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보물인가요. 국보인가요. 아니면 중요문화재인가요. 에 대하여 한마디
본문
◐ 한글 즉 훈민정음(訓民正音)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1997년 10월 1일에
항구적으로 세계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 한글은 즉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국보 제70호로 되어있다.
◐ 한글은 즉 훈민정음은 세계 유례없는 문자로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이며 독창적이다.
► 한글 즉 훈민정음(訓民正音) 완성은 1443년 12월(세종 25년)이다.
한글 창제는 아마도 비밀리에 진행하였다고 보며 집현전의 실무 책임자는 부제학(副提學)
으로서 최만리(崔萬理)가 1438년에 부제학(副提學)에 임명되어 훈민정음이 완성될 때까지
세종의 뜻을 잘 받들어 반대하는 일이 없었으나 한글 창제 후 한글반대상소 등이 있었다.
그러므로 한글을 만드는데 약 5년에 걸려서 만들었다 고 봅니다.
► 훈민정음=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한글을 만든 원리나 설명)의 저술과 서문을 쓴
날은 1446년 9월 상한(세종 28년)이다.
►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는 1446년 9월 29일이다. 양력으로는 10월 9일이다.(세종 28년)
이다.
◐ 책이름을 훈민정음(訓民正音) 이라 하고 해례(解例)가 붙어 있어서 즉 한자로 설명을 하여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또는 훈민정음원본(訓民正音原本) 이라고도 한다.
◐ 한글 즉 훈민정음의 구성은 예의(例義) 해례(解例)로 되어있다. 그 내용은
◇ 예의편(例義篇):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과 훈민정음의 음가(音價) 및 운용법(運用法)을
밝힌 책이다.
◇ 해례편(解例篇): 훈민정음의 제자해(制字解) 초성해(初聲解) 중성해(中聲解) 종성해(終聲解)
합자해(合字解) 용자례(用字例)의 설명을 하였다.
이해례편 속에 집필자(執筆者)가 정인지(鄭麟趾)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 강희안(姜希顔) 이개(李塏) 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의 8학자이다.
그리고 한글 즉 훈민정음 또는 훈민정음해례본의 저술과 서문을 쓴 날자가 1446년 9월
상한에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 이 한글 즉 훈민정음의 내용을 요약하면(고 전형필 소장본) 다음과 같다.
► 예의(例義)는 세종어제 서문에 훈민정음 창제 목적을 밝히고 있다.
► 해례(解例)는 즉 한글의 글자를 만든 원리 등의 설명이다.
- 제자해(制字解): 제자원리 제자기준 자음체계 모음체계 음상 등을 설명서이다.
- 초성해(初聲解): 초성이 무엇인가를 설명서이다.
- 중성해(中聲解): 중성이 무엇인가를 다시 설명하고 중성글자의 합용법을 설명하였다.
- 종성해(終聲解): 종성의 본질과 사성 등을 설명하였다.
- 합자해(合字解): 초성 중성 종성 글자가 합해져서 음절 단위로 표기되는 보기를 보이고 중세
국어의 성조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 용자례(用字例): 단어의 표기 예(例)를 설명하여 보였다.
- 정인지(鄭麟趾) 서문(序文) 및 집필자(執筆者): 훈민정음의 창제이유와 창제자와
훈민정음의 우수성과 편찬자 편찬연월일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한글 즉 훈민정음 또는
훈민정음해례본의 저술과 서문을 쓴 날자가 1446년 9월 상한에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 한글은 3대 가륵(嘉勒)단군 때 사용하던 전자(篆字)를 활용하였다.
세종대왕 때 집대성한 한글(훈민정음)은 3대 가륵(嘉勒)단군 때에 쓰던 가림다문(加臨多文)자를 활용한 글이다. 한글의 모양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였다. 즉 단군이 쓰던 신전(神篆)의 글자인 전자(篆字)를 모방하여 만들었다. 라고 훈민정음의 정인지 서문에 나와 있다.
한글의 자음(子音)은 원(○) 방(□) 각(△)에서 비롯되었고
모음(母音)에는 천(․) 지(ㅡ) 인(ㅣ) 으로 구성되어있다.
즉 천원(天圓) 지평(地平) 인립(人立)으로 되어있다.
◐ 정음삼십팔자(正音三十八字)=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고귀한 4개의 역사책 하나로 모은 한단고기(桓檀古記) 중 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 정음삼십팔자(正音三十八字) 즉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단군세기(檀君世紀)는 고려 공민왕 때 즉 고려말기시대에 살았던 호가 홍행촌(紅杏村) 또는 행촌(杏村) 이암(李嵒) 문정공이 편찬한 책으로 송화강(松花江) 아사달(阿斯達)에 도읍하여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한 단군님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역사서(歷史書) 이다. 1대 단군왕검(檀君王儉)으로부터 47대 단군 고열가(高列加)단군까지 2096년 동안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단군조선사(檀君朝鮮史) 이다.
* 유구한 역사와 귀중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고귀한 우리의 얼을 찾기 위해서도 그리고
세계 어떤 나라에도 자랑할 수 있으며 또 세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이 한글을 이제는
재조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위대한 한글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사대명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홍익인간을 위하는 개천절이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나라도 우리나라를 지배를 할
수가 없다고 보며 이러한 한글과 명절과 개천절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이어왔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도 이 한글을 즉 훈민정음을 국보 제1호로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해놓았다. 민족의 자존을 위하여도 또 무지한 백성들을
깨우치게 하여 우리의 역사를 이어오게 하였다. 실로 이 세상에서 어떠한 표현들도 내
마음대로 쓰고 표현을 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누구나 의사소통이 되도록 만든 위대한
한글이다.
이런 고귀하며 위대한 한글을 만드시는데 그 공로와 그 노고의 보답을 위하여도 쉬는 날로
하여야 한다. 한글을 만드시는데 애쓰신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그 선현들을 존중하며
존숭하는 의미에서 반드시 쉬는 날로 하여야 한다.(최근 소식으로는 2013년부터는 공휴일로
하며 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적인 한글을 만든 분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쉬는 날로
한다고 하니 진정 우리의 얼을 빛내는 시작을 힘차게 내딛는 것 이라고 봅니다)
그대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그대가 진정으로 내 얼과 조상의 혼백을 존숭한다면 또
한글날을 빛내기 위하여서도 공휴일로 정하여 그 노고에 보답을 하여야 한다. 이것이 애국
애족이다.
현재 국보 1호는 남대문 즉 숭례문(崇禮門)으로 되어있다. 이 숭례문이 국보 1호로 된
이유는 임진전쟁(임진왜란) 때 가등청정(가토기요마사)이 한양입성 할 때 숭례문으로
통과하였다고 하여 이것이 사연이 되었다고 한다.
실로 우리나라의 위대한 문화와 얼을 희롱하고 있는 처사다. 이제는 우리의 얼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 문화재보호법에서 국보를 정할 때 기준이 있다. 즉 국보란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커서 보물로 지정될만한 것 중에서 제작연대가 오래 이고 그 시대를 대표하며 제작의
의장이나 기술이 가장 뛰어나고 형태 품질 용도가 특이하며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만든 것 등이다. 즉 전적 서적 고문서 고고자료 목조건물 석조물 등이다.
또한 법적 근거로는 문화재보호법 제2조와 제23조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믄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 라고 구체적인 지정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얼을 바로 찾고 우리 정신을 바로 찾으려면 즉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남의
나라에 희롱을 안 당할려면은 국보 1호를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귀중하고
소중한 것을 국보 1호로 다시 세워야 한다.
제 생각으로는 한글을 국보 1호로 하면 좋겠으나 그것보다는 고려 말 공민왕 때 호가
행촌(杏村)이시며 이암(李嵒)선생님께서 지으신 단군세기(檀君世紀)를 국보 1호로 하였으면
합니다.
왜냐 이 단군세기의 역사서 속에는 단군 1대 단군왕검으로부터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
단군님의 역사가 생생하게 자세하게 기록을 해놓았다.
이 역사서 속에는 중국의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진나라의 역사가 생생하게 기록이 되어있다.
특히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의 세가(世家) 30권 중 17번째의
공자세가(孔子世家)와 공자가어(孔子家語)는 공자(孔子)가 문답한 사실을 공안국(孔安國)
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것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 제10권의 곡례자하문(曲禮子夏問)편과
소학(小學) 제4편 계고편(稽古篇)에서 소련(少連=小連)과 대련(大連)은 친상을 잘 치루었다.
그리고 동이족의 자손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즉 소련과 대련의 이야기의 기원은 바로 단군조선사의 역사서 속에서 2대 부루(扶婁)단군 때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하여 기록하고 있다. 즉 2대 단군이신 부루(扶婁)단군 때에 임인년
(壬寅年)이며 재위 2년에 즉 BC 2239년에 소련과 대련은 친상을 잘 치루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단군조선의 역사의 실록이 실려있는 이 단군세기(檀君世紀)를 국보 1호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여러분께서 더 좋은 이야기를 내 놓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조상께서 만들어 놓은 훌륭한 업적을 이제는 바로 세워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 나라를
힘차게 나아가는데 서로 힘을 모우고 협력 합심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 한글은 예의(例義) 해례(解例)로 구성 되어있다.
해례편 속에서 정인지가 서문을 지으면서 말씀하시기를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든 목적은
생민들이 살아가면서 억울한 사연을 관청이나 소송에서 그 진실의 뜻을 다 전하지 못하자
이를 애석하게 여겨 그 억울한 사연을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終)
桓紀 9209년 神市開天 5910년 檀紀 4345년 壬辰年(임진년) 西紀(서기) 2012년
10월 9일 화요일. 한글날
황효상(黃孝相) 삼라만상을 좋아하는 心操彿山(심조불산) 庸史(용사)
* 나머지 자료와 참고문헌은 제 블로그(자료실 또는 홍보실) 첫 글인
천지인(天地人)방으로 http://blog.naver.com/hhs0203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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