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희생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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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께서 태평양전쟁에 강제동원되시어 전사하셨고 해방이 되었으나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출생할 당시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를 유복자라고 하는데 일제강제징병희생자 유족이 모두 유복자로 태어나 극심한 가난, 좌우 이념대립, 625 사변 등 어려운 시기를 겨우 살았습니다.
우리 문제가 1965년 일본과 국교정상화와 함께 체결된 청구권협정에 따라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과 같은 무상 3억불을 받고 합의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피해자 보상을 하지 않고 경제개발에 투자 포항종합제철 건설, 경부고속도록, 경지정리, 한강 철교 복구 등 (청구권자금백서 1976 경제기획원) 당시의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데 기여함. 박정희 대통령은 유명해 지셨으나 우리 아버지의 목숨 값으로
경제개발하신 것입니다.
한강철교를 복구했고 소양강 댐을 만들어 수도권에 전기와 수돗물 그리고 공업용수를 공급합니다. 포항종합제철공장을 만들어 자동차, 조선 산업을 일으키고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 경제발전에 공헌하였습니다. 무상 3억불은 이렇게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상3억불에 대하여 피해자들에게 돌려달라는 것인데 아직까지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중인 윤상현 의원법 (2100282, 2100283)을 신속하게 처리해주실 것을 바랍니다. 우리는 다 고령으로 많은 사람이 원통하게 죽어 갔고 비참한 처지에 있습니다.
우리 선친의 목숨 값이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과 같은 무상 3억불이 1965년의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 선진국이 되었고 국가는 발전하고 국민들은 잘 사는데 우리는 모두 멸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해방 후 미군이 들어와 당시 이땅에 투자한 일본인 재산(적산)을 몰수하여 1948년 우리나라 정부에 넘겨주고 정부는 이를 맥각처리하여 이를 물려 받은 기업들이 오늘날 대기업이 되었다. 이에 대항하여 일본은 우리 선친들의 목숨 값 미수금 3억6백만엔을 1953년 6월 1일 동경법무국에 공탁합니다. 이를 포기하고 1965년 청구권자금 무상 3억불을 정부가 수령합니다. 지금도 미수금 3억6백만엔은 일본에 있습니다.
분하고 원통하다 분하고 원통하다
제주 43사건에는 높으신 분들이 가는데 이 나라 발전에 공헌한 일제강제동원희생자문제는 철저하게 외면 방치되고 있다
누구 돈으로 선진국이 되었는데 우리보고 멸망의 길을 가라고 하나?
분하고 원통하다
1965년 무상 3억불은 813억원 이며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은 848억원이며 이중에 미국의 원조가 3분의 1이다. 미국의 원조를 먹고 살던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