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균형발전 제언
본문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균형발전 정책은 뿌리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지방균형발전을 논하던 관료들은 모두 용적률, 인구증감 따위의 수치에만 혈안이 되어서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왜 시골에 살고싶지 않은지, 제가 왜 자가 아파트를 꿈꾸는지에 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특정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골은 구립니다.
시골에 사는 것은 전혀 멋있지 않습니다.
시골은 심심합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아무리 그곳에 일자리를 때려박은들 제가 시골에 가서 살아야 할 이유 자체가 없습니다. 어차피 그 일자리, 도시에 가도 있습니다. 우리는 멋들어진 곳에서 멋있게 살고싶기 때문에 도시에 몰려가는 것입니다. 시골은 구리고, 멋지지 않고, 심심하기 때문에, 시골에 살게 된다면 도시에 들어가지 못한 패배자가 될 것만 같아서 도심 단칸방 반지하에서 삼각김밥을 우적우적 베어물어도 도시에 틀어박히는겁니다.
이는 청년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벌어둔 돈으로 도시에 자가를 마련하고 알박기에 들어간 기성세대들이 왜 계속 북적북적 시끄러운 도심에 살고자 하겠습니까? 상기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 그들이 은퇴하고 시골에 살아야 할 이유가 하등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집값이 미친듯이 오르고 잡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수요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수요가 왜 떨어지지 않고 있을까요? 청년들은 시골이라는 선택지를 완전히 배제한 채 도심으로 몰려드는데, 기성세대 또한 시골에 간다는 선택지를 완전히 배제하고 도심에 알박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늘어나는 수요와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폭발하는 부동산 가격, 늘어나는 자산가치는 기성세대에게는 꿀같은 덤이겠지요. 이러한 문제는 시골에 아파트를 제아무리 때려 짓는들 해결되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제아무리 밀어넣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일자리든 무엇이든 그저 시골에 살아볼까 고려해볼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지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요소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질은 바로 '인식'입니다.
우선, 도심지가 아닌 시골에 진행하는 재개발에서 아파트 형태의 주거를 최대한 배제할 것을 제안합니다. 정부의 지난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오로지 지방에 아파트 때려짓는 것으로 일반화되었습니다. 진천이든 어디든, 새로이 지어진 신도시와 혁신도시의 흉물스러운 성냥갑 아파트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파트는 도심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똑같이 아파트에 살거면 인프라라도 좋은 도심에 살지 굳이 왜 시골로 내려오겠습니까? 그리고, 정부에서 원하는 것이 진정 넓은 지방에 골고루 사람들이 흩어져 지역이 균형있게 발전되는 것이라면 굳이 그 넓은 지방에 아파트를 때려박아서 용적률 노래를 1절부터 4절까지 부르지 않아도 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시골에서는 시골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 특색의 주거형태가 일반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한옥입니다. 정부는 국민들로 하여금 지방에 사는 것을 고려할 수 있도록 도시와는 차별화된, 색다른 선택지를 제시해야 합니다. 도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취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물론 예산이 정말 많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건축가들과 부동산 전문가, 한옥 전문 목수들과 기와장이들 등 필요한 인원을 총동원하여 이것을 현실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내고, 한옥을 현대 건축에 맞게 최대한 개량하여 다양한 형태의 한옥 디자인을 보급하는 것으로 시골에서는 도시와 확실히 차별화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만의 주거형태가 일반화된다고 한다면 시골의 부동산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은 구리다는 인식 대신에 국민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시골은 아름답다는 인식을 널리 퍼트린다면 서서히 일자리를 억지로 지방으로 뿌려도 퇴사하고 다시 수도권으로 인력이 올라와버리는 그런 사례들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주택 뿐만 아니라 전국토의 경관 문제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의 경관은 너무나도 흉물스러운 곳이 많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지방 경관을 감히 '일제강점기, 625전쟁, 산업화의 폐허'라고 정의하겠습니다.초록이 무성해야 할 뒷산 입구에는 빨간색 불법투기 금지 락카가 칠해져있고, 그 밑에는 그 말이 무색하게 쓰레기들이 오만 천지에 뿌려져 있습니다. 나무 사이사이 늘어져 있는 검은 전깃줄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름이 돋도록 합니다. 그뿐일까요? 근린시설이라면서 조성해둔 것들은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아 풀에 파묻혀있고 칠이 다 벗겨져 여기가 한국인지 후쿠시마인지 구별할 수 없도록 합니다. 지방의 구도심 뿐만 아니라 시골길 곳곳에는 슬레이트 지붕과 칠이 벗겨진 간판만 흉물스럽게 달리고 샷시가 내려와 있는 다 무너져가는 콘크리트 흉물들이 즐비합니다. 누가봐도 유령이 사는 도시니까 사람이 살려고 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을 국가 규모로 확장하여 우선순위를 매겨 디자인 코리아 사업을 진행할 것을 또한 제안합니다. 물론 이 또한 정부 차원에서 시골에 한옥 주거형태를 정착시킨다는 테마에 맞게 디자인 전공자들에게 각 지역별 답사를 동반한 지역 특색의, 그리고 동시에 한국적인 것이라는 테마로 일원화되어 진행되어야지, 지방자치 운운하면서 그 사업의 디자인 선정을 지방으로 떠넘겼다가는 영덕 대게 동상이 하나 더 생길 것이고 부산인지 울산인지에는 손 하나만 있으면 허전하니 손 하나 더 만들자는 말같지도 않은 짓을 해대면서 흉물들만 찍어내고 예산을 낭비할 것입니다. 주로 흉물스러운 가로등이나 버스정류장, 벤치, 관광명소의 울타리 등, 해당 사업을 적용하여 바꿔야 할 것들이 정말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업은 단기적이나마 관련 직종 종사자에게 일자리를 줄 수도 있고,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는 경력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둔 곳들을 이용하여 102030을 대상으로 한 사진 대회를 여는 것을 제안합니다. 청년들로 하여금 지금껏 가본 적 없는 지방을 직접 찾아가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줌과 동시에, 최소 2인 1조, 최대 4~5인 1조로 참가하게 함으로써 함께 지방에서 예쁜 풍경을 배경으로 쌓은 좋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직접 찾아가서 사진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들에게는 추억을, 그들이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접할 네티즌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는 아름다운 대한민국 시골이라는 인식을 선물함으로써 홍보 효과와 더불어 구린 시골이라는 인식을 무색케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정작의 경우 1인당 수십만원 상당의 후한 상금을 주고 해당 사진을 문화관광청에서 직접 홍보에 사용하고, 선정작 이외에도 좋은 사진들은 사진 작가들에게 돈을 주고 구입하여 홍보에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레거시 미디어도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는 레거시 미디어에게 주입받은 멋들어진 삶의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층 아파트에서 야경을 보며 와인을 마시는 삶을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본 멋들어진 상류층의 삶이란 그런 것으로 고정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그런 삶을 쟁취하기 위해 도시로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도회적인 삶 대신,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시골 삶을 국민들이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인지하게 되는 것도 참 중요한 인식 변화의 한 축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위에서 제안한 지방 특색의 주거 형태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방에도, 도시에도 똑같이 아파트만 즐비하다면 사실 레거시 미디어가 시골을 조명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미디어에서 자신있게 소개할만한 주거촌이 있어야 미디어도 그곳에 주목하겠지요.
물론 이런 것들을 한다고 해서 지역균형발전이 이루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닐 것입니다. 실상은 제가 첨부한 사진의 당사국인 일본도 지방균형발전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일본에는 자기가 사는 지역을 사랑해서 그곳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제 2의 도시인 부산마저도 싫다고 청년들이 수십만 수백만명씩 빠져나가버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차이야말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