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즈음하여 풍수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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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년에 이성계가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였는데, 고려는 개국 474년 만에 국운이 쇠하자 이성계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새 도읍의 건설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는 구 왕조와 보이지 않는 끈을 끊어 버리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태조 2년(1393) 이미 진행 중인 계룡산 신 도읍 현장을 답사했다. 이는 하륜의 모악주산론(母岳主山論)이 나옴에 따른 행차였으나 계룡산을 왕도로 만족치 못하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되돌려 귀경길에 고려 남경(南京= 서울)의 옛 궁터를 살펴보고는 정도전의 백악주산론(白岳主山論)을 받아들여 한양으로 천도할 것을 결심하였다. 당시 태조는 후보 지역인 무악(신촌 일대), 한양(서울 사대문 안), 양주 회암사, 도라산(판문점 근처) 등을 시찰하고 돌아왔고, 조준 등은 한양이 “사방으로 도로의 거리가 균평(均平)하고 수륙의 교통이 잘 되는 곳이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소서" 하고 권했다. 한양은 둘레를 네 개의 산 (內四山=낙산·인왕산·남산·북악)과 外四山(용마산·덕양산·관악산·북한산)이 겹으로 에워싸고, 물길이 안으로는 청계천, 밖으로는 동쪽에서 서쪽 바다로 흐르는 한강이 싸고돌아 약간의 비보만 더하면 이론적, 수리적, 도형적으로 거의 완벽하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왕궁터를 살펴보자. 사진을 보면 옛 조선총독부 자리는 비교적 산의 중앙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 뒤의 청와대 터는 험준한 바위산에 너무 근접하여 殺氣가 많다. 그래 풍수가들은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등 모든 청와대 주인들이 끝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풍수의 원조인 도선국사는 裨補란 개념을 소개하며, 풍수탑을 세운다거나 음기를 막기 위해 인공적인 산을 만든다든가 하면 화를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원래 風水란 개념은 藏風得水의 준말로, '바람을 피하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을 의미한다. 내가 보기엔 용산은 앞에 한강이 있어 得水는 충분하나, 둘러싼 뒷산이 없어 藏風이 없는 곳이다. 좌청룡(左靑龍)도, 우백호(右白虎)도, 남주작(南朱雀)도, 북현무(北玄武)도 없다. 주산(主山) 북현무(北玄武)의 책상 혹은 안석(几案)과 같은 구실을 맡은 案山도 없다. 풍수의 기본을 갖춘 것이 없다. 배산임수(背山臨水)란 말이 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내려다본다는 뜻이다. 산은 겨울의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고 마을 앞의 하천은 득수에 용이한 걸 말한다. 그럼 용산의 背山은 어디인가. 억지로 남산을 北玄武로 주장할 것인가. 또 바로 앞의 관악산은 火氣가 강해 경북궁이 몇번이나 불이 났다고 하질 않았나. 그래 관악산 꼭대기엔 불기운을 막으려고 못을 파놓고, 경북궁 앞에 해태를 세우질 않았나. 그 관악산이 바로 코 앞에서 용산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여기는 직통으로 불벼락 맞을 자리인가. 그러나 풍수를 너무 믿어선 인된다. 그건 태양의 일조 각도와 바람과 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해석하는 일종의 환경공학이다. 얼마던지 裨補가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풍수 안다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이 나와서 설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혹세무민하는 자들이니, 그저 재미로 듣고 지나가자.
참고로 도선국사 다음 풍수학자인 이중환의 '택리지(擇里誌)'를 읽어보면 풍수의 개요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사대부가 살만한 터는 어디인가? 이중환의 '택리지(擇里誌)'
청화산인(靑華山人) 이중환(李重煥,1690 -1756년)은 실학의 대가였던 성호 이익의 재종손으로 반계 유형원의 제자다. 24세에 급제하였으나 10여 년 후 병조정랑 때, 목호룡 사건 주범으로 몰려 벼슬길이 막힌 후, 36세 때까지 네 차례 형을 당하고, 38세 되던 해 귀양을 감으로써 정계에서 반영구적으로 축출당하였다.
'택리지'는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의 산줄기와 하천을 중심으로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 등 선비가 살만한 이상적인 '가거지(可居地')를 정해 놓았는데, 팔역지(八域誌), 동국산수록(東國山水錄), 팔역가거처(八域可居處)라는 별칭은 책이 저술된 뒤 이 사람 저 사람 베껴 쓸 때마다 이름도 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팔도총론(八道總論), 사민총론(四民總論)·복거총론(卜居總論)·총론(總論) 이다.
'팔도총론'은 우리 나라 산세를 <산해경(山海經)>을 인용하여, '중국의 곤륜산(崑崙山)에서 뻗는 산줄기 하나가 고비사막과 음산산맥(陰山山脈)과 요동벌을 지나 백두산이 되었다. 백두산은 북으로 길림성을 달리는 두 강을 만들고, 남으로 조선 산맥의 우두머리가 되니, 지세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으며, 백성이 유순하고 기개가 옹졸하다.'고 기술하였다.
'사민총론'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 한 군데서 출발했다는 유래를 밝히고, 사대부의 행실을 수행하기 위한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약술하고 있다.
'복거총론'은 전체 분량의 반을 차지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터를 잡는 데에는,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둘째 생리(生利)가 좋아야 하고, 셋째 인심이 좋아야 하고, 다음은 산과 물(山水)이 아름다워야 한다.
이 네 가지 요소 중 한가지만 없어도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지리만 좋고 생리가 없으면 오래 살 곳이 못 되며, 지리, 생리 모두 좋아도 인심이 좋지 못하면 사람의 기상이 화창하지 못하고, 근처에 아름다운 산수가 없으면, 맑은 정서를 기를 수 없다.
'지리(地理)'는 땅이 생긴 모양과 형편을 살피는 것이다.
먼저 수구(水口,시냇물 혹은 강이 산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습 )를 보고, 그 다음 야세(野勢, 들의 모습), 그 다음 조산(朝山, 앞으로 뻗어 들어오는 산), 조수(朝水, 앞으로 흘러드는 냇물), 수리(水理, 물의 이용과 운송), 토색(土色,흙의 색깔)을 논한다.
수구(水口, 물이 흘러나가는 곳)는 이지러지고 성글며 텅 비고 넓은 곳은, 비록 좋은 토지와 큰 집이 많다 하더라도 여러 대를 잇지 못하고 흩어지고 망한다.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잠기고 안에 들판이 펼쳐진 곳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곳은 산중에서 구하기 쉽고, 들판은 어렵다. 산이나 언덕은 한 겹이라도 좋지만 두겹 세겹이 좋고, 반드시 힘 있게 거슬러 들어오는 물이 있어야 길하다.
야세(野勢)는 사람은 양명한 기운을 받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하늘이 조금 보이면 좋지 않고, 들이 넓은 곳이 좋다. 이런 곳은 해와 달, 별이 찬연히 비치고, 비, 바람, 추위, 더위가 순조로와 인재가 많이 나고, 병이 적다.
꺼려야 할 곳은 산이 높아 해가 늦게 돋아 일찍 지고, 밤에 북두칠성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이런 곳은 음냉한 기운이 친입하여 잡귀가 모여들고, 안개와 독 기운이 몸에 스며 병이 들기 쉽다.
들판 가운데 나지막한 산은 산이라 하지않고 그냥 들이라고 부른데, 햇볕이 막히지 않고 수기(水氣)가 멀리 통하기 때문이다.
산형(山形)은 조종(祖宗)되는 산이 다락처럼 우뚝 솟은 형태가 좋다. 주산(主山)은 수려하고 청명해야 한다. 내려온 산은 끊어지지 않고 길게 계속되고, 지맥(支脈)이 소분지(小盆地)를 이뤄 마치 궁(宮) 안에 들어온 기분이 나며, 형세가 겹치고 크고 넉넉한 곳이 좋다. 산의 맥(脈)이 평지에 뻗어내리다가 물가에 들판 터를 만든 것이 좋다.
꺼리는 산의 형세는 흘러온 내맥(來脈)이 약하고 둔하여 생기가 없거나, 비뚤어진 외로운 봉우리가 있거나, 엿보고 넘겨보는 모양이 있으면 길기(吉氣)가 적고, 인재가 나지 않는다.
앞에서 흘러드는 물을 조수(朝水)라 하는데, 작은 시내나 개울물이 거슬러 들면 길하다. 큰 강과 시내가 부딪치는 곳은 집터 산소 둘 다 나쁘다. 처음은 흥하나 오래 가면 패망한다.
흘러드는 물은 산세와 같은 방향으로, 꾸불꾸불 멀리 유유히 돌아흘러야, 정기를 모아 생성의 묘(妙)를 얻을 수 있다. 활을 쏜 것처럼 일직선으로 흘러들면 좋지 않다. 물은 재록을 의미하므로, 대개 물가에 부유한 집과 마을이 있으며, 비록 산중이라도 시냇물 있는 곳이 대를 이어 살 터다.
토색(土色)은 붉은 찰흙과 검은 자갈, 누른 진흙은 죽은 물이니, 그런 땅에서 솟은 물은 장기(瘴氣, 독한 기운)가 있어 마실 것이 못된다. 토질이 사토(沙土)로 굳고 촘촘하면 우물물이 맑고 차서 살만한 곳이다.
'생리(生利)'는 땅이 기름진 곳을 말하는데, 논에 볍씨 한 말을 종자로 하여, 60 두(斗)를 생산하면 제일, 30 두(斗) 이하는 곤란하다. 배와 수레가 모여 서로 물자를 바꿀 수 있는 편리한 곳이 좋은데, 전라도 남원과 경상도 진주, 성주가 그런 곳이다.
'인심'은 평안도는 순후하고 경상도는 풍속이 진실하다. 함경도는 성질이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백성이 모질고 사납다. 강원도는 어리석고, 전라도는 간사함을 숭상하고, 경기도는 재물이 보잘 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만 쫒는다.
'택리지'는 1751년 이중환의 나이 62 세 때 나왔는데, 전라도와 평안도는 가보지 않고 썼다고 한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함께 조선 후기의 국토와 사회를 엿 볼 수 있는 두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