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내전
9세기 후반~13세기 중반 키예프 공국은 흑해에서 발트해에 이루는 광활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키예프 공국을 공동의 국가적 기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22년 2월 24일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우리는 슬라브인, 세 슬라브 민족이다. 자, 앉아서 미래의 운명을 영원히 결정하자”라고 언급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 개최를 제안한 바 있다. 13세기 중반 몽골-타타르의 침입으로 인해 키예프 공국이 붕괴하면서, 이 광활한 지역은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5세기 후반 킵차크 칸국에 맞서 싸우면서 모스크바를 기반으로 하는 모스크바 공국은 영토 확장을 거듭하며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했지만,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은 계속해서 다른 강대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우크라이나 서부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공국의 지배를 거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에 의해 분할되었지만, 크림반도를 포함한 동부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거쳐 18~19세기에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이후 서부 전체가 폴란드 재분할 과정에서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기도 했으나, 1918년 3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독일, 다시 1921년 3월 리가 조약에 따라 폴란드의 지배하에 놓였다. 반면 동부는 1922년 12월 소련 결성에 참여하여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Ukrai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이하 우크라이나)이라는 명칭으로 구성 공화국의 지위를 확보했다.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마침내 서부도 우크라이나에 편입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이 소련의 승리로 끝나자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은 보다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1954년 2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Russian Soviet Federative Socialist Republic)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전된 크림반도를 제외하면,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찌감치 러시아에 편입되었던 동부와 오랜 기간 다른 강대국의 지배하에 놓였던 서부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련의 구성 공화국인 우크라이나, 더 나아가 소련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통합되었다. 하지만 1991년 12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소련 해체로 강력한 구심력이 사라지자 잠재되어있던 정체성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우크라이나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이 압도적이고, 로마 교황을 수장으로 인정하지만 정교 예식을 따르는 이른바 ‘우니아트(Uniate)’의 영향권에 속한다. 반면 우크라이나 동부는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러시아와 경제적, 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정교의 영향권에 속한다. 이 때문에 서부는 NATO 및 EU 가입을 지지하고, 동부는 러시아와 관계 강화를 우선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크림반도는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해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친러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다.
2014년 3월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병합되었지만, 이른바 ‘돈바스’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는 2014년 4월 각각 루간스크 인민공화국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지난 8년간 우크라이나 정부와 내전을 벌였다. 내전이 격화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로 구성된 3자 접촉그룹 대표들과 돈바스의 두 공화국 대표들이 2014년 9월 5일 ‘민스크 의정서(민스크협정-1)’에 서명하고, 이어서 2014년 9월 19일 ‘민스크 의정서 조항 이행에 대한 각서’에 서명했다. 이러한 합의가 휴전으로 이어지지 않자, 다시 2015년 2월 12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로 구성된 이른바 ‘노르망디 4국’이 ‘민스크협정 이행에 관한 복합 조치(민스크협정-2)’에 합의하고, 3자 접촉그룹 대표들과 돈바스의 두 공화국 대표들이 이에 서명했다. 이러한 ‘민스크협정’의 골자는 첫째, 휴전 및 중화기 철수와 이에 대한 OSCE의 모니터링·검증, 둘째, 지방선거 시행 방식과 함께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의 향후 체제에 대한 대화 시작, 셋째, 분쟁에 참여한 인사의 기소·처벌을 금지하는 입법 및 시행과 모든 인질·불법 구금 인사의 석방 및 교환, 넷째, 포괄적인 정치적 해결 이후 분쟁 지역 전체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국경에 대한 완전한 통제 회복, 다섯째,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의 특성을 고려한 분권화를 핵심 요소로 규정하는 우크라이나 헌법 개정과 이들의 특별지위에 대한 입법 등이었다.
하지만 지난 8년간 ‘민스크협정’은 단 하나도 이행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의 특별지위 보장, 사면, 지방선거 조직 등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이러한 조항이 이행된 후에 국경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가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지방선거 시행과 함께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의 우크라이나로 복귀를 위한 핵심 조건으로서 국경에 대한 통제 회복, 우크라이나 언론 및 정당의 자유로운 접근 보장 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그 결과 휴전 합의 위반이 반복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돈바스의 두 공화국을 지원하면서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명분으로 ‘무력 시위’를 계속하고, 우크라이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원을 받으면서 NATO와 군사훈련을 이어갔다. 그 결과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 그리고 돈바스에서는 수시로 긴장이 고조되었고, 교전 격화로 인해 지난 8년간 약 13,000명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