아니고는 답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자가 항상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때문에 미투 사건이나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공익 제보를 한 사람이 거꾸로 가해자로 몰리기도 한다. 당장 문제적 보도 사례 몇 개를 내세워 언론 전체의 사회적 역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제대로 된 언론개혁일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공적 정보 유통을 확대하고 사회적인 공론의 장을 활성화하면서도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1) 언론개혁의 방향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022. 2. 16. 한국언론학회 미디어정책특별위원회 기획 연속세미나에서 발표한 발제문
“언론자유와 규제, 자율과 타율의 정책적 조화: ‘언론개혁’ 논의의 방향성에 대한 시론적 검토”(2022. 2. 16)를 참조하기 바란다.
2) 조항제 (2020).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 서울: 컬처룩.
3) B. Kovach & T. Rosenstiel (2021). The Elements of Journalism (4th. Ed.) NY: Crown. 이재경 (역) (2021).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4판). 서울: 언론진흥재단.
4) 김정민·황용석 (2021). 언론보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관련 시계열 데이터 분석. <미디어와 인격권> 제7권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