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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당선인에 바란다

[분과: 기타]

건국절에 대하여 한마디

조회 11 좋아요 0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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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절(建國節)에 대하여 한마디

역사도 나라마다 상대성이다. 그러므로 왜곡, 변조, 위작한 역사는 세계역사에서 않통한다. 곧 정단(正端)의 내용을 기록한 정사(正史)만이 진정한 역사다.
역사를 알면 건국절(建國節)을 단군이 홍익인간정신으로 나라를 세운 개천절이 진정한 건국절이다.

역사를 인정할려면은 즉 고대사(古代史)를 인정할려면은 조건이 있어야 한다.
먼저 역사 중에 상고시대(上古時代) 즉 고대사(古代史)를 인정(認定) 할려면은 조건이 있어야 한다.
■ 첫째 그 나라의 글자가 있어야 한다.
■ 둘째 물증이 있어야 한다.
■ 세째 그 나라의 역사서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다른 나라가 기록한 역사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에서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 나라의 고대사를 인정할 수가 있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 건국절(建國節)에 대하여 한마디.
치우천왕시대 이전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는 한웅시대=환웅시대에 치우천왕의 역사가 먼저 나라를 열고 난 후 중국의 황제헌원의 역사가 나타났다.

곧 이집트 역사에서 피라미드를 만든 시대는 BC 2650년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나라 역사로는 한웅국(桓雄國)=환웅국(桓雄國)=배달국(倍達國) 총 18대 중 14대 치우천왕(蚩尤天王)시대 이다. 중국역사로는 황제헌원시대이다. 우리나라의 치우천왕이 먼저 나라를 다스리고 난 후 동시대에 중국의 황제헌원도 나라를 다스렸다.

중국의 역사는 사마천 사기(史記)에서 말하기를 황제헌원부터 나라를 건국하여 다스려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황제헌원의 역사 이전부터 나라를 다스려 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 BC 설명 → Before Christ 예수가 태어나기 전의 동양과 서양의 역사 기록을 말함.

중국의 사마천 사기(史記)는 전한 7대 한무제 때 BC 91년에 저술하였다.
서양역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사마천 사기보다 약 300년 전에 서양역사를 저술하였다.
그리고 이집트역사를 저술한 사제 마네톤은 사마천 사기보다 155년 전에 이집트역사를 저술하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BC 2650년에 큰 피라미드는 10만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건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곧 10만명의 노예들이 약 4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집트역사에서 BC 3500년에 시간과 달력을 사용하였다. 이때는 중국역사는 없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한웅국(桓雄國)=환웅국=배달국 총 18대 중 5대 태우의(太虞儀) 한웅시대이며 이때 역경(易經)의 시조이신 복희씨(伏羲氏)가 활약하던 시대이다.

우리나라에는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 때 건국절(建國節)이라는 것을 힘차게 말할 수가 있다.

인생사와 국사란 역사를 아는만큼 나라를 이끌고 갈 수 있다.
자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릴 수가 없으며 또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다.
역사를 정확하게 알 때 국제정세에 밀리지 않고 진정한 용기와 도전정신이 나오며 우리의 주장을 할 수가 있으며 내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

세계역사에서 더욱 위대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이집트 나라입니다.
왜냐 그들은 우리나라의 한웅=환웅 5대시대인 복희씨의 시대에 이미 시간과 달력을 BC 3500년에 사용하였으며 또한 세계 불가사의한 피라미드를 BC 2650년에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나라에서 피라미드를 만든 시대는 단군의 역사 이전인 14대 한웅=환웅이신 치우천왕(蚩尤天王)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 치우천왕시대가 바로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서 최초로 역사가 시작되는 시대인 황제헌원시대 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여 중국의 역사는 황제헌원부터 시작한다고 사마천 사기 열전 69번째 화식열전(貨殖列傳)과 70번째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마지막에서 황제헌원부터 역사를 시작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경(書經)은 공자의 저서이며 여기서는 황제헌원의 첫아들의 후손인 요임금부터 역사가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순임금은 황제헌원의 둘째아들의 후손이다.

고로 단군의 개천절(開天節)은 바로 한웅국=환웅국=배달국=신시개천(神市開天)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즉 한웅(桓雄)=환웅의 역사인 웅족(雄族=熊族)이 바로 동이족(東夷族)의 뿌리인 것이다.
만주 백악산(白岳山)이 바로 신시(神市)의 도읍지이며 이 백악산에서 단군왕검도 이어받아 가게 되었다.
그리고 백두산 천지는 삼신(三神) 즉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개천절인 국경일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의 건국절은 개천절을 건국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한웅=환웅의 역사를 건국 기준을 잡으면 더 좋지만 단군이 모든 경전과 행사를 물려 받았으므로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건국한 시점을 하여도 무난하다고 봅니다.

역사를 알 때 건국절도 그 기점을 단군왕검이 건국한 단군조선을 기점으로 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역사와 세계역사를 알 때 건국절의 기점을 정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기점을 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역사를 알 때 가능하다.

그러하면 우리나라의 단군역사 전의 역사인 한웅국=환웅국 역사와 47대 단군역사와 6대 북부여의 역사 기간동안에 세계역사에 주요한 역사는 다음과 같이 있었던 것을 몇가지만 올리옵니다.

■ BC 3500년에는 이집트인의 시간과 달력을 사용했다. ≪ 우리나라 역사로는 5대 한웅(환웅)시대에 복희씨가 한역(桓易)=환역=희역(羲易)을 만든 시대이다. ≫
■ BC 3200년에는 이집트문자 히에로글리프를 사용하였다. ≪ 우리나라 역사로는 8대 한웅(환웅)시대에 염제신농씨의 시대이다. ≫
■ BC 2650년에는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 우리나라 한웅국=환웅국역사로는 총 18대 중 14대 치우천왕 시대이다. 중국역사로는 사마천 사기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황제헌원 시대이다. ≫
■ 이집트 역사에서 고왕국시대의 종말시대가 BC 2150년 이라고 나오며 ≪ BC 2150년 이때는 제3대 가륵(嘉勒)단군 재위 33년이다. ≫
■ 바빌로니아 왕국 역사에 함무라비 법전이 BC 1750년경 이라고 나오며 ≪ BC 1750년경 이때는 제13대 단군이신 흘달(屹達)=대음달(代音達)단군 재위 33년이다. ≫
■ 트로이전쟁이 BC 1300년경 이라고 나오며 ≪ BC 1300년경 이때는 중국역사로는 은(殷)나라 무정(武丁)왕 시대이며 우리나라의 역사로는 제21대 소태(蘇台)단군 재위 36년이다. ≫
■ 모세와 여호와 약속한 구약성서가 BC 1290년경 이라고 나오며 ≪ BC 1290년경 이때는 21대 소태단군 재위 48년이다. ≫
■ 1차 포에니전쟁이 BC 264년 이라고 나오며 ≪ BC 264년 이때는 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단군 재위 32년이다. ≫
■ 하나라 멸망이 BC 1766년 이라고 나오며 ≪ BC 1766년 이때는 13대 흘달단군 재위 17년이다. ≫
■ 은나라 멸망이 BC 1122년 이라고 나오며 ≪ BC 1122년 이때는 25대 솔나(率那)단군이신 재위 29년이다. ≫
■ 공자(孔子)가 BC 551년에 노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나오며 ≪ BC 551년 이때는 우리나라의 역사로는 제38대 다물(多勿)단군 재위 40년이다. ≫
■ 주나라 멸망이 BC 249년 이라고 나오며 ≪ BC 249년 이때는 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단군 재위 47년이다. ≫
■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나오며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오며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신 알렉산더대왕이 BC 336년 이라고 나오며 ≪ BC 336년 이때는 제46대 단군이신 보을(普乙)단군 재위 6년이다. ≫
■ 진시황제가 천하통일을 BC 221년 이라고 나오며 ≪ BC 221년 이때는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재위 19년이다. ≫
■ 초나라 항우가 BC 232년에 탄생이 나오며
■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BC 202년에 한고조가 되었다고 나오며 ≪ BC 202년 이때는 북부여를 일으킨 해모수 재위 38년이다. ≫
■ 3차 포에니전쟁이 끝났는 것은 BC 146년이다. ≪ 이때는 북부여 3대 고해사(高奚斯)단제(임금) 재위 24년이다. ≫
■ 전한 한무제가 BC 108년에 번한조선(番韓朝鮮)을 침범하여 즉 위만이 번한조선을 찬탈하여 위만조선 이라 하고 위만조선의 손자 우거왕을 멸하였다고 사마천 사기 130권 중 55권 조선열전과 우리나라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발해 때 저술한 단기고사(檀奇古史)에 나온다. ≪ BC 108년 이때는 북부여 4대 고우루(高于婁) 재위 13년이다. 곧 BC 108년에 고두막한=동명왕(東明王)=동명단제가 한나라가 북부여를 침략하자 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동명왕 이라 하고 한나라를 물리치고 BC 86년에 북부여의 5대를 이어갔다. ≫

단군의 47대역사와 북부여의 6대역사를 거쳐야 고주몽의 고구려 역사가 탄생하게 됩니다.
곧 역사를 알 때 헌법 전문에 건국절의 기점을 힘차게 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미래를 화랑도와 여랑도들이 힘차게 나아갈 수가 있다.

아아 역사의 소중함이여 ........
아아 역사의 위대함이여 ........


▣ 만약 개헌을 하면 5.18특별법부터 폐기를 하라.
2020.4.15. 수요일에 21대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이 결과는 야당인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의 작전을 잘못짜서 즉 자기소속의 의원이 사실에 있었던 말을 했을 경우에는 막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옹호해주어야 되는데 전쟁 중인 의원을 제명하고 또 정정당당한 대안을 내어놓아야지 왜 구걸을 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등 내부혼란만 만들어 즉 정치의 생명은 자기부하를 끝까지 지켜주고 대동단결을 하고 구걸하지말고 정정당당한 대안을 내놓을 줄 아는 지도력인 폭넓은 지도력이 부족하여 도리어 더불어민주당이 승리를 하게 되어 백성을 위한 국회를 끌고 가야한다. ≪ 미래통합당의 자유게시판에 놈(者)자의 글자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게 만든 것도 원인이 있다. 자유게시판은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있도록 개선을 하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선과 악이 있듯이 좋은 글과 나쁜 글을 다 올리게 해야 진정한 자유게시판이 되고 언론이 제대로 비판도 해야 발전이 있다. 개선해라. 그리고 미래통합당은 낙담하지 말고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숫자가 많다고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라를 파탄정부로 만든 문재인정부와 또 이번에 180석 의원이라는 것보다 1사람이라도 국회의원이 정도를 가진 인간이 더 중요하지 현재 코로나19 감염병=전염병=대유행병으로 인한 마스크 대응도 못하고 또 국가재난지원금에 대한 것도 제대로 처리를 못하고 또 법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이 도리어 위법부당하게 위협하고 국가관이 없는 짓들이 있으므로 180명의 더블어민주당 의원보다는 차라리 1명의 미래통합당의 의원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알고 미래통합당은 힘차게 계책을 세워 나가라. ≫
현재 우한 코로나19 감염병=전염병=대유행병으로 온 나라가 살아가기가 힘들게 되었는데 과연 앞으로 어떻게 대책을 하는지 두고 보아야하는 일이 남아있다.

그런데 걱정은 만일에 개헌을 하게 된다면 문재인대통령이 그 전에 말하기를 헌법전문에 5.18폭동=5.18특별법을 넣는다고 했다.
이 5.18폭동을 헌법전문에 넣는다면 이는 위대한 국민의 기본법을 무시하고 위대한 역사를 모르는 자로서 나아가 앞으로 현재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할 때는 누구나 현정부를 상대로하여 무기를 동원하여 대항해도 된다는 말이므로 이는 나라를 뒤엎어도 된다는 말이라고 봅니다. 만일에 헌법전문에 5.18폭동을 넣는다면 문재인정부를 물리쳐야 한다. 라고 봅니다. 아니 아주 추방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곧 역사를 폐기하라는 말과 또 무기를 동원해서 현정부를 대항해도 된다는 5.18폭동을 헌법전문에 넣는다면 이는 온국민을 올바른 정신의 방향을 무시하는 처사로 백성에게 역사의 모독을 짓는 것으로 보아 온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니 아주 추방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추악한 짓인 5.18폭동을 만일에 헌법 전문에 등재를 하겠다고 한다는 것에 대하여 백성에게 사과를 않한다면 탄핵 대상이 된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곧 아주 추방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아 역사는 개인 것이 아니다. 나라도 개인 것이 아니다.
역사와 나라를 영구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군역사의 홍익인간(弘益人間)정신의 이념과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정신과 세계평화(世界平和)를 지향하는 정신들을 헌법전문에 넣어야 홍익인간정신이 깃든 올바른 얼(정신. 슬기. 지혜)을 빛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위대한 분이 많이 있습니다. 안중근의사와 윤봉길의사 이봉창의사와 강감찬장군과 을지문덕장군과 김유신장군과 이순신장군 등 위대한 분의 업적과 나라를 일구어온 정신을 헌법전문에 넣어야 나라가 제대로 올바른 방향을 잡아서 나라답게 나아가고 일어설 수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나라를 세운 건국이라는 말은 우리의 위대한 홍익얼로 나라를 다스려 온 단군왕검으로부터 나라를 건국하였으며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였으며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웠으며 곧 삼국을 건국하였으며 그리고 이후 남북국시대에 삼국과 후삼국의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발해와 고려와 조선이 나라를 건국한 역사가 있는데 어찌하여 건국의 기점을 3.1운동에 기점을 헌법전문에 올려놓았다. 이는 위대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무시하고 농락하는 처사로 건국 기점을 단군왕검으로 고쳐야 한다.

앞으로 남은 관건(關鍵: 문이며 열쇠며 핵심)은 보복정치를 않하게끔 헌법에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서 보복정치를 않하게 하는 자가 나오도록 하여 곧 이러한 역사를 아는 자가 나오도록 하여 곧 폭넓은 지도자가 나오도록 하여 대용(大容)의 인물이 나와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백성에게 복을 빌고 나라를 올바르고 힘차게 이끌고 갈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도록 해야하는 개헌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다 각설하고 5.18폭동이 터졌는 1980년 5월 18일부터 10동안에 벌어져 5월 27일에 끝났다.
이러한 사실을 기록하여 놓은 그 당시 외국기자와 우리나라기자가 취재한 현장에서 실지로 기록하여 <5.18 특파원 리포트> 책으로 만든 것을 근거로 아래에 주요한 것에 대하여 10일동안에 일어난 시위를 벗어난 폭동과 폭동보다 더한 것에 대한 주요사건 중 앞에서 5.18폭동에 대하여 올렸으니 여기에서는 21일과 22일에 일어난 것만을 올리오니 반드시 진실을 밝혀서 무엇이 폭동이고 무엇이 민주화인지를 밝혀서 미래를 이어갈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곧 아래에 광주에서 일어난 1980년도에 5.18폭동을 헌법전문에 기재를 하여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 1980.5.21. 이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며 이날에 큰 사건들이 일어났다.
■ 광주세무서 방화하였다.
■ KBS방송국 방화하였다.
■ 아세아자동차공장에 진입하여 대형버스 22대와 장갑차 3대와 군용트럭 33대와 민간트럭 20대를 탈취하였다.
■ 시위대가 탈취한 버스로 화순 중앙파출소 방화와 무기 탈취하였다.
■ 광산과 하남파출소 카빈 9정 탈취하였다.
■ 함평군 신광파출소에서 총기 100 여정과 실탄 2박스를 탈취하였다.
■ 시외지역의 남평지서, 나주경찰서, 무안, 현경면지서, 무안, 청계면지서, 나주, 금성동파출소 등을 습격하였다.
■ 비아, 영광, 나주, 영산포, 무안, 영암, 화순, 장성 등지의 무기고와 화약고에서 카빈 MI소총, 수루탄, 다이너마이트 등을 탈취하여 무장하였다.
■ 광주 효덕동파출소 무기 탈취하였다.
■ 전남방직, 일산방직, 연초제조창 무기고 탈취하였다.
■ 화순광업소에서 차량 1대분의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하여 싣고와서 국민은행 앞에 대기하였다.
■ 광주교도소를 기습하였다.

◉ 1980.5.22.
교도소 앞에서 교전하였다. 영암 미암지서 무기고 습격하였다. 영암, 월야 무기고 습격하였다.

이러한 5.18폭동에 대하여 누가 방화와 기습과 탈취를 했는지 밝혀야하며 또 광주민주유공자로 되어있는지 밝혀야하며 이러한 무기탈취 등을 과연 민간인과 학생이 할 수가 있는지 밝혀야하며 이러한 짓은 특수훈련을 받아야 가능하다고 본다. 여기에 대하여 밝혀야한다. 또 이러한 짓을 한 폭동들에게 잘못 지급된 세금이 얼마인지 밝혀서 환수조치를 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이러한 잘못지급된 돈을 환수하여 서민이나 직업을 구하는데 사용하여야 한다.

상기의 사건들은 전두환시대인 1980년도에 10일동안에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곧 역사를 폐기하라는 말과 또 무기를 동원해서 현정부를 대항해도 된다는 5.18폭동을 헌법전문에 넣는다면 이는 온국민을 올바른 정신의 방향을 무시하는 처사로 백성에게 기본법을 모독으로 보아 온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니 아주 추방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만일에 5.18폭동에 대하여 엄정한 조사를 전반적으로 하여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만일에 헌법전문에 이러한 5.18폭동을 등재한다면 이러한 짓은 탄핵 대상이 된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곧 아주 추방해야 된다고 봅니다.

나라걱정을 위해 5.18폭동이 일어나서 5.18민주화운동특별법으로 잘못 만든 과정을 올바르게 밝히고 올바르게 고쳐주시기를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방송인과 지도자들은 각성을 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곧 김영삼대통령이 그 당시에 5.18폭동을 15년이 지나서 5.18특별법으로 지시를 하여 만들었다. 고로 이 5.18특별법을 폐기를 하여야 한다. 그래야 보복정치가 않일어나기 때문이다. 아아 현재도 보복정치가 일어나고 있다. 아아 5.18특별법을 폐기를 하라. 만일에 폐기를 않하면 김영삼과 문재인 2명은 능지처참을 해야한다.
사회지도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만약에 헌법을 개헌 한다면 소급한 모든 법은 다 폐기를 해주시기를 바라오며 또한 문재인정부는 전라도 40 여 개소 파출소의 무기 등을 탈취한 5.18폭동을 헌법전문에 넣는 추악하고 역사를 능멸하는 처사는 않일어났으면 합니다.

곧 젊은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에게 국가관과 역사관과 애국애족하는 정신과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을 헌법전문에 넣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우리나라의 위대한 국가와 역사를 이어온 홍익인간정신을 헌법전문에 넣어서 건국절 기점을 단군왕검의 개천절로 하고 올바르게 나라를 이어가게 만들어주어야 하는 사명감을 발휘해 주시기를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지도자 등에게 바라는 바(所=事)입니다.

만약에 개헌을 하게 되면 유구한 단군왕검의 개천절을 건국절의 기점으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 아아 역사를 먼저 알아라. 소지(小智)의 지혜로 나라의 기틀을 알랑거리지 말아라

꼭 한마디만 더 하고자합니다.
문재인의 음해작전과 추잡한 짓에 즉 그 당시에 촛불시위=촛불선동에 않넘어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곧 온 국민이 박근혜대통령 탄핵에 모두 다 속아 넘어갔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장과 판사와 검사와 언론과 방송사 등이 다 속아 넘어갔다.
그리고 더구나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새누리당=한나라당=신한국당 의원 모두가 바보등신같이 모두 다가 문재인의 음해작전에 다 속아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은 다 쪼개져서 거짓과 조작과 날조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 나라는 현재 온통 엉망진창을 만들어 혼란정부만 만들었다. 현재는 IMF보다 더 심한 우한 코로나19 감염병=전염병=대유행병이 일어나 온 상공인과 온 백성들이 죽을 지경에 빠졌다. 곧 온 나라가 혼란정부와 재앙정부가 일어나고 있다. 곧 한마디로 경제와 사회와 국방과 전임 치적의 역사를 부정하는 나라파탄정부로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세상살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다음단계로 나아갈 수가 있다.

지금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이 21대국회의원 선거에서 황교안이 작전을 잘못짜서 패배를 하였으나 앞으로 해야할 일은 그 당시 문재인의 음해작전인 촛불시위=촛불선동에 다 속아 넘어 갔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신을 차려 다시 뭉친다면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과 백성은 살길을 찾을 수가 있다고 봅니다.
또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은 그 당시 김영삼정부 때 여당으로 전라도 40 여 개소 파출소가 무기탈취를 한 5.18폭동을 민주화특별법으로 만든 것에 대해 김영삼 지시를 따른 것에 대해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그리고 나서 10일 동안에 일어난 5.18폭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새로 조사를 하여 무엇이 폭동이고 무엇이 민주화 인지에 대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먼저 해야만이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이 재정립을 할 수가 있어서 다시 뭉칠 수가 있다고 봅니다.

곧 솔직히 5.18폭동이 일어난 것을 그 당시 5.18민주화특별법을 만든 것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새 출발하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 출발을 한다면 나라를 되살릴 수가 있다고 봅니다.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지도자여 지혜를 다시 모아주어 이 나라가 제대로 걸어갈 수가 있도록 헌법전문에 5.18폭동을 등재를 못하도록 하여야 나라가 제대로 걸어갈 수가 있다고 봅니다.
비록 21대국회의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를 하였지만 이 비열한 문재인정부는 박근혜보다 더 국정문란을 일으킨 정부로 곧 혼란정부와 재앙정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아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은 새로 가다듬어 즉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5.18폭동을 전반적으로 엄정조사를 하여 진실을 밝혀서 무엇이 폭동이고 무엇이 민주화인지를 밝히는 날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은 하나로 뭉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아아 슬기를 빨리 찾아보세요.

결론은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나라를 개천한 나라를 건국한 즉 단군왕검께서 건국한 개천절을 건국절(建國節)로 기점으로 잡아야 한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나라 헌법 전문(前文)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이라고 한 것 까지는 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건국 기점을 1919년인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의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어찌 우리나라가 건국한 역사가 임시정부뿐인가. 이는 우리나라의 위대하고 유구한 역사를 능멸하는 처사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1919년 전에 짐승보다 더 지독하고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교란한 자이며 조선침탈의 원흉이며 민비(명성황후)시해사건을 저지른 이등박문(이또오 히로부미)을 1909년에 사살한 안중근의사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리고 1592년에 임진전쟁(임진왜란)에 나라를 구한 이순신장군 등은 우리나라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가. 또한 나라를 구한 사명당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가. 이러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
또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
그전에 나라를 세운 고려(高麗)의 왕건은 우리나라의 사람이 아니며 우리역사가 아니라는 것인가.
그전에 나라를 세운 후고구려의 대중상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가.
또 그전에 나라를 세운 후고구려의 국호를 개명하여 발해 즉 대진국의 대조영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가.
또 그전에 세운 고구려는 백제는 사로(斯盧) 즉 신라를 건국한 위대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것인가.
또 고구려 그전에 세운 즉 건국한 북부여는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것인가.
또 북부여 전에 건국한 단군조선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인가.
또한 단군조선 전에 삼대경전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과 홍익인간 등을 사용한 한웅국=환웅국을 건국한 즉 신시개천 한 한웅(환웅)의 역사는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말인가.
진정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위대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임시정부뿐이라는 말인가.

아아 슬프다.
아아 진정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찌 우리나라의 위대하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를 1919년 3.1운동 때 임시정부라고만 말하고 있는 헌법전문에서 기점으로 말하고 있는가.
이는 우리의 위대한 조상이 건국한 나라와 임금을 능멸하는 처사다.

결론으로 만일에 개헌을 한다면 헌법 전문(前文)부터 고쳐라.
차라리 단군이 건국한 즉 개천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과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는 정신과 세계평화(世界平和)를 지향하는 홍익인간정신이 깃든 것을 계승하여 라고 헌법 전문에 기록하여 우리나라의 기틀인 기준점을 올해(서기 2020년) 단군이 건국한 즉 개천절인 단기 4353년을 기점으로 세워라.
단기를 기점으로 해도 되는 것은 한웅국(환웅국)시대=배달시대에 사용한 삼대경전과 홍익인간의 정신 등과 행사를 그대로 단군왕검이 계승하여 현재까지 이어왔기 때문에 헌법전문에 이러한 홍익인간정신을 넣어라. 그러하면 그대가 위대한 지도자 라고 말해도 된다. 그러나 만일에 5.18폭동을 헌법전문에 넣는다면 그대는 영구히 역사의 대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아아 나라를 올바른 홍익인간정신을 헌법전문에 넣어야 미래가 밝아지기 때문이다.


▣ 1964.6.3사태(事態)와 혁명 전제 조건과 함께 살아가는 좋은 방책의 역사에 대하여.
6.3사태란 5.16군사혁명 이후 1964년도에 일어난 사건을 말한다.
즉 1961.5.16군사혁명 이후 1964.6.3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제6차한일기본회담이 1961년 10월에 비밀리에 김종필과 일본의 오히라 간의 한일문제 중 가장 큰 문제인 청구권문제가 타결되었으며 어업협정문제 등도 1964년 4월에 타결되었다.
이에 야당 학생들의 반대와 데모가 극심하여 1964년 6월 3일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1964년 6월 3일 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전후로 일어난 한일회담반대시위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事態)를 말한다. 비상계엄령 해제는 55일 동안인 1964년 7월 29일까지이다.

1961.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후 즉 이 당시에는 나라가 극히 혼란하여 정변(쿠데타)이 성공하여 역사에서 기록하기를 군사혁명 이라고 하였다. ≪ 또한 세계역사도 마찬가지다. 정변(쿠데타)이 성공하면 혁명 이라고 기록하는 것이 역사다. ≫
다시 말한다면 1961.5.16. 군사혁명의 기록을 간략하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960.4.19.학생의거=4.19학생혁명으로 성립된 민주당정부는 곧 당시 상황은 민주당이 집권하던 시대이며 정치와 사회적으로 정국이 불안한 상태였으며 6.25.전쟁 이후 극심한 생활고와 사회적 혼란과 즉 1960년도 3.15부정선거로 1960.4.19.학생의거(혁명)로 이승만정권이 붕괴 되고 허정(許政: 윤보선에 대통령 후보를 양보함)의 과도정부가 수립되었으나 각종 시책을 펴지를 못하고 그 뒤 민주당이 들어섰지만 3.15부정선거 등을 처리를 못하고 학생데모 노총관계 데모 등 무수히 일어났다.
4대 윤보선시대에는 의원내각제로 총리 중심의 정치로 당시에는 1960.7.29일 국회의원총선에서 장면(張勉)정권이 선거에 압승하여 국무총리가 되었으나 무능으로 정치와 데모 등으로 사회가 불안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 위협이 증가하였으며 이러한 과도정부(過渡政府)에 정군(正軍)의 군사혁명세력의 움직임은 4.19.이후 처음으로 정군운동으로 사회전반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사회 정치적 안정과 지위 신장과 권력욕구 불만과 사회의 부정부패와 또한 군부의 고급장교의 부정부패와 각종 군부비리 현상으로 인하여 소장 박정희와 중령 김종필을 중심으로 육사 8기생들이 1960년 9월에 모의 하여 그 다음해인 1961.5.16.새벽에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하여 제2공화국(당시 대한민국 4대 윤보선대통령 재위시대이며 1대~3대까지는 이승만대통령이다)의 시대는 의원내각제로 장면정부를 무너뜨리고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권을 장악하여 군사정변(쿠데타)이 성공하여 3일 만에 국가재건최고위원회를 출범시켜 혁명공약 6개항을 발표하여 일어난 것을 5.16.군사혁명 이라고 한다.

즉 기성정치인에게 더 이상 국가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서 방황하는 국가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목적을 전하고 혁명공약 6개항을 밝혔다. 이것이 5.16.군사혁명이다.
이에 미국정부의 지지와 장면(張勉)내각은 총사퇴 하고 당시 대통령 윤보선(尹潽善)의 묵인 하에 5.16군사혁명은 성공하여 2년 7개월간의 군정시대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헌법개정을 1962년 12월 17일 국민투표로 확정시켰다.
개정확정한 후 그 다음해인 1963년 10월에 대통령선거와 11월에 제6대 국회의원선거를 거쳐 야당의 단일후보 윤보선을 근소한 표차로 당선되어 12월 17일에 선거에 의해 박정희정권인 제3공화국이 정식 출범하였다.

이에 제2공화국인 의원내각제(議員內閣制)를 폐지하고 부통령을 없애는 등 대통령중심제로 복귀하였다. 즉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직접선거제로 바꾸고 국무회의를 의결기관에서 단순한 심의기관으로 하였으며 또 국무총리를 국회의 동의없이 임명할 수 있게 하여 행정부의 권한인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5.16.군사혁명 이 후 나라발전의 초석이 되는 성과 등에 대하여는 이야기 하지 않고 지금의 잣대에서 어두운쪽만 이야기를 하여 이 5.16군사혁명을 군사정변 이니 아니면 쿠데타 라니 기록하고 있다. 비열하게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역사를 모욕하는 처사이며 또 우리나라와 세계 혁명가들에게 먹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라를 다스리는 격이다. 곧 생민을 어두운 길로만 가게 만드는 격이다. 지도자는 반드시 역사의 양면을 연구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올바른 지도자의 길이다.

곧 역사는 양면을 즉 좋은 쪽과 어두운 쪽을 연구하여 배울 것은 배우고 반성하고 개선해야 될 것은 개선하여 생민에게 가르쳐야 한다. 권력을 잡은 지도자가 지금의 잣대로 흘러간 역사를 역행하여 곧 천지의 사계절을 역행하여 지금의 잣대에서 어두운 쪽만 이야기를 하여 잘못만 말하는 것은 백성과 나라를 올바르게 이끄는 지도자상이 아니다. 또한 나라를 힘차게 나가는데 도움이 않되는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상은 양면을 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지도자가 진정 많은 중생을 살리는 길로 가게 해주는 존경받는 지도자상 이라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역사가 흘러 대통령의 정책이 여러 번 바뀌고 그 후 김영삼대통령시대에 5.16군사혁명을 5.16.군사정변(쿠데타) 이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나라 만대(萬代)의 기틀인 교육의 지표인 국민교육헌장(1968.12.5.에 선포)도 없앴다.
그 당시에 조금만 더 덕을 베풀어 역사를 양면으로 나라 걱정을 하였다면 국민교육헌장 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놓고 난 뒤에 국민교육헌장을 없앴다면 앞으로의 역사에서 존경 받는 인물이 되엇을 것 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전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나온 분을 위로와 노고와 수고에 대하여 치하(致賀) 하는 것은  뒷전으로 하고 즉 우리나라 서울에서 제24회 세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도록 모든 준비를 마무리를 해주고 13대 노태우대통령에게 물려주어 1988.9.17. ~ 10.2.까지 개최하여 세계 4위를 하여 대한민국을 빛내었다.
이러한 치적이 있는 대통령을 무지막지 하게 감옥에 처넣는 처사는 아주 비열한 정치를 한 자로 현재 보복정치가 일어나게 한 원흉으로 능지처참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문재인은 더 비열하고 추잡한 것을 배워서 또 이명박, 박근혜 2명의 대통령을 위로나 노고의 말은 없고 보복정치로 감옥에 보내는 추잡한 일들이 일어나 온 나라를 혼란정부로 만들어 재앙만 일어나고 있다. 곧 김영삼과 문재인은 과연 그릇이 크고 훌륭한 지도자의 상이 맞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곧 김영삼과 문재인을 하야나 탄핵이 아니라 아주 추방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 후 14대 김영삼대통령은 또 전두환 전임 대통령을 역사에 맡긴다고 해놓고 또 감옥에 넣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임 대통령의 치적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두 대통령의 도움으로 김영삼이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혼자 살기위하여 어두운 면만 보고 즉 5.18폭동을 5.18특별법으로 만들어 내란죄=반란자로 만들어 감옥에 집어넣는 처사는 지도자인 인간(人間)으로 천지리치(天地理致)를 역행하는 비열한 짓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위대한 인간이나 덕이 있는 인간은 이렇게까지는 않하는 것이다. 곧 전임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는 처사는 인간이하의 짓이며 자신의 그릇이 적다는 것이다.
가정도 가지런히 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 힘든 것을 마치고 나온 대통령을 노고와 치하는 않하고 어두운 면만 보고 용서와 관용은 없고 반란자로 만들어 자기만 살자고 감옥에 집어넣는 처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러한 처사는 아주 낮은 정책이며 이는 곧 중생들과 나라를 어두운 길로 가게 만드는 것이다. 곧 세계역사에서 우리나라를 실추시키는 처사이다. 곧 자기 자신의 인격을 더 처참하게 만드는 격이다. 나라를 위하는 큰 그릇 이라면 전임 대통령이 큰 잘못이 있다면 차라리 비자금에 대하여는 환수조치만 하고 감옥에는 보내지 말하야 현명한 처사 라고 봅니다. 곧 사회에 헌납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책을 세워서 처리를 하였다면 나라 전체에 망신을 덜 주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한다면 전임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는 처사는 곧 자기 부모가 자식을 힘들여 키웠으나 어느 한 부분을 잘못 하였다고 하여 감옥에 집어넣는 처사나 똑 같다고 봅니다.
역사에 이런 말이 있다. 그릇이 적은 인물일수록 즉 명분이 작을수록 자신의 명분만을 너무 세우기 위해 전직자를 죽이거나 죄명을 많이 씌우는 법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지도자는 자신의 명분을 더욱 높이기 위해 전직자를 포상하고 죄인을 방면한다고 했다.
곧 나라를 영구히 발전을 할려면은 새로 법을 만들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면 그날로부터 시작하여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감옥에 보내는 일은 없도록 하는 방안을 만든다면 아마 우리나라의 미래는 더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는 말하고 있다. 그릇이 크면 모든 물건을 받아들인다. 곧 역사를 알면 좋은 방책(方策)이 나온다. 라고 하였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는 나라 전체에 불행을 주는 이러한 극단의 처사가 않일어나도록 하여 나라 전체가 같이 함께 살아가는 좋은 방책으로 나아가는 전통의 길인 즉 좋은 사통(史通)의 길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즉 역사가 살아숨쉬는 그러한 길을 열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가 현재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 그 기초를 다져주었는 것에 대하여는 그 노고에 대하여는 치하를 하여야 하며 그 반면에 인간의 생명이 존귀한 것인데 단 이 인권이 정당한 민주화운동으로 국가기관에서 누명이나 조작하여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에게는 앞으로는 무슨 특단의 조치로 피해보상들의 대책들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5.16.군사혁명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국사에 기록하고 있는 올바른 방법은 차라리 그 대통령의 임기 시 마다 각각 기록을 하여 놓아야 한다. 그래야 그 역사를 더럽히지 않는 것이다.
왜냐 역사란 그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는 것이지 현재 권력을 잡은 대통령의 시점에서 즉 현 잣대에서 이미 흘러간 역사를 혁명을 가지고 아니니 하는 처사는 올바른 역사관이 아니다.
세계역사는 전부가 혁명의 연속이다. 하나라의 역사에 무력으로 정변(쿠데타)으로 멸망시키고 상나라 즉 은나라를 세운 탕왕(湯王)도 역성혁명이요 은나라를 무력으로 정변(쿠데타)으로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武王)도 역성혁명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도 혁명으로 신하들이 반기로 일어나 궁예를 쫓아내고 고려를 세웠으며 더구나 고려 말에 이성계(李成桂)가 정변(쿠데타)을 성공하여 조선을 세운 것도 역성혁명이다.
이러한 모든 역사에 이미 정변(쿠데타)이 성공하여 혁명 이라고 기록한 것을 현시점의 잣대로 이제와서 혁명을 정변이니 쿠데타이니 하고 고치려 하는 처사는 역사를 어지럽히는 처사들이다. 이러한 역사를 다 고치려고 한다면 세상이 어지럽다.
차라리 현명한 지도자라면 왜 혁명이 일어났느냐에 그 원인을 찾아서 다음 역사에는 좋은 역사가 만들어 지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 라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역경(易經)에서 말하기를 오행으로 볼 때 혁(革)은 수화(水火)가 아니면 않되지만 그 이면에는 금(金)이 없이는 혁이 실패하게 된다. 금은 무력을 뜻하고 천고(千古)이래 무력으로 즉 정변(쿠데타)으로 혁명이 이루어줘 왔다. 라고 말하였다.
곧 혁명은 무력이 동반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혁신을 하겠다하는 그러한 뜻을 같이 하는 동지가 있어야 한다. 곧 역사에서 혁명 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변(쿠데타)이 성공하였을 때 혁명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정변(쿠데타)이 단순하게 성공하면 정변 또는 쿠데타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실패하고 또 정권을 잡지 못하면 역적, 반란 등 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는 혁명의 연속이다. 이 혁명(革命)이란 반드시 그 임금의 신하로서 그 왕조의 실정을 무너뜨려 완전히 다른 임금으로 바꾸고 체제 변혁을 말하고 있다.
단 혁명의 전제 조건으로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집권자가 그 정변(쿠데타)을 막지 못한 책임이 더 크다고 봅니다.
저는 1961.5.16.을 5.16군사혁명으로 적는 것이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것이다.
정권을 잡은 현시점에서 이 혁명을 천지의 사계절을 역행하여 정변(쿠데타)으로 기록하는 자는 지도자가 아니며 나라를 망조의 길로 만든자로 즉 나라를 더럽게 만든자로 반드시 능지처참해야 된다고 봅니다.
단 다시 고치려면은 전 시대에 기록한 것을 그대로 기록하고 곧 현 시점에서 다시 고치려고 한다면 고친 대통령(임금)의 이름을 동시에 같이 기록해야 역사도 모르고 더러운 대통령인 그자가 추잡하게 기록했다고 영구히 기록이 남기 때문에 반드시 그 고친 대통령의 이름을 기록하여야 한다. 곧 나라를 가장 어지럽힌 자라고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혁명을 또 어떻게 기록을 할지 또 정책이 다른 대통령이 나와서 지나간 각 혁명의 역사를 또 어떻게 고칠지는 몰라도 다음의 그 대통령은 역사를 양면으로 보도록 하기를 바라오며 밝게 보는 즉 우주관으로 역사관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현명한 역사를 만들어 주시기를 고대(苦待)합니다.

좌우간(左右間)=자우간(自又間)에 1961.5.16군사혁명 이후 1964.6.3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제6차한일기본회담이 1961년 10월에 비밀리에 김종필과 일본의 오히라 간의 한일문제 중 가장 큰 문제인 청구권문제가 타결되었으며 어업협정문제 등도 1964년 4월에 타결되었다.
이에 야당 학생들의 반대와 데모가 극심하여 1964년 6월 3일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1964년 6월 3일 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전후로 일어난 한일회담반대시위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事態)를 1964.6.3사태라고 말한다. 비상계엄령 해제는 55일 동안인 1964년 7월 29일까지이다.

서울에서 한일회담반대시위가 최초로 벌어진 3월 24일부터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6월 3일까지를 일컫지만 길게는 한일협정비준서가 조인된 1965년 12월까지 포함된다.
배경으로는 5.16군사혁명 이후 군사정부는 자유당과 민주당 때에 진행되다가 중단된 한일회담을 재개하기 위하여 1962년 11월에 김종필 특사를 파견하여 오히라 외상과 정치적 절충을 벌였으며 이 회담에서 청구권문제가 타결되었다.
그 뒤 정부는 1963년 12월에 박정희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일본사절단을 맞아 한일회담의 최대난관이었던 평화선문제와 어로문제를 타결하고 한일양국의 국교정상화를 합의하였다.
이어 1964년 3월에 정부는 한일회담 재개를 결정하였으며 이에 야당은 3월 6일 한일회담반대범국민적 투쟁기구로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를 발족시키고 구국선언문과 대정부경고문을 발표하였다.
이때 야당은 매국외교중지 평화선 양보불가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화반대를 주장하였으며 대안으로 대일청구권 27억 달러. 전관수역 40마일을 제시하였다.
1964년 3월 24일에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서울시내 각 대학에서 한일회담반대시위가 일어났고 다음날 학생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대학생들은 곳곳에서 경찰과 유혈충돌을 하면서 도심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시위는 4.19를 연상시키는 폭발 직전의 위기를 나타내고 있었으며 이에 경찰력으로는 시위저지의 한계점에 이르자 시국대책을 위하여 5월 9일에 제3공화국이 출범하여 돌격내각인 정일권(丁一權: 6.25전쟁 당시 육해공군총사령관) 내각이 발족되었다.
정부는 1964년 6월 3일에 여러 차례 긴박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였으나 데모의 열도가 점점 격앙되자 이날 밤 9시 40분을 기하여 드디어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에 비상계엄령 1호와 2호가 발표되자 즉 집회, 시위의 금지보도 사전검열과 영장없이 압수수색, 체포, 구금을 할 수 있도록 조처하고는 그 배후세력으로 지목되어온 정치인과 이를 과장보도 내지는 선동하였다는 혐의로 언론인에 대한 구속선풍이 불었다.

박정희의 제3공화국은 미국의 원조가 감소로 변화자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자도입원의 하나로 일본자본에 기대를 걸고 한일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던 것이다.
곧 정부는 미국, 일본 등의 도움으로 경제건설을 하려는 의욕과 경제발전을 성취하기 위하여 빈약한 내자와 국내자원에 기반을 두는 것보다는 미국과 일본의 협력 하에 외자를 동원하고 값싸고 풍부한 외국자원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정부는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에 제7차한일회담이 1965년 12월 18일에 한일협정비준서가 드디어 조인되었다.

◉ 한일기본조약 협정 조인의 주요 내용.
1. 한일 양국은 외교 영사관계를 개설하고 한일광합병=한일합병 및 그 이전에 양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무효임을 확인하였다.
2. 일본측은 대한민국정부가 한반도에 있어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인정하였다.
3. 청구권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서는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장기저리 정부차관 및 3억 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공여하기로 합의를 하였다.
4. 어업협정에서는 양국연안 12해리의 어업전관수역을 설정하고 어업지원의 지속적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정한 공동구제수역을 설정하였다.
한편 재일교포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에 의하여 재일한국인이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문화재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통하여 일제괴광기=일제통치기간 동안 일본으로 유출된 다수의 문화재를 반환받을 수 있게 되었다.
≪ 여기서 역사를 연구하였다면 한일기본조약에서 제일로 중요한 것인 바로 우리나라가 왜놈에게 일제괴광기시대=일제강점기시대로부터 시작하여 광복절까지 왜놈에게 처참하게 당한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별도의 피해보상청구처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빠졌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별도로 피해보상청구처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아아 역사를 알아야 국제무대나 일본에게 당당하게 우리의 주장을 펼 수가 있는데 아아 역사의 소중함이여. ≫

마지막으로 제가 한 가지만 더 말하고자 합니다.
이세상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차라리 혁명을 하여 나라를 이어가는 것이 더 백성을 위하는 것이다. 만일에 혁명도 해보지 못하고 어지러운 난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더 낫다. 또한 내 나라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고 매국하여 나라를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변(쿠데타)을 하여 즉 나라가 극히 혼란할 때 혁명을 하더라도 나라를 새롭게 혁신하여 이어가는 것이 더 백성을 위하는 것이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역사는 말하고 있다. 즉 혁명을 하여 나라를 이어간 새 왕조는 새롭게 활기차게 나라를 이어갔다. 그러나 전쟁에 지거나 혁명에 성공하지 못할 때는 그 자손들은 그 나라는 그 백성들은 분열과 이간질 등 비참하게 되었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역사는 영원히 흐른다. 이 역사 속에서 많은 나라 많은 인간이 있는 이상 그리고 나라가 안정이 않되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 또 백성이 고달플 때는 이 혁명이라는 것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역사다.
또한 고려시대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학을 숭상하던 고려 6대 성종이 연등회는 불교의 퇴폐풍습이고 팔관회는 조상을 섬기는 문화이며 단군문화로 미신행위라고 폐단하자 충신 이지백(李知白)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란의 침략을 당해 국토를 분할하여 내주는 것보다 우리 민족이 대대로 행하던 연등회, 팔관회 화랑도 등의 풍습을 되살려 외국풍조에 물들지 않음이 곧 나라를 지키는 가장 튼튼한 국경(國境)이라고 했습니다.
백성이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국경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나 그것은 한 번 무너지면 그만이지만 사상과 민속으로 무장하면 어떤 곤경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는 최후의 국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문화와 민속의 정신은 나라를 만일에 잃게 되더라도 최후에는 나라를 찾는 최후의 국경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곧 팔관회와 연등회는 이미 신라의 진흥왕 때부터 국가행사로 지켜져 왔던 우리 민족사상 최대의 행사였다. 또한 진흥왕 때에 화랑도 정신으로 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다져 놓았는 임금이다. 그 후 26대 진평왕 때에 화랑도정신을 더 발전시켜 우리고유의 정신을 키워 세속오계(世俗五戒)로 삼국을 통일하는 믿거름을 만들었다.
즉 천신님이며 곧 하느님의 아들인 단군의 후예들은 스스로 천자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제단을 쌓고 단군하느님께 제사를 올렸다. 이는 우리 민족의 신앙이며 의식 행사였다. 단군하느님이 처음으로 개천한 10월에 제단을 쌓고 11월에는 문무백관이 한자리에 모여 국태민안을 빌었다. 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나아갈 길은 연등회도 호국연등회로 팔관회를 홍익단군문화 등으로 국가행사를 잘한다면 또 단군의 정신이 깃든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성이 들어 있는 홍익학(弘益學)=홍익교(弘益敎)를 살리고 국자랑(國子郞)의 정신이 깃든 즉 화랑도(花郞道)정신이 깃든 행사를 잘 한다면 우리나라는 미래에 세계에 역사가 숨쉬는 나라로 세계 중심이 되는 문화나라 홍익지도(弘益之道)의 인정이 있는 홍익단군문화나라로 이어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우리단군역사 우리단군문화 우리단군얼을 우리가 지어보세.
우리농사 우리가 지어보세.
우리역사 우리가 지어보세.
우리문화 우리가 만들어보세.

만약에 개헌을 한다면 보복정치가 않일어나도록 제도를 만들어라. 이렇게 해야 나라가 나아가 백성이 올바르게 살아나간다고 봅니다.
곧 역사는 말하고 있다. 좋은 대안, 대책, 방책은 역사를 소중하게 여길 때에 나오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아 역사의 소중함이여 아아 홍익역사연구기관을 만드는데 서로 슬기를 모아봅시다. 종(終)

♬ 국민에게 믿음을 얻는 것은 사실과 진실을 많이 밝히고 정의와 진실의 역사를 많이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


임인년  단기(檀紀) 4355년  서기(西紀) 2022년 4월 11일 월요일.
홍익방건축(弘益房建築) 특허사업 대표이며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소장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용사(庸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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