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이해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 8일 국회를 통과하여,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조문이 16개 밖에 안 되는 법에 왜 이리 관심이 많을까? 정부 관계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이 아닌 예방에 초점을 두었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처벌을 담보로 한 예방인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름 그대로 형사법이며, 회사를 대표하는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지키도록 하고, 이를 지키지 않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처벌(사망 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 하는 법이다.
가장 유사하게 언급된 외국 사례는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이다. 영국은 산업안전 분야에서 분명 선진국이다. OECD 사고사망률(근로자 100,000명당 사고사망자 비율)을 보면 우리는 5.1명(2018년)인데 비해 영국은 0.8명(2015년) 수준이다. 영국에서도 1990년대부터 법인에 대한 과실치사 등의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입법 논의가 진행되다가, 2007년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 만들어졌다. 기업 과실치사법은 기업·정부·법 집행기관 등에 부여된 주의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벌칙을 가하고 있다. 해당 법인에 대하여 벌금(기업 매출액·중대재해 손해 발생 정도·책임성에 따라 달라짐), 구제명령, 공표명령 등이 부과되며 기업 경영진 등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은 없다. 개인에 대해서는 형법,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게 된다. 우리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개인에게 형사처벌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영국의 기업 과실치사법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기본구조를 살펴보자. ①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뉘고, ②사업을 대표하는 경영책임자가, ③보호대상인 종사자의 안전을 위하여, ④지켜야 할 안전보건확보의무를 규정한 후, ⑤이를 어기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형사처벌, 교육 이수, 공표 등 제재가 따르고, ⑥민사적으로는 징벌적 손해배상에도 해당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중대재해 범위, 경영책임자 범위,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여부를 둘러싼 복잡하고 치열한 법적 다툼이 감추어져 있다. 먼저 중대산업재해 범위를 살펴보자.
법에서는 ①1명 이상 사망, ②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③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인 경우로 되어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다루어진 과로, 직장 내 괴롭힘,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의 경우 원칙적으로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망원인으로 업무 연관성이 입증될 경우 중대재해에 포함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산업안전뿐만 아니라 인사노무(HR) 차원에서 근무환경을 바꾸고 종사자 건강권을 보장하는 프로그램 운영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누가 경영책임자인가?’ 이다. 법에서는 ①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②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회사 대표 또는 사장은 ①에 해당함은 분명하다. 회사 내 안전담당 임원(부사장, 전무)이 ②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①은 책임이 면제되는지? 는 분명하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해설집에 따르면, 안전담당 임원에게 최종 의사결정권이 없다면 ②에 해당하지 않는다. 만약 최종권한이 부여된다면 ②에 해당하지만, 회사 대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며 사안(해당 사업에서의 직무, 책임과 권한, 의사결정 구조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①과 ② 모두 법적 책임이 부과되는 예도 있을 수 있다. 회사 내 두 명 이상의 공동대표가 있으면 둘 다 ①에 해당한다. 만약 사업 부문별로 각각 대표가 있으면 해당 대표가 책임을 지게 된다. 회사 내 대표 외에 총괄대표(회장, 부회장)가 있는 경우에는 총괄대표가 의사결정에 관여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사안별로 정부 또는 법원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데, 경영계에서는 자칫 책임 범위가 넓혀질까 우려하고 있다. 회사는 법 시행 전에 이사회 등을 통해 경영책임자의 권한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안전보건법 등 타 노동법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보호 대상이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로 대폭 넓혀졌다는 것이다. 사업주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의 ①소속 근로자, ②해당 기업과 다양한 계약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외에 전속성이 없더라도 포함), 만약 수급업체가 있는 경우에는 ③수급업체 사업주, ④수급업체 소속 근로자, ⑤수급업체와 계약을 통하여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빠짐없이 보호해야 한다.
경영책임자가 지켜야 하는 의무는 무엇인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수백 개 의무사항을 다 지켜야 하는가? 답은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법시행령에서는 회사 내 안전보건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잘 작동되게끔 점검·관리하는 새로운 차원의 안전보건확보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과 연계되어 지켜야 하는 의무들도 있다. 기업은 먼저 ①회사 규모(조직과 인원)를 파악하고, ②업종별 특성과 과거 재해사례를 분석한 다음, ③중대재해가 우려되는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 개선방안에는 회사 경영방침, 전담조직, 인력과 예산, 종사자 의견 수렴, 비상매뉴얼 마련, 하도급 시 안전보건 기준 적용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