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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소개합니다.

청와대가 궁금하세요?
청와대는 어떤 곳일까요?

청와대가 궁금하세요?

청와대는 푸를 청(靑), 기와 와(瓦)자를 써서 '푸른 기왓장으로 지붕을 얹은 건물'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입니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하고 생활하는 모든 공간을 일컫는 정식 이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청와대는 단순히 공간을 일컬을 뿐 아니라 대통령과 대통령의 일을 돕는 부서 전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청와대는 조선 시대(1392~1910) 왕이 살던 곳인 경복궁 가까이에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청와대 자리는 '경무대'였습니다. 경무대는 나랏일을 맡는 사람들을 뽑는 과거시험과 무술대회, 병사 모집과 같은 여러 가지 큰 행사를 치르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청와대 뒤쪽에는 조선시대 도읍이었던 한양을 동서남북으로 에워싸 보호하고 있는 네 개의 산 중 하나인 북악산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북악산을 중심으로 이 4대 산의 능선을 따라 옛 성벽들이 쌓아 올려졌고, 조선시대 성벽 일부는 아직 원래 모습 그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답니다. 조선시대 북악산 산기슭은 왕궁과 가까울 뿐 아니라 멋들어진 경치 때문에 근처에 왕족들과 양반들이 많이 자리 잡고 살았습니다. 덕분에 이 근처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한 시, 그림, 문학작품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청와대는 주변 자연환경을 세심하게 보전하여, 서울에서 가장 푸르른 지역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높이 솟은 소나무, 떡갈나무, 감나무가 자라고 사슴, 희귀종 새, 다람쥐 등 동물들이 자유롭게 땅 위를 돌아다닐 정도로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지키고 있는 곳이지요. 북악산 기슭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대통령 관저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중심가의 모습은 너무나도 멋집니다.

청와대가 있는 자리

청와대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서울시의 주변인 북악산과 북한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시청과 종로, 을지로 등 도심 사무실 밀집지역의 북쪽에 있습니다.

청와대의 주소는 일제 강점기인 1911년 12월 20일에 '광화문 1번지'로 정해졌었는데,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1월 1일부터 일본식 주소가 한국식으로 바뀌면서 '세종로 1번지'가
되었습니다.

고려시대 이궁이 있던 자리

청와대 부근은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 고려의 이궁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역사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고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도읍이었던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의 세 곳을 삼경으로 삼았는데 숙종 때 동경 대신 이곳에
이궁을 두고 남경으로 삼았습니다.

남경이란 '남쪽의 서울'이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숙종 이후 고려 예종, 인종 시대까지 계속 발전했던 이곳 이궁 자리는 충렬왕 시절부터는
더 이상 화려함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경복궁의 후원 터

이후 청와대 자리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도읍을 옮기자는 주장이 시작되면서부터였습니다.
조선의 첫 임금인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새로운 도읍을 세우기 위해 [신도궁궐조성도감]이라는 특별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관리들을 보내 궁궐터를 찾아보게 했는데, 고려 숙종 때 이궁 자리는 너무 좁아서 새로 궁궐을 짓기가 어려우므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궁궐을 지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즉, 오늘날의 청와대 터에서 좀 더 내려간 평지에 왕궁을 짓기로 한 것이지요.
태조는 그해 12월 정도전으로 하여금 궁궐 짓는 일을 시작하도록 했고 이듬해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9월에 궁을 완성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궁이 바로 경복궁입니다.

경복궁이 완성된 뒤, 세종 8년인 1426년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의 후원(뒤뜰)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때 후원에는 서현정 등 각종 정각, 누각과 함께 군사 훈련을 하는 연무장, 과거 시험장이 만들어졌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경복궁과 이곳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경복궁과 그 후원인 지금의 청와대 근처는 27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2년인 1865년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다시 지어졌습니다.
이 당시에 함께 건축되어 후세까지도 이름을 남기게 된 경무대도 지어졌는데,
경무대는 창덕궁 후원의 춘당대의 뒤를 이어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장' 으로서의 기능을 이어갔습니다.
한편, 1896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경복궁은 시련을 겪게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이화장에서 일제 총독 관저였던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경무대는 제 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라는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푸른 기와의 청와대로 불리고 있습니다.